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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심문섭Shim Moon-Seup

1946-12-01

#조각 #회화

책임연구원 | 김복기

Shim Moon-Seup

작가소개

 심문섭은 한국 모더니즘 조각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일찍이 국전에서 굵직한 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등 젊은 작가들 중에서 언제나 선두주자로 나섰다. 화려한 등단 이후에는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와 같은 전위그룹에 가담해 현대조각의 지평을 넓히는 활동을 펼쳐 왔다. 특히 1971년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한 이래 동시대미술의 역동적인 흐름과 함께 호흡하며 국제미술계로 활동을 넓혀 왔다. 조각 예술이란 재료, 크기 같은 물리적인 제약이 큰 예술이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심문섭은 나라 안팎에서 뚜렷한 예술적 성가(聲價)를 얻어냈다. 지금까지 해외 여러 미술관에서 열었던 초대전은 그 질과 양에서 한국 조각가로서는 단연 으뜸이다.

  심문섭의 조형 영역은 조각에 그치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입체뿐만 아니라 회화, 포토드로잉, 사진, 흙 작업 등 실로 다양한 재료와 표현 기법을 넘나들었다. 현대미술의 폭넓은 조형 방법론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열린 의식이야말로 심문섭 예술의 덕목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싱싱하다. 늘 깨어있는 정신과 실천으로 <관계>, <토상(土想>, <목신(木神)>, <메타포>, <제시>, <반추> 시리즈로 이어지는 지속과 변혁의 예술 세계를 이룩했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심문섭의 조각 예술 여정 50년을 결산하는 대규모 회고전 <자연을 조각하다>가 열었다. 이 전시는 한국 조각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개인전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목신 30년> 등 국내외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이어지고 있다. 그가 이 땅의 작가로서 헤쳐 왔던 도전과 극복과 성취의 ‘조각 항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심문섭은 70대의 현역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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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약력

1943      경남 통영 출생

196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제1회 개인전, 공보관화랑, 부산

1969-70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문공부장관상 수상

1970   한국미술대상전 국무총리상 수상

1970-72 아방가르드협회전 출품          

1971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회의장상 수상

1971-75 제7,8,9회 파리비엔날레 출품

1974-85  세종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1975   상파울로 비엔날레 출품

1979      제11회 까뉴 국제 회화제, 까뉴, 프랑스

1981    제2회 헨리무어 대상전 우수상 수상

          제1회 국제 슈박스전, 하와이 미국

1983     한국 현대미술전, 도쿄, 일본

1985-08  중앙대 조소과 교수

1987      Toyama Now 87, New Air around the pacific, 토야마, 일본

1988   서울올림픽 국제 조각심포지엄 초대 출품

1990      ≪’90 서울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1993      한국현대미술의 12인전, 미야기현미술관, 센다이, 일본

1994      ≪’94 서울 정고 600년 기념 예술축제, 국립현대미술관

1995     호랑이의 꼬리,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현대작가 특별전, 베니스,이탈리아

1997   통영국제 야외조각심포지엄 커미셔너

          제1회 김세중 조각상 수상

          Earth, Life : The Expression of Earth in Korean Contemporary Art, 서울시립미술관

2000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광주비엔날레

2003      섬으로부터, 갤러리 604, 부산

2007   프랑스 문화성 초청 파리 팔레 루아얄 개인전

          프랑스 슈발리에 훈장

2009      제8회 문신미술상 수상

2011     텔미 텔미: 한국-호주 현대미술 1976-2011, 국립현대미술관, 시드니현대미술관

2012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사유, 포항시립미술관, 포항

2016     Represent 항해일지,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2017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심문섭, 자연을 조각하다, 국립현대미술관

2018     관계, 원전미술관, 베이징, 중국

          포스트 88 서울올림픽조각 프로젝트, 소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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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기(경기대 교수)

 

 1. 들어가며

 

