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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상철최상철

1946-04-27

#회화

책임연구원 | 이재준

최상철

작가소개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상철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이듬해 1970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한 기하학적 추상작품 <1970년 여름 K>로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현재까지 50여 년의 화업기간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도구와 작법을 고안해나가며 추상화가로서,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으로서의 회화, 그린다는 행위 자체로부터 벗어나 행위자성으로 나아가는 실험의 도상에 있는 최상철의 작품들은 관계적이고 생성적인 미학적 개념들로 충만하다.


최상철은 동시대 미술계의 주류 경향들-단색화, 모노크롬, 미니멀리즘, 추상표현주의-과 스스로 거리를 둔다. 그는 초기 기하학적 추상의 평면성, 색, 형태, 질감만을 이용한 단순함과 규칙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종이에 테이프를 뜯는 행위, 사각형 틀 안에서 물감 묻은 붓을 움직이며 생겨난 ‘물감이 닿지 못한 틈’을 발견하는 행위, 묽게 희석한 물감을 캔버스위에 올리고 스퀴즈를 이용해서 이리저리 움직여 균질한 평면을 찾아가는 행위 등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며 자신의 작업에서 행위성 자체와 그때마다 개입하는 우발성들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업이라는 고된 노동과 그것으로부터 드러나는 삶의 어떤 진정성을 바탕으로, 은폐되었던 ‘그린다는 행위의 본질적인 문제’를 실험의 부산물이 아닌 그의 예술의 핵심으로 끌어올린다. 그는 실험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작업에서 전통적으로 회화 작업을 위해 상정해 놓은 의미, 계획, 지도 등, 의지적인 모든 행위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해 나간다. ‘그림에서 마음을 비우고, 그리지 않으며 그려지기를 바라는 실험’(최상철, 작가노트, 2003). 이것은 최상철이 스스로 규정하고 지금도 따르고 있는 하나의 명제이다. ‘그리지 않고 그려지는 행위’는 최상철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서 최상철이 고안해 낸 돌멩이 굴리는 행위는 작가의 고유한 표현 방법이 되었다. 최상철은 그리지 않으면서 그려지게끔 상황을 제안하고, 그 결과 작품은 의도된 혹은 목적을 실현한 결과물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드러난 흔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최상철의 그 행위는 회화가 본질적으로 존재-미학적 사건일 수 있음을 가리킨다. 탈재현주의, 미니멀리즘, 양식 권력에 대한 저항, 그리지 않는 그려짐, 무작위, 그리기/그림 행위, 우발성, 탈주체화, 물질성, 자연, 사물, 비인간, 행위자성 등. 이러한 특징이 최상철의 작업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거나 사용될 법한 미학적인 개념들이다. 


한국현대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형성에 공헌한 일원으로서 최상철은 한국 미니멀리즘 회화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내어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데 기여하고 있다. 기하학적 추상부터 최근의 작품 경향에 이르기까지 최상철의 표현 형식과 미학은 동시대 한국 추상미술의 형성에 공헌한 작가들의 그것과 더불어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2005년 이후 <무물>(無物) 연작에서 실험되고 있는 새로운 표현 특성들은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의 가지는 특수성을 명확하게 확인시켜준다. 최상철이 피력하는 삶의 태도와 함께 모든 인위성을 소거하려는 작업 방식은 자신의 조형 언어에 기입된 한국 현대미술 양식의 아비투스에 저항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상철 작품 세계의 이러한 특성은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의 생성과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며, 최근 현대미술에서 제안되고 있는 다양한 미학적 관점들을 통해 새로운 해석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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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약력

최상철 (b.1946)


前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교수

196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25      백아트갤러리,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2024      우손갤러리, 대구

2024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4      백아트갤러리, 서울

2021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0      AV 모던 & 컨템포러리, 제네바, 스위스

2018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16      갤러리그림손, 서울

2009      쿤스트독, 서울

2007      쿤스트독, 서울

2005      모란갤러리, 서울

2003      갤러리 라메르, 서울

2001      갤러리 상, 서울

1999      갤러리 상, 서울

1996      갤러리 깃쇼도, 교토, 일본

1994      금호갤러리, 서울

1990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86      관훈미술관, 서울 

1982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주요 그룹전


2025      Echo : 관계의 울림, 화이트블럭, 경기 

2024      And Still Now, 최정아 갤러리, 서울

2023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경기

          돌의 기원, 서호미술관, 경기

          컬러풀 한국회화-조화에서 정화까지,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2      <선善도 악惡도 아닌>, 양주시립미술관, 경기

2020      텅 빈 충만: 한국미술의 물성과 정신성, 박여숙화랑, 서울 

           판데믹의 한 가운데서 예술의 길을 묻다 – 작업(作業), 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17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Black’n Black - Color of Abyss, 복합문화공간 에무, 서울 

2016      동작의 전환, 소마미술관, 서울

  검정, 갤러리3, 서울

2015      선(線)으로부터, 갤러리3, 서울 

2013      Who Are You, 삼탄아트마인, 강원

  국제현대미술제 광주아트비전: 이미지의 정원, 광주비엔날레관, 광주 

2012      한국드로잉 50년, 예술의 전당, 서울

  실험적 예술 프로젝트 1부 매너와 풍경,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09      김환기 국제미술제전 공명하는 동서문화, 롯데갤러리/이앙갤러리, 광주/서울

2008      김환기 국제미술제전 Isands Rhapsody(섬들의 향연), 갤러리 라이트/롯데갤러리,   

          서울/광주 

  한가람 미술관 소장작품전 화가의 30년 - 그 아름다운 변화, 예술의전당, 서울 

  한·중동 포럼 한국의 미 특별전, 국립오페라하우스, 카이로, 이집트 

2007      1970년대 한국미술_국전과 민전, 예술의전당, 서울

2005-18   파고전, 토포하우스, 교하아트센터, 파주시민회관, 경기 (연보 파일에는 없음)

2005      서울미술대전-회화,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3      가일미술관 개관 기념전, 가일미술관, 경기

  야당리·들판·들꽃, 정글북 아트갤러리, 경기

  포천 미술협회 초대전, 포천반원아트홀, 경기 

2002      한국 현대미술의 초극, 갤러리 라메르, 서울

  금빛 날개 - 경기 북부의 회화와 조각, 경기도 제2청사, 경기

  사유와 감성의 시대, 국립현대미술관, 경기 

2001      한국현대미술의 전개 – 전환과 역동의 시대, 국립현대미술관, 경기

  또 하나의 국면 -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전, 환원미술관, 서울

2000      서울대학교 동창회 창립 50주년 기념전 서울대학교와 새천년 1950-2000,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그림일기[日記]. 그림읽기, 갤러리상, 서울

1999      한국 현대미술 90년대의 정황, 앨런 킴 머피 갤러리, 서울

1998      시대 정신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1997      DOTS전, 금호미술관, 서울 

1996      서울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미술대학 동창전, 공평아트센터, 서울

1994-97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3      한국현대작가 2인전 - 동양의 눈, 동양의 정신, 갤러리 사이하쿠, 오사카, 일본 

