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지원센터 K-ARTMARKET Korean Artist Today

HOME 자료검색 전시이력

전시이력

개인전

《제2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

기본정보

제목

《제2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

전시주최

조선일보

전시기간

2014-11-06 ~ 2014-11-16

전시유형

개인전

전시장소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전시개요

《제2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

전시일자: 2014.11.06-11.16

장소: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출품작가: 서용선

전시서문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

이인범(미학예술학, 상명대학교 교수)


지난 1980년대 초, <소나무> 연작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화가 서용선은 이 세상을 그리기를 통해 바라보고 그림으로 실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제 그만의 독자적인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용선은 의심할 여지없는 그리 흔치만은 않은 화가다.

어느덧 그의 회화적 관심은 천지사방으로 번졌다. 현대의 도시 풍경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 자화상, 노산군 일기나 6.25 한국전쟁 같은 민족사의 비극들, 그리고 자연 풍경들에 이르기까지 폭 넓다. 그것들은 시공간적인 경계를 넘어 그가 활동하고 실천하고 있는 '지금 여기 안에는 이미 지나간 오랜 역사적 사건들에서부터, 한반도 구석구석, 그리고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이 둥지 틀어 살고 있는 여러 도시 공간들,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심연이나 문화적 기억들까지 들어와 함께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 모두는 작가 스스로를 포함해서 이 땅에 거주하는 인간 군상들과 삶의 세계를 향한 질문들로 함께 모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화필이 한번 스친 각 주제들은 이후 거듭 반복되며 긴 자취를 남기며 어디론가 향해 가는 기나긴 행렬같이 선을 그리며 일련의 시리즈 작품군락을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무수한 그의 드로잉들과 페인팅들은 그 노정이다. 툭툭 던지듯이 만들어 온 입체나 설치 작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철암그리기, 소밥갤러리, 할아텍 같이 여러 사람들과 뜻을 함께해 온 미술공동체운동이나 공공미술프로젝트들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그는 여전히 인문학적인 삶의 작가다. 서용선의 예술은 단지 형식의 문제나 기호적 사태에 관심을 지닌 뭇 작가들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삶, 주제, 시니피에 그 자체를 몰입적으로 추구해 온 작가다. 근원으로 파고들어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세계의 저 도저한 깊이나 구조, 혹은 그 원초성으로부터 이끌어내어 그가 잡아채내는 강렬한 표현성. 마주한 우리를 꼼짝달싹할 수 없이 그 불가사의함과 진실에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에너지들… 그가 마주한 삶의 세계'를 말로 설명하기는 정작 쉽지 않다.

뒤늦게, 제26회 이중섭상이 화가 서용선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그는 그것을 흔쾌히 ― '흔쾌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15년 전 그가 제1회 이인성미술상을 거부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여 그가 52번째 개인전을 연다. 그 타이틀은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이다.


왜 '신화' 인가?

그렇지만 '신화'라는 화두는 적어도 지금 우리에게는 도발에 가깝다. 적어도 오늘날 미술계에서 '신화'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어떤 담론도 전개할 수 없는 지경이지만 감히 '신화'를 예술적으로 실천하는 일은 생경하다. 아니 시대착오적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분명 그것은 근대라는 시대가 안겨준 업보다. 식민지적 근대가 낳은 불행만은 아니다. 신화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에 드리워진 온갖 주름들을 거세시키는 일이 강령화되다시피 했던 것은 비단 식민지 시대의 일만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야만 취미의 당대성이 성취될 수 있다는 믿음은 종교에 가까웠다. 어쩔 수 없었든 혹은 자발적이든 성상 파괴주의적인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근대를 거치고 난 우리들에게 '신화'는 낯설 뿐이다.


그렇다면, 화가 서용선은 지금 왜 도발적으로 '신화' 인가?

