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강수미 /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등록일: 2025-09-18

사진 1. 이진주, <슬픔과 돌>, 2025, Powdered pigment, animal skin glue and water on unbleached cotton, 386x322cm.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이진주의 형상 회화에 관하여
I. 보이는 모티프, 생각하는 프레임
푸른 이끼가 가득 핀 돌, 밑동과 가지가 잘려 나간 열대식물, 가장자리가 불에 탄 달력 종이, 거칠게 꺾인 나뭇가지들, 연결이 끊긴 채 허공에 늘어뜨려진 선, 가려져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상대방의 품에 얼굴을 묻은 어린 여성과 양팔로 그녀의 머리와 귀를 감싸 보호하는 듯한 조금 더 어른스러운 여성. 그녀의 목과 등에 난 긁히고 찔린 상처. 인센스 스틱이 꽂힌 무화과와 핏물 웅덩이 밑에 똬리를 튼 장어 떼.
이진주는 한국 미술계에서 동양화를 기반으로 한 현대 형상 회화(contemporary figurative painting)를 대표하는 40대 중견 작가다.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 중 <슬픔과 돌>(2025)(사진 1)에서 내가 서두에 묘사한 것 같은 형상(figures)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그것들은 작품의 상징적 의미를 감상자에게 매개하는 ‘보이는 모티프’다. 작가가 그 각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그림에서 형상들의 개체성(individual)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것들이 하나같이 완전하지 않은 모습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슬픔과 돌>은 그림의 내용 면에서, 어딘가 변질되거나 훼손되었거나 취약한 존재들의 이야기이자 그와 결부되는 미묘한 정서를 주제화한 작품으로 읽힌다.
그림의 형식 면에서는 어떤가. <슬픔과 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회화의 물리적 조건으로 관례화 된 사각형 평면 그림이 아니다. 변형된 틀, 현대미술 용어로는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범주에 속하는 그림이다. 그 화면의 형태는 6개의 흰 벽 혹은 막이 마치 도미노처럼 앞으로 쓰러질 때 만들어지는 외곽선을 닮았다. 이진주는 작품마다 작업 의도에 따라 특정한 형태를 한 비정형의 화폭을 준비해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예술 창작의 동료이자 남편인 이정배 작가가 직접 만든 셰이프트 캔버스를 쓰는데, 그렇게 둘은 협업한다. 이진주에 따르면, <슬픔과 돌>은 “다른 장면들을 한 몸으로 가지고 있는 구조”1) 를 표현하고자 그렇게 벽/막이 연속적이면서 불연속적인 캔버스로 디자인했다. 그 작품이 작가의 개인전 《불연속연속》(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5.8.13.~10.9)(사진 2)의 핵심이라는 점은 캔버스 틀이 기성품으로 주어지는 단순 재료가 아니라 작가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매체임을 말해준다. 요컨대 비정형의 캔버스는 이진주 회화의 고유성과 실험성을 인증하는 조형 장치이며 생각의 프레임워크이다.
II. 양면성이 빚어내는 매혹
미술사학자이자 미술비평가인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는 1960년대 초에 모더니즘 추상표현주의의 미적 특성으로 ‘몰입(absorption)’을 주장하고, 당시 부상한 미니멀리즘에 대해서는 ‘연극성(theatricality)’을 지적하며 비판했다. 요컨대 미니멀리즘은 순수미술의 “현전(presentness)과 우아함” 대신 연극처럼 관객의 일시적 경험을 겨냥한 연출과 인위성에 매몰되었다는 것이다.2) 하지만 모더니즘의 자기 지시적(self-referential) 예술 이념을 비판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오히려 그러한 프리드의 연극성 비판을 반미학의 전략으로 적극 채택하여 활성화했다3). 근현대 미술(modern and contemporary art)이 그렇게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는 동안, ‘셰이프드 캔버스’는 순수미술의 경직된 규범을 위반하고 상투적 재현 논리를 해체하는 일련의 회화 실험에 대한 포괄적 명칭으로 정착했다.