1992      제5회 일-한 현대작가 교류전, 예술의전당, 서울 

  개념에서 본질까지, 금호미술관, 서울 

  서울–삿뽀로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생명-현상전, 미도파화랑, 서울,

1991      혼돈의 숲에서, 자하문미술관, 서울

1990       금호미술관 신춘기획-_‘90 새로운 정신전 제1부, 금호미술관, 서울

  한·일 현대미술 동질과 이질전,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한국미술 - 오늘의 상황전, 예술의전당, 서울

1989-97   Abstract전, 갤러리63, 서울 (’89 장소는 갤러리서미)

1989      아시아 현대미술전, 후쿠오카시립미술관, 후쿠오카, 일본 

    ‘89 서울-교토 37인전, 교토시립미술관, 교토, 일본 

  관훈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초대작가 89인전, 관훈미술관 서울

1988       국제 아시아-유럽 비엔날레, 앙카라, 터키

1988-91    인터네셔널 임팩트 아트 페스티벌, 교토시립미술관, 교토, 일본

1986      서울대학교와 한국미술전, 서울대학교 박물관, 서울

1984-07   동세대전, 관훈미술관, 서울

1982      현대미술의 조명 - 인천전, 몽마르뜨화랑, 인천

1981-89   오늘의 작가전,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81      상파울로 비엔날레, 상파울로, 브라질

1980-88   프로세스전,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80      회화 7인전,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한국-아랍 미술교류전, 아랍문화회관, 서울

1979      서울회화 15인전,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78-79   6인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78      아시아 현대미술전, 도쿄도미술관, 도쿄, 일본

  부산 현대미술제, 부산시민회관, 부산

1977-79   서울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75-78   대구현대미술제, 계명대학교, 대구

1974      미술회관 개관기념 초대전,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한국실험작가전, 대구백화점 갤러리, 대구

1973-76   제6회 신체제전, 명동화랑, 서울

1971-89   한국미술협회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70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68      동아국제미전, 동아대학교, 부산



수상경력 

1970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서울특별시장상, 한국일보사


작품소장  

2024 국립현대미술관

2007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02 국립현대미술관

2001 국립현대미술관

1999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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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의 작품세계

       

I. 최상철의 간략한 생애


  최상철(崔相哲)은 1946년 4월 27일 서울 황학동 인근에서 태어나 줄곧 거기서 성장했다. 아버지 최귀봉(崔貴奉, 1908~1999)은 본관이 경주로, 이정순(李貞順, 1914~1995)과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최상철은 그중 3남이다. 그의 젊은 시절 대부분은 한국전쟁과 몇 차례의 정치 급변으로 골이 깊게 파인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혼란 속에서도 최상철의 삶은 올곧이 예술에 헌신했으며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성장에 기여했다.

  최상철이 아마추어 취미 활동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전문적인 회화 공부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는 광화문에 있던 서울미술학원에 등록해서 그림을 배웠는데, 그곳에서 전영화(全榮華, 1929~2022)와 조용익(趙容翊, 1934~2023)을 처음 만나게 된다. 동양화를 그렸던 전영화는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당시 경복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있다가 훗날 동국대학교 미술대학 교수가 되었다. 조용익은 1958년부터 현대미술가협회(現代美術家協會)의 일원으로 참여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에 저항하는 앵포르멜 경향의 반형식주의 미술 확산에 깊이 개입했다. 그리고 1962년부터는 박서보, 윤명로, 정상화, 김창열, 정영렬, 김봉태 등이 참여한 악뛰엘(actuel) 그룹의 창립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조용익은 단색화 1세대로 알려져 있으며, 1974년 추계예술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한다.

  최상철은 196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회상에 따르면, 그도 여는 대학생처럼 생활인으로서 삶에 대해 고민해야 했을 만큼 삶이 넉넉하지 못했으며, 졸업 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예술에 대한 확신 속에서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졸업 후 그는 서울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학원 한쪽에서 힘겹게 작업을 이어갔다. 당시 미술학원에서 함께 가르쳤던 이길원(李吉遠)은 추계예술대학교 동양화 교수가 되었다. 1970년 최상철은 서울미술학원을 그만두고 그동안 미뤄왔던 군에 입대하면서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상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기하학적 추상’ 작품 <1970년 여름-K>가 서울특별시장상 수상하게 되었지만, 논산 훈련소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들어 시상식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당시 많은 미술대학 졸업자가 그랬던 것처럼 최상철도 중등학교 미술 교사 임용 시험을 치렀고, 1971년 천호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최상철은 1972년부터 미술 이론을 가르쳤고 그해 겨울 고교 입학 연합고사 입시 출제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미술 교사 생활은 1974년까지 이어졌다.

  최상철은 대학 졸업 이후에 생업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예술가의 열정을 잃지 않았으며, 넉넉지 않은 생활 현실에 많은 수의 작품을 낼 수는 없었지만 제5회부터 11회까지 <신체제>전에 꾸준히 참여했다. 그러던 그가 온전히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은 1978년 추계예술대학 서양화과 교수가 되면서부터다. 최상철은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테이프 뜯어내기 작업과 사각 틀 작업에 전념하면서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1990년대 초까지 그는 주로 추계예술대학교 작업실에서 작업했으나, 그 후로는 일산으로 작업실을 옮겨 거기 머물렀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는 파주시 야당동에서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 교사 류장복과 작업실을 공유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는 파주시 맥금동에서 김범수 작가와 창고형 작업실을 함께 운용하다가 2017년 추계예술대학 교수직에서 물러나면서 그 인근에 현재의 단독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II. 최상철의 작품 경향에 대한 해석


  1960년대 최상철의 기하학적 추상은 캔버스 화면에 자를 대고 선을 긋고, 넓은 붓으로 물감의 두께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얇게 칠하는 방식으로 구축된다. 혹은 선을 긋고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 다음 색을 칠한 후 다시 그 테이프를 떼어냄으로써 완전 평면에 점근(漸近)하는 ‘예리한’ 색을 만들어낸다. 당시 동양적 색감을 사용하거나 한국적인 뉘앙스를 가미한 기하학적 추상이 반향을 일으키는 상황이었지만, 최상철은 개의치 않고 개방적인 태도로 기하학적인 구성을 실험한다. 

  1970년대 기하학적 추상 작업 이후 그는 완전히 새로이 시도된 방식이 테이프 뜯어내기와 사각 틀 작업이다. 캔버스 위에 테이프를 상하좌우 혹은 사선으로 빼곡히 혹은 성기게 붙인 후 그 위로 물감을 바른다. 물감이 어느 정도 마르면 붙여 놓았던 테이프를 뜯어내는데, 이때 예상하고 계획했던 형상과 다른 형상이 우발적으로 생성된다. 이 작업은 1984년 무렵까지 이어진다. 그 뒤 약 4년간 사각 틀 작업을 실험한다. 작가는 일정한 크기의 사각 틀을 제작해서 캔버스 위에 올리고 그 틀 안에서 획을 긋듯 일정한 방향으로 붓질을 해나간다. 이전 작품에서보다 비교적 어두운 색상의 규칙적인 형상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사각 틀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최상철은 스퀴즈를 사용해서 물감을 캔버스 위에서 이리저리 밀어냄으로써 물리적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밀려나 만들어지는 형상을 만든다. 이 실험은 1994년까지 거의 10여 년 가까이 이어간다. 그 사이 최상철은 세 번의 개인전(1986년 관훈갤러리, 1990년 문예진흥원, 1994년 금호갤러리)을 연다.