아마도 비극적으로 살다 간 선배 화가 이중섭에 대한 예술적 오마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이번 개인전은 제26회 이중섭상 수상기념전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상을 받기 이전 한 때, 화가 이중섭은 서용선에게도 '신화' 같은 존재였다. 캄캄한 한국 근대미술사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 가운데 하나같은. 언젠가의 고백대로라면, 그가 화가의 길로 들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는 친구 집에서 우연히 접한 이중섭 관련 신문기사였다. 형편상 대학 진학도 못한 채 군복무를 마치고도 방황을 거듭하던 시절, 이중섭은 그에게 자유로운 비상의 상징으로 혹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체험으로 새겨진 인물이다. 그것도 분명히 신화 체험이다. 그렇지만 정작 '신화'가 살아 꿈틀대는 평양 근처 고구려 고분벽화들의 아우라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억압적인 식민지시대, 전쟁이 자신과 가족 그리고 민족의 삶을 난폭하게 무너뜨리는 고난 속에서 초현실주의적인 상상력으로 예술을 펼치다가 일찍 세상을 뜬 이중섭을 향해 뭔가 말을 걸고 싶었다면 '신화'만 한 화두가 어디에 있을까? '신화'는 이중섭과 작가 서용선이라는 다른 두 세대의 작가들의 작품세계 사이의 상호텍스트성을 확인하기 위한 키워드이다. 미학적 차원에서든, 윤리적 차원에서든, 더 할 나위 없는 만남의 장소이다.

실은 이미 서용선은 '신화'에 발을 담근 지 오래되었다. 젊은 학창시절 작업들에는 화가 장욱진의 1970년대를 환기시키는 노장적 탈속이 스치고 있다. 노산군 일기, 한국전쟁, 도시 사람들, 풍경, 자화상 같이 그가 그려온 일련의 그림들을 가로지르는 에너지들이 그가 이번에 꺼내든 '신화' 화두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하다못해 풍경화 한 폭조차 그가 인간의 삶 풍경으로 그리지 않은 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최근 10여 년간 열렸던 규모 큰 서용선의 여러 개인전들에서 어김없이 등장했던 작품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는 일민미술관의 초대전 <미래의 기억>전(2004.6. 11-7. 18)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2009 올해의 작가>전(2009. 7.3-9. 20), 고려대학교박물관이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으로 주최한 <기억·재현, 서용선과 6.25>전(2013. 6. 25-8. 25) 같은 뮤지엄 급의 여러 초대전들에 언제나 아예 신화 모티브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그렇다면 이중섭상을 기념해서만이 아니다. 비극성을 잉태한 인간 군상들의 삶의 역사적 운명이나 도시적 삶의 폭력적 조건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을 예술적 실천이라고 생각해 왔던 화가 서용선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 이제 '신화'란 더할 나위 없는 예술적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전이 위치한 곳은 바로 이 지점이다.


서용선의 '신화' 그리기, 삶의 근원을 향해 던지는 질문

이번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전을 구성하는 것들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것은 아무래도 태초, 천지개벽, 우주의 탄생 같은 원초적 세계 형성과 관련된 신화적 상상에 관련된 그림들이다. 처음으로 하늘과 땅이 열리는 시원적 신화라 할 반고(盤)를 비롯해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하늘을 다스린다고 하는 천제(天帝), 모든 신의 모태이자 우리민족의 생성 신화로도 전해지는 마고(麻姑), 그리고 하백(河伯)같은 의인화된 강의 신, 의인화된 태양신 희화(和)와 달의 신 상희(常羲), 번개를 주관한다는 뇌신(雷神), 한민족 설화와도 무관하지 않은 치우(蚩尤)와 황제(黃帝)간의 전쟁 <탁록의 전쟁> 신화, 아홉 개의 해를 활을 쏘아 떨어뜨려 가뭄을 그치게 한 남편인 예. 그에게 하사한 불사약을 훔쳐 먹고 지상을 떠나 달로 숨어들어 두꺼비로 변했다는 <항아姮娥>, 그리고 <개 사람>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자연, 인간의 시원적인 세계에 대한 상상력 혹은 집단 무의식들이 무궁무진하게 파노라마같이 전개된다.