심문섭은 1943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그는 196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그해 부산공보관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긴 작품 활동의 첫 단추를 달았다그는 1970년을 전후하여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69-7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서 문공부장관상을, 1971년에는 국회의장상을 수상했다또한 1971년 한국미술대상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일찍이 미술계의 여러 상을 거머쥐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1970년에는 한국 아방가르드협회(AG) 회원으로 새로운 전위적 예술 표현을 시도하는 집단적인 운동에 동참하여 1970-1972년 아방가르드협회전에 출품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는 심문섭의 작품이 해외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특히 그는 1971, 1973, 1975년 세 차례 연달아 파리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그 이후 제13회 상파울루비엔날레(1975), 2회 시드니비엔날레(1976), 4회 인도트리엔날레(1978), 11회 도쿄판화비엔날레(1979)  1970년대 내내 세계 곳곳의 대형 국제 전시에 꾸준히 참여했다.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심문섭의 작품 활동은 쉼 없이 활발하게 이어졌다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프랑스를 비롯해 중국미국 등에서 수차례의 개인전을 치렀다. 2007년에는 프랑스 문화성의 초청을 받아 파리의 팔레 루아얄(Palais Royal) 정원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7년에는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심문섭자연을 조각하다>를 개최했다또한 국제적인 단체전에도 꾸준히 참여해 왔다예컨대 서울올림픽 국제조각 심포지엄(1987), 통영 국제조각 심포지엄(1997), 광주비엔날레 특별전(2000),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2001) 등을 언급할 수 있다2회 헨리무어대상전 우수상(1981), 1회 김세중조각상(1987), 한불문화상(2002), 프랑스 슈발리에 훈장(2007), 문신미술상(2009) 등 국내외의 수상 경력도 심문섭의 한결같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방증한다.

이와 같이 1970년을 전후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심문섭의 작품세계는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이를테면 조각가로서 그가 추구해온 다양한 물질에 대한 탐구를 염두에 둘 수 있다그는 돌이나 나무또는 흙처럼 전통적인 재료들뿐만 아니라 천합성수지광섬유모니터 등 새로운 재료들도 작품에 과감히 도입해 왔으며인위적 재료들과 더불어 자연 그 자체를 작품에 포함시킴으로써 조각의 외연을 확장하거나 해체해 온 것이다.

심문섭의 물질에 대한 탐구는 여러 연작의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그의 연작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관계(Relation)>, <현전(Open Up)>, <토상(Thoughts on Clay)>, <목신(Wood Deity)>, <메타포(Metaphor)>, <제시(The Presentation)>, <반추(Re-present)>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주석1 물론 이 일련의 연작들이 순차적이고 진보적인 흐름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각각의 연작들은 서로 중첩하기도 하고 서로 역전하기도 하면서 평행하고 독자적인 전개 과정 속에서 조각의 물성을 실험하는 변증법적 운동성을 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동안 시기별로 심문섭의 작품세계를 논하는 다수의 작가론작품론비평이 시도되었다오늘날 그것들을 재고해 보는 것은 그의 예술적 여정을 통시적 공시적으로 파악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더 나아가 향후에 더 보완되어야 할 비평적 과제를 드러낼 것이다.

 

2. <관계>, <현전>, <토상>

 

1970년대 초반에 주로 제작된 <관계연작은 흙철판종이시멘트돌 등 전통적인 재료들과 낯선 재료들이 뒤섞여 만들어졌다예를 들면 전시장 벽에 붙은 커다란 종이를 찢어 바닥으로 드리우게 만들고 그 위에 몇 개의 돌멩이를 놓아둔다든지아니면 두 개의 철판을 바닥에 깔고 그 한가운데에 시멘트를 쏟아 부은 후 아래의 철판을 조금 분리함으로써 시멘트 계곡처럼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앞서 말했듯이 심문섭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물질에 대한 탐구이다오광수는 심문섭의 1970년대 초 연작 <관계>를 언급하면서 오브제보다는 상황을 드러내는 작업들임을 분명히 지적하면서도 재료의 다양성을 강조해둔다.

