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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리포트

  • [기타] 대한민국 대표 여류작가 분석 Ⅱ
  • 발행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 작성자: K-ARTMARKET
  • 발행일: 2020-02-13

대한민국 대표 여류작가 분석 Ⅱ

작가 최욱경(1940~1985)
‘한국적 색채 추상의 선구자’ 비운의 천재화가 최욱경

  • ‘한국적 색채 추상의 선구자’ 비운의 천재화가 최욱경

    - 최욱경은 화려하고 강력한 색채와 역동적인 붓 터치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부모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 당대 유명한 화가였던 운보 김기창, 우향 박래현 부부의 화실에서 미술 지도를 받은 바 있으며,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위해 196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크랜브룩 미술학교와 브룩클린 미술관 미술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은 뒤 프랭클린 피어스대학 조교수를 역임했다. 당시 뉴욕에는 잭슨 폴록, 윌렘 드쿠닝, 로버트 마더웰 등 추상표현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며 앤디워홀의 팝아트가 발아하던 시기였다. 한국 작가라고는 6.25 전쟁 중 도미해 미국과 유럽에서 활약하던 백남준 정도가 전부였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화가라곤 거의 전무했으며 더구나 키 155cm, 몸무게 43kg의 가녀린 체구의 여성 작가가 뉴욕에서 분투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이곳에서 그녀는 당시 미국 미술 현장의 주류를 이루던 추상표현주의 화풍을 흡수하고 내면화하여 한국 추상표현주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했다.

    - 1970년대 한국에서 "작은 체구”의 “연약한 몸”으로 “하루 두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며”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 “고독”한 사투를 벌이는 "독신 여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1960년대 전후 세계 미술사의 중심이었던 뉴욕의 추상표현주의라는 도도한 흐름을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온몸으로 체득하고 그것을 독특한 추상 색채 화풍으로 정립한 작가다. 그는 " 그림을 통하여 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삶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숨 쉬는 의미를 추구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한 줌의 흙으로 변할 때까지 나는 이 길을 쉬지 않고 가리라"라고 말하며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라는 좌우명을 작업실에 걸어 놓고 하루하루 열정을 불태웠던 치열한 예술가였다.

    - 화가이지만 그녀는 문학적 감수성이 충만했고 그 일부를 작품 제목에 담았다.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년), ‘악몽은 견디기에 정말 너무 길다’(1975년), ‘한때 호색가가 기이한 꽃을 주었다’(1975년작), ‘미처 못 끝낸 이야기’(1977년), ‘산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슬프다’(1983년작) 등은 제목 자체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충만한 문학적 감수성의 파편으로 쓴 시 45편은 1972년에 ‘낯설은 얼굴들처럼’이라는 제목의 시화집으로 출간됐다.

    ‘무제’ (1966)

    ‘무제’ (1966)

    - 마흔다섯에 요절해 삶도 예술도 미처 꽃을 다 피우지 못한 비운의 화가 최욱경은 1970년대 국내 화단을 점령했던 단색화나 1980년대 민중미술, 그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다. 굳이 끼려고도 하지 않았고 철저한 이방인인 그녀가 서 있는 지점은 지금도 독보적이다.

    - 결과적으로 최욱경이 지금도 미국 추상표현주의가 한국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화가로 남은 셈이다. 그녀는 형체를 그리고 그것을 지우는 식의 추상 회화를 추구했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을 중시했던 추상표현주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창작을 하는 동안 추상표현주의는 즉흥적이고 표현도 자유스럽지만 일말의 허무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추상표현주의를 염두에 두면서도 형체를 찾아내 보려고 하였다.” 이러한 고백에서 알 수 있듯, 말년 캔버스에는 점차 형태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색도 단청이나 민화 등 한국적인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1979년 귀국 이후 1985년 급작스럽게 작고하기 전까지, 최욱경의 회화 세계는 유기적 형상과 추상표현주의를 염두에 두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조형 형식으로 생성되었다. 특히 대구의 영남대학교에 재직할 당시(1979-1981) 그녀는 산과 바다와 같은 한국 자연의 모습에서 생명의 본질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결합하여 독특한 형태의 자연의 모습을 제시했다.