이들 태초의 시원성을 보존하고 있는 신화들이 역사화되고 세속화된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업들이 또 다른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태고의 원초적인 신화들 같이 우주의 생성이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고구려 건국 신화로 일컬어지는 <추모왕>이다. 민간 설화로 변형되어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들어 <심청 심학규>, 견우와 직녀 같이 우리에게 낯익은 신화들도 있다. 그런데 비해 다양한 무속의 형태로 가지를 쳐 우리의 삶을 구성해 오다시피 한 <만신> 같은 작업도 다룬다.

이들 서용선 '신화' 작업에서 피어나는 상상력들의 출처는 일차적으로는 고전적인 신화 텍스트들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근대 이래 우리에게 학습되어 '신화'의 전형으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아폴로도로스의 『그리스 신화』나 성경 같은 서구의 텍스트들이 아니다. 우리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삶의 토대가 되어 왔던 그렇지만 그래서 오히려 근대기를 거치며 서구 신화들에 의해 밀려나 주변화 되다시피 했던 산해경(山海經)』, 『부도지(符都誌)』 같은 동아시아의 신화 텍스트들이나 혹은 한국에 구전되어 오던 구술자료들이다. 그래서 서용선의 그리는 '신화'들은 제우스나 프로메테우스 등 우리에게 이야기로든 그림으로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리스 신화들과 달리 낯설다. 그것들은 살아 움직이는 시각 이미지로 당당하게 우리 앞에 놓인 적이 없던 것들이다. 다만 어린 시절 자장가 삼아 이 땅의 할머니 엄마들이 들려주던 반고나 마고 이야기같이 이제 아득하게 청각 기억으로나 남아 있을 뿐인 것들이다.

이렇듯이 철저하리만치 서구의 신화에 의해 우리의 관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더더군다나 우리의 주류 미술에서는 아예 배타시 되어 온 세계들이 서용선이 발동하는 상상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꼴과 형상을 획득하고 있다.

그렇다면, 화가 서용선에게 문학적 서사와 그림 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그에게 '신화' 그리기는 지금까지 그가 해온 노산군 일기나 한국전쟁 같은 역사적 현실 혹은 오늘날의 도시적 삶의 현실과 조건을 다룬 작업들과는 어떻게 나란히 할 수 있는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그리는 일과 상상적인 신화의 세계 그리기는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 과연 그 둘은 양립할 수 있는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서용선의 '신화' 그리기가 전적으로 문학적 텍스트들의 틀에 구속되어 있는 것도 갇혀있지도 않다는 점이다. 그가 만나는 그 실체들은 이 땅의 자연과 문화 속 곳곳에 녹아 있는 미세한 물질적 흔적들까지 아우른다. 고구려 고분벽화, 그 흔적이 스친 이중섭의 그림들, 태백산 산정의 천제단이나 지리산 골짜기의 마고할미성, 어릴 적 성황당 체험들… 그러나 김시습의 <금오신화>, 단종 애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옛 민담과 전설들, 6.25한국전쟁, 혹은 자화상에서까지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가로지르는 숱한 문화적 기억들에 이르기까지, 작가 서용선이 지금까지 그려 온 사람들이야말로 그 마주하는 신화적 현실 중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람 그리기는 가히 범신론적이랄 정도이며 그가 불가사의하게 마주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세계야말로 그의 '신화' 그리기 모티브의 가장 핵심적인 기원이다.

그런 점에서 서용선의 '신화'그리기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제적이다. 예컨대, 신화적 설화를 다룬 작품 <심청 심학규>는 좋은 하나의 사례다. 천안함 사건에서와 같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남북분단의 군사적인 각축과 긴장의 현장이자 상징인 백령도 풍경들, 온 나라가 들끓었던 남북의 정치적 긴장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장산곶과 백령도가 마주한 앞바다에서 그가 불러내는 것이 <심청 심학규>이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숱한 인간 군상들의 시원적 근원으로 파고들어 천착해내는 것이 이 하늘과 땅, 세계와 우주의 태초를 그려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인반수의 괴물 그림인 <반고>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개 사람>으로 우리 눈앞으로 데려 온다.

