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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노트

연구팀: 서용선 연구팀
1950년 6.25전쟁 초기 미군이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후퇴하던 중,충청북도 영동군 주곡리 및 임계리 주민을 피란시키는 과정에서 민간인 300여명이 미군측에 의해 살상된 사건을 말한다.생존자들에 따르면 미군은 전투기 기총소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철로 아래 굴다리 안으로 숨자 기관총을 걸어놓고 29일까지 굴다리를 빠져나오는 주민들을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외부에 처음 드러난 것은 1960년 민주당 정권 때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하면서였다.※ 출처: 『미래의 기억: 서용선 개인전』, 일민미술관, 2004, p. 24전쟁 속에 사라진 신화들화가 서용선(53·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씨는 역사를 지금, 여기서 느낄 수 있게 그린다. 비명에 간 단종의 죽음은 도회지에서 매일 죽는 현대인의 그림자요, 동학농민군은 정치 개혁을 외치는 혁명가의 외투가 된다. 11일부터 7월 18일까지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용선 개인전-미래의 기억'은 신화와 전쟁을 그린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서사의 무대다. 빨강·파랑·초록·노랑 등 진한 색채로 거칠게 세상사를 기록한 '지리산에서'(사진) '노근리 사건' '사막의 밤-포로들' 등은 현장 관찰을 중시하는 작가의 진지한 눈을 느끼게 한다. 15~26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02-732-3558)에서도 서 씨의 역사화를 볼 수 있다. 02-2020-2055.※ 출처: 「전시회 산책: 전쟁 속에 사라진 신화들」, 『중앙일보』, 제12263호, 중앙일보사, 2004.06.09, 6면그림들은 거시적인 전쟁의 서사적 전말과는 별개로 상처받고 희생당하는 피난민, 양민 등 약한 자들의 숨결과 의식 속을 집요하게 좇아간다. 노근리 터널 속에서 노란 빛점으로 묘사된 기총소사를 받고 죽어간 피난민들의 분노, 공포 어린 표정(<노근리 사건>), 울긋불긋한 산속 숲을 헤매는 피난민들의 실체 없는 방황(<피난>) 등에서 이런 관점은 핍진하게 투영된다. 침침한 푸른 톤 화면에 빨강, 노랑, 검정 등의 찢어질 듯한 선이 어우러지고 윤곽만 남은 피난민, 총든 병사들의 이미지가 결부돼 전쟁의 참상은 더욱 그악한 심리적 충격으로 와닿는다.※ 출처: 노형석, 「전쟁 수레바퀴에 짓밟힌 사람들: 서용선씨 역사화 개인전」, 『한겨레신문』, 한겨레, 2004.06.14, 14면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02-2020-2055)에서 7월 18일까지 열리는 '미래의 기억'전에는 '피난' '기총소사' '중부전선' 등 전쟁의 상흔을 강렬한 색채와 굵은 선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걸렸다. 동학과 임오군란을 거쳐 한국전쟁과 비무장지대(DMZ)의 남북 대치상황, 노근리 사건과 이라크전까지 캔버스에 옮김 그의 그림들은 푸르고 빨갛고 노란 원색으로 강렬하다.※ 출처: 이광형, 「'미래의 기억'으로 아로새긴 전쟁의 아픔: 역사를 화폭에 담는 서용선씨」, 『국민일보』, 제4757호, 국민일보사, 2004.06.14, 16면미술비평_서용선 展(일민미술관, 2004.6.11~7.18)강력한 색채의 거친 붓질 살아나는 神話와 歷史사람이 사는 곳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이야기가 나타나는 근저에는 사람의 감성적·지성적 '흔들림' 혹은 '움직임'이 있다.말하자면 감동, 충격, 놀라움 등과 함께 이야기는 형성된다. '이야기'의 차원에서 신화와 역사는 한 몸이다.각 문명에는 신화가 있다. 단군, 그리스신화가 있는가 하면 중국, 아랍, 이집트 지역의 신화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엔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단군신화는 한민족 역사의 출발점이다.이야기가 신화와 역사로 뚜렷이 구분되기 시작한 때는 근대 합리주의, 즉 모더니즘의 발생과 같이 한다.1백년 모더니즘이 벗어나려했던 '이야기'미술사의 관점에서 볼 때, 모더니즘 1백년은 극단적으로 '이야기'와 결별하려 했던 시기다. 꾸르베와 마네, 그리고 모네가 벗어나려 그토록 애썼던 건 신고전주의의 비현실적 '이야기들'과 그 상투적 '교양'이었다. 그들 이후 모든 모더니스트들은 이야기에서 벗어나 마침내는 회화를 평면에 구속시켰다. 미술의 본질에의 집중은 미니멀리즘에 이르렀고, 작품은 아무 것도 없는 흰색 평면과 단순한 큐빅에 다다랐다. 이러한 형식주의는 미술을 위한 미술에 매진케 했으며, 미술 외의 것은 불순한 것으로 기피했다. 그리고 기피대상 1호는 '이야기'이자 '신화'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더니즘 시대 1백년을 제외한 수만 년의 인류역사에서 이야기는 미술의 한 부분이자 요소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서양미술사에서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신표현주의'였다. 서구에서 1970년대에 나타났고,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신화와 결합하며 "회화에 산소와 피를 공급한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회화가 부활하고 그 오랜 맛도 되살아났다. 서용선의 회화가 '신표현주의'라 평가 받는 것은 그의 주제와 기법이 서구의 것과 가깝다는 것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러한 단순한 미술사적 맥락을 넘어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주제는 '신화'와 '역사'다.이번에 전시된 작품에 한정해 말한다면, 중국 고대 신화와 한국의 근대 역사다. 