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람·집·가족》전시주최
전시기간
2005-05-14 ~ 2005-08-29전시유형
단체전전시장소
제비울미술관, 과천《사람·집·가족展》
전시일자: 2005.05.14-08.29
장소: 제비울미술관
주최·주관: 제비울미술관
후원: 경기문화재단
협찬: 유한킴벌리
기획: 이승미
참여작가: 서용선, 김선두, 윤석남, 최석운, 안창홍, 이종구, 박방영, 장태묵, 이종빈, 김태준, 박영숙, 김옥선, 김진경
사람·집·가족
가족은 인류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조직으로, 인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혼자가 아닌 집단을 형성해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종족의 힘을 결속해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것이 외부의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에도 편리하고 유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인종과 종족별로 각자가 처한 자연환경과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하고 다양한 방식의 집단을 이루고 생존해 왔으며, 한곳에 정착해 살 수 있게 된 농경사회를 이루면서부터 근래까지는 가부장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부계중심의 가족' 이라는 체계를 만들고 가족제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근대이후 산업의 발달로 인해 급속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사회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복잡한 양상이 전개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어왔던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 역시 극히 짧은 기간 동안에 예외 없이 변화되어가고 있는 중이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생각되곤 했던 3대 혹은 4대가 한 집에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형태는 이미 오래전에 해체되고, 이제 그렇게 살아가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대가족을 이끌어 가기에 적합한 가장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주거의 형태인 '집' 역시 그동안 많은 변화를 거쳐 왔습니다. 3, 4대의 가족이 한 공간에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개방적으로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마을이 온통 친족 관계로 이루어져 마을 전체가 하나의 일가(一家)를 이루어 살며 이 집과 저 집이 큰 댁, 작은 댁, 둘째 댁, 세째 댁 등 마을 전체가 모두 우리 집으로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형태로 집은, 집이 가진 특정한 의미나 공간적으로는 축소되어 가고 있고 게다가 한편으로는 가족이 거주하고 기본적인 삶을 유지해야 할 그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닌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재화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되어, 살고 있는 동네나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가가 그 사람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단 한 사람만이 살고 있는 넓고 쾌적하고 이 시대의 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는 호화로운 집이 있는가 하면 혈연의 관계도 아닌 서로 다른 다양한 구성원이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한 '공간'에 어쩔 수 없이 함께 거주 하고 있는 경우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현대의 도시 자본주의 사회 구조는 더 이상 이전의 '가족' 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지 이 사회의 생산과 소비를 위한 충실한 구성원으로서 온전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족에게 충실하느라 시간을 소비하기도 어렵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살 수 없는 멀리 계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만을 다하기도 어렵습니다. 누가 드러내고 요구하지 않아도 사회인들은 스스로 가족과의 안락한 삶에 대해서는 유보하거나 포기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순진하게도 그 이유를 우리 스스로의 나태함이나 게으름 혹은 불충함으로 애써 이해하고 돌리고 있지만 사실은 예전만큼 가족과 가정에 충실할 수 없는 사회적인 상황이 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예전엔 성인이 된 여자와 남자가 결혼해 부부가 되면 자연스레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비로소 한 가정이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아이부터 낳아서는 곤란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한편에서는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다고 날마다 야단입니다.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지 않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끔찍한 재앙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고 자꾸만 줄어들면 노인들을 먹여 살릴 재원이 부족해진다는 경제적인 논리로 젊은이들을 설득 시키려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허망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이처럼 전통적인 가족과 가정의 의미가 날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도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을 아직도 온전한 가족의 형태라는 생각에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 그 이외의 사람들을 끝없이 불편하게 만들면서 본의 아니게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소망이나 의지외는 무관하게 홀로 남은 사람들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닌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살기도 합니다. 