그렇게 서용선의 '신화' 작업들에는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인간군상들이 모두 함께 겹쳐지고 중첩되어 어우러지고 있다. 소나무에서 시작하여, 작가 자신의 숱한 얼굴들을 그린 자화상들, 노산군 일기에서의 그린 숱한 사람들 예컨대 김시습, 단종, 엄홍도, 세조, 김종서 같은 역사적 인물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구성하는 스탈린, 처칠, 맥아더 같은 전쟁신들, 그리고 그 안에서 영문도 모르며 고통을 겪어야 했던 숱한 민초들…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렇지만 삶의 본질로부터 멀어진 서울, 베를린, 뉴욕, 멜버른 풍경들 속을 살아가는 운명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 여러 풍경화들 속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런 점에서 '신화' 모티브 그림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신화학자로 활동하는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와 함께 한국일보에 '동양 신화' 글과 그림을 연재하면서부터이지만, 그가 실천하는 '신화'의 출발은 이미 훨씬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점에서 이번의 서용선의 '신화' 는 지금까지 그가 탐색해 온 삶의 세계가 이제 지질학적 깊이를 향해가는 접점이자 또한 전환점이다. '신화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신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은 채 '인간의 삶의 세계란 무엇인가?'를 따지는 일의 덧없음에 대한 따가운 자기반성이자 통찰로서,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이 땅 위에 인간의 고정불변한 한 척도로서 모실 신들의 세계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신화 이야기' 그리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낱 문학적 서사가 아니다. 우리의 나날의 삶을 에워싸 일깨우는 현실이며, 살갗으로 파고드는 현상학적 신체적 현실이다.


'또 하나의 장소'

삶의 세계를 향한 물음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이라고 그가 다르지 않다. 다만 표피적인 삶이나 현실을 넘어 이제 서용선이 그리기를 통해 다가가는 곳이 저 깊은 시원을 향한 존재론적 질문과 응답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여기서는 그 흔한 댄디적인 모더니스트적 외양도, 요즈음 누구나 자처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적 제스처도 발견하기는 어렵다. 아니 이미 길들여져 순치된 우리로서는 종잡기 어려운 그의 야생성 앞에서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그의 문제 제기는 분명히 방법이나 기교만으로 자신의 풍모를 과시할 수 있었던 앞선 세대 작가들에게도, 현실, 민중, 민족, 국가 등의 이데올로기의 신화화에 몰입하면서도 정작 삶이란 무엇이고, 그 원초적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간과하기 일쑤였던 우리 동시대의 화단 풍경에서 보면, 분명히 하나의 일탈이자 이례이다.

유감스럽지만,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은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둘러싸고 펼쳐졌던 숱한 신화적 상상력들이나 그 근본에 대한 사유들이 가차 없이 거세되어 황폐화되고 만 그곳이다. 바로 그 곳에서 서용선은 '진정한 인간이란?', '진정한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삶이란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신화'를 통해 또 다시 묻고 있다.

그래서 서용선의 '신화'또 하나의 장소>는 낯설다. 말 그대로 지금은 '또 하나의 장소(헤테로토피아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동시에 이 땅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다시 귀환해야 할 공통의 장소 즉, 우리들이 꿈꾸는 또 하나의 유토피아를 향한 특별한 헤테로토피아이다.

'신화' 속의 화가 이중섭. 그런데도 신화는 신화일 뿐 그의 작품세계는 재해석되거나 새로운 상상력으로 날개 한번 제대로 펼쳐진 적이 별로 없는 것이 신기하다. 구태의연한 작가 '신화'로 오히려 정작 살아 움직이는 미술사의 전개로부터 그의 예술세계를 유폐시켰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신화'에 갇히고 만 '신화' 적인 화가 이중섭이나 '역사화가' 혹은 '표현주의 화가' 라는 상투적인 호명에 갇힌 서용선. 그렇다면, 후배 화가 서용선이 앞서간 화가 이중섭을 기억하며 우리 화단에 제기하는 문제로서 '신화'를 통해, 미술사적 세대의 간극을 넘어 두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가려지거나 감춰졌던 진실들이 어떤 편린으로나마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 출처: 이인범,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 『제2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 조선일보미술관, 2014, pp. 4-13



신상의 베일을 벗긴 화가, 서용선

심경호(한문학, 고려대학교 교수)


1.