 

“파리 비엔날레의 출품작을 위시하여 이 시기 심문섭의 작품은 이미 조각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장르 개념에선 벗어난 일종의 유개념(類槪念)으로의 조각또는 상황적 조형으로 불릴 수 있는 내용들이다우선 재료에 있어서도 종이철판파이프철사모래시멘트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이들 재료는 그냥 날것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다시 말하면 이상의 원자재를 사용해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 그대로가 전시장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 이 무렵부터 작품은 <관계>란 명제로 일관되는데 그러한 관계의 내역이 다분히 장소성에 연계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주석2

 

오광수는 심문섭의 <관계연작에서 모노하(物派)와의 상관관계특히 이우환과 곽인식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감지하는데이때도 장소성과 상황성 못지않게 물질 그 자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강조한다.

 이러한 특징은 <관계연작을 같은 시기의 <현전연작과 함께 고려할 때 더더욱 두드러진다. 1973년경부터 1990년대까지 지속된 <현전연작도 <관계>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심문섭은 캔버스철판돌 등 여러 재료에 최소한의 작가적 행위를 가하여 그것들의 물질성을 새삼 강조한다캔버스를 사포로 문지른다든가 철판을 구부렸다 폈다가 두드리는 등의 행위가 그것이다.

오광수는 <현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관계시리즈와 곧이어 등장하는 <현전시리즈에서 가장 끈질긴 관심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물질의 존재 양식이었다물체 개념에서 상황 개념으로의 추이도 존재 양식에 대한 상황적 확인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73년경부터 등장하는 <현전시리즈는 물질이 갖는 존재 양식에 대한 지속적인 물음과 확인이 이끌어낸물질 고유의 속성과 구조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추이라고 할 수 있다. <현전>은 관계 속에 파악되는 물질의 구조가 아니라 물질 자체의 고유한 속성과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존재 양식을 확인하려는 의도이다.”【주석3 

그렇지만 1970년대 심문섭의 <관계> <현전연작에서 보이는 물질에 대한 탐구가 전적으로 서구의 모더니즘적인 태도로 이해되지는 않았다이일은 동양에서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일체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심문섭의 작품에서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과정은 정신세계를 거슬러 물질세계가 충돌하지 않고정신세계 역시 물질세계를 거슬러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주석4 신항섭도 또한 심문섭의 <현전연작에 대해 언급하면서 동양의 불교사상과의 관련성을 내세우며 물질성과 관념성의 무모순적인 조화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가 1973년부터 빌려 쓰기 시작한 <현전(現前)>이란 명제도 기실불교사상의 커다란 맥 중의 하나인 선()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불가시적인 ‘미래의 일’을 오늘이라는 이 시대상황 속에 당겨다 놓는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현전’이란 명제는 사실 지극히 비논리적이고 관념적이다. (...) 흙이면 흙무쇠면 무쇠가 지닌 독특한 개성에 의해서만 발생되는 이러한 변모야말로 인간의 힘으로 일부러 꾸며낼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데 초점이 모아진다다시 말하면 자연의 생명력을 파악하는 이 같은 작업의 실체란 인간의 의도를 배제한 상태에서 자연에게 동지적인 의지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재료가 지닌 신비성에 거의 매혹당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우리의 눈엔 확실히 희귀한 것이지만 이 시대 상황의 요청에 의한 필연적인 일이라고 보겠다."【주석5

 

조각의 물질성과 관련하여 언급할 만한 또 다른 재료는 흙이다심문섭이 흙이라는 재료의 물성에 주목한다는 근거는 그가 점토를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점토 자체의 탄력적이고 부드러운 특성을 드러내려 한다는 데 있다특히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초반에 주로 제작한 <토상연작은 점토와 작가의 손이 만나 교감하는 촉각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흙과 손물질과 인간의 공감을 지향하는 것이다.

