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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Under Construction): 프랑수아 캉탱, 정금형을 말하다

집필자 : 프랑수아 캉탱 / 컬렉션 랑베르 관장 등록일: 2026-09-04



전시된 설치 작품의 양옆으로 관객이 앉아 있다. 전시실 중앙에 높인 단 위에 합성수지로 주조한 인간 뼈들이 전선과 모터, 배터리와 연결·조립되어 있다. 그 전체 모습은 선주민 사냥꾼이 의례를 준비한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의 뼈를 가지런히 전시하는 일은 삶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정금형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6년이었다. 그때까지 그의 퍼포먼스를 본 적은 없었지만 작가의 얼굴과 말을 통해 작업에 담긴 개인적 헌신과 강렬한 신체성을 느끼고, 작업 과정 전반을 책임지며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태도 또한 알 수 있었다. 그건 작가의 신중하고 느린 반응 때문이었을까. 그가 보여준 색다른 이미지의 퍼포먼스였을까. 그도 아니면 비주얼 아트와 퍼포먼스 두 세계에 양립하는 그의 존재 방식이었을까. 딱 하나만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필자는 도시와 기술 속에서 일종의 마법을 감각하게 하는 현대적인 매력이 가득하다고 느꼈다.

[도판 1] 정금형, 〈Under Construction〉 (2024), 

《자유로운 자들의 중얼거림》, 컬렉션 람베르, 아비뇽, 2026. 사진: Jean-Christophe Lett


작품의 양 끝에 스탠드 마이크 두 개를 설치하여 작가의 목소리를 포착한다. 작가가 다가간다. 그는 평범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미사여구나 불필요한 말은 없다. 움직임을 모델링하겠다고 담백하게 말한다. 이어서 작업 과정을 설명한다. 우선 지난 작품인 바퀴 달린 로봇들을 언급한다. 그리고는 작품의 설치 요소인, 바퀴가 네 개 달린 작은 사물로 다가간다. 무릎을 꿇고는 팔짱을 끼고 양손을 쇄골에 댄다. 부드럽게 몸을 옆으로 눕히는데, 마치 코펜하겐 인어공주 동상의 나른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연상시킨다. 아주 천천히 작은 기계를 작동시킨다. 스위치를 몇 차례 누른다. 바퀴 달린 작은 기계가 소음을 내며 앞뒤로 반복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쿤스트할레 바젤(Kunsthalle Basel)은 오랫동안 신진 아티스트를 주시해 온 미술관으로, 특히 엘레나 필리포비치(Elena Filipovic)가 관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필리포비치 관장은 정금형 작가에게 커미션한 작품을 쿤스트할레 바젤의 장엄한 홀에 전시했다. 정금형 작가 초대전 《홈메이드 RC 토이(Homemade RC Toy)》(2019)였다. 작가의 안무적(choreographic) 작업이 현대 미술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던 시기였다. 안무가가 자신만의 댄스 파트너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한다. 작품 제목대로 기계 장치가 달린 장난감을 손으로 직접 만든다. 작가는 끈기 있게 마이크로 공학의 기본부터 익혀 왔다. 전시장에 장난감을 전시하고 특정 시간에 작동시킨다. 그 주변에 관객들이 앉는데, 이전에 로봇의 받침대 역할을 하던 정확히 그 자리다. 관객의 착석을 도운 뒤에 작가는 옷을 벗었다. 중앙에 놓인 검은색 대형 댄스플로어에는 다섯 개의 로봇이 놓여 있었다. 그 형상들은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했는데, 몸통은 바닥에 밀착해 있고 쭉 뻗은 팔다리 끝에 바퀴가 달려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의 하관으로부터 작은 바퀴가 길게 뻗어 있는데, 각 로봇의 뺨이 바닥에 닿아 긁히는 형태다. 안무가는 기묘하게 은밀한 몸짓으로 로봇 중 하나의 몸통 위에 자신의 몸을 뉘인다. 

