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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노트
연구팀: 서용선 연구팀
흥남철수興南撤收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5일에서 24일까지 동북부 전선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이 피난민들과 함께 흥남항을 통하여 대규모 해상 철수를 단행한 작전이다.장진호전투長津湖戰鬪 이후 북진은 불가능해지고, 중공군의 공세에 국군과 유엔군이 남쪽으로 후퇴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결국 유엔군 사령부는 함경남북도 일대의 국군과 유엔군에게 철수 명령을 하달하는데, 당시 중공군이 원산을 점령하였기 때문에 육로 대신 흥남을 통해 부산 방면 해로로 철수하라는 작명이었다. 이에 미군 3개 사단과 국군 수도사단은 흥남 일원으로 집결하였다. 중공군과 북한군이 흥남교두보를 탈취하기 위해 추격해오는 가운데 미군 제10군단장 알몬드Almond 장군은 3중의 방어선을 구성하여 함포사격과 공중화력의 지원을 받으며 교두보를 방어하는 동시에 해상철수를 진행하였다.당시 흥남부두에는 수만 명의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운집하였다. 미군의 처음 계획은 모든 병력과 장비를 승선시킨 다음 여유가 있으면 피난민도 승선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군 제1군단장 김백일金白一 장군과 미군 제10군단 민사고문관 현봉학玄鳳學 및 국군 지휘관들은 피난민도 함께 철수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미군 작전참모인 포니Forney 대령도 동참하여 결국 10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들도 각 선박에 승선할 수 있었다.12월 15일 미 제1해병사단의 출항을 시작으로 24일까지 열흘간 이루어진 이 해상 철수작전에서, 국군 제1군단과 미군 제10군단의 10만 여명 병력과 17,000대의 차량을 비롯한 다량의 군수품들 그리고 피난민 약 10만 명을 안전하게 동해상으로 철수시키는데 성공하였다.The Heungnam EvacuationThe Evacuation of Heungnam encompassed the sale withdrawal of the bulk of UN forces and the South Korean forces in eastern North Korea.The first major unit to go was the US 1st Marine Division, which arrived in Heungnam port, at the same time, the US 10th Corps and the South Korean 1st Corps also set up defensive positions at the Heungnam port. Generally described as "greatest evacuation movement by sea in US military history". It was the largest sealift, and in 10 days, over a 100,000 military personnel, 17,000 vehicles were pulled out by the UN Command, and a large number of ships assembled at the port and evacuated not only the troops, but also their heavy equipment and about 100,000 of the Korean refugees.The last UN unit left on December 24, and the port was destroyed and yet to deny its use to the Chinese and the North Korean forces.※ 출처: 『한국전쟁 정전60주년 특별전_기억·재현 서용선과 6.25』, 고려대학교 박물관, 2013, p.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