심문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주무르면 주무를수록 유연해지는 점토와 갈수록 더 민감해지는 본능적이고 생리적인 두 손의 촉각의 만남은 시시각각으로 함께 어떤 공감의 세계를 지향한다흙이라는 물질을 무감각하게 그저 만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삶의 의미 같은 것을 찾아내고 싶은 염원을 간직한다. "이처럼 작가가 점토를 이러저러하게 조작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인간과 물질이 서로 만나서 얽히는 사이에 생기는 시적인 양상점토를 점토로서 받아들이고 점토에 잠재하는 표정을 가소성과 약간의 탄력 및 신장에 의해 활성화시키는 일그리고 그러한 물질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인간의 시각을 자연의 흐름 속에서 좌정시키는 일 등”이다.【주석6

박신의 역시 심문섭의 작업에서 흙과 손의 관계촉각의 중요성을 지적한다“심문섭에게 흙은 또 다른 자연의 이치다조각에서 촉각의 문제가 중심을 이루듯 흙은 그런 촉각의 의미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주는 매체이기 때문이다흙 작업을 통해 조각가의 손의 느낌을 실제화하고형상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흙의 자연적 속성을 외화시키는 일은 곧 조각의 출발이 아니겠는가.”【주석7 심문섭이 흙을 통해 추구하는 “물질의 무한한 가능성”박신의가 심문섭의 흙 작업에서 발견하는 “외화된 자연적 속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박신의는 그것이 자연과 생명의 이치인 순환의 원리라고 말한다흙은 그러한 원리를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조각의 재료로 여겨진다“흙이란 바위가 부서져 된 부분과 흙 속에 온갖 동식물이 섞여 부식되면서 만들어진다는 과정을 보면 그렇다흙은 모든 생명체를 보듬고 안으로 삭혀 다시 흙으로 돌아가도록 한다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원리가 태초부터 존립해왔듯흙은 생명을 낳고 생명을 죽여 다시 생명을 낳는 생출(生出)의 근본이며그 모두를 생명으로서 껴안고 삭혀가는 세월의 기록 그 자체인 것이다.”【주석8

흙과 관련한 조각의 역할은 흙의 표정흙의 생각(土想)을 담는 일이다그것은 작가가 흙에 주입한 표정이나 생각이 아니라 작가의 손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흙이 몸소 짓는 표정이나 품은 생각이어야 할 것이다심문섭이 흙에 가하는 작가적 행위가 최소한에 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흙은 주변의 환경과 호흡을 맞춰 가면서 스스로 터지고 휘고 갈라지고 굳으면서 고유한 표정을 짓고 자연스러운 생각을 표출한다“흙을 만지는 심문섭의 손은 모든 존재의 세월의 바다를 항해하는 노 젓는 손이고흙에 물과 공기를 불어넣어 숨 쉬게 하는 손이며인공의 숲으로 밀려나는 자연의 형상을 복원시키는 손이며조각가로서 지켜가야 할 손의 미덕을 가장 촉각적으로 회복해내는 몸짓의 도구일 것이다조각가란 작품을 완성하는 자가 아니라 재료와 환경을 엮어주는 매개자의 역할을 갖는 것이 아닐까.”【주석9

 

3. <목신>

 

심문섭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목신>이라는 제하의 연작을 발표한다연작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심문섭의 물질성에 대한 탐구는 나무에 집중한다이 연작에서도 그는 작가적 개입을 최소화하여 나무가 나무 그 자체로서 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그렇게 드러나는 것이 목신즉 나무의 정신일 것이다심문섭은 나무에 관련된 자신의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작품의 대부분이 하나의 나무로 완결되기보다는 잇거나 모아 만드는 방법을 쓴다하나의 나무는 절대적인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약화시키기 위함이다갈라진 것벌레 먹은 것도 그대로 사용한다대강의 계획만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나무의 성질을 되도록 배려한다잘 진행되지 않은 곳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되도록 무조작으로 처리해보이는 부분들이 미완성에 가깝게 느껴진다.”【주석10

 