  1990년 개인전에서 오병욱은 최상철의 작품 경향을 단적으로 ‘추상’ 안에 배치한다. “최상철은 그의 그림 속에 아무것도 담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그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어떤 내용을 찾으려 함은 무모하다. 그는 그림에서 무엇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감정의 표현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회화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회화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서구 미술에서 비롯된 것이다”(오병욱, 「최상철의 작품세계」, 1990). 하지만 고도로 복잡한 미학 개념인 ‘추상’을 구태여 이 자리에서 설명하지 않더라도 최상철의 작품을 접하는 이들은 작품이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병욱의 이러한 경험적 해석은 탈재현주의를 정당화하는 방식에 대한 후술로 읽히는데, 특히 그는 정당성을 미니멀리즘에서 찾아낸다. 그것은 재현주의 서사가 억압한 미디엄의 물질성이다. 그래서 최상철의 작품은 미니멀리즘 경향과 동일 선상에 놓이면서, 첫 번째 개인전의 테이프 뜯기 작업에서의 흔적과 사각 틀 속에 성긴 직선과 색면은 은폐된 물질성의 ‘순수한’ 표출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서 “최상철은 그 질료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우리는 위에 언급한 그의 작품들 속에서 그의 행동적인 면, 접착테이프를 급작스럽게 뜯어내거나, 사각 틀을 이용하여 무수히 왕복하는 붓질을 하는 면을 읽어낼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그 질료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죽어 있던 질료들은 생기를 띠고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게 된다”(오병욱, 「최상철의 작품세계」, 1990).

  사물과 사건은 사실이라는 조건으로 맞물린다. 사실은 흔히 누군가에게 은폐되어 있으며, 작가의 실험은 사실을 불확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다시 그것에 접근해서 그 정체를 밝히려는 탈은폐 행위다. 반면 양식의 정치는 문화 자본과 장치들을 동원해서 그 사실을 이미 전제된 문화 체계에 어울리도록 정당화하려 한다. 예술은 표현을 실험장 안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양식의 정치가 가둔 표현의 잠재성을 해방한다. 따라서 추상 예술이 미디엄의 물질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실험하려는 시도는 저항이며, 이는 미학 정치의 한 양상일 수 있다. 

  박영택은 최상철의 추상실험을 ‘환원주의 모더니즘 회화가 철저히 추구했던 평면성 논리의 연장선’ 위에 놓는다. 그는 여기서 두 가지를 고려하는데 하나는 환원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평면성이다. 무엇보다도 환원주의가 추구하는 이념의 최종 목적은 ‘nothing’이다. 그것은 그래서 ‘순수’라는 자기 위안적 속성을 가진다. 이러한 논리가 도달할 마지막 장소는 불행히도 결국 비회화적인 것들의 영토일 것이다. 회화는 내용이 있든 없든 형식을 추종하든 하지 않든 인간의 가시적으로 드러내려는 근원적 표현 방식 중 하나다. 현대미술의 여러 실험이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듯이 이것을 무력하게 만드는 환원주의는 과하게 급진적이다. 박영택은 최상철이 그런 ‘논리 속으로 함몰하는 과정을 극복해 보이려는 정직한 작가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에게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부여한다. 환원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이탈하려는 이러한 ‘이상한 긴장’이 최상철에게 숙명처럼 따라다니면서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듯하다. 긴장은 탈재현적이고 탈언어적인 한계를 넘기 위한 다이나미즘 속에 녹아들어, 자신의 고유한 표현 방법과 하나가 된다. 그래서 “회화란 그것 자체가 지닌 어떤 ‘육감성’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며, 아울러 기왕의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는 의도로써 선택한 방법이 이 작가의 회화관/미술관”이 된다. “그것이 작가의 진실한 의도이고 기질이고 세계관일 것이다”(박영택, 「순수한 형태의 예술의식 탐구」, 1994). 최상철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박영택은 진부한 구상 회화의 전통에 저항하면서도 1970년대 이후 우리 화단이 추구해온 미니멀리즘 경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해석한다. 

  그렇지만 최상철의 이런 작업 방식은 동시대 미술계의 주류 경향에 동조하는지 하지 않는지의 문제 그 이상이다. 이영욱은 이것을 두고 미술 행위와 회화에 대해 작가 스스로 세워놓은 원칙이나 규칙을 준수하려는 태도라고 보았다(이영욱, 「침묵의 빛 그리고 움직임」, 1999). 다시 말해서 최상철이 지향하려는 삶의 실천적 관점은 미술계의 아비투스가 가하는 압력을 넘어설 만큼 강력하며, 이것이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미학적 표현성과 하나로 통합된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측면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최상철의 돌멩이를 굴리는 행위에 대해 어떤 구도자적인 작가주의의 해석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하다.

  나아가 그는 최상철의 회화가 물질성이라는 미학적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평면성에 주목한다. 현대 회화에서 평면성은 환원주의 모더니즘이 실현하려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최상철의 작품에서 평면성은 단순히 모더니즘 미학이 회화의 존재 규정을 위해 필요로 했던 개념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독특한 해석 쪽으로 머리를 돌리게 한다. 거기엔 작업이라는 고된 노동과 그것으로부터 드러나는 삶의 어떤 진정성이 있다. 박영택은 이렇게 말한다. “붓 대신 스퀴즈를 사용해 물감을 끌고 밀어낸 흔적들의 농도, 넓이와 강도, 속력 등이 그림의 내용을 규정지어주고 있으며 그 속에 작업 의지와 노동이 축적되어 있다. 이 계획된 동작에 따라 화면에 남겨진, 규칙적인 행위가 만들어낸 선과 그로 인해 우연하게 형성된 얼룩점들, 응고되고 침전된 물감의 흔적이 매우 독특한 울림과 정신적인 파장을 심어주어 그의 그림은 활성화되고 매력적인 그림이 된다. 여기서 색채는 중성적이고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다분히 장식적인 차원으로 이해되는데 그것은 색의 부정이나 회피 또는 특정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보다는 하나의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다고 여겨진다”(박영택, 「순수한 형태의 예술의식 탐구」, 1994).


  그런데 최상철의 작업에서 미니멀리즘이 강조했던 색, 형태, 질감 등을 통해 단순함과 규칙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한낱 수단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듯 보인다. 게다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유사한 방식인 듯 계속 이어지는 작업에서 행위의 값은 점점 더 커지고, 이것 못지않게 또한 형상의 우발적 생성 강도 역시 점점 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철의 작업 행위는 작품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실험 운동 과정이며, 무엇보다도 ‘멈추지 않는 실험’처럼 해석된다. 그렇기에 실험 결과는 항상 유보될 거라는 결론이 예상된다. 반면 은폐되었던 ‘그린다는 행위의 본질적인 문제’가 실험의 부산물이 아닌 중심 사안으로 등장하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최상철의 스퀴즈 작업과 이후의 작업에서 이런 해석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작가의 작업 행위가 마치 미니멀리즘과 다른 길을 걷던 몇몇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그것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이영욱은 이런 경향을 당대 미술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최상철의 작업은 추상미술의 문맥 그중에서도 미니멀적인 절제와 논리, 물질화, 현상학적 대면의 층위와 추상표현주의적인 액션과 감정, 정신성 추구와 정서적 감응의 층위가 나름으로 통합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통합은 70년대 우리 추상미술의 주류적 양상과 유사성을 갖는다”(이영욱, 「침묵의 빛 그리고 움직임」, 1999).

