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래의 기억: 서용선 개인전》전시주최
일민미술관전시기간
2004-06-11 ~ 2004-07-18전시유형
개인전전시장소
일민미술관, 서울《미래의 기억: 서용선 개인전》
전시일자: 2004.06.11-07.18
장소: 일민미술관, 서울
출품작가: 서용선
기획글
미래의 기억
김희령 / 일민미술관 디렉터
이런 생각을 가져보았다.
전쟁은 신화를 채우고 신화는 역사를 채운다.
써놓고 보니 마냥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인간은 물질적인, 또는 이념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전쟁이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적 본능의 분출이라 한다면, 신화는 폭력적 본성을 미적으로 상징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문화를 비롯해 문명이 싹트기 시작할 때부터 신화는 그 문명의 바탕을 채우는 믿음으로 자리해 왔다.
신화는 고유한 문화를 향유하는 공동체적인 유대감을 이루고,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각문화는 그 문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우리가 어떠한 일정한 문양이나 색감을 보며 그것이 속해있는 문화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그 결과이다. 멀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가 그러하고, 가까이는 중국이나 인도의 신화가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경우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문화적 콤플렉스의 시작점이 바로 신화의 부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의 신화는 지워지고 없어져 버렸다.
우리가 고작 알고 있는 것은 단군이 곰의 아들이라거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탄생했다는 정도일 뿐이다.
신화의 부재는 고대문화가 현대문화와 단절되었음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역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고유의 신화가 복구된다면 우리 문화가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최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고구려 벽화에 대한 연구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신화의 많은 부분은 전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이라는 욕망의 근원지는 인간이 속한 집단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집단의 지배자이기도 하다.
지배자의 욕망에 희생되는 수많은 병사들과 그들을 둘러싼 가족은 대의명분에서 밀려난, 잊혀진 존재이다.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전쟁이 현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전쟁은 잊혀진다. 그리고 후대의 지배자에 의해 전쟁의 가치가 미화되기도 하고 폄하되기도 한다. 여전히 군중은 잊혀진 존재다. 미화된 전쟁은 신화가 되며, 신화는 곧 역사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500년 전, 1000년 전의 역사를 인식하는 길은 단지 누군가의 명을 받은 이의 기록을 통해서 접할 뿐이다.
이 기록이 진실이길 바라는 것은 무모할 수밖에 없다. 500년은 고사하고, 단 100년, 아니 50년 전의 역사도 때론 신화로 둔갑하곤 한다.
서용선은 우리 역사의 다양한 사건이나 현장의 모습들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조선시대부터 현대사회에 걸쳐 벌어졌던 여러 싸움이나 전쟁들을 아우르는데, 이러한 소재들은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 테마라는 점에서 낯설기조차 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작가가일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행하는 미술이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미술이 전쟁을 포함해 역사를 시각화하는 역할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그림이 미화된 승리자를 위한 신화가 아닌, 잊혀진 자를 위한 새로운 신화이고자 한다.
서용선은 임진란이나 동학란, 임오군란의 수장(首將)이 아니라 병사나 의병 등 미미하고 힘없는 존재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맹목적인 찬가로서의 전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영문 모르고 희생된 군중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투쟁의 삶 속에 잊혀졌던 군중 즉, 이름 없는 민초들을 그려냄으로써 우리가 표피적인 결과만 알고 있는 전쟁의 참혹한 잔상을 일깨운다. 화면에는 굶주린 농민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부역하는 사람들, 총살형 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또한 전투의 장엄한 현장 대신 지나쳐버릴 사소한 순간의 모습이 표현되기도 한다. 서용선은 보편적 형식에서 벗어난 재현의 방식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서용선의 그림은 감상하기에 편하지 않다. 그의 그림에는 거친 터치와 숨을 멈추게 하는 듯한 핏빛 색채가 담겨져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제작된 노산군(단종)일기 연작은 애환을 간직한 채 비명에 목숨을 잃은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다루고 있고,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걸쳐 제작한 도시와 사람들 연작은 풍요로움 속의 외로움, 군중 속의 고독을 껴안은 지하철의 무표정한 군상들을 다루고 있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으레 아름답고 편안한 미술작품을 보는 것이고 이를 통해 온화한 안정을 기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서용선의 회화는 다소 섬뜩한 장면을 담고 있기도 하고, 따라서 관람객은 이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세련된 선으로 빚어지는 지금, 원시적 표현기법의 화면은 생소함을 전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그림들이 지향하고 있는 일관된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진실이 담긴 시각적 신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의 승리자인 세조가 아니라, 힘없이 스러져야했던 단종을 주인공으로 부각시킨 것이나 지하철역의 무표정한 현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은 서용선이 전쟁을 매개로 시도하는 새로운 신화 만들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등장인물들은 전쟁 그림의 이름 없는 군중과 함께 우리 역사의 새 우상(아이콘)으로 떠올려진다.