대들보였건 기둥이었건 각각의 사연을 지닌 나무토막들이 하나 또는 둘 이상씩 연결되기도 하고때로는 그 사이에 철이 이음매처럼 자리하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에는 누워 있는 형상들이 많았고 나중에는 서 있는 형상들도 등장했다. <목신연작은 얼핏 보면 우리 조상들이 쓰던 가구나 집기 같은 모양을 띠며폐선(廢船)의 한 부분 같기도 하고트렁크나 농기구처럼 보이기도 한다혹은 무속적인 의미에서 ‘신령’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원시적인 토템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이처럼 비물질성과 물질성()과 속(), 목적과 수단이 공존하는 중간적인 위치에 나무라는 재료가 놓인다이런 의미에서 심문섭은 나무를 “중간 물질로서 채택한 것”이라고 말한다.【주석11 이일은 <목신>의 이런 이중적인 속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한편으로는 일상적세속적 체험의 세계가 그것이요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제의적 상징적 관조의 세계가 그것이다심문섭이 택하고 있는 재료는 설사 과거의 것이라고는 하되 우리의 생활감정 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배어 있는 너무나도 친근감이 감도는 일상 용품의 단편들이다그와 같은 물체 자체가 우리의 회고 취향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되본래의 기능과 형체를 잃은 그 단편들의 결합 내지는 조립이 강한 환기력을 지니고 우리의 의식 공간 속에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 문자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이다물론 거기에는 어떠한 조작의 개입도 허용되지 않는다.”【주석12

 

요컨대 이일은 심문섭의 <목신>에서 아르카이즘(archaism)과 샤머니즘(shamanism)을 관통하는 ‘중간 물질’을 기술하고 있다그중 아르카이즘즉 “예스러움에 대한 향수”와 관련하여 이일은 심문섭의 <목신>을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와 일본의 모노하와 연관짓고 있다“이 아르카이즘에 대한 일종의 회귀는 오늘의 우리 현대인 모두의 가슴에 싹트고 있는 간절한 소망의 하나일지도 모른다현대미술에 있어서의 그 가장 단적인 표명의 하나로서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헐벗은 예술’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들 수 있으며또 한편으로는 일본에서의 모노하(이 미술운동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우환을 꼽을 수 있다)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주석13

이일의 이러한 평론을 프랑스의 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의 평론과 나란히 놓고 보면 자못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우선 레스타니도 역시 이일과 마찬가지로 <목신>의 양의성에 동의한다<목신>에 대해서는 실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가능하다낯선 것으로서 익숙한 것이며일상적이면서 상징적이고 성스러운 것이면서 속된 것인 그 입체는 조각과 조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고물질적 현전의 잠재력에 의해 <목신>은 조각(彫刻)이며세련된 상징성에 의해 <목신>은 조상(彫像)의 영역에 속하는 인간의 형태이다.”【주석14

그렇지만 레스타니는 심문섭의 <목신>이 아르테 포베라나 모노하와의 영향관계 속에서 논해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왜 그럴까?  “아르테포베라에 특징적인 노스탤지어의 우울함은 그의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다그의 작품은 건강하며마티에르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증언하고 있다그는 모노하의 미니멀적이고몸짓만으로 그치는 형식적인 도표화의 의지도 공유하고 있지 않다그는 나무의 재단살붙임그 퇴색한 색에또 꿰맞추는 정묘함과 목질의 다양함에또한 금속의 상감에 큰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주석15 레스타니는 심문섭의 작품의 독특성을 건강함과 기쁨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반면에 그는 아르테 포베라에서 어떤 우울함을 보고 모노하에서 피상성과 도식성을 본다동양과 서양의 평론가가 동일한 작가와 작품을 보면서 이처럼 상반된 의견을 내놓기도 하는 것이다.