  1996년 일본 교토의 깃쇼도(吉象堂)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지 3년 만에 최상철은 갤러리 상(1999)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때는 이미 스퀴즈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최상철은 서로 다른 높이와 폭의 대나무에 아크릴을 발라 캔버스 위에 쓰러뜨리거나 아니면 직접 내려치는 방식으로 형상을 만들었다. 그 결과 직선들은 상호 충돌하거나 중복되어 공간을 구획하고 다시 그 구획된 공간 안으로 물감을 흘리고 눌러 만든 원들이 들어앉거나 겹치고 있다. 전작에서 보였던 화면의 질서와 균등은 조금씩 해체되면서 유동과 파격이 더해진다. 나아가 최상철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이 작업에서 행위는 이전보다 무게를 더하고 있다. ‘침묵과 절제 그리하여 정관(靜觀)의 세계’(이영욱, 「침묵의 빛 그리고 움직임」, 1999)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행위는 작업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과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심상용은 최상철의 작업에서 행위의 목적이 삭제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행위를 ‘자기 철회’라는 탈주체화의 문제로 해석한다. 그런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의 행위란 수많은 의도와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행위에서 의도를 완전히 지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전통적으로 회화 작업을 위해 설정한 계획, 추구하는 의미 등 모든 것이 행위 자체가 의지적인 것임을 증명한다. 작가에게 ‘붓과 같은 도구를 잘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는 행위의 그런 의미를 상징한다. 결국, 이런 조건 아래에서는 의도적으로 의도를 삭제하는 방법만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최상철이 택한 방법도 이것에 근접한다. 심상용이 붓을 잃는 증상을 뜻하는 ‘실필증(失筆症)’이라는 생경한 말을 끌어들인 것 역시 이를 가리킨다.

  나아가 최상철이 붓과 붓질을 버리고 대나무를 사용해서 캔버스 위에 내려친 행위는 탈주체화의 실현으로 이해된다. 심상용에 따르면, 1980년대와 90년대 “최상철이 지난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변함없이 실험해 왔던 것은 바로 이 자신을 철회시키는 방식이었다. ... 자기 철회, 혹 단절의 실행은 지성을 통해 인간에 이르는 길을 버리고 본성을 통해 ‘인간의 거부’에 이르는 길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심상용, 「최상철의 실필증(失筆症)에 걸린 회화: 혹 ‘자기를 철회하기’로서의 회화」, 2001). 하지만 주체와 의도를 삭제하려는 이러한 ‘탈의도적인 의도적 행위’는 자기모순 속에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며 작가는 그것을 감내해야 한다.


  ‘그림에서 마음을 비우고, 그리지 않으며 그려지기를 바라는 실험’(최상철, 작가노트, 2003). 이것은 최상철이 스스로 자기를 규정하고 지금도 따르고 있는 하나의 명제이다. 훈육된 채로 마치 장치처럼 작동하는 조형적 표현 형식들에 저항하려는 그의 노력이 바로 이런 것이고, 또 이런 태도는 작가의 삶에서 포기되지 않고 일관되게 지속된다. 고충환은 최상철의 명제로부터 창작 태도와 삶의 태도를 동격으로 읽어낸다. 문제는 이런 실험이 언제나 실패를 예정해 놓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최상철 역시 일군의 현대미술이 직면하는 자기모순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의식으로 배워온, 그리고 몸으로 체득해온 모든 조형적이고 형식적인 자신을 버리고, 더 나아가 아예 형식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에까지 과정을 밀고 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형식으로부터 무형식으로 향하는 이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실패하고 만다. 그것은 또다시 익숙하고 친근한 한 장의 그림으로 나타나며, 어디선가 본듯하고 심지어는 그럴듯해 보이기조차 한 또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고 마는 것이다. 아예 붓을 꺾거나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는 다음에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와 방식은 진작부터 실패가 예정된 것이며, 작가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다”(고충환, 「불가능한 기획, 그리지 않는 그림」, 2005). 고충환은 이것을 ‘불가능한 기획’이라고 말한다. 다만 최상철에게 이 기획은 ‘그리는 행위 자체’의 문제로 더 확고하게 옮겨간다.

  그런데 최상철의 앞선 저 자기 명제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림에서 마음을 비우는 것’은 고충환의 해석처럼 현대미술의 규범이나 표현 형식의 예술 권력에 대한 ‘거절’(권리의 거부가 아니라 미술계가 요구하는 일방적 규범이나 양식의 제안을 거절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그려지기를 바라는 실험’의 문제인데, 이것은 심상용의 해석처럼 ‘자기 철회’와 ‘실필증’의 과정에서 작가로부터 나타나는 하나의 생성물이다. 그래서 ‘그려지기를 바라는 실험’과 거기에서 응축되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 자체는 작가가 선택한 독특한 ‘거절’ 방법이자 ‘표현’ 방법임이 밝혀진다. 여기서 최상철 작품세계의 고유한 특이성, (이미 전제된 무언가를 택하지 않는다는) ‘거절하는 표현’이 포착된다. 그래서 ‘거절’은 작가를 끝없는 실험의 노고로 내몬다.

  이와 관련해서 심상용은 ‘자기 철회의 회화’라는 비평 언어를 통해 한때 최상철의 작품세계를 규정했던 비평 범주인 미니멀리즘과 환원주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주장한다. “최상철에겐 그리기만큼이나 만들기도 중요하지 않긴 매한가지다. 그가 그리기를 거부한 것은 다만 그 결과 흔적 만들기를 선택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 우선적인 의미는 비우는 것일 뿐, 그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스트는 본질(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 주관을 배제한(했)다. 반면, 최상철에게 주체의 비우기는 그 자체로 가치이며 여타의 본질을 위한 방법론이 아니다. 그에게 자기를 비우는 일은 사물의 본질을 밝혀낸다는 고도로 이성적이며 냉소적인 사유의 방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작가의 판단과 결심과 행위의 전 과정을 다만 그 시각적인 결과로만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 결과로서 남겨진 것들은 목적으로서의 흔적이 아니라 불가피함으로서의 흔적일 뿐이다”(심상용, 「최상철의 실필증(失筆症)에 걸린 회화: 혹 ‘자기를 철회하기’로서의 회화」, 2001).

  최상철의 그리기 작업은 실험을 거듭하면서 2005년 무렵에 이르면 색채의 다양성은 삭제되어 검은색과 흰색으로 더욱 축소되고, 부정형의 형상만 캔버스를 채우기 시작한다. 반면 ‘그리지 않고 그려지는 행위’는 더욱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은 작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서 최상철이 고안해 낸 돌멩이 굴리는 행위는 작가의 고유한 표현 방법으로 계속 실험되고 있다. 그는 이런 행위의 결과물들에 ‘무물’(無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캔버스의 네 면을 나무틀로 막고, 몇 가지 크기의 돌멩이를 골라 검은색 아크릴 물감 통에 담갔다가 캔버스 위에 놓고 이리저리 굴린다. 돌멩이가 처음 놓일 위치는 작가가 작은 고무 패킹과 힘을 합칠 때 결정된다. 작가는 고무 패킹을 캔버스 위로 던지고 그것이 떨어진 우연한 자리에서 돌멩이가 처음 구르기 시작한다. 최상철은 몸을 움직여 돌멩이를 이리저리 굴러가도록 제어하고 싶지만, 돌멩이는 자기 모양에 맞춰 작가가 가하는 힘과 캔버스를 기울이는 각도에 걸맞게 궤적을 그릴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천 번의 행위가 마무리되면 예전엔 미처 몰랐던 형상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다. “천과 돌의 부딪침 사이에서 기이한 율동(선)과 깊이 있는 색이 생겨나고 천과 돌, 물감 이렇게 이질적인 세 가지가 하나로 통일된다. 한편 그림을 보고 있으면 돌멩이 구르는 소리가 환청으로 떠도는 듯도 하다. 시각과 함께 음향 효과도 뒤따라오는 것이다. 자연이 만든 돌이 이처럼 자연스러운 혼적을, 더없이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박영택, 「자연처럼 자리하고 있는 그림」, 2018). 우리는 그 우연한 것들과 만난다.