작가는 우리가 문자로 인식하고 있는 역사가 다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우리 역사를 새로이 볼 수 있는 이미지 작업, 다시 말해서 전쟁의 시각적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 우상화되고 있는 우리 역사의 이미지 복원이라는 가치를 담아내고자 한다. 이는 고대신화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과 함께 우리 신화의 복구를 향해 내딛는 한 걸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의 전시가 많이 열렸다. 서용선의 작업은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들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민중미술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생산한 그들의 작업이 우리 사회 속의 문제의식, 그리고 역사의식을 담기에 주력함으로써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짚어보려 한다면, 서용선은 우리 역사의 새로운 이미지 창조에 관심을 가진다. 붉은 빛으로 각인된 아이콘은 작가가발산하는 에너지이며 메시지임을 드러내고, 여기서 우리는 서용선 고유의 메타포를 확인하게 된다.
일민미술관이 서용선의 '미래의 기억'전을 마련하며, 이 전시가 '이야기를 그린다'는 작가 의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풍성한 문화사를 이루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 출처: 김희령, 「기획글: 미래의 기억」, 『미래의 기억: 서용선 개인전』, 일민미술관, 2004, p. 4
전쟁과 신화 그리고 역사: 서용선의 작품
정영목 / 서울대 교수
I. 역사
서용선은 회화의 서술적 역할에 관한 조형적 탐구를 1980년대부터 꾸준히 계속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회화의 '서술적 역할'이란 우리의 사고를 담는 언어와 문학, 그리고 시각언어라 할 수 있는 조형적 이미지 간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림과 언어의 상호작용에서 서용선은 특히 정치, 사회적 현상에 주목한다. 그는 근본적으로 이 시대의 미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물음과 그 물음의 조형적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회화의 서술성에 천착한다. 때문에 그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최근 그가 '철암 프로젝트'로 사회, 문화적 기능의 일환으로서 미술에 의힌 치유의 힘을 버림받은 폐광의 탄광촌에 이식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녹아든 이야기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서용선은 지금도 그 이야기들을 철저한 아날로그의 서술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또한 그는 단종과 그의 주변 이야기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어린 단종이 세조의 권력에 밀려 비운의 죽임을 당한 영월 땅을 몇 년을 두고 그가 헤맨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것이 문헌이나 개인의 구술에 의한 과거의 기록이든 혹은 역사가 될 이 시대의 현장이든, 서용선은 이야기로 형성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들추어내기를 원한다. 여기에는 작가로서 서용선 자신의 감성적 또는 지성적 성찰이 개입될 것이다. 그의 작가적 성찰을 담아내는 시각적 형식은 다분히 표현주의적이다. 상상력과 사실, 구체성과 함축, 표현과 묘사 사이에서 표현주의적 형식이 그의 작가적 성찰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2차적인 것이다. 그의 작품을 통하여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그가 제시한 역사적 이야기들의 시각적 표현이 한 집단이나 사회의 희망, 가치, 공포, 갈등, 열망 등을 어떻게 반영하는가이다.
