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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노트

연구팀: 서용선 연구팀
전쟁 속에 사라진 신화들화가 서용선(53·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씨는 역사를 지금, 여기서 느낄 수 있게 그린다. 비명에 간 단종의 죽음은 도회지에서 매일 죽는 현대인의 그림자요, 동학농민군은 정치 개혁을 외치는 혁명가의 외투가 된다. 11일부터 7월 18일까지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용선 개인전-미래의 기억'은 신화와 전쟁을 그린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서사의 무대다. 빨강·파랑·초록·노랑 등 진한 색채로 거칠게 세상사를 기록한 '지리산에서'(사진) '노근리 사건' '사막의 밤-포로들' 등은 현장 관찰을 중시하는 작가의 진지한 눈을 느끼게 한다. 15~26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02-732-3558)에서도 서 씨의 역사화를 볼 수 있다. 02-2020-2055.※ 출처: 「전시회 산책: 전쟁 속에 사라진 신화들」, 『중앙일보』, 제12263호, 중앙일보사, 2004.06.09, 6면전쟁을 소재로 한 그의 그림에서는 죽창이나 총칼, 철조망보다는 어둠과 공포에 몸을 떨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더 부각된다. 그 얼굴에 '하루 하루 삶에서의 전쟁'을 치르는 우리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 출처: 허문명, 「너무나 인간적인 전쟁같은 삶: 서용선 개인전」, 『동아일보』, 제25786호, 동아일보사, 2004.06.14, 8면미술비평_서용선 展(일민미술관, 2004.6.11~7.18)강력한 색채의 거친 붓질 살아나는 神話와 歷史사람이 사는 곳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이야기가 나타나는 근저에는 사람의 감성적·지성적 '흔들림' 혹은 '움직임'이 있다.말하자면 감동, 충격, 놀라움 등과 함께 이야기는 형성된다. '이야기'의 차원에서 신화와 역사는 한 몸이다.각 문명에는 신화가 있다. 단군, 그리스신화가 있는가 하면 중국, 아랍, 이집트 지역의 신화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엔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단군신화는 한민족 역사의 출발점이다.이야기가 신화와 역사로 뚜렷이 구분되기 시작한 때는 근대 합리주의, 즉 모더니즘의 발생과 같이 한다.1백년 모더니즘이 벗어나려했던 '이야기'미술사의 관점에서 볼 때, 모더니즘 1백년은 극단적으로 '이야기'와 결별하려 했던 시기다. 꾸르베와 마네, 그리고 모네가 벗어나려 그토록 애썼던 건 신고전주의의 비현실적 '이야기들'과 그 상투적 '교양'이었다. 그들 이후 모든 모더니스트들은 이야기에서 벗어나 마침내는 회화를 평면에 구속시켰다. 미술의 본질에의 집중은 미니멀리즘에 이르렀고, 작품은 아무 것도 없는 흰색 평면과 단순한 큐빅에 다다랐다. 이러한 형식주의는 미술을 위한 미술에 매진케 했으며, 미술 외의 것은 불순한 것으로 기피했다. 그리고 기피대상 1호는 '이야기'이자 '신화'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더니즘 시대 1백년을 제외한 수만 년의 인류역사에서 이야기는 미술의 한 부분이자 요소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서양미술사에서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신표현주의'였다. 서구에서 1970년대에 나타났고,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신화와 결합하며 "회화에 산소와 피를 공급한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회화가 부활하고 그 오랜 맛도 되살아났다. 서용선의 회화가 '신표현주의'라 평가 받는 것은 그의 주제와 기법이 서구의 것과 가깝다는 것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러한 단순한 미술사적 맥락을 넘어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주제는 '신화'와 '역사'다.이번에 전시된 작품에 한정해 말한다면, 중국 고대 신화와 한국의 근대 역사다. 작가는 중국의 신화를 통해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거나 이해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하지만 내가 흥미를 가진 것은 그의 상상력이고 그 표현이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는 일은 다른 지면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그의 한국 역사 시리즈는 왕조와 권력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닌, 민중사 쪽의 기술이라 말할 수 있다. 멀리는 '임진왜란'에서부터 가깝게는 '사막의 밤(포로들)'에 이르는 작품에는 권력의 상징과 보통사람이 함께, 혹은 대비적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오가는 군인과 엎드린 사람('동학농민운동'), 철책선과 별 의식없이 각각 좌와 우를 겨누는 군인('DMZ'), 거대한 폭격기와 탄환과 사람들('기총소사', '노근리사건', '폭격'), 민간인과 군인('지리산에서', '피난'), 철조망과 그 안에 갇힌 군인들('사막의 밤')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들을 작가는 자신의 독특한 분위기로 그린다. 그의 색채는 도발적이지만, 장면의 연출 자체에 과장은 없다. 이 점이 민중미술이라 불리던 지난 1980년대 미술의 한 유형과 분명히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도발적인 색채로 본능의 기억 끄집어 내마지막으로 그의 색채와 붓의 사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색채는 표현주의자답게 그야말로 자유롭고 활달하고 과감하다. 