  ‘그리지 않고 그려지는 행위’는 이제 최상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 된다. 박순철은 ‘그리기보다는 그려진다’라는 행위 개념을 ‘하지 않아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라고 말한 노자의 생각에 빗대어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음(無作爲)’라고 해석한다(박순철, 「虛心으로 펼쳐놓은 無作爲의 세계」, 2016). 박겸숙 또한 ‘무물’ 연작에서 형상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어떤 미학적인 근원성을 강조한다. “아직 형태를 갖추기 이전이기에 우리 눈앞에 드러날 수 없는 무분별적 세계와 맞닿은 곳에서 회화는 발원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무언가를 드러냄’으로써 동시에 ‘드러나지 않음’을 함께 보여준다. 이때 ‘드러나지 않음’은 ‘없음(Nothing, 無)’이 아니라, 함께 있으나 ‘아직-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즉 ‘없음-존재(無物)’인 것이다”(박겸숙, 「1,000번의 궤적」, 2021).

  강태성은 최상철의 11번째 개인전을 비평하는 자리에서 그 행위 개념을 조금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려 시도한다. 그는 최상철의 행위 개념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실천의 한 양상으로 확장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모더니스트의 양분법을 해결하는 포스트모던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제시하는 논리는 다른 것이 함께할 수 있는, 주객이 같이할 수 있는 병치의 논리이다. 이는 그에게 자아를 포기하면서 획득되는 자아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 나가는 노력이다. 그에게 이상적인 세계는 다양한 도구와 함께 점 찍기에서 시작하여 선 긋기, 그다음 면 만들기, 반복하기 등을 거쳐 없음과 있음을 연결하는 ‘서로’(相)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한 점에서 그가 강조하는 우연은 열린 주관을 갖게 하여, 인간 외부 세계의 운동을 수용한다. ... 서로 성격이 공존하는 공간은 다양함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 작가는 ‘선의 표정’이라고 지칭한다. 인간 밖의 또 다른 무엇을 초대하는 공간이다. 인간과 인간 아닌 다른 동작이 포함되는 것이다. 인간-비인간적 협업은 부드러운 선, 직선, 때에 따라 위에서 강한 압력을 가해 그어진 폭발력 있는 선 등으로 매우 다양한 선의 표정을 제시한다”(강태성, 「하나와 여러 개체의 사이, 주관과 객관의 사이」, 2009).

  강태성의 비평은 거칠어 보이지만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점들이 있다. 특히 작가의 탈주체화 양상이 그것인데, ‘사이’와 ‘사물’ 개념이 그것을 지지하고 있다. ‘무물’ 연작에서는 스퀴즈를 캔버스 위에서 이리저리 끄는 작업이나 사각 틀 안에 붓질을 해대는 작업, 혹은 아크릴 물감을 바른 대나무를 내려치는 작업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특징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흔히 여전히 우리가 ‘작업 도구’라 부르고 있는 저 존재들과의 관계 맺음이 그것이다. 최상철이 가하는 힘과 기울기의 각도는 돌멩이를 구르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물을 기술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주인의 자리에서 돌멩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돌멩이는 자기 존재의 고유한 표현을 통해 작가가 가하는 힘과 각도에 저항한다. 이것이 돌멩이의 응력(應力)이다. 돌멩이 표면은 부드럽고 균일하지 않지만 비교적 둥글다. 그러니 자기 생긴 형태와 밀도에 따라 제 방식으로 구른다. 게다가 물감의 농도, 물감의 양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고 표현력도 변화한다. 돌멩이도 돌멩이의 표현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행위는 작가와 돌멩이, 물감, 나무틀 등이 함께하는 무언가의 생성 작용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행위자성(agentiality)이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박영택 또한 최상철에게서 행위의 고유한 특성을 잘 포착한다. 그는 돌멩이의 외부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자연’ 개념으로 치환한다. 돌멩이는 인간적인 의지나 뜻이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없는 어떤 질서에 속한 외부 존재다. 그리고 여기서 질서는 아마도 우리말 혹은 한자어 ‘자연’을 가리키고 있는 듯한데, 자연스러움, 즉 ‘저절로 그러함’이라는 의미를 상기시키면서 탈주체화를 보충한다. 최상철은 그리지 않으면서 그려지게끔 상황을 제안하고 그 결과 작품은 의도된 혹은 목적을 실현한 결과물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드러난 존재의 흔적이 된다. 

  그래서 최상철의 그리는 행위는 현대미술이 갈망하는 어떤 가시성의 욕망으로부터 고유한 변별력을 부여받는다. “인위성에 저항하는 용어이자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림의 상태를 환기시키는 것이며 무엇을 이루려고만 하는 시각적인 욕망의 행태를 반성케 하는 차원에 놓여있다”(박영택, 「자연처럼 자리하고 있는 그림」, 2018).


  탈재현주의, 미니멀리즘, 양식 권력에 대한 저항, 그리지 않는 그려짐, 무작위, 그리기/그림 행위, 우발성, 탈주체화, 물질성, 자연, 사물, 비인간, 행위자성 등. 이러한 특징이 최상철의 작업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거나 사용될 법한 미학적인 개념들이다. 이 많은 개념이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최상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려는 노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행위와 행위자성이다.

  행위는 대개 ‘누군가 무언가를 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그래서 그것은 장소와 때가 개입하는 사건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런 행위 개념이 최상철의 작품세계에서 중심에 놓여있다. 그리고 최상철에게 행위란 사실상 회화의 본질적인 요소, 즉 ‘그림’이다. 그런데 우리가 늘 놓치고 마는 것이 ‘그림’이 동사와 명사가 일치하는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paint/painting과 같은 다른 나라 말에서도 그러한데, 동명사로 알려진 이런 언어 형식은 대상화된 실체를 지시하는 명사와 달리 행위와 행위들이 연결된 사건, 세계의 가변성과 개방성을 더 강조한다. 그림이라는 말은 이미 명사처럼 통용되고 있는 ‘회화’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최상철의 작가적 명제에서 ‘그리지 않으면서 그려지기를 바라는 태도’는 소위 ‘그리기/그림 행위’에서 탈주체화를 노리는 시도로 보일뿐더러,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기/그림 행위’가 전형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타자성이나 비인간 행위자성을 포섭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다시 말해 행위란 때와 장소가 개입하는 사건의 의미 연관을 가리키고 있으며, 나아가 사건의 행위자가 ‘나’만이 아닐 수 있다는 조건들을 포함한다. 즉 사건에는 거기에 연루된 수많은 행위자가 있다. 최상철의 ‘그려지기/그려짐’ 행위는 대나무와 돌과 아크릴과 캔버스와 작업실 냄새와 우연성을 결정할 고무 패킹과 대들보에 늘어진 줄과 앞마당 나무와 그리고 수많은 행위자의 연속에 생기를 불어넣는 결정적 요소이다. 거기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많은 ‘장치들’도 있다. 그것들은 주체를 위한 생산 수단인 듯 보이지만, 즉 그림을 그리는 수단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상 탈주체화를 실현하는 관계 존재론적인 힘들로 이해될 법하다. 결국, 최상철의 그 행위는 회화가 본질적으로 존재-미학적 사건일 수 있음을 가리킨다. 향후 존재-미학적 사건으로서의 이 독특한 행위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특성들에 대한 더 심도 있는 분석과 해석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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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작품의 시기별 구분