기존의 미술사적 장르로 분류하자면, 서용선의 이번 전시작품들은 '역사화(history painting)'에 속한다. 서양미술사의 근간을 형성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좋교와 신화를 포함한 역사화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20세기에 들어와 이야기와의 결별을 선언한 추상미술의 득세와 함께 역사화는 쇠락의 길을 걸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으로 말미암아 역설적으로 서용선의 역사화는 더욱 돋보인다. 특히,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서용선 만큼 집요하고 무게 있게 역사화에 몰두한 화가는 없을 것이다. 신화의 원형(原型)이란 관점에서, 아울러 한국 민족 신화의 근간을 파악한다는 관점에서 중국 고대신화를 다룬 서용선의 작품은 그의 조형적 상상력을 시험하는 절호의 기회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역사화는 단종애사(端宗哀史)서부터 동학혁명, 임오군란 나아가 한국전쟁과 이라크전쟁까지 역사와 신화 그리고 전쟁을 통한 이 시대의 사회적 집단정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II. 신화
역사와 신화는 궁극적으로 상호 종속적이다. 때문에, 그 둘의 관계를 진실과 허구의 이분법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 신화는 역사로 팽창, 이완되거나 또는 역사가 신화 속에 반영되기도 하므로 그 둘을 갈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역사는 사건과 인물의 중첩을 통해, 또는 시간과 공간의 응축을 통해 신화나 전설 속에 그 흔적을 남겨놓는다. 한 예를 들어보자. 어린 단종은 죽어 호랑이가 되어 태백산에 들어가 산신령이 되었다는 신화가 있다. 그래서 영월지방에는 이를 섬기는 산신각이 아직도 존재하며, 매년 제사도 지낸다. 단종이 산신령이 되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허구이겠으나, 그 속에는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어린 넋을 기리고자 한 당대의 역사적 요소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신화의 구축은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의 구축으로서, 그 이야기는 다른 역사적 사건들보다 그것을 더욱 중요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특질을 내재하게 된다. 즉, 단종은 선(善)이고 그를 죽게 한 역사적 요인들은 악(惡)이 된다. 선과 악, 이러한 이항대립의 구조가 신화의 기본이다.
신화는 대개 인간이나 자연의 관계에서 도저히 풀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안들을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융(Carl Jung)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집단적 무의식"이 이야기의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신화는 인간이 풀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안들을 이야기 속에서 원활하게 해결된 형태로 남아있게 만든다. 그것은 대체로 원시사회의 산물이지만, 현대사회의 이야기 속에도 사회적 무의식과 욕망이 다양하게 표출된다는 측면에서 그 양상은 원시사회와 다를 바 없다. 어느 시대나 그 사회의 지배적인 믿음은 형성되는 것이고, 그것의 진리여부를 떠나 그것이 권력과 함께 지배이데올로기로 떠오르면 그것 또한 현대사회의 신화라 할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신화든 그것이 이야기되는 방식은 비슷하다. 인간의 사고체계는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원시사회나 현대사회의 사고방식 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신화는 일정의 원형(archetype)을 지니고 있으며 각 신화들은 그 원형을 반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믿음이 현대의 신화비평을 가능케 한다. 신화비평은 개개의 문학작품에서 받는 인상이나 감동을 중요하게 보지 않고, 시공을 달리하는 여러 작품에 내재한 원형 상호간의 관계를 지적으로 조직하고 체계화하려 한다. 때문에 비평의 역할을 인상이나 감동의 기록으로 보지 않고, 신화의 형식과 내용을 분석하고 그를 통해 전달되는 의미를 평가하는 것이 전부다.
이러한 비평적 관점을 서용선의 작품에 대입시킬 수는 없을까? 정재서의 중국 고대신화 중(한국일보, 2002년 5월 22일, 30쪽) 태양을 활로 손 요(堯) 임금 시절의 영웅 예의 이야기가 있다. 신화의 원형적 측면에서 예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와 비슷하다. 가뭄을 몰고 온 10개의 태양 중 9개를 쏘아 떨어뜨린 예는 위기의 재앙에서 백성을 구한 영웅이다. 지상으로 떨어진 태양의 본체는 '세발 달린 까마귀(三足烏)'였다. 인간인 자신의 수명이 길지 않음을 안 예는 갖은 고난을 물리치고 곤륜산(崑崙山)의 여신 서왕모(西王母)에게서 불사약을 하사받았다. 그런데 그의 아내 항아(姮娥)가 불사약을 몰래 훔쳐 먹었다. 죄를 진 항아는 달로 숨었으나 그 대가로 그녀의 몸은 두꺼비로 변했단다. 예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수제자 봉몽(逢蒙)이 예를 질투하여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그를 때려죽였다.
