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유민 / 독립기획자 등록일: 2025-09-18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마지막 날, 해외 미술계 주요 인사 14명이 서울에 모였다. 예술경영지원센터(KAMS)가 올해로 4년째(6회) 이어오고 있는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을 위해서다. KAMS는 한국 시각·공연예술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예술 문화의 활력 증진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국제 협력과 해외 아트페어 참가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한국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교류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Dive into Korean Art’이다. 프로그램은 해외 미술계 인사들을 한국에 초청해 한국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그들의 작업 과정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단순히 한국 미술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작가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기회를 얻고 해외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깊이 있는 담론을 만들어가는 장이기도 하다. 3박 4일 동안 스튜디오 방문, 미술관과 갤러리 투어, 네트워킹을 위한 토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일정이 포함된다. 참여 작가들은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지금 주목해야 할 신진 및 중견 작가들이다. 올해는 권병준, 김민애, 박민하, 이끼바위쿠르르, 이주요, 최고은, 최원준(아프로아시아 컬렉티브), 한선우 등 총 여덟 팀이 선정되었다. 이들과 마주할 해외 인사로는 스테파니 헤슬러(뉴욕 스위스연구소 디렉터), 빅터 왕(시드니 아트스페이스 예술감독, 도쿄 모리미술관 외부큐레이터), 리즈 박(카네기 미술관 리처드 암스트롱 현대미술 큐레이터), 헤라 찬(테이트 미술관, 아시아·태평양 부문 외부 큐레이터) 등 글로벌 미술 전문가 14인이 함께해 현장의 기대감과 깊이를 더했다. 차분하면서도 활기가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Artist Studio 방문현장
1. 한국 동시대 미술과의 조우 : 작가 작업실에서 전시까지
9월에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크고 작은 전시, 아트페어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비엔날레가 잇따라 열리며 미술계가 한층 활기를 띤다. Dive into Korean Art는 이 시기에 맞춰 진행되어 해외 인사들이 한국 동시대 미술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작품과 작가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국제갤러리, 갤러리 현대, 리움미술관 등 주요 기관을 방문하며, 한국과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án Villar Rojas)의 실험적 설치를 통해 공간과 생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을 경험할 수 있었고, 국제갤러리에서는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을 통해 다층적 정체성과 이주, 언어의 문제를 조망했다. 갤러리 현대에서는 김민정, 이강승, 캔디스 린(Candice Lin)의 작품을 통해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시각과 주제를 살펴볼 수 있었으며, KAMS의 우수전속작가제 사업으로 기획된 《다이얼로그:수신 미확인》에서는 한국 동시대 작가 10인을 만날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와 흐름을 조망한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와 《올해의 작가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였다. 특히, 문체부와 KAMS가 지원하는 ‘한국 작가 해외집중 프로모션’ 사업의 일환으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Panorama》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개별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그룹 전시로 한국 작가들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해외 미술계에 소개하는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했다. 참여 작가는 올해 Korean Artists Today에 선정된 8팀1)과 `23~`24년에 참여했던 권혜원, 심래정, 전소정, 홍승혜 등 4팀을 포함한 총 12팀이다. 더불어, 이들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FRIEZE&Kiaf, FRIEZE NIGHT에도 참여하며 한국 미술 축제의 생동감을 직접 체험했다.