1. 기하학적 추상 시기(1968-74)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재학 시절 최상철은 당시의 미술을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길, 새로운 미술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청년 미술가였다. 당시 미술대학생들은 프랑스나 미국에서 유학을 다녀온 젊은 강사들 그리고 간간히 수입되는 미국 미술잡지를 통해 새로운 미술의 동향을 접할 수 있었다. 최상철은 당시의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로는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에 강사로 부임한 전성우 선생으로부터 미국의 현대미술, 특히 색면추상과 미니멀리즘과 같은 동시대 현대미술들을 배워가며, 자신만의 그림을 찾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누군가의 화풍을 흉내 내거나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화면을 찾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65년은 서울시의 도시개발사업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서울에 수직으로 솟은 건축물과 도심을 가로지르는 삼일고가도로, 강변로 등이 건설되고, 서울과 지방을 잇는 고속도로들이 완공되는 등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기하학적 건축과 디자인적 요소들을 경험하며, 기존의 미술과는 다른 독자적인 미술을 모색해 왔던 최상철은 기존의 자연과 감정을 추상적으로 그려내던 추상회화나 앵포르멜이 아닌 작가의 주관이나 감정이 배제된 차가운 추상인 기하학적 추상을 1968년 대학교 4학년 재학 시절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기하학적 추상의 유행에 대한 평론을 발표했던 이일은 1960년대 말 산업화와 도시화의 시대적 변화와 함께 “산업적 기술과 예술기법의 상호침투”(이일)가 시작되면서 기하학적 추상이 신생 양식처럼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최상철의 기하학적 추상 작업은 캔버스 화면에 자를 대고 선을 긋고, 넓은 붓으로 물감의 두께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얇게 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점차 선을 긋고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색을 칠한 후 제거하는 방법을 통해 완전한 평면에 가까운 색면을 만들어냈다. 당시 기성 화가들은 동양적 색감을 사용하는 한국적 기하학적 추상 작업들을 많이 발표하였으나, 최상철은 오히려 그러한 제한을 두지 않고 서구적이면서도 세련된 색들을 조합한 기하학적인 평면구성을 시도하였다. 그는 기하학적 추상작품으로 1968년 부산의 동아대학교가 주최한 <동아국제미술전>에 입상하였다. 졸업 후 1970년 6월 만 24세의 나이로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기하학적인 구조로 4색으로 구성된 색면의 추상성이 돋보이는 작품 <1970년 여름-K>(200cm x 200cm, 캔버스에 유채, 1973)으로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함으로서 두각을 드러내었다. 최상철은 70년대에 들어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재현과 형상으로부터 자유로운 회화 그 자체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다. 그는 회화의 진정한 기능과 의미에 대해 탐구해 나갔다. 그는 이 시기 동안 다양한 색감을 통해 구성적인 화면으로부터 점차 채도가 낮은 색감으로 완결성 있는 구성을 추구하며, 다양한 색의 실험과 함께 단색으로 검정만이 전면에 드러나는 기하학적 추상실험을 이어갔다. 

최상철은 졸업 후 순수한 형태를 탐구하고자 했던 <신체제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70년 결성된 <신체제>는 서울대 미대 출신 서양화가들이 추상 이후의 새로운 미술 경향을 모색하고 연구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였다. 신체제는 어떤 이념이나 방향을 갖고 있는 단체들과는 달리 각자 자신의 예술을 연구하고 그것을 발표하는 식으로 다양한 예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최상철은 제5회 신체제전시부터 1976년 제 11회까지 5년간 참여하였다. 당시 신체제에 참여한 대다수의 작가들은 서정적인 추상이나 앵포르멜과 같은 감정의 외부적 확장이나 주관적 감정을 구조적인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강했다. 그러나 최상철은 인간의 감정이나 주관의 흔적을 완전히 배제하고, 기하학적인 조형성과 화면 내부에 강한 대칭과 규칙성을 갖고 있는 색면 기하학적 추상의 완결된 아름다움을 선보이며 기하학적 추상실험을 이어갔다. 



2. 포르트-다(fort-da) 시기

기하학적 추상화를 통해 비재현적인 그림을 그려온 최상철은 1974년부터 그림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주체의 감정이나 주관뿐 아니라 어떤 것도 담지 않는, 그림 그 자체로서 완성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방법을 창안하기 시작한다. 최상철은 ‘그리는’ 일 대신 반복적 행위를 통해 그리는 이(주체)의 정념을 없애 의미를 갖지 않는 행위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는 그리는 자로서의 주체가 무의미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우연성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그가 추구하고자 한 것은 그림이 그려진 것 이상의 내용을 전혀 담지 않는 것, 즉 회화 그 자체의 순수한 형상을 담고 있는 ‘회화’, 즉 ‘회화의 순수성’이다. 이를 위해 최상철은 균등질한 화면(평면성) 위에서 형상이 우연히 스스로 드러나는 그 흔적들을 실험하기 시작한다. 


(1) 포르트-다 제1기 (1976-1982)

1976년을 전후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던 최상철은 흔적 연작(오병욱)이라고도 불리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나무 판넬 위에 도화지를 올리고 넓은 붓을 이용해서 단색으로 밑칠을 한다. 물감이 마른 후에 그 위에 균일한 너비로 평행하게 선을 그어 화면 전체를 채운다. 가로, 세로, 사선 등 평행한 선과 바닥 색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리고 선에 맞추어 종이테이프(마스킹 테이프)를 붙인다. 선과 가까운 쪽을 단단한 도구를 이용해 힘을 주어 눌러서 종이테이프가 종이에 완전하게 붙도록 한다. 그리고 단숨에 테이프를 확 떼어내면 테이프가 종이와 밀착된 부분이 종이와 함께 찢어져 화면에는 색면과 테이프에 붙어 뜯긴 도화지의 거친 면에 도화지의 색이 남는다. 그렇게 테이프가 뜯긴 흔적이 남는 작품들을 이 시기에 제작했다. 

최상철의 <포르트-다 1> 시기의 작품들은 형상과 비형상, 드러난 형상과 남겨진 형상이 팽팽하고 균등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화면 전체를 색으로 덮어 형상을 감추고, 우연적 방식에 의해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의미를 갖지 않는 행위, 모든 감정과 주관을 배제한 행위를 통해서 예측할 수 없는 형상들을 얻고자 했다. 최상철 작가는 이 시기의 작품들부터 제작년도와 완성된 순서를 붙여, ‘作品 82-7’과 같은 방식으로 작품 제목을 명명했다. 그리고 1982년 9월 문예진흥원미술회관에서 첫 개인전 <崔相哲作品展>을 개최하게 된다. 


