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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미술축제 하이라이트

집필자 : 이현 / 아트인컬처 편집장 등록일: 2025-12-17


I. 2025년 가을의 예술 지도

2022년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한 이후, 한국의 가을은 매년 거대한 미술잔치의 계절이 되었다. 키아프와 프리즈가 열리는 서울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의 미술계가 그 흐름에 맞춰 저마다의 전략으로 한껏 존재감을 드러낸다. 미술축제의 무게 중심이 더 이상 수도권에만 쏠려있지 않다는 사실은 올해 더욱 분명해졌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바다미술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까지 총 여섯 개의 주요 행사가 동시다발로 열리며 전국을 하나의 거대한 예술 지도로 만들었다. 이들은 단순히 지역의 전시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차원을 넘어, 동시대미술의 핵심 의제를 전면에 내세워 더욱 주목받았다. 각 비엔날레는 차별성 있는 시선과 방법론으로 동시대 문화예술에 시급한 문제를 우리 앞에 제시했다. 전통과 지역성을 세계로 확장하는 실험, 인류세 시대에 공존을 모색하는 생태적 상상력, 디지털 기술과 인간의 감각을 연결하는 시도 등… 이 여섯 축제는 오늘날 한국 미술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또렷한 이정표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이 다채로운 스펙트럼에서 우리는 어떤 공통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까? 글로컬리즘, 환경과 공존, 디지털 시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올해 미술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여기 모았다.


II. 글로컬리즘, 지역과 세계는 하나



사진 1. 팀랩, <파도의 기억>, 2024, 6채널 디지털 작품, 연속 재생, ⓒteamLab, courtesy of Ikkan Art LL. 사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제공

지역에서 출발한 전통이 세계와 만날 때 예술은 과거의 유산을 넘어 동시대 언어로 재탄생한다. 윤재갑 예술감독이 이끈 올해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문명의 이웃들’을 주제로 8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목포, 진도, 해남 일대에서 열렸다. 20개국 83명(팀)의 작가가 참여해 수묵이라는 전통 매체를 동시대 미디어와 접목하고, 아시아 문명권의 확장과 교류를 시각화했다. 해남에서는 한국 수묵의 뿌리를 짚고, 진도에서는 남종화 계보와 근현대까지 이어진 수묵 서예의 흐름을 보여줬으며, 목포에서는 일본 미디어아트 그룹 팀랩 등 굵직한 해외 작가를 초청해 국제적 확장을 모색했다(도판 1). 이는 수묵이 고리타분한 전통회화가 아니라 글로벌 감각을 지닌 현대미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한 실험이었다.

이어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고요 속의 울림(靜中動)’을 주제로 9월 26일부터 10월 26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북예술회관을 포함한 전북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서는 1,000명의 종교인과 서예가, 4명의 신진 작가가 모여 서예를 종교와 문화,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신개념 언어로 재정의했다. 대표 프로그램 ‘천인천경전(千人千經)’에서는 수많은 종교인이 각자의 종교 경전을 필사함으로써 서예가 공동체적 연대와 화합의 언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K-SEOYE ART’와 ‘청년 시대소리–정음’에서는 회화,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서예의 성격을 확장해 문자와 이미지,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했다. 이처럼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모두 지역의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세계와 호흡하는 ‘글로컬리즘’을 실천했다. 전통을 유물로 박제하지 않고, 그 가치를 오늘의 언어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사진 2. 니콜라 플로크, 2019, <물의 색-칼랑크>, 피그먼트 프린트(70점). 사진: 대구사진비엔날레 제공


III. 인간과 생태의 공존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은 환경을 소재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바다미술제와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전혀 다른 성격과 매체에 주력한 행사였지만, ‘환경과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공통된 메시지를 던졌다. 먼저 큐레이터 김금화와 베르나 피나가 공동 감독을 맡은 바다미술제는 9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을 무대로 펼쳐졌다. 올해의 주제 ‘언더커런츠(UnderCurrents):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은 해변이라는 특수한 장소가 지닌 생태적 의미에 주목했다. 이곳에서 두 감독은 관객을 단순한 ‘작품 감상자’를 뛰어넘어 ‘공존의 목격자’로 초대했다. 백사장에 설치된 조각, 바닷바람에 실시간 반응하는 설치물, 파도와 모래의 리듬을 타는 사운드 작업 등은 인간이 바다와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를 드러냈다. 해양 오염,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같은 위협이 추상적인 경고로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의 영역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했다. 이 전시에서 바다는 일상의 배경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일부로 인식됐다.