Artist Studio 방문현장
Dive into Korean Art의 진정한 핵심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직접 찾는 경험이다. 해외 인사들은 한국 신진·중견 작가들의 작업실에 방문해 작업 과정과 철학을 직접 듣고, 그들의 창작 세계와 사고방식을 깊이 이해하려는 적극성을 보였다. 이러한 만남은 작가들에게도 단순한 작품 설명을 넘어 해외 미술계와 소통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고, 향후 국제적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회가 된다. 무엇보다 온라인 자료나 사진만으로 알기 어려운 작업의 디테일, 현장의 감각과 작품이 놓인 맥락을 생생하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 세계는 다채로웠다. 김민애는 장소 특정적 설치를 통해 제도와 공간의 틀을 비트는 방식으로 개인이 사회 속에서 마주하는 모순적 상황을 표현했고, 최고은은 현대 기술과 물질문화의 흐름을 탐구하며 기성품을 절단·재배치하여 자원의 순환과 소비 구조를 성찰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권병준은 엠비소닉 입체 음향과 로봇 연극을 결합하여 인간과 비인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작업을 선보였으며, 박민하는 점·선·면·색을 활용하여 시적이고 감각적인 풍경을 재구성하는 회화 작업을 선보였다. 이주요는 설치·퍼포먼스·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우리 사회에서 쉽게 놓치기 쉬운 주변부와 그 관계를 일상 속 물건과 공간 속에서 소개했다. 한선우는 디지털 세계에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와 전통 회화 기법을 결합해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탐구하는 회화·설치 작업을 소개하였으며, 사진과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냉전, 탈식민, 아프로아시아의 역사와 같은 사회·정치적 담론을 탐구하는 최원준은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소개하며 해외 인사들과 소통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한국 곳곳에 산재한 미륵 석상과 주변 풍경을 탐구한 여정을 소개하며, 인간과 자연, 시간과 기억이 얽힌 풍경 속 이야기를 전달했다. 작가와 해외 인사들은 역사·문화적 맥락, 음악적 해석, 미륵 석상의 연대와 보존 상태, 현장 중심 탐구 등을 바탕으로 작품을 함께 이해하며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 중 진행된 네트워킹 자리에는 국내외 디렉터, 큐레이터, 저널리스트, 서울미디어비엔날레 감독팀 등 다양한 미술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참여자들은 한국 미술의 다양성과 깊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동시대 담론 속에서 각 작업이 어떻게 자리하는지 공유하며 국제적 협업의 가능성도 모색하였다.

2. 연대와 지속 가능성을 향한 토크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의 마지막 날 일정은 <함께 만드는 예술, 함께 여는 미래>라는 토크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 공지 3일 만에 참가 신청이 마감될 만큼 큰 관심을 모은 이 프로그램은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기획자들이 사회를 맡았다. 14명의 해외 인사들과 함께 4개 세션으로 나누어 현지 미술계의 동향과 주요 이슈를 심도있게 논의했다.
첫 번째 세션 <“다시 만날 세계”를 위해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에서는 동시대 예술이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만들고 지속 가능한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지가 논의되었다. 사회자 최빛나는 최근 한국 시위 현장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광장의 노래’로 사용된 사례를 소개하며 시민들의 공동체적 공감과 돌봄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는 힘임을 강조했다. 패널들은 이러한 관점을 확장하며 예술이 사회적 변화를 촉발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했다. 스테파니 헤슬러는 집단적 기쁨과 연대가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 핵심 요소를 보여주는 사례로 K-팝 콘서트 응원봉의 시위 활용을 들며, 예술과 사회적 연대가 초국가적·역사적 맥락에서도 연결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토케 리케베르는 예술가의 경제적 자립과 제도적 지원이 독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하며, 장기적 인프라와 제도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세션을 통해 예술은 단순히 정치적 메시지나 경제적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연대와 회복력, 장기적 구조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광장의 경험과 동시대 미술 실천을 연결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지속 가능성을 다각도로 조망하는 자리였다.
김성우 큐레이터가 이끈 두 번째 세션 <공동의 지대: 협업의 주제와 방법론>에서 협업은 단순한 작업 수행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그 가치와 한계를 논의했다. 김성우는 국제적·지역적 협업 속에서 절차와 제도적 조건이 다양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협업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패널들은 각자의 국제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자 간 관계와 역할, 제도적·절차적 조건 속에서 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공유했다. 토론 전반에서 절차와 과정의 균형, 참여자 간 상호 이해, 권력과 자원의 공유, 지속적 담론을 포함한 복합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했다. 리즈 박은 공동체와 동료애를 강조하며 언어 장벽과 시간·자원 제한 등 현실적 제약 속에서 솔직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캐서린 아담스는 협업 과정이 서로를 이해하고 향후 작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의미를 강조하며, 지리적·제도적 제한 속에서 새로운 관점과 기술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음을 덧붙였다. 패널들은 또한 이러한 협업이 국제적·지역적 교류 속에서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핵심 전략임에 공감했다.