(2) 포르트-다 제2기 (1983-1987)

최상철은 우연적인 흔적을 얻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화면에 정신을 집중하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치열하게 이뤄지는 일종의 작품과 맞서는 대결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사용하는 도구나 방법, 패턴이 신선함과 긴장감을 소진했다고 판단되면 그는 새로운 도구나 방법을 창안한다. 첫 개인전을 마치고 테이프 뜯기를 통한 흔적 작업을 마무리하고, 작가는 새로운 방법과 도구를 이용한 작품을 시작한다. 

1983년도부터 사용된 새로운 작업 도구는 가로세로 10cm 크기의 나무로 만들어진, 위, 아래가 뚫린 정사각형 사각 틀이다. 사각 틀의 아랫부분은 1센치 정도의 다리가 달려 있다. 작가는 100호 캔버스 위에 10x10cm 크기의 사각 그리드를 밑그림으로 그리고, 그 위에 사각 틀을 올려 사각형 안쪽에 붓을 넣어 엷게 희석한 아크릴 물감을 칠한다. 사실 이것은 색면처럼 균질한 평면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도구가 아니다. 사각형 나무틀 안쪽에 가로, 세로로 반복된 직선을 무수히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화면 위에는 규칙적으로 지나간 붓의 자국이 남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는 색의 3원색 빨강, 노랑, 파랑을 올리고 마지막에 어두운 색을 올린다. 이 마지막 색까지 무수히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작가가 반복된 행위를 멈추면, 작업은 마무리된다. 이 새로운 작품에서 작가가 원하는 우연한 형태는 바로 사각 틀에 인접한 모서리 부분에 붓이 닿지 못해서 물감이 올라가지 못한 작은 틈이다. 우연에 의해서 공백으로 남겨진 그 틈이, 바로 작가가 이 작업을 통해 얻기를 원하는 ‘그리지 않고 얻은 형상’이다. 

그것은 필연과 우연의 팽팽한 대결 속에서 얻어진 평면 위에 열린 틈이다. 그 틈은 나무틀이라는 것을 창안하고, 그 크기를 결정하고, 또 나무틀 안에 붓을 넣어 화면 위를 오가는 붓질을 계획한 작가의 ‘필연’의 결과가 화면 위에 나타남과 동시에 발생한 ‘우연’의 산물이다. 작가는 자신의 계획된 동작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붓을 움직이지만, 계획된 규칙 안에 내재해 있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 즉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이 개입된 것이다. 아무리 같은 속도, 같은 힘으로 동일한 크기에 붓질을 반복하도록 규칙을 정했다 해도 작품에는 반복되는 동작 속에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개입한다. 그렇게 남겨진 흔적, 색이 칠해지지 않음으로써 생긴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에는 앞서 칠해진 색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고, 앞선 물감의 번짐이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모든 우연의 결과물이다. 그 흔적은 무엇 하나 동일한 형태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작가의 작품이 보여주는 인위적인 힘이 아닌 무작위의 흔적, 순수한 형상과 마주한다.


3. 응력 시기

최상철은 회화의 본질에 대한 도전적인 자기 물음을 이어간다. 그는 이제 적극적인 방식으로 화면을 균등하게 만들어 화면의 중심마저 소거하고 화면에 수평과 수직으로 힘을 가하여 그 변형에 저항하는 흔적들을 얻어내고자 실험한다. 작품에는 묽게 희석된 물감, 혹은 덩어리진 물감의 물성, 도구가 가진 고유한 흔적들이 작가가 도구를 이용하여 가하는 행위에 의해, 다시 말해 수직, 수평으로, 또 순간적으로, 지속적으로 화면에 가해지는 힘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1) 응력 제1기 (1988-1994)

무작위의 형상을 흔적과 틈을 통해 얻고자 했던 최상철 작가는 이제 어떤 사물이나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에 반응하여 스스로 드러나는 무작위의 형상에 대한 실험을 지속한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여전히 순수한 회화, 순수한 형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회화의 본질인 평면성 위에서 이어진다. 회화가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매체적 특징이 바로 평면성이기 때문이다. 회화는 평면성 위에서 언어의 한계 너머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야 한다. 이때 최상철은 이렇게 드러난 형태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과정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한다. 

작가는 비재현적이라 할지라도, 색이 칠해진 면과 색이 칠해지지 않은 면(테이프에 뜯긴 흔적, 붓칠이 닿지 않은 틈)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환영에 대해 고민했다. 3차원 환영을 완전히 배제하고, 형상과 배경의 관계, 좌우, 위아래의 구별마저 사라진 순수한 평면을 위해 최상철은 사물과의 관계에서 그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는 화면에 가해진 수평적으로 작용하는 힘(필연)과 우연적인 흔적들, 즉 필연과 우연의 팽팽한 대결로 그것들을 확장시킨다. 

이 시기 작가는 붓 대신 스퀴즈를 작업 도구로 선택했다. 묽게 희석한 단색의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 화면 위에 찰랑거릴 정도로 전체적으로 도포한다. 그리고 화면 위에 스퀴즈를 대고 물감을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밀려서 뭉친 우연한 얼룩들, 침전된 물감의 흔적들을 남긴다. 수평으로 움직이는 힘에 의해서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듯한 평면의 성격이 드러난다. 묽어진 물감의 액체적 성질이 가진 묽고 유동적인 성질이 고스란히 화면 위에 응축된다. 


(2) 응력 제2기 (1995-2004)

최상철은 수평으로 작용하는 힘을 수직으로 옮겨 실험하기 시작한다. 검은 아크릴 물감을 얹은 얇고 긴 대나무 편(죽필)을 사용하여 화면에 내려치는 행위를 통해 붓과 다른 강한 선들이 화면 위에 나타난다. 그 주변에 묽게 희석한 원색의 물감을 붓고 넓은 아크릴판으로 눌러, 그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원들을 생성한다. 그 원 위에 또 다른 원색의 물감을 붓고 아크릴판을 누르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렇게 작가는 수직적 힘에 의해 평면 위에 밀착되며 생성되는 원들을 배치한다. 순식간에 대나무 편을 화면에 내려치는 강한 타격으로 생성된 비산하는 검은 물감의 흔적과 함께 아크릴판으로 물감을 누르는 부드러운 압력에 의해 정적인 원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작가의 반복되는 행위로, 화면은 점차 강한 선과 자유로운 원으로 채워 나간다.

최상철은 작가로서의 주체의 의지를 최대한 배제하고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화면에 힘을 가한다. 움직임과 멈춤, 순간적인 힘과 지속적인 힘, 타격하는 신체적 동작과 자신의 무게로 평평하게 압력을 가하는 도구를 사용한다. 작가의 힘이 개입될 뿐 화면에 만들어지는 최종의 결과물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요소들을 여전히 품고 있다. 하지만 화면을 구성하고 적절한 위치에 물감을 붓는 행위에는 작가의 조형적 감각이나 의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업을 통해 작가는 ‘작가’가 아닌 ‘사물’이 그림을 그려내도록, 작가의 주관과 감정은 물론 일체의 의도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최상철은 작가의 존재마저 지워냄으로써 회화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간다. 