<예>를 그린 서용선의 작품엔 활을 쏘는 예의 부리부리한 모습과 가뭄의 형상, 그리고 태양의 '삼족오'가 등장한다. 두 마리의 용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항아>의 작품엔 휘영청 밝은 달에 떡두꺼비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위에서 간추린 예와 항아의 신화는 꽤 긴 이야기다. 그림이 그 긴 이야기를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작가는 신화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상징할 수 있는 특정언어들을 선택하여 그것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치환해야 한다. 치환된 시각이미지는 언어 이상의 구실을 해야 그 작품이 산다. '도상학(iconology)'이라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림의 묘미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용선이 선택, 치환한 도상학적 요소는 그의 두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이대립의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예(남성) vs. 항아(여성)
땅(가뭄귀신) vs. 하늘(용)
해(삼족오) vs. 달(두꺼비)
신화의 원형을 놓치지 않으면서 함축된 상징으로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선택과 치환은 탁월하다.
예와 항아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뭄으로 타들어간 대지의 소생을 하체에 서부터 풀이 자라나는 가뭄귀신으로 치환한 작가의 조형적 능력은 가히 일품이다. 언어의 상상이 불러일으키는 흥미와 다른 색다른 맛을 우리는 그림에서 만난다. 신화의 어느 부분에도 가뭄귀신이 있다거나, 항아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다고 작가가신화를 잘못 해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림으로 신화를 더욱 그럴듯하게 또는 신화를 더욱 신화답게 만든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가 출현한다든지, 예와 봉몽의 원형적 재해석이 주봉(朱蒙)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서용선의 신화 그림은 이야기 이상의 함축성을 내포한 또 다른 가능성이다.
III. 전쟁
중국 고대신화에 등장하는 황제(黃帝)와 신농(神農) 또는 황제와 치우(蚩尤) 간의 전쟁은 신화답게 도깨비들의 전투였다. 전쟁이 영웅의 탄생과 죽음을 낳는 신화와 역사의 주요한 소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이 그랬고, 알렉산더 대제의 전투도 그랬다. 신사의 도를 중요시하는 과거 서양인의 전투는 때론 낭만적이었거나,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Surrender of Breda)>처럼 승자와 패자의 아량과 겸손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전은 다르다. 진정한 승자와 패자를 가를 수 없는 대규모의 살상과 파괴가 기계적으로 자행되는 현대의 전쟁은 그야말로 소모적인 인류의 재앙이다. 아마도, 이러한 양상의 대표적인 전쟁이 한국전쟁일 것이다. 미국의 초토화 전략과 함께 이 작은 나라에서 무려 3년을 끈 이 전쟁을 그 당사자 국가들의 누구도 기억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서용선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도 아니면서 동란의 상흔들을 자꾸 들추어낸다. 북쪽으로 서울의 관문인 미아리 근처에 살았던 작가는 그의 부모님에게서 들은 전쟁의 잔상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또렷해진단다. 말을 못했거나 아니면 안 해서 그렇지 냉전의 논리를 떠나서라도 어느 세대건 전쟁의 후유증은 휴전의 50주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회 곳곳, 속속들이 틀어박혀 갈등과 반목의 아픔으로 우리를 옴츠리게 만든다. 이 지상에서 갈등과 반목의 후유증이 현실로서 가장 첨예하게 남아있는 곳이 한국의 휴전선이다. 보색의 남, 북한 군인이 대치하고 있는 <경계(휴전선)>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엉뚱한 방향으로 총을 겨눈 남, 북한 병사의
서용선의 전쟁그림은 다소 인간적이며, 치유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의 전쟁그림은 직접적인 전투 장면보다 그 여파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희생과 고통을 다룬다. 지게에 포탄을 지고 나르는 <부역>자들의 심리적, 육체적 고통과 노근리의 학살처럼 <기총소사>에 의해 무고하게 죽어가는 <피난민들>의 희생은 <전투>와 <병사>들 보다 전쟁의 참상을 더욱 감성적으로 드러내는 기재(記載)이다.