[도판 2] 정금형, 〈Under Construction〉 (2024), 

《자유로운 자들의 중얼거림》, 컬렉션 람베르, 아비뇽, 2026. 사진: Jean-Christophe Lett


그리곤 로봇보다 낮게 기면서 입과 손가락으로 각 로봇의 가슴이나 다리 사이에 위치한 원격 조종 장치를 조작하여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시작한다. 관객들은 이 느리고 기계적인 발레의 증인이 되어, 내재된 불분명한 지배와 복종의 관계성을, 공간을 가득 채우는 움직임에 나타나는 매우 강력한 성적 권력을 목격하게 된다. 각 원격 조종 장치는 부착된 개체가 다른 개체를 작동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즉, 바닥에 발가벗은 젊은 여성이 이 부조리한 개체의 느린 움직임을 모조리 지휘하는 권력을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무대는 관객을 상호작용하는 역동성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단연코 지배 권력의 전복, 나아가 아트레우스 가문부터 마타 하리까지 남성 지배에 저항한 여성들의 정치 권력 투쟁을 선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나타내는 성적인 자유를 향한 노력은 일견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종관계의 역동성을 넘어, 이 퍼포먼스의 의식화된 느림에 충분히 끈기 있게 몰두하도록 관객을 매료시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관계에 뿌리내린 중독적이고 진정한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바닥과의 접촉은 주체와 세계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무생물인 개체를 욕망하는 교감을 통해 더 크고 초자연적인 힘에 다가가고 생명력, 즉 세계의 살을 전이시키려는 시도에 몰두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작가가 마이크를 향해 올라간다. 거대한 무대의 반대편에 부서진 해골이 흩뿌려진 쪽이다.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사물을 중력에서 자유롭게 한 후 공중에 띄우고자 하는 욕망에 관한 내용이다. 뼈가 쌓여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상완골이 팔뼈의 척골과 요골에 붙어 손까지 이어지는데, 모터를 이용해 삼각형 형태를 만들었다. 작은 배터리를 부착하고 전원을 연결하여 이 팔을 작동시킨다. 실제로 팔은 쭉 펴지기도 하여 생명력이 있는 듯 보이지만 소음을 내며 반대쪽으로 떨어지고 만다. 다시 팔이 들어올려지고 다시금 떨어진다. 팔은 바닥으로 쿵 떨어져 기계 생명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정금형 작가의 작품이 지닌 시(詩)적 특징은 시도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퍼포먼스가 어땠는지 묻자 그는 ‘전반적으로 괜찮았는데 몇 가지 요소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또한 프로젝트의 일부’라고 답변했다. 현실을 직면한다는 건 언제나 실험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불완전함을 포용하는 것이 생명력이고 숨결이다. 바로 이 점이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정신과 육체 사이의 이원성을 초월하는 개념, ‘세계의 살(flesh of the world)’을 묘사할 때 설명한 바이다. 정금형 작가의 전체 작품은 생각되어지는 것을 생각하는 것, 객체가 되는 주체를 연결하는 시도 위에서 공연된다. 우리는 현상학적 사유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살의 개념에서 신체적 유대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것의 결속이다. 이는 메를로퐁티의 미완성 저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The Visible and the Invisible)』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정금형 작가의 신체는 전시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노출시킨다. 스스로 보고 또 스스로가 보여진다. 그가 만든 기계 창작물의 구축 과정은 일일이 화면을 통해 중계되는데, 마치 자동 감시망 아래에서 물질 세계를 창조하는 신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의욕적이고 섬세하고 욕망하는 신체를 통해, 실재적일 뿐 아니라 환상적인 세계의 모든 차원에서 지속하는 육욕적 유대를 구현해낸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정금형 작가가 기계와 맺는 관계를 해석해야 한다. 우리의 말과 생각, 몸짓을 자기 의지 없이 완벽하게 모사하는 기술적 진보에 대한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말이다.

 

작가는 마이크에 대고 자신의 욕망을 재창조하기 위한 모색을 하고 있다고 밝힌다. 분명한 의도를 보여주기 위해 매우 성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곤 새 설치 작품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쇄골에 얹은 뒤, 옆으로 앉는다. 미완성된 척추골을 작동시킨다. 천골이 골반에 연결되어 있고 두 개의 대퇴골이 나오더니 천천히 열린다. 척추가 춤을 추는 것 같다. 평소에 벌어질 수 있는 것보다 다리는 더 넓게 벌어지는데, 마치 기계가 욕망의 개화를 증폭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정금형 작가의 작품은 일체의 자기 주장이 없다. 철학자의 야심보다는 시인의 야심에 가깝다. 숨기는 것이 없다. 그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기를 즐긴다. 작업 테이블은 공개되어 있고 관객에게 모두 노출된 상황에서 작가는 거리낌 없이 미세기계적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2022년과 2023년, 작가는 서울 근교에 있는 부천 작업실로 관객을 초청하여 작품의 포장과 보존 과정을 공개한 적이 있다. 그는 공연자이자 보존 관리자, 공간 매니저, 호스트 등 모든 역할을 혼자서 도맡았다. 본래 연극을 전공한 그는 기꺼이 모든 역할을 즐겁게 소화했기에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지, 심지어 그 자체가 역할이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의 얼굴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간병인, 희생자, 모델, 연인, 공격자, 회생자까지 차례차례 연기했다. 작가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필자는 공연자와 해석자 간의 양립하기 어려운 차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그 관점의 논리가 다소 빈약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여하튼 공연자와 해석자 중에 하나는 거짓을 말하고 있고, 이 점이 현대 미술과 연극이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는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만든 ‘불신 유보(suspension of disbelief)’를 기반으로 하며, 미술 관객과 연극 관객의 관람 방식이 모순된다고 설명했다. 정금형 작가는 이에 대해 오랫동안 고심했다. 필자의 얼토당토않은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작가는 내게 “나는 환영을 쓰지 않고 환영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그는 절대로 현실과 진짜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액자 속 액자 구성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들을 아주 느린 의례에 끌어들인다. 그 안에서 모든 추정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서로에게 반향을 일으킨다. 그 와중에 그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장난감 같은 사물이 변함없는 기준점으로 남겨진다. 대표적인 예로 2009년 작품 〈7가지 방법〉을 들 수 있다. 그는 진공청소기, 플라스틱 모형, 멜로디카 건반과 같은 사소한 사물들을 이용하는 7가지 기상천외한 방법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예를 들면, 가면에 입김을 불어넣어 날숨의 키스를 표현하는 식이었다.