인간이란 지각할 수 있는 세계와 직관할 수 있는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 경험론이나 합리론의 철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나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충실한 사람들이라면 지각의 세계만을 세계의 전부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관으로 지각하지 못하지만 직관할 수 있는 세계가 달리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고대와 중세의 사람들은 지각의 범위가 작고 좁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관의 세계와 더욱 깊이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문명과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도 지각의 세계보다 직관의 세계를 더 믿고 초월의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종교적 심리가 발달한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섬세한 사람들도 그러하다.

여기 직관의 세계를 동경하고 초월의 상상을 화폭에 담아내는 우리 시대의 화가가 있다. 서용선, 이분이 그 화가이다.

경기도 양수리의 거처를 찾아가 화실을 둘러보면서 나는 이 분의 화폭에서 붉은 눈이 붉은 심장으로 변화하고 붉은 심장이 붉은 태양으로 변화하였다가, 다시 붉은 태양이 붉은 심장으로 번전하고 붉은 심장이 붉은 눈으로 번전하는 환각을 경험하였다. 그 변화와 번전은 동아시아 공통의 신화가 담지해 왔던 생명의 다이나미즘이 극적으로 재현된 것이었다.


2.

서용선 화가가 화폭에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신성한 존재들은 한국의 고유한 사상과 동아시아의 보편적 사상에 두루 관계 되어 있다. 마고와 하백은 우리나라의 신화에 나오는 신격들이다. 반고, 치우(탁록의 전쟁), 서왕모(곤륜산), 회화, 상희, 뇌신, 천제, 예, 항아, 견우와 직녀, 반호와 늠군, 제준, 과보, 기국, 우민, 망량, 궁귀, 불사민, 창힐, 요왕과 순왕, 탕, 주문공과 강태공, 곤과 우, 백이와 숙제 등은 동아시아의 고전 속에 나오는 신성한 존재들이다. 귀두조, 문요어, 주별어, 육어, 박, 추오, 비익조 등 귀물과 삼신산, 거격송, 미곡, 단목 등 신령한 사물들도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이 공유하는 신성한 자연물들이다.

동아시아의 신화는 고대국가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이 고대국가가 성장하면서 신성성이 약화되고 신들의 위계 질서도 정돈되었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신화는 유교의 경전인 『상서(서경)나 역사서 『사기』 등에도 나타나 있지만, 이러한 서적들에서 신화는 정치이념에 종속되고 말았다.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으로 이어지는 성군의 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여행자의 안내서', '지리사전', '모험기록', '주술적인 교과서' '진한 시대 방사의 비밀 기록', '직공도의 선구'로 일컬어지는 『산해경』은 신화의 원 모습을 상당히 많이 남겨 두었다. 서용선 화가가 초월의 상상을 할 때 의지처가 된 것이 바로 이 『산해경』이다.

『산해경』의 신화는 서사구조를 잃어버린 말라버린 신화' 이다. 하지만 수많은 산과 강, 일상을 넘어 선 먼 나라의 신들과 기괴한 동물들, 신비의 처방 등은 다른 고전들과는 달리 신화세계의 너비와 깊이를 엿 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보면, 세계의 중심인 세계수는 높이가 100길로 가지가 없고 위는 아홉 갈래로 빙글빙글 구부러져 있고 아래는 뿌리가 아홉 갈래로 뒤엉켜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족주의 사학에서 민족의 조상신으로 숭배하는 치우는 이 책에 따르면 중국의 황제(黃帝)에게 맞서 탁록을 완전히 피로 물들일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하였다.