레스타니가 ‘건강함’과 ‘기쁨’이라는 보편적인 어휘를 발견한 곳에서 한국의 평론가들은 어떤 한국적인 특수성을 찾아내기도 한다한국적 토착신앙한국적 농경문화한국의 질박한 조형성이 심문섭의 <목신>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면 오광수는 <목신>에서 동아시아에 공통적인 목공품에 대한 애정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특별하게는 “나무에 대한 깊은 신앙의 체계를 지녀왔던 한국 민족의 저 바닥 깊숙이 흐르는 샤머니즘에 대한 현대적 조명이란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주석16】 그런가 하면 서성록은 <목신>에 담긴 우리 고유의 자연관에 접목된 풍부한 미적 감성을 강조한다.

 “나무 표면 위에 듬성듬성 나 있는 자귀 자국임의적인 물상의 배치둔중한 양괴감인위적 규격화의 배제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던져진 듯한 원초적 물질감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떠한 조작 없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표정 등은 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 그것은 아마 오랜 세월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우리와 동거동락해온 자연그리고 그 끈질긴 생명력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피어난 이 땅의 ‘소박하고 조촐한 ’미적 감정‘을 재차 확인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해본다.”【주석17

 

4. <메타포>, <제시>, <반추>

 

심문섭이 1990년대 중후반에 제작한 <메타포연작은 <목신연작과의 연결과 단절을 통해 정의될 수 있다. <메타포>에도 여전히 나무가 주요한 재료로 활용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과 대비되는 재료로 철이 작품에 도입되는 것이다때로는 나무와 철이 대등하게 사용되고때로는 철이 압도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나무가 자연의 소산인 만큼 철도 흙에서 추출해낸 자연적 물질이긴 매한가지여서 서로 친화력을 띠기도 한다다른 한편으로 철은 어찌됐든 가공의 산물이므로 두 재료는 서로 다른 성질을 내보이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결국 <메타포>에서도 심문섭의 물질에 대한 치열한 사고는 이어지고 있되이제는 나무와 철이라는 두 물질 간의 교감과 차이가 관건인 것이다이질성과 동질성이 공존하는 비유사적인 유사성이 관건인 것이다메타포란 서로 닮지 않은 것들 사이의 닮음을 찾아내는 수사학이 아니던가심문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무 자체가 스스로 표현을 요구하는 부분절대적 힘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자연의 감각소가 너무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점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서로 다른 물질들이 관계를 맺음으로써그 관계 속에서 이루는 투명한 세계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자연의 산물인 나무와 인공적인 쇠를 함께 충돌시켜보면좋은 연관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나무는 쇠 쪽으로쇠는 나무쪽으로 서로 침투되고 교감되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주석18

 

<목신>이 나무라는 단일한 재료의 양가적인 의미에 대한 탐구였다면, <메타포>는 복수의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의미 이전에 물질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교감의 양상에 대한 탐구이다사실 이런 태도는 심문섭의 초기작인 <관계연작에서부터 보였던 것이다그의 작품세계는 그 자체로 자연적인 ‘순환의 논리’를 따라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이다오광수는 부드러운 나무와 견고한 무쇠의 대립적인 질료적 속성과 관련하여 양자 간의 긴장감이 나무를 더욱 나무이게무쇠를 더욱 무쇠이게 함에서 찾아온다고 말한다.

오광수는 이에 덧붙여 <메타포>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읽는다“나무는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반면 무쇠는 다소 거칠긴 하나 훨씬 반듯하다나무에는 인위적인 손자국이 깊이 개입되어 있는 반면무쇠는 기계적인 공정의 산물이다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치밀한 계산 아래 제작했다기보다는 약간씩 서툰 느낌예컨대 덜 마무리된 어설픈 자국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그래서 작품들이 반듯반듯하고 구조적이면서도 차가운 인상을 주지 않는다이 풋풋한 원시성이야말로 물질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다 화해롭게 하는 요인이 된다.”【주석19 <메타포>는 인간적 제스처와 기계적 제스처의 대립과 긴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또한 양자 간의 화해와 조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심문섭의 <토상>이 흙이라는 단일한 물질을 다루고 <목신>이 나무라는 단일한 물질을 다룬다면, <메타포>는 나무와 철이라는 복수의 물질의 상호관계를 탐구한다강함과 약함유기체와 비유기체인간과 기계 등의 ‘관계’가 물질적 차원에서 두루 표현되는 것이다.