작가는 중국의 신화를 통해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거나 이해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하지만 내가 흥미를 가진 것은 그의 상상력이고 그 표현이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는 일은 다른 지면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그의 한국 역사 시리즈는 왕조와 권력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닌, 민중사 쪽의 기술이라 말할 수 있다. 멀리는 '임진왜란'에서부터 가깝게는 '사막의 밤(포로들)'에 이르는 작품에는 권력의 상징과 보통사람이 함께, 혹은 대비적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오가는 군인과 엎드린 사람('동학농민운동'), 철책선과 별 의식없이 각각 좌와 우를 겨누는 군인('DMZ'), 거대한 폭격기와 탄환과 사람들('기총소사', '노근리사건', '폭격'), 민간인과 군인('지리산에서', '피난'), 철조망과 그 안에 갇힌 군인들('사막의 밤')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들을 작가는 자신의 독특한 분위기로 그린다. 그의 색채는 도발적이지만, 장면의 연출 자체에 과장은 없다. 이 점이 민중미술이라 불리던 지난 1980년대 미술의 한 유형과 분명히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도발적인 색채로 본능의 기억 끄집어 내마지막으로 그의 색채와 붓의 사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색채는 표현주의자답게 그야말로 자유롭고 활달하고 과감하다. 그의 그림 앞에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흥분은 그 색채와 붓질에서 자극받은 게 틀림없다. 물론 내 몸은 수많은 산사의 단청과 또 박생광이 불러일어키던 흥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나의 역사적·신화적 기억뿐만 아니라, 내 몸에 숨어있던 본능에 인접해 있던 기억도 끄집어 밖으로 드러낸다.※출처: 이태호, 「미술비평_서용선 展(일민미술관, 2004.6.11~7.18): 강력한 색채의 거친 붓질 살아나는 神話와 歷史」, 『교수신문』, 321호, 교수신문사, 2004.07.12, 8면노근리老斤里 사건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하가리下加里 및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로와 쌍굴 다리 일대에서 미 공군에 의한 공중공격과 지상군의 공격에 의하여 당시 피난을 가던 피난민들이 살상을 당한 사건이다. 1999년 9월 30일 AP통신이 보도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이슈화되고, 한미 양국 정부진상조사단政府眞相調査團이 1년 3개월 동안 진상 조사를 실시하여, '한·미 공동발표문韓·美 共同發表文'을 발표하였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유감을 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노근리 사건 발생 및 이후 조사 경과1950년 6월 25일 6.25 전쟁 발발1950년 7월 23일 주곡리主谷里와 임계리林溪里 주민들로 주축이 된 500~600명의 피난민들이 미군 소개령疎開令에 의해 임계리 마을과 안점에 피신1950년 7월 25일 미군의 인솔하에 임계리에서 출발해 주곡리를 경유해 하가리 도착(25~26일 하가리 앞 하천변 노숙) -> 서송원리西松院里 입구 -> 경부국도 경부선 철길 -> 도수로나 아카시아 숲에 숨어있다 미군 공격 피해 노근리 쌍굴에 집결1950년 7월 26일 밤, 쌍굴의 젊은이들 탈출 시도(어린이, 여성, 노인 탈출실패)1950년 7월 29일 미군 철수, 직전까지 3일간 공격지속, 북한군이 오후에 쌍굴에 도착하면서 쌍굴 탈출1994년 7월 5일 주한 미국대사관에 진정서 전달1998년 7월 28일 노근리 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1999년 9월 30일 AP 노근리 사건 보도1999년 10월 25일-2001년 1월 12일 한·미 양국정부의 노근리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실시 및 '한·미 공동발표문' 발표2001년 1월 12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성명서 발표Nogunri MassacreThe Nogunri Massacre occurred on July 25 to 29, 1950, U.S. military killed large-scale of South Korean refugees under the bridge in Nogunri and Hagari, Hwangganmyon in Youngdonggun, Chungbuk Province. As Associated Press(AP) reported about the massacre allegation in 1999, it attained international attention. South Korean and U.S. governments investigators carried out the Fact-Finding mission, announced the Statement of Mutual Understanding. The former president Bill Clinton gave out a statement that he deeply regretted that Korean civilians lost their lives at Nogunri in late July, 1950.※ 출처: 『한국전쟁 정전60주년 특별전_기억·재현 서용선과 6.25』, 고려대학교 박물관, 2013, p. 59
회화

작품명

노근리 사건
Nogeunri Massacre
Nogunri Massacre
Wartime massacre at No Gun Ri

제작연도

2001 

바탕재

캔버스

재료 및 기법

재료 : 캔버스
기법 : 유채

규격

250 세로(cm) x 200 가로(cm)

소장 및 경매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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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문 회화
  • 키워드
  •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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