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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노트
연구팀: 서용선 연구팀
역사적인 내용을 작품의 주제로 선택하고자 한 서용선이 역사화에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단종 이야기를 들추어내기 시작한 것은 1986년경이다. 작가는 당시 주변 사생활에서 기인한 복잡함과 불쾌함을 잊고자 강원도 영월의 친구를 찾아 머물면서 우연히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를 둘러보고, 왠지 그 옛날의 슬픈 감성이 마치 고대 그리스의 비극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이때 서용선은 단종의 슬픈 역사를 새로운 역사화의 관점에서 시각화함으로써 그 슬픔을 그리스인들의 비극적 서사시와 비슷한 어떤 것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런 작업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장벽화에서 느낄 수 있는 다소 비극적인 감동을 우리 나름대로의 주제 의식과 시각으로 재조명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슬픈 감성이 과연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를 탐구하는 일이다. 특히 작가는 주제 면에서 이러한 서술적인 비극성이 사라진 현대미술의 황폐함 속에서 단종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인간의 원천적인 문제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서용선은 이를 위해 1986년부터 자주 영월을 들락거린다. 과거와 같이 기록적인 차원에서 역사 공간을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종에 관한 사실로서의 역사적 슬픔이 어떠한 서사적 슬픔으로서 자신의 가슴에 감성적으로 와닿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가능한 한 당시의 정황과 단종에 관한 선조들의 슬픔의 역사를 수집, 종합하여 한 가닥으로 잡은 뒤 자신의 조형 언어로 표출하려고 했다.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이러한 주제 의식을 과연 형식이 얼만큼 떠받쳐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껏 배웠거나 스스로 느껴서 익히고 알고 있는 동서양의 조형 양식은 피상적인 수준이어서 그러한 작업 자체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그래서 서용선은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이 작업에 몰두하고자 한다. 1986년 이후 단편적이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주제에 관한 사실적인 형상들을 조형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점차 가능해진 것이다. 때로는 그 작업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우리의 시대정신이 담긴 현대회화의 한 양식으로 표현하고자 한다.서용선의 이러한 시도는 1986년 이후 주제적으로나 양식적으로 점차 변모해왔다. 우선 그는 복합적인 사건의 상황을 하나의 화면에 집약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분할된 화면에 나열식으로 열거해놓는 방법continuous narration을 택했다. 그러나 같은 나열식 방법이라 하더라도 1987년의 <유배-청령포 가는 길>과 1992년의 <계유년>의 느낌은 아주 다르다. 전혀 다른 시점에서 그려진 공간의 상황과 사건을 한 화면에 애매모호한 공간감으로 뭉뚱그린 1987년의 작품과 비교할 때, 후자는 공간의 설정을 위해 아무런 주저 없이 원근법이 무시된 네 개의 평면에 맑고 명쾌한 시각적 느낌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사건 자체를 확실하고 명쾌하게 다룬 듯한 색채의 주관성과 그에 상응하는 주제의 상징성이 인물과 구성의 왜곡과 어우러져 훨씬 돋보인다.분명 이것은 작가의 긍정적인 발전이다.사건의 상황 전개를 위한 서술적인 재현성representation에 급급했던 1990년 이전의 작품에 비해 이후의 작품은 ─ 이야기를 단순히 재현 이미지로 나타내는 회화의 문학성이 갖는 한계를 넘어 ─ 회화의 자율적인 조형 방법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을 더욱 주관적인 작가의 입장에서 재해석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출처: 정영목, 『시선의 정치: 서용선의 작품 세계』, 도서출판 학고재, 2011.04.15, pp. 3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