세 번째 세션 <새로운 궤도의 모색: 아시아 미술 맥락 다시 그리기>는 유지원 큐레이터가 모더레이터를 맡아, 아시아를 지정학적 영역이 아닌 역사와 문화가 얽힌 열린 네트워크로 바라보고 지역성과 국제성을 조율하는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패널들은 교육, 아카이브, 멘토쉽, 네트워크 구축 등 다양한 전략을 공유하며 아시아 미술의 자율성과 국제적 가능성을 모색했다. 캐서린 디치그의 동남아시아 근현대사와 국제적 큐레토리얼 실천을 결합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흥미로운 시선을 제공했다. 조에 버트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중심으로 예술가 지원과 장기적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지역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국제 무대에서 창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협업 모델을 간결히 설명했다. 그는 서울에서의 경험을 돌아보며 한국 예술가들이 여전히 중국·일본과의 전통적 연결망 안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사회자도 이에 공감하며 교육과 언어, 글로벌 경험의 차이가 지역 기반 예술 실천에 미치는 영향을 짚었다. 이번 세션은 이러한 논의를 통해 시간성과 지역적 특수성, 국제 교류, 제도적 조건 등 복합적 요인을 고려하며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궤도를 탐색할 수 있었다.
마지막 세션은 문지윤 큐레이터가 <변화하는 예술 생태계>를 주제로 진행했으며, 글로벌 아트마켓과 시장 제도, 그리고 예술가의 역할 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패널들은 서울에서의 현장 경험과 리서치를 바탕으로 이주와 지역성, 정체성과 디아스포라, 제도와 자금 구조의 변화를 논의하며, 한국 미술계가 기회와 함께 제도적 긴장을 동시에 안고 있음을 공유했다. 토론에서는 대형 기관과 지역 기반 소규모 예술 단체 및 독립 창작자가 활동하는 현장 중심 네트워크의 관계, 공공 자금과 시장의 균형, 집단적 실천과 기관 운영의 신뢰 문제가 중심적으로 다뤄졌다. 헤라 찬은 기관이 현대미술사를 다층적으로 기록하며 현장의 창작 실천과 조화를 모색할 수 있음을 강조했고, 릴리 홀라인은 제한적 자원 속에서도 신뢰를 유지하는 박물관 운영 전략을 공유했다. 이설희는 ‘사이의 공간’ 개념을 통해 제도와 독립적 실천 사이에서 연대와 지속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다. 이번 세션은 다양한 시각과 구체적 사례를 통해 독립 예술 활동과 제도적 구조가 공존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한국 미술 생태계의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자리로 마무리되었다.


<함께 만드는 예술, 함께 여는 미래> 현장
해외 인사들은 스튜디오 방문과 전시 투어를 통해 한국 동시대 미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었다. 이미 알고 있던 작가들의 작업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고,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신진·중견 작가들을 발견한 경험도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또한 공식·비공식적인 교류 속에서 아이디어를 다듬고 관계를 확장할 수 있었으며, 이번 일정이 한국 미술을 국제적으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Dive into Korean Art는 한국 미술을 단순히 해외에 소개하는 사업이 아니다. 해외 전문가와 국내 미술계가 양방향으로 교류하며 서로의 생태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3박 4일간의 동행은 업무적 만남을 넘어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외 인사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위치에서 출발했지만, 한국이라는 장을 공유하며 동시대 미술을 매개로 각자의 시선과 경험을 나누었다. 이를 통해 기존 작업을 새롭게 이해하며,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향후 한국 미술이 국제 무대에서 더욱 의미 있게 확장하고, 다양한 층위의 교류로 이어질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쌓인 이해와 관계가 앞으로도 국제 협력과 지속 가능한 미술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1) ‘Korean Artists Today’는 국내 신진·중견 작가의 국제 진출과 해외 미술시장 진입을 지원하기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Dive into Korean Art’ 선정 작가와 동일하다.
소속 | 독립기획자
박물관, 문화재단, 미술관 등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기획·운영해왔다. 전시와 프로젝트를 통해 관객과 예술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며 기획 방향을 확장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