이진주의 비정형 화면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것은 작가의 조형 형식으로서만이 아니라 회화에 관한 내재적 비판의 징표로서 현대미술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즉 그녀는 진부한 회화 규범을 성찰하고 관습적 그리기 형식을 메타 분석하면서 자기 작품의 주제와 모티프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한 화면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는 이진주 미술에서 이지적인 차원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작가는 그렇게 분석적으로 채택한 형식에 감상자의 정서를 자극하는 형상들 –파편화된 사물, 고독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 분절된 공간, 복잡한 상황, 격정적 장면- 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넣는다. 그것은 이진주의 회화에서 주관적이며 감성적인 차원이다. 해서 이 작가의 미술은 형식과 내용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는 회화라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슬픔과 돌>은 형식미학으로 따지면, 회화 장르의 매체적 순수성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비판적이고 개념적인 미술이다. 동시에 그림의 다양한 모티프가 상징적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감상자 입장에서는 정서적인 감흥과 연극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서사적 미술이다.
이러한 양면성이 이진주 회화의 중요하면서도 매력적인 미적 특질(aesthetic quality)이다. 비단 <슬픔과 돌>만이 아니다. 이진주의 거의 모든 작품이 형식과 내용의 양면성, 물리적 구조와 서사적 의미의 긴장을 통해 시각적 매력을 극대화한다. 구체적으로는 변칙적인 그림틀과 정통 세밀화 기법으로 재현한 모티프들, 건축적인 전체 구조와 감성적인 세부 이미지, 의사소통 가능한 기호와 일차원적 독해를 유보하는 형상이 공동으로 작동하면서 이진주 회화만의 예술적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러한 요소들은 한편으로 이진주가 이십년 이상 미술가로서 쌓아 올린 고도의 전문성에 근거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한 인간으로서 겪어온 삶의 경험과 내면의 질곡, 심리적 행로와 감수성의 작용이 응축된 주관성으로부터 발원한다. 그렇기에 이진주의 그림은 감상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회화적 몰입과 연극적 지각 경험을 융합해서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2. 이진주, 《불연속연속》, 2025.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 전경.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사진 3. 이진주, 《Lee Jinju:No Ground》, 2025. installation view at Yuz Flow: Project Space of Art, Hong Kong. 사진: 작가 제공.
Ⅲ. 파편에서 앙상블로
이진주는 2025년 현재까지 국내와 해외에서 14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동시대 미술의 의제를 선도하는 주요 기획전에 초청되어 한국 현대 회화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진주는 그런 숫자와 객관적 사실로는 충분히 담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작업량과 독자적인 미학을 이뤘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관에서 가진 《불연속연속》개인전만 해도 다양한 캔버스 형태와 크기의 그림 총 54점이 선보이는데, 작품 모두가 일관된 시각적 완성도와 강도 높은 서사성을 구현한다. 물론 그림들마다 전형성을 벗어난 독특한 프레임과 건축적 구조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들이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무대 혹은 공연장처럼 연출하는 디스플레이로 종합되면서 이진주의 회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지만 최고 수준임에는 확실한 앙상블을 조성해낸다.
최근 홍콩에서 연 개인전 《無著(No Ground)》(유즈미술관 프로젝트스페이스, 2025.1.5.~3.2)(사진 3)에서 작가는 검은색 바탕에 여성의 얼굴과 손, 그리고 그 모습을 가리는 불에 타다 만 흰 종이를 묘사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그것들은 압도적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혹의 이미지다. 동시에 끝없는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미스터리한 의미의 담지체다. 작가의 반려자가 수많은 안료 실험을 거쳐 만들었기에‘이정배블랙(Lee Jeongbae black)’으로 명명한 검은색이 그 미스터리의 깊이를 더한다. 그 검정색은 불에 그슬린 종이의 흰색, 그 옆과 뒤로 보이는 여성의 창백한 낯빛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정배블랙은 그렇게 단순한 색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진주의 회화 표현법이 이차원 평면 위의 재현 기교를 넘어 심리극의 드라마트루기가 되도록 엔진 역할을 한다. 덕분에 그 전시의 관객들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감각 일부가 아니라 지각과 내면이 함께 자극 받는 종합예술의 경험을 했을 것이다.