심문섭은 ‘관계로의 회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형태의 개념을 구조의 개념으로공간의 개념을 장()의 개념으로 대치시켰으면 한다장의 충만함과 텅 빔을 이해하고서로 연관시킬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길 바란다작품의 내부 구조가 소통되어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장으로서의 기능을 갖는 구조를 열어내고 싶다.”【주석20

흙의 형태나무의 형태철의 형태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그것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만들어내는 구조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그리고 작품을 둘러싼 공간은 그저 기하학적인 삼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질들 간의 인력과 척력이 형성하는 장이 된다이종숭은 이처럼 관계항 속에서 생겨나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일컬어 “공간의 구조론”이라고 한다.

 

“일단 그의 공간에 대한 인식은 ‘비어 있음’에 대한 지각으로 시작한다그것은 두 물질의 결합을 통해 생겨나는 연속적 구조의 공간과 그것의 ‘비어 있음’에 대한 인식이다가령목구조물과 그 배면에 결합된 둥글린 철재 사이에는 어떤 빈 공간이 존재한다또 경우에 따라목구조물과 철구조물 사이의 빈 공간을 여러 방식으로 다시 나누는 칸들이 존재한다이런 경우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그의 작업에는 충만함과 텅 빈 것 사이의 관계에 근거한 확장된 장()의 개념이 끼여 들어온다기존의 조각이 주로 형태와 밖에서 보이는 외관의 문제에 집착하고 있었다면심문섭의 최근작들은 안과 밖의 소통적 측면에 주목하며 복수적 층위의 공간적 구조에 대해 배려하고 있다그것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나타남이다’라는 평범한 진리의 문제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기도 하다.”【주석21

 

심문섭의 구조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제시>로 이어진다. <제시연작은 2000년대 이후 제작된 것들로서그 특징을 꼽자면 이전에 쓰이지 않았던 다양한 재료들이 기존의 재료들과 함께 자유롭게 등장하는 설치작업이라는 것이다나무철 등 그가 즐겨 쓰던 재료들뿐만 아니라 전구광섬유비닐 등 낯선 재료들이 심문섭의 설치작업에 등장한다그의 물질에 대한 탐구의 방향이 개별 물질의 형태에서 물질들 간의 구조로 전환하면서 더 다양한 재료들이 그의 작품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그중 광섬유나 전구의 사용은 작품 안에 빛을 들여오기 위함이고뿐만 아니라 그의 설치작업에는 종종 물이 이용되기도 한다.

빛이나 물과 같은 유동적인 요소들이 과감히 도입된 까닭은 그에게 공간의 개념이 장의 개념으로 대체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그 장은 빛과 물의 에너지가 교류하는 장이기 때문이다심문섭의 조각이 보여주는 순환의 논리는 에너지의 논리이고 생명의 논리인 것이다“작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매체로 흙(), 공기 등 사원소를 동원한 그의 작품은 어둠의 방에서 전선들이 마치 실핏줄처럼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유기적 구조를 통해 순환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은 공간의 연출을 넘어서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과 그것의 일부인 생명의 의미에 대해 사색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주석22

<제시>가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난 예는 2007년 프랑스 파리의 팔레 루아얄에서 연 개인전일 것이다정원의 분수화단잔디길에 설치된 작품들은 나무물을 비롯해 알루미늄광섬유전기를 이용한 장치로 이루어져 있다야외의 전시인 까닭에 태양바람비와 같은 기상조건까지도 작품의 한 요소로 여겨진다물질의 에너지와 비물질의 에너지인공과 자연필연과 우연이 그의 작품을 채우고 또 비워내면서 하나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의 핵심은 오브제 자체보다는 그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의 흐름중력을 따라 갈래를 만들어 흐르고 스며드는 물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로병사를 겪는 자연의 운동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총총걸음으로 정원을 지나가는 시민들과 우연히 만나 빚어내는 조화에 있다오브제는 그 자체로 안과 밖을 나누어 경계를 짓고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려 애쓰지만심문섭의 조각은 자연의 우연과 리듬에 제 몸을 맡긴다. (...) 요컨대 그의 작품 속에는 어떤 순환어떤 반복이 존재한다그것은 자연의 순환이며생명의 무한한 반복이다.”【주석23