불운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이 사회의 누구라도 부모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또한 독신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가꾸어가는 사람들, 동성의 친구와 함께 가족을 이룬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있고,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며 스스로 혹은 가족들의 합의에 의해 홀로 남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본래의 가족과는 무관하게 사회단체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혈연과는 상관없는 그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혈연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가 한 집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보호하고 살던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현대 사회의 요구에 의해, 개인의 필요와 선택에 따라,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집에서 살아가던 가족과 가정, 즉 '우리 집' 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던 공간 역시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족의 근간을 이루는 부부의 형태와 가치 또한 크게 달라졌습니다. 성인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매개로 가족을 이루어 평생을 같이 살아가기로 약속 하는 제도인 결혼제도를 통해 한 집에서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전의 부부의 가치였다면, 현재는 주말 부부, 기러기 부부 등 일과 직장 자녀들의 교육적인 문제로 가족이 한 집에 살지 않고 심지어 한 나라에 살지 않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전통적으로 혈통의 가치를 중요시하던 기존의 가치관 위에 해외 이주자들의 현지화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내이주에 따른 내국인들과의 결혼, 2세 출산, 농촌과 도시 저소득층의 구조적 이유로 인한 외국여성과의 결혼, 그로 인한 이민족 간의 가족 구성과 해체, 그리고 재구성의 과정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전통의 가치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가족과 가정의 의미를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바탕으로 가족, 가정이란 대전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삶의 방식임에 분명하지만 여전히 전통의 방식에 바탕을 둔 채 혈통을 절대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우리의 가족만이 가족의의 표상이며 가치인가? 이러한 전통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가족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순수 자연인으로서 행복한가? 오늘날 우리 앞에 마주한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무엇인가? 이에 관해 조용한 작업실에서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생각을 작품으로 마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려 합니다.
제비울미술관
※ 출처: 「사람·집·가족」, 『사람·집·가족展』, 제비울미술관, 2005.07.07, pp. 2-3
서용선
둘째 누나의 딸들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느라, 늦게 결혼을 한 둘째 누나는 두 딸을 두고 있다. 누나는 그림에 재능이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여고시절 미술시간에 그렸을 것으로 기억되는 그림을 본 기억이 난다. 당시의 환경으로서 커다란 흰 도화지에 연필로만 그린 석고소묘는 숭고하고 지적인 느낌을 주기까지 하였다.
누나의 큰 딸인 연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혼자 용감하게 독일유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둘째 연아 역시 몇 번의 힘든 고비를 지나 올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연지 연아
1989년에는 오래전부터 살았던 삼선동의 한옥을 헐고서, 조그만 붉은 벽돌집을 지어 2층에 7, 8평가량의 작업실을 마련하였었다. 도배를 못한 채 급히 입주했던 어수선한 새집에 이웃으로 살고 있던 연지, 연아가 놀러왔었다. 아마도 초등학생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연지 연아는 새 집의 이곳저곳을 재잘대며 기웃거렸다.
그 초여름, 한 순간 연아가 창문 밖에서 내게 다가오고, (아마도 실제로는 그 뒤에 작은 창문이 있었을 것이다.) 연지는 사다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새 집에 와 재잘 되던 두 조카애들을, 말끔한 초여름의 기억을, 연두녹색 바탕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그림 <연지, 연아>이다.
그것은 순간의 정지된 기억이다.
아마도 조카들의 모습을 그리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상의 모습에 의미를 담아두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림에 보이는 사다리는, 작품보관을 위해 작업실 한 켠을 반 이층으로 만들었었는데, 이곳을 오르내리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사다리이다.
삼선동 이층집 짓는 일을 맡아 주었던 김동욱 아저씨는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각목으로 된 사다리를 만들었다. 그는 내게 이 사다리는 집이 완성 될 때 까지 끄떡없이 사용할 거라 장담하였었다. 소련에서 공학을 공부하였다는 그 분의 이야기대로 사다리는 집이 완성된 후까지, 아니 1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공법에 자신이 있었던 그분은 자신이 짓고 있는 집이 무척 튼튼할 것임을 몇 번이고 장담해 주었었고, 자신이 북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자신의 기술에 비해 큰 공사를 맡을 수 없었음을 늘 불만어린 어조로 이야기하였다.