사진 4. 이진주, <볼록한 용기>, 2025. Powdered pigment, animal skin glue and water on unbleached cotton,
200 x 300 cm.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Ⅳ. 화가의 욕망과 지향성
아이러니하게도 이진주의 회화는 강력한 몰입과 연극성을 발휘하지만 작가가 작업의 대상으로 중시하는 존재는“이름 붙일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이미지화할 수 없는 것들”4) 이다. 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삶에서 마주하는 존재 중에서 극히 일부를 “붙잡고 파편화된 방식으로 표현해 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발언은 매우 겸손한 작가의 태도를 말해준다고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큰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고전적인 화가의 욕망은 세계라는 ‘거대한 책’을 펼쳐 그것을 자신의 그림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있었다. 반면 현대미술의 작가들에게 세계는 동일성과 총체성의 선험적(transcendental) 지평이 아니라 서로가 타자성과 이질성을 딛고 관계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창작 행위를 삶의 일부, 경험과 기억의 조각, 사건의 단면, 문제적 과정들에 대한 예술적 표현이자 개입으로 이해한다. 그것이 컨템포러리 아트가 가진 철학적 의의다. 이진주의 작업관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동시대적이다.
《불연속연속》전에 나온 <오목한 눈물>과 <볼록한 용기>(2025)(사진 4)는 그런 차원에서 작가에게나 감상자인 우리에게나 더욱 특별하다. 전시장에서 두 그림은 서로 등을 맞대고 앞뒤 양면으로 설치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목한 눈물>이 이진주의 다른 대형 회화처럼 형상들/모티프들의 복합적 편성을 보여준다면, <볼록한 용기>는 핏빛의 바다 한가운데 솟은 바위 위에 위태롭게 앉아 핏물을 흘려보내고 있는 한 여성에 집중한 화면이다. 이 그림들 또한 내가 앞서 논한 것처럼 이지적이고 정서적인 이진주 회화의 미적 특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작가는 감상자가 <볼록한 용기>에서 형상들이 사각형의 화면 밖으로 나가는 점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아닌 게 아니라 그 그림은 여성을 중심에 두고 사방으로 불 탄 종잇조각이 날리는 형국이고, 그 중에는 아슬아슬하게 캔버스 틀 밖으로 나간 것들이 있다. 이에 대해 이진주는 “전면적으로 가득 찬 그림”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전에는 그런 구도로 그리기를 주저했다. 자기 작업이 세상의 아주 미시적인 부분을 “겨우 언어로 붙잡아 이미지로 환유하는 것 같다”라고 느껴왔기 때문에 전면적인 화면 제작은 과욕이라 생각한 것이다. 반면 <볼록한 용기>에 이르러 비로소 “더 큰 세계의 장면이 있고, 더 확장되어 펼쳐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라는 사람이 보는 유한한 시각의 범주를 역설적으로 전면적 화면으로 드러내려고”5)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 안에 이진주가 회화를 통해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미학적 인식이 함축해 있다고 본다. 소수자적이고 타자적인 것과 대표성을 부여받지 못한 것에 대한 존중이 그 태도다. 그리고 이진주 자신에게 어느새 익숙해진 비정형 캔버스를 벗어나 사각형의 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거기서 새 작업의 가능성을 찾는 시도가 그 미학적 인식이다. 이러한 내용을 이슈로 제기하는 작가는 현대 미술 현장에서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진주는 그것을 형상 회화로써 실천해 나간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무엇보다 그녀의 화면은 파편을 바탕으로 앙상블을 이뤄내고 있다. 해서 앞으로 그녀의 그림은 어떤 차원을 열지 기대되는 것이다.
1) 이진주와 강수미의 대화, 2025.8.23.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 Michael Fried (1998), Art and Objecthood: Essays and Review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167-168.
3) Harland, B.(2023), “Michael Fried’s theatricality and the practice of painting”, Journal of Visual Art Practice, 22(1), pp. 47–59. https://doi.org/10.1080/
14702029.2023.2170849
4) 이진주와 강수미의 대화, 2025.8.23.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5) 이상 이진주가 강수미에게 보낸 이메일 중 인용. 2025. 8. 23.
소속 |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봉사센터 센터장, 서울특별시 박물관미술관진흥정책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지원(HK+, HK3.0) 사업관리위원회 위원, 창원조각비엔날레 추진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및 편집위원, 쿨투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