    - 최욱경은 미국 체류 기간 15년을 포함하여 개인전 17회를 개최하고, 200~300호 크기의 대형 작품을 비롯하여 소묘, 수채화, 판화, 조각, 오브제 등 5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콜라주 작품 ‘무제’ (1960년대)

    콜라주 작품 ‘무제’ (1960년대)

    - 최욱경은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 양식을 받아들였으며 1971년 잠시 귀국한 뒤 서예와 민화 등을 공부하며 한국적 조형에 눈뜨면서 장판지와 골판지 등 새로운 재료를 시험하기도 했다.

    - 그의 미술사적 위치는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작가로 정의할 수 있다. 추상미술이라는 그림형식 자체가 낯설었던 화단에서 그는 풍부한 색감과 환상적인 구도로 작품을 표현했다. 원색을 많이 썼으며 필치가 강해 감성적인 작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추상표현주의는 형태의 왜곡에 그치지 않고 형태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추상주의 미술과 차이가 있다.

    - 최욱경과 덕성여대에서 함께 재직했던 김영라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최욱경은 당시 색채를 가장 화려하고 강렬하게 쓰는 화가였다”며 “당시 추상미술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한국화단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최욱경은 나혜석 이후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볼 수 있다”며 “참신한 화풍을 들고 와 실험적인 작품으로 한국화단의 계몽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 화제가 된 ‘학동마을’은 이런 최욱경 그림의 전형이다. ‘학동마을’은 실사를 주제로 했지만, 마을에서 느낀 분위기를 완전히 새로운 색채와 구도로 표현했으며 강렬한 붉은 색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 이 그림을 두고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거친 붓놀림과 강한 필치로 인한 역동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며 “원색과 자유분방한 구도가 최욱경 작품의 전형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욱경은 <풀밭위의 점심식사>(104ⅹ139cm) 등의 큰 작품을 주로 그렸으며 <학동마을>은 작은(38×45.5㎝) 크기의 소품이다.

    학동마을(1984)

    학동마을(1984)

    - 최욱경은 유학 시절 초기에 강렬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표현하고자 콜라주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작가는 적극적이면서도 정열적으로 미술 활동을 하였으나, 때때로 내성적이면서 과묵한 특징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 자화상에 나타난 표정과 색상에서 작가의 다정다감한 성격과 사물에 대한 예민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즉, 고뇌와 갈등 속에 놓인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림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 최욱경이 유학하던 무렵인 1960년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추상표현주의 열풍이 한풀 꺾이고 신사실주의, 팝아트 등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 최욱경은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 또 한편으로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았다. 화려하고 솔직한 색채 표현, 강한 화필로 만들어진 율동적인 형태와 리듬이 최욱경 작품의 특징이라면, 이는 단색화의 흐름이나 여러 그룹의 화풍이나 기치에 꼭 맞는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는 첫 귀국전(1971년) 후 스스로도 미술계에서 환영받지 못함을 느끼게 되었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자화상시리즈 – 계속되는 나와 나의 생각들(1976)

    자화상시리즈 – 계속되는 나와 나의 생각들(1976)