모녀, 2004
1996년 나는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양평 작업실에서 미대입시 준비를 하는 딸의 모델이 되어 입시생 엄마로 앉아 있는 둘째 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가족을 갖게 된 누나의 또 다른 모습이며, 무엇보다 딸 앞에 앉아있는 모녀의 모습이다. 삼선동 작업실의 <연아, 연지>를 그린 지 15년 정도 흐른 뒤였다.
입시생이 되어 자유롭지 못한 조카와 누나, <모녀>는 더운 여름을 이렇게, 그들의 삶을 이겨내고 있었다.
두 모녀의 모습 뒤의 건물 건너 창문으로 검은색 털을 가진 개, '뭉치'가 호기심 어리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모녀 그림의 검은 색 윤곽선이나 검은색 털을 나타낸 것은 이전 그림과 다른 표현을 시도 해본 것 이었다.
최근의 무채색에 대한 관심과, 바로 '색이 곧 형태'라는 사실을 넓게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2005.4.28
※ 출처: 서용선, 「서용선」(2005.04.28), 『사람·집·가족展』, 제비울미술관, 2005.07.07, pp. 6-8
2005년 가족이야기
이승미 (제비울미술관 학예실장)
신혼 부부
매화가 활짝 피어오르던 한가로운 봄날, 고궁에서 한 신혼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내국인들 가운데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는 둘이 열심히 번갈아가며 서로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사진만 계속 찍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느 신혼 부부라면 다른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행복하게 웃거나 서로 손을 꼭 잡고 다니거나 지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연신 부탁했을 텐데, 짧지 않은 시간동안 넓은 고궁의 이곳저곳에서 여러 번 부딪혔는데도 불구하고 그 둘이 서로 다정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노란 옷을 입은 여성을 유심히 바라보니 생김새가 약간 이국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따뜻한 남쪽 어느 나라에서 추운 겨울이 있는 이 나라에 시집온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부는 이상스레 아무 표정 없이 말도 없이 신랑의 모습을 계속 카메라에 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 부부의 십년 후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소녀
두 해쯤 전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승강장에서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아빠와 나란히 어딘가 나들이를 가는 듯했고,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아빠 주위를 그 또래의 여느 소녀처럼 즐겁게 팔랑거리며 재잘거리며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들의 생김새는 분명 인도나 그 인근 나라 사람처럼 보이는데 둘은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발음이 좀 서투르고 아이는 마치 한국아이처럼 발음도 정확하고 어휘구사도 여느 아이처럼 아주 유창합니다. 지하철 신문 가판대에서 한글을 읽으며 아빠에게 뭔가 물어보기도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해 차에 오르면서도 그 소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욱 더 그 소녀가 궁금해졌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 온 것일까? 학교엔 다니고 있을까? 한국어는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모국어는 잘 할까? 저 아이가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간다면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자신의 모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에 대한 인상은 좋을까? 그곳에서는 잘 살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이미 그 소녀는 나와는 다른 방향 어디론가 가고 없었습니다.
TV에서
어느 이른 저녁, 저녁상을 물리고 태평하게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TV에서는 한국에 있는 몽골 학교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몽골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온 가족 혹은 온 가계가 함께 광활한 평원을 떠돌며 유목생활을 하기 때문에 몽골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는 달리 온 가족이 함께 한국에 오거나 처음에 가장이 혼자 오더라도 곧 온 가족을 불러들여 함께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가 필요하고 유독 공동체를 형성해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몽골아이들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국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는 한 여자 어린이는 한국아이들이 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한국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콧날이 시큰해지며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현재 고등학생인 한 남학생은 성실히 학교를 다니고 중학교 과정을 마쳤는데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고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정보 고등학교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TV에서......