『산해경』은 3세기 이전에 이미 곽박(郭璞)이란 사람의 주석이 나왔고, 6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오장산경」·「해경」·「대황경」의 세 체계를 이루었다. 원나라 때는 「오장산경」·「해외사경(海外四經)」·「해내사경」·「대황사경」·「해내경」의 5부로 나뉘었다. 명나라 중엽 양신(楊愼)의 산해경보주, 청나라 초 오임신(吳任臣)의 『산해경광주(山海經廣注)』가 나왔고, 1781년 필원(畢沅)의 『산해경신교정(山海經新校正)』, 1809년 학의행(郝懿行)의 『산해경전소(山海經箋疏)』가 나왔다. 현대에는 원가(袁珂)의 『산해경교주(山海經校注)』(상해고적출판사, 1980)가 널리 읽힌다.

『산해경』에 나오는 괴수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도 흥미롭지만 동시에 우의(寓意)를 읽을 수도 있다.

알유는 위(危)라는 신에게 죽임을 당한 후 불사약을 먹고 되살아났는데, 호랑이의 몸에 용의 머리, 말의 꼬리를 갖고 있었으며, 몸집이 무척 큰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울음 소리를 냈다. 인간을 해치다가 예(羿)에 의해 퇴치되었다. 예는 열 개의 태양 가운데 아홉 개를 맞춰 떨어뜨려 대지를 안정시킨 인물로, 바로 항아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천제는 알유를 해쳤던 위의 목에 칼(형구)을 씌우고 오른발에 차꼬를 채워, 산의 나무에 묶어두어 영원히 죗값을 치르게 하였다. 이 이야기를 보면 악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복수나 형벌을 받게 된다는 '복수'의 사유가 드러나 있다. 동진 때 도연명은 「산해경을 읽고(讀山海經)」라는 13수 연작시 가운데 한 편에서 이 알유를 소재로 삼아, 정치적 변란은 허무하기 짝이 없으며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반드시 복수를 당하게 되리라고 경고하였다.

정위(精衛)는 염제(炎帝)의 막내딸 여왜가 동해의 파도에 휩쓸려 익사한 후 그 원혼이 환생한 새이다.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여 서산의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고 하였다. 명말청초의 학자 고염무(顧炎武)는 이 새의 이야기에서 복수심의 극점을 엿보았다. 그래서 「정위」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까치나 제비는 자기 집을 짓느라 여념이 없지만 정위는 세계를 바꾸어보려고 하지 않는가, 되물었다.


"세상사란 불평함이 늘 있는 법이거늘

너는 왜 부질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느냐.

고작 한 치의 몸을 가지고

나무 조각을 영원토록 물어 나르려느냐.”

“나는 동해를 평평하게 하려고 해요

몸은 물에 빠졌더라도 마음 바꾸진 않겠어요.

바다가 평평해질 기약 없다면

이 마음도 그칠 때가 없을 겁니다.”

아아, 그대는 보지 못했나?

서산에는 나무 물어가는 새가 많다만

까치도 제비도 제 둥지 지을 뿐인 것을.


명 왕조가 멸망한 뒤 많은 지식인들이 변절하였지만, 고염무는 유민(遺民)으로서 지조를 지켰다. 이 시는 그를 길러준 숙모가 청나라 군대의 침입 소식을 듣고 단식하여 목숨을 끊은 뒤 여막살이할 때 지은 것이다. 『주역』의 괘로 말하면 밝음이 손상 입은 '명이(明夷)'의 시대에, 고염무는 말 두 필과 노새 두 필에 책을 싣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학문을 하였다. 경학, 역사학, 언어학 등 다방면에서 실증적 연구방법을 개척하고 경세치용의 학문을 일으켰다. 그런 그가 산해경을 중시한 것은 그 신화적 상상력이 갖는 파토스의 깊이에 매혹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편, 위진남북조 때는 잦은 정권 교체와 이민족의 침입 등으로 인해 불안한 현실 상황에서 불교, 도교를 비롯한 갖가지 종교가 민중의 삶을 지배하였다. 귀신의 일은 별스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4세기 동진의 저작랑이었던 간보(干寶)는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 『수신기』를 엮었다.

