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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노트
연구팀: 서용선 연구팀
박헌영(朴憲永, 1900~1956?)공산주의 운동가. 1920년 11월 상해로 건너가 사회주의 운동에 처음 가담하고, 1922년 3월 상해 고려공산청년회 제2차중앙총국의 책임비서가 된다. 1925년 4월 국내에서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결성에 참여하고,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 직책을 맡았으나, 같은 해 신의주사건으로 검거되었다.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지만, 1946년 9월 미군정 경찰은 조선정판사위폐사건朝鮮精版社僞幣事件을 계기로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강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다. 이때 박헌영 및 조선공산당 주요 인사들의 체포령이 내려졌고, 박헌영은 이를 피해 그달 말 월북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북한에서 박헌영은 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朝鮮人民黨·남조선신민당南朝鮮新民黨 3당이 합당한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 결성에 참여했고, 12월에는 당 부위원장직에 임명되었다.1948년 9월 9일, 북한의 정부 수립과 동시에 부수상에 취임하며 외무상을 겸했다. 1949년 6월 24일 남로당은 김일성의 북조선노동당北朝鮮勞動黨에 흡수되고, 통합된 당명은 조선노동당朝鮮勞動黨으로 개칭된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내에 총정치국을 창설하고 인민군 중장이 되어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남로당 출신 당 간부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정복음모와 반국가적 간첩테러 및 선전선동 행위에 대한 사건」 연루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고, 박헌영 역시 당내 종파 조직 및 미국을 위한 간첩행위, 한국 전쟁 패배의 원인을 만든 것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1953년 8월, 결국 당에서 제명되었고, 1955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 특별재판에서 사형 및 전 재산 몰수형을 선고받았다."인민군을 남한테 내려 보내면 이에 발맞춰 20만 명의 지하남로당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 북한 외무장관 박헌영Park, Hun YoungPark, Hun Young, Communist activist, founder of the Communist Party of Korea, created the Workers' Party of South Korea. As the party leader, he became the Deputy Prime Minister and the foreign minister in North Korea. After launching the Workers' Party of Korea, he was appointed as vice-chairman, but eventually purged by Kim, Il Sung's security forces.※ 출처: 『한국전쟁 정전60주년 특별전_기억·재현 서용선과 6.25』, 고려대학교 박물관, 2013, p.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