4. 무물 시기(2005~현재)

1970년 이후로 최상철의 작품들의 제목은 한결같이 작품(work), 회화(painting), 무제(無題)였다. 그러나 2005년 이후부터 ‘무물(無物)’이라는 제목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무물은 노자의 <도덕경>에 등장한 개념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혼돈 상태를 묘사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것은 “없음(無)”으로 있는 상태, 즉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동시에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상태이기도 하다. 

최상철은 회화의 순수성의 회복을 지향한다. 그는 회화의 시원, 최초의 회화가 가졌을 진정성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해 왔다. 무차별적 혼돈의 상태에서 처음 형상이, 의미가 탄생하는 그 충만한 에너지의 상태로 복귀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작업에서 더 완전하게 자신을 지우고, 그 자리에 ‘무물’이라는 개념이 자리하도록 한 것이다. 이 시기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실, 철사, 돌 외에 다양한 드로잉 도구들을 창안하여 실험하면서, 그의 작품에서 더 이상 색이 쓰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무물시기부터 장식적인 색의 사용을 배제하고, 먹처럼 깊게 수렴하는 검정색만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1) 짧은 중첩 시기 (2005)

최상철은 필연과 우연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점차 작업의 결과보다 작업의 과정, 수행성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다. 점차 도구로서의 사물과 그것을 사용하는 신체의 움직임의 결과에 집중한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리고 색이 사용되지 않기 시작하면서, 우연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기 위한 규칙들이 하나씩 도입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응력 시기에 사용하기 시작했던 잘 다듬어진 대나무 막대기와 검은 물감만을 사용한다. 캔버스 중심 어딘가를 무작위로 정하고 검은 아크릴 물감을 대량으로 올리고, 그것을 대나무 막대기(죽필)로 떠서 다시 화면에 내려치는 행위를 반복한다. 화면에는 대나무에 올려진 검은 물감이 화면과 부딪혀 수평, 수직의 검은 색면들과 비산하는 물감의 흔적들이 결과물로 화면을 채운다. 작가는 인위성을 배제한 특정 행위를 반복한 결과물로 작품이 창작될 수 있는 과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험한다. 더욱 철저하게 자신의 작업에서 꾸밈의 의지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행위의 결과에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으로 작가의 자리,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완전히 지워나간다. 

또한, 이 시기에 작가는 다양한 드로잉 도구들을 창안하여 자기 자신을 지우고 화면과 도구가 만들어내는 궤적으로만 완성되는, 진정한 ‘그리지 않음으로 완성되는 그림’을 집중적으로 실험하였다. 


(2) 무물 시기 (2005-현재) 

최상철은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작가와 대상을 모두 소거하고, ‘자연이 스스로 화면 위에 내려와 자연의 질서가 드러나도록’ 하고자 한다. 작가는 화면 위에서 인위적인 요소들이 보다 더 철저히 배제될 수 있도록 몇 가지 규칙들을 도입한다. 작가는 작업을 시작할 때 ‘고무 패킹’을 던진다. 방향을 눈금으로 표시한 원반처럼 생긴 고무 패킹이 떨어진 지점이 화면에 첫 점을 찍고, 패킹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작품은 같은 행위를 임의적으로 정한 숫자 1,000번을 반복한 후에 마친다. 임의의 숫자 1,000번에도 거창한 의미나 누군가의 개념이 개입되는 것을 작가는 경계한다. 그것은 그저 정성을 다한 성실함이나 ‘그만하면 되었다’는 이룸을 상징하는 숫자일 뿐이다. 이제 최상철에게 작품은 작가의 판단이나 감각에 일체 의존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우연과 우발성, 그리고 외부의 것, 사물들, 도구들과 공존하며 생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스스로를 지우고, 그림이 그려질 수 있도록 규칙을 세우고, 수행하며 생성된 궤적들을 기록하는 자가 된다. 

최상철은 이 시기에 실, 철사, 그리고 작고 둥근 돌을 주요 도구로 사용한다. 작가는 검정 물감을 사용할 때 아크릴 물감의 경우 특유의 반짝임이 있기 때문에, 먹과 검정, 엄버(브라운), 흰색 아크릴 물감을 섞어 반사 없이 깊게 수렴하는 고유의 검정 색을 직접 제작하였다. 그리고 실, 철사, 작은 돌에 이 검정 물감을 충분히 묻혀 사용한다. 먼저 실을 이용한 작업의 경우 작가는 캔버스의 옆에 정해진 위치에 서서 팔 길이 정도의 끈을 검정 물감에 담갔다가 그것을 건져 화면의 중앙을 향해 무작위로 던진다. 그 행위를 1,000번 반복하여 작업을 완성한다. 화면에는 자유로운 형태의 집적된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철사를 이용한 작업의 경우, 먼저 고무 패킹을 던져서 화면에 떨어진 자리에 검정 물감을 충분히 묻힌 철사를 세우고 눈을 감고 수직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손을 놓아 철사가 화면에 쓰러지게 한다. 그렇게 1,000번을 반복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화면에는 철사가 만들어낸 직선과 함께 철사에 묻은 물감이 화면에 떨어져 비산하며 점과 같은 흔적들이 남는다. 

그리고 2005년부터 실험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자갈돌 굴리기 작업도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초기 작업은 1,000번을 채우지 않았으나, 2007-8년부터 1,000번의 반복이라는 규칙을 현재까지 적용하고 있다. 작가는 먼저 캔버스의 뒷면에 쉽게 기울일 수 있도록 둥근 지지체를 설치하고 그 위에 캔버스를 올린다. 그리고 캔버스 사방에 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를 세운다. 캔버스 화면 위에 고무 패킹을 던지고, 그것이 떨어진 위치에 검은 물감을 충분히 바른 자갈돌을 놓는다. 고무 패킹에 표시된 눈금이 향한 방향으로 캔버스를 기울여 돌이 생긴 모양대로 궤적을 남기며 굴러가도록 한다. 그렇게 구른 돌이 캔버스 가장자리에 세운 울타리에 부딪히면 작가는 다시 캔버스를 다른 방향으로 기울여 돌에 묻은 검정 물감이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않을 때까지 굴린다. 그렇게 1,000개의 고무 패킹과 돌이 캔버스 위에 올려져 구르면, 작품은 완성된다. 돌이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한 자유분방한 궤적들이 수없이 쌓이며 캔버스 화면 전체를 뒤덮는다. 돌이 남긴 선들은 곧은 선 하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매끈한 돌의 표면과 달리 돌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게 생겼다. 자기 생긴 대로 화면 위를 구르는 자갈돌이 남긴 시간과 공간의 흔적들을 작가는 조용히 기록하며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최상철은 이러한 자연의 조화가 자신의 그림에 온전히 내려앉기를 바란다는 말로 자신이 원하는 완성된 작품을 설명한다. 자연은 어떠한 인위적인 요소 없이 자신의 질서에 따라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것은 오래도록 보아도 질리지 않으며, 어딘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도, 눈에 거슬리지도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이의 정체성이나 독창성이 설 자리가 없다. 최상철은 자연에 가까운 그림을 통해 형상의 근원, 회화의 근원으로 환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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