서용선의 전쟁그림이 최근의 이라크전쟁을 비켜갈 리가 없다. 마이드너(Ludvich Meidner)의 <묵시록적 풍경>을 연상시키는 <바그다드>와 최신예 스텔스 전폭기가 등장하는 <폭격>에서 서용선은 대놓고 미국에 의한 전쟁의 부조리와 현대전의 참상을 고발한다. 피카소의 한국전쟁 그림과 비교하여 서용선의 이라크전쟁 작품은 정치적으로 매우 직설적이다.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과 <전쟁>에서 '학살'과 '세균전'의 원흉으로 미국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은 반면에, 서용선은 '파괴'와 '희생'의 장본인이 미국임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은 바그다드를 폭격했고, 스텔스 전폭기는 미국만이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CNN이 그들의 폭격을 전 세계의 TV에 중계했으므로 서용선의 표현은 직설적이기 보다 오히려 객관적인 것이다.
트로이의 목마와 도깨비를 앞세운 고대신화의 전쟁은 미사일과 스텔스를 앞세운 현대사회의 전쟁과 어떤 관계일까? 미사일과 스텔스는 목마와 도깨비의 변형일 수 있다. 즉, 미사일과 스텔스는 신화의 원형적 반복이며, 현대사회에서 그것은 대중들 사이에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혀간다. 바르트(Roland Barthes)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위장된 이데올로기의 함축을 폭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사일과 스텔스로 위장한 미국의 신화는 폭로해야할 환상이며, 서용선의 이라크전쟁 그림은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출처: 정영목, 「전쟁과 신화 그리고 역사, 서용선의 작품」, 『미래의 기억: 서용선 개인전』, 일민미술관, 2004, pp. 40-41
오늘 우리에게 신화는 무엇인가?
정재서 /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1.
오늘날 우리는 신화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다. 근대의 목표가 탈신화에 있었다면 오늘 우리는 재신화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왜 케케묵은 신화가 요즘 인기인가? 여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좀 엄숙한 이유로서 지나치게 기술화, 합리화되어 메마른 우리의 심성에 신화가 따뜻한 생명력과 활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고 둘째는 현실적인 이유로서 오늘날 번창하고 있는 디지털 문화, 특히 문화산업에서 다양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화란 과연 무엇인가로 신화에 대한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양하나 대체로 원시 인류의 우주와 자연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담은 신성한 이야기라는 설명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신화는 당시 인류에게 있어서는 결코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과학보다도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던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요, 생활원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화는 아득한 시절 인류 공통의 경험의 표현이므로 집단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보편성 및 원형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동서양의 신화적 형상들을 비교해 볼 때 우리는 그 상상력의 유사성에 놀라게 된다. 신농(神農)과 미노타우로스, 이들은 인신우수(人神牛首)의 형체이다. 주와 사이렌, 이들은 인면조(人面鳥)이다. 이밖에도 영소(英召)와 켄타우로스는 하체가 말인 사람, 저인과 인어는 상체가 물고기인 사람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신화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 모습이 정상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비정상의 신체 이미지가 넘쳐흐른다. 가령, 동아시아의 가장 오래된 신화집이라 할 《산해경(山海經)》을 보자. 신중의 신이라 할 황제(黃帝)는 네 개의 얼굴을 지녔고 용의 화신이며, 대표적 여신인 곤륜산(崑崙山)의 서왕모(西王母)는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이빨의 살벌한 모습을 지녔다. 그런가 하면 각 처에 사는 인간들 역시 정상적인 형체를 가진 경우가 드물다. 환두국 사람은 날개가 있고 새의 부리를 하고 있으며 기굉국 사람은 팔이 하나에 눈이 셋이다. 동식물도 예외는 아니다. 구오산(鉤吾山)에 산다는 포효라는 짐승은 양의 몸에 사람의 얼굴, 호랑이 이빨에 사람의 손톱을 하였는데 어린아이와 같은 소리를 내고 사람을 잡아먹는다.