TV에서 젊은 남자가 울고 있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주말을 함께 보낸 후 월요일 이른 아침에 어린 아들 둘을 보육원에 남겨두고 나오면서, 울부짖는 아이들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남자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내와 이혼하고, 아내 없이 남겨진 3살, 5살 어린 두 아들을 돌보면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돈을 마련할 때까지는 아이들과 헤어져 살 수 밖에 없음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야기했습니다. 뒤에 토요일 오후에 아이들을 데려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까르륵거리며 행복해하고 아빠는 밥하고 목욕시키고 빨래하고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면서 연신 즐거운 표정이고 가끔씩 울컥 눈물을 보입니다. 시끄럽게 뛰놀던 아이들이 잠든 후 혼자 남은 아빠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합니다.
소년원의 형제
소년원에 형제가 같이 있었습니다. 형제는 뭔가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차례로 소년원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 중입니다. 동생이 먼저 들어왔고, 그 뒤에 형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두 아이의 부모님 중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오래 전에 집을 나가 소식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엄마가 가장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소년원에서 밖으로 나와도 두 소년은 갈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먼 친척뻘 되는 이는 이제는 그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지쳤다고 못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소년들은 오히려 밖에 나가는 것이 더 두렵고 힘들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이제 곧 나갈 날이 돌아오고 있었고 형에게 같이 있고 싶다고 계속 졸라댑니다. 형은 동생이 그곳을 나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들어오게 될 거라고, 또 다시 그곳에 오지 않아야 할 텐데 라고 걱정을 합니다. 소년원의 어른들에게 형은 동생이 좀더 그곳에 있다가 자신과 같이 나갈 수 있게 시간을 주면 어떻게든 동생만은 공부를 시켜 잘 살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두 소년이 추운 겨울 날 도시의 고가도로 아래 서로의 몸을 부비며 모여 살던 비둘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도움 없이 두 소년이 자력만으로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냉정하고 두려운 곳입니다.
※ 출처: 이승미, 「2005년 가족이야기」, 『사람·집·가족展』, 제비울미술관, 2005.07.07, pp. 54-55
결혼과 가족 이야기
유철인 (제주대 교수·인류학)
I
우리는 흔히 가족을 성과 혈연의 유대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사회집단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가족은 공동체적 사회의 원형으로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가족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가족이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가족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변화하는 가족은 흔히 <가족의 해체>리는 말로 표현되며, 많은 기성세대에게 가족의 해체는 바로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규범이 붕괴되는 것을 뜻한다.
가족은 결혼과 출산으로 만들어지는 문화적 산물이므로, 먼저 우리시대의 사랑과 결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인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비로소 낭만적 사랑과 연애 결혼, 그리고 단란한 핵가족의 꿈이 탄탄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대표적인 이미지가 주말에 자가용을 타고 교외에 드라이브를 나가는 부부와 그들의 자녀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녀 간의 사랑이 인간생활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하며 영원한 어떤 것처럼 믿게 되고, 그것을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가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게 된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첫눈에 알아볼 <천생연분>의 짝, 자신에게만 애정을 퍼부어주고 결국에는 자신의 삶의 기둥이 되어줄 상대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시대의 낭만적 사랑과 연애 결혼은 서구 근대사회의 문화적 각본과 겉은 닮았으나, 실제로는 다르다. 먼저 서구적 각본을 살펴보자. 서구 사회에서 결혼과 사랑, 그리고 성에 따른 문화적 각본은 크게 봉건, 근대, 탈근대(포스트모던)의 시기마다 단절적으로 나타난다. 봉건시대에는 결혼과 생식의 수단으로서의 성이 짝지어졌고, 근대에는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 짝지어졌다. 포스트모던 시대 혹은 탈근대 시대로 넘어온 현재의 서구에서는 결혼에 대한 거부와 함께 성과 낭만적 사랑이 묘한 결합을 이루게 된다.