『수신기』의 귀신들은 인간의 한 모습을 지녀 인간의 우둔함도 그대로 드러낸다. 인간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사랑을 하고, 인간에게 속임을 당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친 용사의 이야기나 지고한 부부애를 예찬한 이야기도 남겼다. 동명왕의 신화도 여기에 언급되어 있어, 광개토대왕비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신화가 우리 민족의 심성에 뿌리를 깊이 내린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용선 화가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신화 세계에서 초월적 상상의 단서를 찾았지만, 아무래도 중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전설만 차용한 것이 아니다. 동명왕 신화나 마고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우리의 대지에 결계를 설정한 '마꼬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한나라 때 형성된 서왕모와 곤륜산 전설은 견우 직녀 이야기로 바뀌어 중국 동북방에 널리 공유되어, 고구려 벽화에도 잔영이 남아 있을 만큼 민족의 신화로서 탈바꿈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 고전문학 가운데 민족의 신화나 전설을 정면에서 다룬 예로는 일연 편찬의 『삼국유사』나 김시습의 『금오신화』만한 것이 없다. 『삼국유사』의 신화전설은 고려 중엽의 불교적 상상력과 결합되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이에 비해 『금오신화』의 다섯 이야기는 민중들이 지녔던 심리적 고통과 사상적 고뇌를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민중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신비와 상상의 세계를 아름답게 묘사하였다. 곧, 「남염부주지」에서 박생은 엄마왕으로 취임하는데, 속세의 인간이 염라왕이 된다고 믿는 이야기는 중국에서도 물론 하나의 전승 계보를 이루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별도의 계열을 이루어왔을 법하다. 「용궁부연록」에 등장하는 조강신(祖江神)·낙하신(洛下神)·벽란신(碧瀾神)은 동아시아의 수신(水神) 사상의 계보를 잇되, 개성의 박연폭포에 연관된 용 전설을 소재로 삼아 조선 민중의 수신 사상을 짙게 반영하였다. 「만복사저포기」는 고려 말 왜적의 침략을 배경으로 하고 「이생규장전」은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배경으로 하였는데, 외적의 침략으로 민중의 삶이 유린당했을 때 민중들이 혼령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고통을 위로하였던 미학적 전통을 이은 것이다. 「취유부벽정기」는 옛 도읍 평양을 무대로 삼아, 풍경 속에 민족사의 흐름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남염부주지」는 조선 초에 유행한 지옥의 관념을 소재로 삼으면서, 올바른 실현되 지 못하고 악(惡)의 상태를 온존시키는 현실세계를 고발하였다.

서용선 화가는 김시습의 작업을 이어, 우리 민족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비와 상상의 세계를 화폭을 통해 환기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3.

북한강의 잔물결들이 몸을 뒤채는 것은 물고기들이 물흐름의 영원한 운동에 안도하면서 환희하여 용약하는 것일지 모른다. 문득 나는 서용선 화가가 동아시아의 초월적 상상의 세계로 뛰어든 참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민족사와 인류사의 저변을 이루는 그 어떤 것이 불변인 채로 지속할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김시습처럼 의식의 방랑을 선택한 것일까?