《산해경》 뿐인가! 서구의 경우 오비디우스가 지은 《변신 이야기》에도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 머리카락이 올올이 뱀인 고르곤 등 기괴한 모습을 한 수많은 괴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산해경》에 비해 《변신 이야기》의 신과 영웅들은 비교적 온전하게 인간의 형상을 지닌 경우가 많다 이는 《산해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덜 문학화된 원시자료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어쨌든 왜 신화에는 복합적, 잡종적 형상을 지닌 존재가 자주 출현하는 것일까? 라캉(J. Lacan)은 신화와 환상이 서로 만난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모두 충동(pulsions)이라는 같은 근원에서 출발하였다. 신화와 환상은 설명이 아닌 환기(evokation)에 의해 의미를 전달하고 환기는 개념이 아닌 이미지에 의존한다. 신화와 환상의 이미지는 곡면경(曲面鏡)에 반영된 굴절된 모습과 같다. 우리는 신화적 존재의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카이우와(R. Caillois)는 신화적 상황을 심리적 갈등의 투사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영웅은 인간의 내면 갈등의 투사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영웅이란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대하게 윤색하려는 보상심리의 산물이다. 간난신고를 겪고 죽어서야 신적인 지위에 오른 헤라클레스, 백성을 괴롭힌 열 개의 태양 중 아홉 개를 격추한 예 등이 이러한 영웅의 본보기이다. 반면에 영웅의 위업을 방해하거나 장애가 되기도 하는 존재는 대부분 퇴치되어야할 괴물로 표현된다. 예컨대 중국의 질서를 깨뜨리고자 반란을 일으켰던 치우는 여러 개의 머리와 소 발굽을 지닌 형상이었는데 이는 파괴적인 충동 혹은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을 상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영웅 페르세우스가 제거하고자 했던 괴물인 고르곤 세 자매들-메두사, 에우리, 알레, 스테노- 역시 성욕, 허영심 등 극복해야할 우리 내면의 욕망이 아닐 수 없다.
신화적 영웅이나 괴물은 이처럼 내면의 갈등과 욕망의 화신으로 표현될 수 있지만 사회적 편견의 반영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사이드(E. Said)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상상적 지리학에 의한 종족적 편견을 이야기한 바 있다. 즉 거리가 차이를 극화시켜 중심주의를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산해경》에는 이방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많이 있는데 그들 이방인들은 한결같이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대인국·소인국 사람을 비롯 가슴에 구멍이 뚫린 관흥국(貫胸國), 입에서 불을 뿜는 염화국(厭火國), 머리가 하나에 몸이 셋인 삼신국(三身國) 사람들이 그 예이다. 신화시대에 종족적 편견은 없었겠지만 후대에 신화집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중심과 주변을 차별하는 의식이 스며들어 이방인을 자연상태의 야만인으로 간주하고 동물적 속성을 부여, 그들을 기괴한 모습으로 묘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에코(U. Eco)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온전한 중심을 위해 마땅히 그렇게 존재했어야 할 주변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정적 이미지의 측면에서 복합적, 잡종적 형상의 의미를 살펴보았지만 이번에는 긍정적 이미지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사람과 동물의 복합 형상은 인간과 자연이 미분화된, 그리하여 생태적 화해를 이루고 살던 신화시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인간은 자연을 경외하였고 동물은 보다 자연에 가까웠던 관계로 동물성(animality)은 인성 이상으로 존중되었다. 동물 토템에 대한 숭배는 신성의 동물적 현현(顯現)과 관계 깊다. 동물적 현현이 인간화되는 중간단계에서 인수동체(人獸同體)의 모습이 나타난다. 《산해경》에는 사람의 얼굴 혹은 몸체를 지닌 허다한 신화적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동물끼리의 결합 형태보다는 후대에 출현하였지만 동물과의 결합을 통해 완전성 및 신성으로 인식되었던 자연과 합치되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적 세계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철폐되어 모든 존재가 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다. 여기에서 완전성의 추구라는 의미와 관련하여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동서양 신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양성구유(兩性具有)적 존재이다. 이 존재 역시 완전성의 지향을 상징한다. 한 예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인 우로보로스는 연금술에서 완전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양성구유는 결국 대극(對極)을 지양하여 완전한 통합을 이룩하고자 하는 정신의 형상화인 것이다. 이는 신화가 추구하는 기본 정신이기도하다
2.