그의 그림 앞에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흥분은 그 색채와 붓질에서 자극받은 게 틀림없다. 물론 내 몸은 수많은 산사의 단청과 또 박생광이 불러일어키던 흥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나의 역사적·신화적 기억뿐만 아니라, 내 몸에 숨어있던 본능에 인접해 있던 기억도 끄집어 밖으로 드러낸다.※출처: 이태호, 「미술비평_서용선 展(일민미술관, 2004.6.11~7.18): 강력한 색채의 거친 붓질 살아나는 神話와 歷史」, 『교수신문』, 321호, 교수신문사, 2004.07.12, 8면빨치산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남한 지역에서 일어난 조직적인 무장유격대武裝遊擊隊의 활동은 사회주의 세력의 영향 하에서 전개되었다. 유격전을 수행하는 비정규군非正規軍 또는 그 구성원을 빨치산partisan 혹은 게릴라guerilla로 부르며, 한국전쟁 전후 무장유격활동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빨치산 또는 인민유격대人民遊擊隊로 인식했다.해방 후 남북분단으로 인해 이데올로기 갈등이 심화되면서부터 한반도에 좌익 빨치산 혹은 인민유격대가 등장하였다. 1946년 대구 10.1사건 이후 남조선노동당이 탄압되는 과정에서 좌파 인사들과 이에 가담한 노동자, 농민들 가운데 일부가 주변 산악으로 숨어들어 이른바 야산대野山隊 활동을 시작한 것이 그 효시가 된다. 1948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가 제주 파병 반대의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켜 정부군의 강력한 진압이 전개되자,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지방 좌익세력과 결합해 무장 세력을 형성하며 본격적으로 빨치산 투쟁이 촉발되었다.1949년 평양에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이 결성되고, 남한 지역 빨치산 활동의 지도권한은 조선노동당에 의해 선도되었다. 북쪽은 남한지역에서의 좌익세력을 지원하고 조직적인 후방교란을 목적으로 강동정치학원江東政治學院에서 유격대를 양성하여 남파했으며, 조선인민유격대朝鮮人民遊擊隊를 창설하여 빨치산 활동을 지휘·지원하였다. 남쪽 빨치산은 오대산·지리산·태백산지구 인민유격대의 3개 병단으로 편성되어 유격전을 격렬히 펼치다가, 정부의 지리산지구 전투사령부의 설치 및 토벌 작전으로 무력한 상태가 되었다.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인민군의 낙동강 도강 작전 중에 국제 연합군의 참전으로 인민군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이 전개되어 인민군의 북상이 차단되자, 그 패잔병들 및 당 요원들은 지리산 등 남쪽의 산악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인공체제人共體制에 동참했던 지방 좌익들과 함께 빨치산을 편성하여, 인민군의 후퇴 및 재진격을 꾀하고 후방 교란작전을 전개하며 제2전선을 형성했다.이에 정부는 빨치산에 대한 적대적인 대응과 진압을 도모했으며, 국군은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군·경 합동으로 지역별로 지속적인 토벌작전을 진행하였다. 이와 함께 북한지도부의 소모적인 유격부대 운용, 장기간의 물자보급 요구와 토벌에 시달린 지역 주민들의 외면 속에서 이들의 활동은 소멸했다. 1954년 4월 5일 김선우 조선노동당 전남도당위원장이 백운산에서 사망함으로써 공식적인 지하당 조직이 와해되고, 1955년 4월 1일 지리산의 입산 통제가 해제되었다.North Korean PartisanBefore and after the Korean War, North Korean partisan activities in South Korean region have been developed under the communist influence.Partisan movement was initiated with the revolt of the 14th Regiment at Yeosu in 1948. The Workers' Party of Korea began leading the partisan movement and it has intensified with the democratic front for the reunification(DFRF).After the Korean War, when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retreated, the remnants of the army and the Communist Party rioters escaped to a mountain area in the South and they became the North Korean partisan. They formed the second front with developing rear area operations. Sinc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carried out the anti-partisan operation successfully and partisans suffered from the lack of supplies, the partisan activities went extinct.※ 출처: 『한국전쟁 정전60주년 특별전_기억·재현 서용선과 6.25』, 고려대학교 박물관, 2013, p. 78
회화

작품명

지리산에서
On the Jirisan (Mt. Jiri)
On the Mountain Jiri

제작연도

2000 ~ 2003 

바탕재

캔버스

재료 및 기법

재료 : 캔버스
기법 : 유채

규격

194 세로(cm) x 130 가로(cm)

소장 및 경매정보

-

  • 부문 회화
  • 키워드
  •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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