『금오신화』의 작가 김시습은 풀과 나무와 강물과 기층민의 삶을 언제나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는 여행의 길에 나선 사람이었다. 경주 남산이나 서울 동쪽의 수락산에서, 혹은 관동의 한 산자락에서 일시 은둔자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의식은 정태적이지 않았다. 젊어서 동해 바다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신화의 세계를 환기하여 바다를 향해 미친 듯이 장편의 시들을 내쏟았다. 겉으로는 안온하게 보이는 생활을 하였던 그 시절에도 의식은 여행자의 그것이었다. 현실은 개인의 본래성을 구현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있었기에, 김시습은 상상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선(禪)의 직지(直指)를 높이 평가하였지만 그렇다고 선종에 몰입하지는 않았다. 어떠한 종교나 철학도 기의(機宜)에 곡순(曲順)하는 언설, 파편화 되어 있는 언설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똑똑히 깨달았기에, 신화의 세계에 지펴진 불빛을 보았으며,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혼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상상 세계의 여행도 달콤한 꿈이 아니었다. 이승이든 저승이든, 속세든 용궁이든, 실재하는 현실 공간이든 상상 속의 상징 공간이든, 그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원만구족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였다. 「이생규장전」의 이생, 「취유부벽정기」의 홍생, 「만복사저포기」의 양생, 「남염부주지」의 박생, 「용궁부연록」의 한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환상 공간으로의 여행을 통하여 오히려 현실의 무게를 깨닫고 슬픔의 그릇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일체의 가치가 훼손된 결함세계(缺陷世界)를 응시하는 자만이 갖는 고독감과 우울감에서, 김시습은 벗어날 수 없었다.

서용선 화가가 신화의 세계에 지펴진 불빛을 찾아나서고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혼령의 모습을 본 것은 현실의 감각 세계가 결함세계임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고독감과 우울감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일까?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자. 서용선 화가는 이 시대에 판타지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전위 예술가로 나섰다고 생각해 두자.

판타지를 모르는 사람은 목석일 따름이다. '탐구의 학'을 행하는 사람은 판타지에 담긴 낭만적 진실과 인간의 지향의식을 이해한다. 박지원이나 이덕무는 현실의 모순을 냉엄하게 비판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정관념으로 사회참여를 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학문권력의 허위에 대해 비판하면서 탐구의 학을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산해경』에서 판타지의 세계를 감지할 만큼 정신적 여유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박지원은 언젠가 형, 사촌 아우 및 이덕무와 함께 거대한 크기의 <수산해도(搜山海圖)〉를 정원에 펼쳐 놓고 이리저리 오가면서 감상하고는 그 사실을 「수산해도가(搜山海圖歌)」라는 장편시로 노래하였다. <수산해도>는 치수의 신 이랑신(神)이 요괴들을 퇴치하는 이야기를 화폭에 전개시키는 <수산도(搜山圖)>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박지원과 이덕무 등은 <수산해도>를 관람하면서 일상을 벗어나 신비의 세계로 몰입하여 즐거움을 누렸다.


4.

하지만 사이스에서 여신의 베일을 벗긴 나약한 젊은이에게 어떤 운명이 닥쳤는지, 우리는 환기해야 한다. 이집트 북부 나일 삼각주에 있는 사이스에 이시스 여신의 상이 있었다. 18세기 말 독일의 프리드리히 실러는 「베일을 쓴 이시스 상」 시에서, 이시스 신상의 베일을 벗긴 젊은이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으며, 그 후 쓸쓸하게 살다가 요절했다고 하였다.

오관으로 느끼는 지각의 세계를 유일하다 보지 않고, 붉은 눈이 붉은 심장이 붉은 태양이 번들거리고 이글거리는 신화의 세계로 들어설 때 우리는 나약해서는 안 된다. 초월의 상상 속에서 자라나는 암세포와도 같은 고독감과 우울감에 견뎌내고 원초적 상상을 추구해들어가는 마성(魔性)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실신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반신반인이 내쏟는 저주의 음성 때문에 엉겹결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 출처: 심경호, 「신상의 베일을 벗긴 화가, 서용선」, 『제2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서용선의 '신화'_또 하나의 장소』, 조선일보미술관, 2014, pp. 14-23

더보기

연구자 노트

연구팀: 서용선 연구팀

출품작

더보기

인명 키워드

연결된 인명 키워드가 없습니다.

단체 키워드

연결된 단체 키워드가 없습니다.

전시 키워드

연결된 전시 키워드가 없습니다.

시대 키워드

연결된 시대 키워드가 없습니다.

장소 키워드

연결된 장소 키워드가 없습니다.

다국어 키워드

연결된 다국어 키워드가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