농업이 생산의 기초였던 봉건사회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위한 성이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었다. 가족과 친족의 노동력과 신분세습을 기반으로 한 사회이기 때문에 체제유지와 출산력이 중요한 사회였다. 결혼은 일차적으로 자식을 낳기 위한 제도였으며, 집단간의 계약이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결혼은 어른들의 협상에 의한 중매결혼이었다.
서구의 역사에서 이성간의 낭만적 사랑과 연애결혼이 대중들에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근대적 개인성>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산업화는 남자들을 공장의 충복이자 근대국가의 시민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남자들을 봉건시대의 확대가족의 한 구성원에서 개개 가정의 가장으로 승격시켜 놓았으며, 가장이 일터에 간 동안 그의 아내는 전적으로 가정을 지키게 하였다. 드디어 부부 중심의 핵가족이 등장한 것이다.
근대 초기의 남녀관계는 주로 낭만적 사랑을 중심으로 짜여지는데, 열렬한 연애, 부모들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 사랑이 마르지 않는 부부애, 가족적인 사랑을 통한 자아실현 등이 각본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남자와 여자는 자신이 선택한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은 새 가정을 이룬다. 부모로부터 독립함과 동시에 봉건으로부터도 벗어나는 이 근대적 가정은 자본주의 사회가 안정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가정이 인생의 전부인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결혼으로 골인하는 사랑에 빠지는 일>은 일생일대의 사업으로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결혼과 낭만적 사랑의 밀월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변하기 시작했다. 산업사회는 기본적으로 가족이 아닌 개인이 사회적 단위가 된 사회이다. 산업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가족영역은 점차 축소되다가 급기야는 붕괴의 지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최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즐길 여유가 있는 젊은 층에서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후기산업사회인 포스트모던 시대의 젊은층들은 자신에게 직결된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남의 간섭을 극도로 싫어하는 개인주의 세대이다. 이들에게 결혼은 부담스러운 제도이며, 더 이상 성과 부부관계를 연결시키지 않으려 한다.
이 세대의 각본은 성을 중심으로 짜여진다. 이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메마르고 황폐한 삶 속에서 진한 합일(合一)의 감정을 주는 어떤 구원의 상징으로서의 성에 매달린다. 이와 함께 사랑도 변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침범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한 전제 아래 더 이상 낭만적 사랑이라고 부르기 힘든 남녀관계가 등장한다. 개인의 이익과 자존심을 상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서로의 합의에 따라 적당히 즐기는 감각적 관계가 등장하게 된다. 쾌락적 성과 감각적 사랑이 짝을 이루게 된 것이다.
II
우리는 실로 엄청난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랑과 성, 그리고 결혼과 관련된 서구의 봉건, 근대와 탈근대적 현상들이 마구 뒤섞여 나타나는 혼재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그 혼란을 정리해 갈 틀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결혼과 가족집단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조부모 세대와 그것에 매달리면서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 속에 사는 부모 세대, 낭만적 사랑과 성해방의 각본에 휘둘려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식 세대가 뒤섞여 살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낭만적 사랑의 각본에 따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는 삼각관계(요즈음에는 사각관계)를 적당히 재미있게 그려냄으로써 많은 시청자들을 낭만적 사랑의 각본에 붙들어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애를 하더라도 그것을 새로운 진정한 인간관계로 키워가기가 어려운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 연애결혼을 한 사람들도 여전히 부모로부터 무엇을, 특히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한다면 부모세대의 봉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쉬운 예로 연애결혼을 하더라도 양가 부모의 승낙은 거의 필수적인 사항이다.
우리사회에서 사랑과 성, 그리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세대에 따른 차이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랑과 성과 결혼에 대해 각각 다른 시대의 각본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즉 사랑에 대해서는 근대적 현상인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위에, 성에 대해서는 탈근대적 현상인 성개방과 성 집착의 경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해서는 집안과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봉건적(전통적)인 시각이 지배하고 있다.