[도판 3] 정금형, 〈Under Construction〉 (2024), 

《자유로운 자들의 중얼거림》, 컬렉션 람베르, 아비뇽, 2026. 사진: Jean-Christophe Lett


설치 작품들은 그의 전시 《떼어낸 부분들(Removed Parts)》을 2021년 서울 리움 미술관에서 공개되었다. 이어, 작가는 이를 202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선보였다. 소위 ‘프레베르식 목록’과 같이, 끝없이 늘어서 있는 사물들의 시각적 시와 같은 작품이다. 단 위에 사물들이 놓여 있고 종류별로 분류가 되어 있다. 그중에는 작은 바퀴와 원격조종 자동차의 부품, 파이프, 의료용 신체 장기(특히 성기)를 해체한 부품들이 포함된다. 이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사용했던 ‘사전 구속된(précontraints)’ 사물들이라는 표현을 연상시킨다. 레비스트로스가 1963년작 『야생의 사고(La Pesnée Sauvage)』에서 잡역부에게 찬사를 보내며 사용했던 단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용어를 이용해 “언젠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까”라는 원칙을 미덕으로 삼아 물건을 보관하고 분류하며 끊임없이 재평가하는, 브리콜라주 기법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바 있다. 《떼어낸 부분들》 전시의 완벽한 정리 형태는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 부품들이 새로운 만들기에 사용될지, 에로틱하고 환상적인 시각적 전경을 만들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성품 형식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용어의 창시자인 마르셀 뒤샹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사물에 에로틱한 용도를 부여한 쪽으로 핵심적인 인물이다. 특히 1964년 작품 〈싱크 마개(Bouche-évier)〉는 자신의 싱크대 마개를 본떠 만든 작은 청동 조각으로, 둥근 양각 장식이 특징이다. 일설에 따르면 자위적 환상을 숨기고 연인이었던 마리아 마르틴스(Maria Martins)에게 이 작품을 선물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무대 위에 누워 있다. 그의 몸은 긴장된 상태다. 마치 강렬한 감정적 격동에 휩싸인 듯 하늘을 향해 몸통을 들어올렸다가 이내 조개처럼 오므리고는 다시 펼친다. 온몸이 황홀경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곧 일어나 무대에 놓인 흉곽 앞에 선다. 또다시 의식적 절차에 따라 눕는다. 이 의식이 추구하는 바가 골격 기계로부터의 인정이나 동의인지, 아니면 메시지 전달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는 조종 장치를 작동시켜 기계가 하늘을 향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움직임을 모방하도록 한다.

 