반면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사진이라는 특정한 장르를 매개로 또 다른 생태적 질문을 던졌다. 엠마뉘엘 드 레코테가 총감독을 맡은 이번 행사는 ‘생명의 울림’을 주제로 9월 18일부터 11월 16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었다. 23개국 67인(팀) 작가가 참여해 도시의 콘크리트 사이, 산업과 자연이 맞닿는 경계,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공존을 탐색했다.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 다중 노출, 혼합 매체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작업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생명의 층위를 재조명했다. 이 전시에서 사진은 더 이상 기록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생태적 감각을 되살리는 도구로 기능했다(도판 2). 이와 같이 바다미술제와 대구사진비엔날레는 환경 위기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로 인간과 자연의 동반 가능성을 실험했다. 위기의 시대에 감각을 일깨우고, 생태 윤리를 재고하는 예술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진 3. 청주공예비엔날레 어린이비엔날레 <놀러와요! 누구나 마을> 전경. 사진: 청주공예비엔날레 제공

IV. 디지털 시대의 감각 회복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일상을 재편하는 오늘날, 예술은 디지털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감각을 다시 인식하는지를 고찰한다. 청주공예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각각 공예와 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 이 질문에 답을 제시했다. 먼저 청주공예비엔날레는 강재영 예술감독이 ‘세상 짓기’를 주제로 9월 4일부터 11월 2일까지 문화제조창 및 청주시 일원에서 선보였다. 72개국 작가 1,300여 명이 작품 2,500여 점을 출품하면서 역대급 규모를 자랑했다. 청주공예비엔날레는 공예를 단순한 장식적 오브제가 아니라 의식주 전반을 관통하는 삶의 기술로 재정의했다. ‘보편문명으로서의 공예’, ‘촉각적 감각의 회복’, ‘비인간 존재를 포함한 생태적 감수성’, ‘공동체 협업’ 총 네 개의 섹션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공예의 촉각성과 물질성을 재조명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만연한 세계에서 손과 몸의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도판 3). 과거의 전통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짓는 실천으로서 공예를 제안했다.


8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예술감독 최수신이 이끌었다. ‘너라는 세계: 디자인은 어떻게 인간을 끌어안는가’를 주제로 19개국 429명의 디자이너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행사에서 예술감독은 디자인을 ‘포용성’을 구현하는 사회적 장치로 제안했다. 모빌리티와 이동권, 재활용 패션과 순환 경제, 감각 조절 공간, 인공 지능과 생태 실험 등으로 나눠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지 탐구했다. 디지털 시대의 디자인은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이 아니라, 차별 없는 경험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예술과 산업, 환경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디자인은 미래 사회의 윤리를 구축하는 실천이 된다. 두 행사는 기술이 삶을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예술은 오히려 인간을 다시 중심에 세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공예는 몸의 감각을 되살려 기술이 놓친 부분을 보충하고, 디자인은 기술이 벗어난 경계를 다시 잇는다. 디지털 시대의 예술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대신, 더 잘 느끼고 더 함께 사는 것을 설계한다.



V. 한국 미술, 밝은 미래로


올해 미술축제의 파도는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오랫동안 서울에 집중되었던 담론과 자원이 이제는 점차 지역에서 새롭게 발화되고 확장되는 흐름으로 전환되고 있다. 비수도권 행사들은 더 이상 지역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동시대미술의 변화를 선도해 가는 주체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전통을 무기 삼아 세계와 소통하는 글로컬리즘,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실험하는 생태적 상상력, 기술 시대에 인간의 감각을 되찾으려는 움직임까지. 이 여섯 개의 축제가 던진 질문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동시대미술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이제 지역은 주변이 아니다. 한국 미술의 미래를 실험하는 전진 기지이자, 새로운 담론을 꽃피우는 뜨거운 현장이다.



#한국미술 #비엔날레 #글로컬리즘 #생태 #디지털 시대

이현

소속 | 아트인컬처 편집장

1992년 서울 출생.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졸업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전문사과정 수료. 현재 『아트인컬처』 편집장.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예술 콘텐츠화 사업 심사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사업 자문위원 및 심의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평가단 위원, 울산시립미술관 커뮤니티 아트 심사위원,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예술교류사업 심의위원, 충남문화재단 예술지원사업 심의위원, 충북문화재단 국제교류지원사업 심의위원, IBK기업은행 더아트프라자 제안서 심사위원 등 역임. @croissant_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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