젊은층에서는 개인주의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적 관계에서 낭만적 사랑의 각본에 매달리던 사람이 극단적인 손익계산을 하는 결혼을 별 심리적 갈등 없이 해내기도 한다. 젊은층에서는 남녀관계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그리 쉽게 빠지지 않으면서 <상처>를 최소화시키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낭만적 사랑을 믿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낭만적 사랑을 우습게 보면서 사방에 깔려있는 성에 관한 자극과 이야기에 매료되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III
어느 사회에서나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으로 아이가 태어난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부모가 있다고 하여 가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낳은 자식을 입양하여 키우는 것처럼 실제로 생물학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사회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가족으로 인정받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공동의 거주나 경제적 협력과 같은 사회집단으로서의 측면이 강조되었다. 또한 가족이 양육과 생식이라는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고 상정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보면, 많은 사회에서 남편과 아내, 그리고 미혼 자녀가 반드시 한 장소에서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아버지가 자식과 동거하지 않는 경우는 모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이 어느 사회에서나 반드시 동거집단을 형성하지는 않기 때문에 가족의 핵은 어머니와 자식만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머니와 자식으로 구성되는 집단에 남자가 어떠한 관계로 연결되는가 하는 것만이 사회마다 다를 뿐이라고 본다. 그러나 어머니와 자식 간의 유대가 가족의 핵을 이룬다는 이론도 최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많은 인류학적 연구와 역사적 연구들은 모성이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모와 자식 또는 어머니와 자식 간의 유대가 보편적이지 않다면, 이는 가족유대가 생물학적 본능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소위 <혈연> 또는 <핏줄> 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관계가 아닌 문화적인 관념인 것이다. 우리가 자명하다고 보는 혈연관계는 사회마다 다르게 인식되고,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남자가 없이도 여자는 언제든지 임신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도 있다. 반대로 누가 아버지인지는 자명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누가 어머니인지는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는 사회도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도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중요시했지 생물학적 어머니는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다. 아이의 생모가 아버지와 정식으로 혼인한 여자가 아닐 경우, 아이는 아버지의 정식 아내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가족이 문화적 관념체라고 한다면, 실제로 가족생활이 이루어지는 공동거주 집단은 가구라고 할 수 있다. 가구는 함께 사는 친족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핵가족, 확대가족, 직계가족, 결합가족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핵가족은 부부와 미혼의 자식이 같이 사는 경우이며, 확대가족은 결혼한 자식(들)과 그(들)의 배우자와 자식이 자신의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확대가족 중에서 자식 중 하나만이 결혼하여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를 가리켜 특별히 직계가족이라고 한다. 결혼한 형제들이 처자식들을 데리고 함께 살 때 결합가족이 형성된다.
누구와 함께 사는가에 관한 문화적인 규칙 외에도 가구의 구성은 결혼연령, 평균수명, 출산율과 같은 인구학적인 요인과 사회경제적인 요인, 환경적인 요소 등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가족구조는 친족구성 이상의 것을 말한다. 미국의 핵가족 문화는 단지 자식이 결혼하여 부모와 따로 산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핵가족 문화는 남녀간의 성, 자식, 개인 등에 관한 문화적 의미로 구성된다. 따라서 한국의 핵가족이 미국의 핵가족과 아무리 친족구성이 비슷하다 해도, 가족이 무엇을 의미하고, 가족생활이 어떻게 구조화되며, 가족으로서의 개인의 삶이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
결혼한 장남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전통적인 직계가족은 현대 한국사회에서 많이 와해되어, 핵가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장남이 분가하면서, 장남가족과 부모가 한 <식구>라는 의식이 약해지면서 서로 왕래하는 일도 별로 없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한 장남이 부모와 함께 사느냐에 상관없이 한 <집안> 이라는 가족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또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이 세대간에 다르듯이, 가족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세대간에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과 성과 결혼에 대해 각각 다른 시대의 각본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가족의 모습도 점점 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 출처: 유철인, 「결혼과 가족 이야기」, 『사람·집·가족展』, 제비울미술관, 2005.07.07, pp. 5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