정금형 작가의 작품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우리를 연결하는 동시에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섹스다. 그는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그의 작품 안무에는 섹스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된다. 또한 그는 섹스용 리얼돌의 생산 확대를 위한 기술의 이용, 성매매와 성착취, 온라인 내 성적 침해 등, 정부의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은 범죄들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현실에 말을 보태지 않는다. 단지 이 현상을 변형시킨다. 그의 초기작 중 2008년 작품 〈유압진동기(Oil Pressure Vibrator)〉에서 그는 폭력과 욕망 사이의 모호성을 탐구한다. 이 퍼포먼스는 애초에 공연자로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관한 강연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기획되었으며, 파트너와의 섹스에서 만족을 구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일련의 시도를 나열하고 있다. 그는 과거 안무를 중심으로 한 작품에서 그를 만족시키는 데 실패한 연인을 표현하며 일상용품을 사용했다. 그는 오르가슴을 느끼는 강도가 줄었다며 한탄한다. 객석에 잔웃음이 조용히 퍼진다. 그는 흥분하여 유압 굴삭기의 긴 목과 강한 팔뚝을 묘사한다. 이 중장비를 다루기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고 난 뒤, 스스로 운전해서 해변으로 향하는 작가의 모습이 영상으로 상영된다. 그는 유압 굴삭기의 힘과 날렵함, 그리고 공압 드릴기가 주는 전율을 표현한다. 그의 조종에 따라 굴삭기의 유압식 팔이 황홀경에 빠진 작가의 모습을 닮은 모래 조형물을 파괴한다. 동시에 무대 위에서 작가는 미니어처 굴착기 장난감을 이용해 자위하는 궁극의 의식적 행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18년 전에는 로봇과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의 급격한 발전을 예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메시지를 전하거나 논평을 전달하지 않는다. 사적이면서 성적인 영역과 기계적 언어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보여준다.

[도판 4] 정금형, 〈Under Construction〉 (2024), 

《자유로운 자들의 중얼거림》, 컬렉션 람베르, 아비뇽, 2026. 사진: Jean-Christophe Lett


2026년 아비뇽 페스티벌 기간에 컬렉션 랑베르에서 선보인 전시에서 정금형 작가는 이 스켈레톤 기계들을 조립하고 조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돌본다. 기술 물질을 돌보는 행위는 그것들을 통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도판 5] 정금형, 〈Under Construction〉 (2024), 

《자유로운 자들의 중얼거림》, 컬렉션 람베르, 아비뇽, 2026. 사진: Jean-Christophe Lett


로봇이 단순히 우리의 의도적이고 감정적인 몸짓을 재생산하는 인공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는 이해와 닿아 있다. 기계를 돌본다는 것은 세부적인 부분까지 꼼꼼히 주의를 기울이며 기계를 다루고 작업한다는 의미로,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정금형 작가가 만든 정밀한 조립 기계는 중력을 거스르며 마법처럼 부상했다가 단순한 사물의 형태로 둔탁하게 떨어진다. 이 과정은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불러오고, 이는 자신의 신체가 지닌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런 기계적 움직임은 성공도 실패도 의도하지 않고 다만 무자비하게 지속될 뿐으로, 이를 통해 쾌락과 움직임, 사물에 관한 영속적인 탐구를 증언하게 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욕망의 원인으로 ‘대상(object)’을 언급하며 ‘사물 a(Objet petit a)’ 이론을 정립했다. 정금형 작가는 이 개념을 구현한다. 라캉에 따르면 욕망이란 언제나 현실계와 상징계, 상상계의 결여가 발현한 징후다. 따라서 작가가 대상을 해석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사물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행위는 그게 성공이든 실패든, 동일하게 욕망의 근원인 결여를 심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로써 하나의 순환이 완성된다.

박수와 함께 공간을 떠난 후, 작가는 또다시 전시실 곳곳에 요소들을 나란히 배열하여 직전까지 살아 있는 극장이었던 이 공간의 중앙에 작품을 재조립할 수 있도록 한다.

#정금형 #Under Construction

프랑수아 캉탱

소속 | 컬렉션 랑베르 관장

2023년 9월부터 프랑스 아비뇽 소재 컬렉션 랑베르(Collection Lambert)의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26년, 《자유로운 자들의 속삭임(The Whisper of the Free)》이라는 이름으로 비서구권 여성 작가들의 개인전을 조작했는데, 정금형 작가의 《Under Construction》도 그 일환으로 조직되었다. 2020년 1월부터 프랑스 문화부 산하 예술창작총국(DGCA)에서 시각예술 분야를 담당하여 전시권 확대와 프랑스 작가들의 생계 문제까지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2019년까지는 갤러리 라파예트 기업재단(Galeries Lafayette Corporate Foundation)과 물랑 가족 기부기금(Moulin Family Endowment Fund)에서 부관장을 역임했다.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Lafayette Anticipations)은 새로운 형태의 민간 예술 센터로서 예술가와 디자이너, 패션 크리에이터의 창작 과정의 핵심적인 부분을 지원하고 창제작 측면의 맞춤형 해결책을 제안한다. 그 이전의 활동도 매우 다채롭다. 2007~2011년 파리 시파스 갤러리(Xippas Gallery) 관장, 2001~2007년 상파뉴-아르덴 지역 현대미술기금(Frac Champagne-Ardenne) 관장, 1994~2000년 까르티에 재단(Cartier Foundation)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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