    - 1960~70년대 미국은 반전, 반차별 운동이 활발했고 그에 따라 여성, 유색인종, 성 소수자 같은 여러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가 대두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최욱경은 그런 미국의 분위기를 몸소 체감한다.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차별과 해방감을 동시에 경험했을 29세 때 제작한 <자화상시리즈>에는 “화가이면서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29년이 걸렸다”는 회고가 등장한다. 미국 시절 그렸던 작품 중에는 인종차별에 반대하거나 자신의 성적, 인종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구상화도 종종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온 작가는 ‘한국적 추상이란 무엇인가’란 화업의 문제와 씨름하는 한편, 여성이자 예술가라는 자아에 대한 문제의식도 여전히 짊어지고 있었다. 1979년의 한 기고에는 한국의 남존여비가 뿌리 깊음을 지적하며 “(여성의 적극적 변화란) 남성과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자신이 가진 아주 자연스러운 힘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되찾은 일,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데 수줍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오늘의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오히려 하나의 의무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1980년대에는 “30대 중반부터 나는 여성화가들 이름 앞에 붙는 ‘규수’, ‘여류’라는 호칭에 조금씩 거부감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남성의 경우는 ‘화가 000’이면 되고 성별의 표기가 필요 없다”(<조선일보>, 1983.7.2.)고 말하고 그 무렵부터 ‘여자로서의 감성과 체험에서 걸러져 나온 여성의 의식에 관련된 표상들을 시각적 용어로 표현, 전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최열, 2013).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싸움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여자로서의 감성과 체험에서 걸러져 나온 여성의 의식에 관련된 표상들을 시각적 용어로 표현, 전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최열, 2013)

    - 최욱경이 남긴 작품 속 기질과 요소들은 페미니즘이 토대를 둔 인간성 자체에 대한 연구로 가득하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꽃, 새, 산과 바다처럼 생명력 넘치는 자연에 대한 탐구, 화면을 지탱하는 팽팽한 긴장감, 생생한 감정을 담은 리듬감은 한 사람의 치열한 작가로서 그가 내외로 겪은 투쟁과 극복, 희열과 좌절을 담은 연대기로 남았다. 일생을 "거북이처럼" 자신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조형언어를 찾는 과업에 바쳤던 작가가 예술적 성취의 포부를 왕성하게 키우던 1970년대, 인정과 평가 사이 또 다른 모순에 부딪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1980년대의 작품들은 한 예술가의 도전적인 발자취로 남았다. 용기가 필요한 시절, 다시 한번 최욱경의 삶과 작품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비참한 관계(1984)

    비참한 관계(1984)

    - 염세주의, 비관주의 작가라는 기존의 평가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최 화백을 두고 “지나치게 자기 집중적인 그녀의 생활철학과 태도는 자기 이외의 외부세계와 좀처럼 화해롭지 못한데 이유가 있었다”며 “그의 작품세계는 비범하고 고독한 성격의 소산”이라고 말했다.

    - 그러나, 김영라 교수는 “그는 원래 굉장히 힘있고 강렬한 대형화면을 그렸다”며 “서울에 오고 40대에 접어들면서 차분하고 성숙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대행은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비롯한 그의 작품은 활달하고 환상적이며 색감이 풍부하다”며 “생의 즐거움을 노래한 작가”로 평가했다. 단색을 주로 쓰며 심각한 분위기를 내는 당시의 추상미술 분위를 탈피하는 활달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대담한 구성을 했다는 것이다.

    - 한 미술전문가는 “그는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작품세계마저 독특했다”며 “‘쏠림현상’이 심한 화단에서 작품 발표의 기회 등이 적었고, 화풍을 공유할 수 있는 화가가 적어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1975)

    풀밭 위의 점심식사(1975)

    - 한편 K옥션에 따르면 그의 1975년 작품 <풀밭 위의 점심식사>(104×139cm)는 2007년 8,000만원에 팔렸으며 <무제>(72×90cm)는 2005년 3,600만원에 거래되었다. <학동마을>은 (38×45.5㎝)은 추정가 2~3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욱경의 작품 <생의 환희>(140×177cm)가 지난 2006년 9,500만원에서 1억 2,000만원 선에 경매에 부쳐졌으나 유찰되었다.

본 리포트는 한국 미술시장 정보시스템의 미술작품 데이터 수집 및 콘텐츠 제작 용역 사업자인
이 추계예술대학교 이문배 교수진에 의뢰하여 작성된 리포트로
문화체육관광부 및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필자 소개 - 이 문 배

이 문 배

-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예술을 통한 창의적인 직업진로를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기획본부장으로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와 함께 미술 저작권보호 및 관리에 대하여 강의하고 있음.

- 이미지저작권 DB구축과 예술 창작물 유통 및 활성화를 위하여 연구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