동서양의 모든 신화가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 후 이제 두 신화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신화의 귀환을 말했지만 사실 엄격히 말하면 서구 신화의 귀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신화가 붐을 이룬다고 해도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시리즈 등 서구의 상상력과 관련된 책들이지 동아시아의 신화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다시 말해 신화의 세계도 여전히 서구 중심적인 것이다. 신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세계 신화의 표준으로 삼아 출발하였다. 그런데 특정한 지역의 신화를 근거로 다른 많은 지역의 신화와 문화를 재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불공평하고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구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쌍벽을 이루는 동아시아의 중국신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욱 절실하다. 중국신화에 대한 이해는 일차적으로 우리 문화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이지만 서구 중심의 신화 지식에서 벗어나 상상력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신화는 어떠한 모습인가? 우리는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친숙해야 할 중국신화에 대해 더 잘 모르고 있지 않은가? 중국은 단일한 민족 구성체가 아니므로 이때의 중국은 민족 개념이 아닌 국가, 지역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우리가 중국신화를 말한다면 그것은 한국 신화나 일본신화처럼 단일한 민족 신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광활한 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의 신화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대륙에는 오늘날 중심민족인 한족(漢族)을 비롯 만족, 몽고족, 위글족, 회족, 장족 등 5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신화란 한족을 비롯 소수민족 전체의 신화를 총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범위를 좁혀서 말한다면 중국 총인구의 93%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 사이에서 구전되어오거나 문헌상으로 전해져 오는 신화만을 지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한족신화일지라도 고대부터 다양한 주변민족 신화의 영향을 흡수하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단일 민족신화의 개념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고대의 중국문명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족 중심의 통일된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문명이 대등하게 공존하고 있는 형태였다. 근래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따르면 중국문명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황하(黃河)유역에서 기원하여 그 문명이 변방으로 파급되었든 것이 아니라 요녕(遼寧)이나 장강(長江) 유역 등 변방의 여러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발달한 문명이 있어서 다원적으로 여러 지역문명이 결합한 형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러한 고대 문명을 반영하는 중국신화는 결코 특정한 민족의 신화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 및 주변민족 신화의 총체로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신화는 중국 사람들만의 신화가 아니라 넓게 동아시아의 신화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중국신화에 접근할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표준으로 한 선입관을 가지면 안된다. 우선 중국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장편의 완전한 서사체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 중국신화는 다양한 종족, 다양한 문명의 산물이기 때문에 독립된 단편들의 결합체와도 같다. 그리하여 서사에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중국신화는 비교적 원시의 소박한 형태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가령 인간과 동물의 복합 형상을 인식하는 태도에서 중국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많이 다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이미 인간이 중심이다. 따라서 신들의 형상도 완전히 인간을 닮아 있고 반인반수적 존재는 사악한 괴물이기 십상이다. 가령 인신우수인 미노타우로스, 인면조인 사이렌 등은 모두 사람을 잡아먹거나 유혹하는 괴물이다. 이에 반해 중국신화의 반인반수적 존재는 대개 신성하거나 초능력을 지녔다. 가령 인신우수인 신농씨는 농업과 의약을 발명하여 인류에게 큰 공헌을 한 훌륭한 존재이다. 중국신화에서 동물성을 보다 긍정하는 것은 그만큼 원시신화적 성격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중국신화의 다양한 내용 중에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문화의 특성을 표현한 것이 적지 않다. 홍수신화로서 유명한 복희, 여와 남매혼 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홍 수가 일어나 모든 인류가 다 죽고 큰 조롱박 속에 들어간 복희, 여와 남매만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 결혼하기로 작정하였고 이후 인류는 번성하게 된다. 인류의 조상인 복희, 여와의 결혼 신화는 이후 중요한 예술적 모티브가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는 투르판 지역에서 발견된 당대(唐代)의 복희, 여와 그림은 하반신이 뱀인 복희, 여와가 교미하고 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형상은 고대의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인데 주목해야 할 것은 복희, 여와 남매혼 신화가 이후 고대 동아시아의 중요한 철학 관념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조롱박은 혼돈, 도와 같은 개념으로, 복희, 여와의 양성 결합 모티브는 음양상생의 이치로 발전해 갔다고 보는 것이다. 울러 양성 결합 모티브는 후대의 문학작품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가령 주목왕(周穆王)과 서왕모(西王母)의 로맨스는 영웅과 여신의 결합으로 인한 우주적 힘의 재생, 완전성의 추구 등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출처: 정재서, 「오늘, 우리에게 신화는 무엇인가」, 『미래의 기억: 서용선 개인전』, 일민미술관, 2004, pp. 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