 

2000년대 후반부터 제작된 <반추(Re-present)> <제시(The Presentation)>를 재-제시하는(re-present) 작업이다‘반추’는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하는 행위이며re-present’는 재현하는 행위이다즉 이 연작의 요체는 생각이든 표현이든 ‘반복(re-)즉 ‘되풀이’하는 데 있다물론 이때의 반복은 같은 것을 정확히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늘 차이를 생산하는 반복이다그것은 마치 모네의 루앙 대성당 그림과 같은 것이고세잔의 생빅투아르 산과 같은 것이다자연의 본래적인 순환의 논리가 그의 ‘반추’에 끊임없는 변주를 가하는 것이다예컨대 2007년 베이징의 쓰레기통을 본뜬 나무통을 자연석 위 긴 통나무 위에 올려둔 작품이 2016년에는 10미터 크기의 무한히 상승하는 사다리와 거북선의 형태로 조합된 여러 오브제들이 제시되어 통영의 역사성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식이다.

황두는 심문섭의 <반추>가 지닌 세 가지 유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첫째“현지의 문맥(context)과 관계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베이징에서의 ‘제시’와 통영에서의 ‘제시’는 각각의 환경역사기억의 차이로 인해 다른 문맥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둘째“부동한 사물 사이의 결합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셋째“예술과 비예술논리와 반논리형식과 반형식 속에서 새로운 예술 언어의 장력을 만들고광섬유나무철판 등 내재적인 연계가 없는 물질들 사이의 관계와 모순을 통하여 ‘형식 이전의 형식’으로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또 다른 ‘생명’ 형태를 창조해낸다.”【주석24

 

5. 나가며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조각가 심문섭의 평생의 화두는 물질에 대한 치열한 탐구로 요약될 수 있다시기별로 다른 이름의 연작들이 등장하고 퇴장하고 재등장하길 반복하지만 그 순환의 논리를 가능케 하는 동력은 언제나 조각을 통해서 물질의 표정과 생각을 드러내려는 의지였던 것이다그는 조각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 윤회적인 방법으로 작품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엮어내어 생명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과 함께 시적인 세계를 여는 통로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술회한다.

우리가 보았듯이 시기별로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평론가들이 심문섭의 작품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문섭의 작품세계와 관련하여 아직도 더 논해야 할 주제들이 산적해 있을 것이다미래의 연구와 평론들을 예감하며 몇 가지 언급해보자.

첫째심문섭이 작가적 자의식을 형성해가던 시기에 접한 아르테 포베라와 모노하와의 좀더 명확한 연관관계가 규명될 필요가 있다앞서 보았듯이 어떤 평론가들은 심문섭과 그 사조들 간의 유사성을 피력하고 또 어떤 평론가들은 근본적인 차이를 주장한 바 있다면밀한 대차대조를 통해서 심문섭의 예술관에 동시대적 사조가 차지하고 있는 지분을 뚜렷하게 측량해야 할 것이다.

둘째심문섭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조각이나 설치 이외에도 회화사진드로잉사진 드로잉을 전시한 바 있다심문섭의 조각에 대한 논의에 비해서 그 외의 작품들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그가 병행하는 이차원적 작품들 그 자체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앞으로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그가 이차원적 매체를 통해 수행하는 물질에 대한 탐구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그것은 그의 조각작품과 어떠한 상호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셋째심문섭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선보이기 시작한 <제시연작에 대하여 동시대적인 철학과 비평언어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모노하아르테 포베라미니멀리즘과 같은 과거의 사조들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것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생태주의나 포스트휴머니즘과 같은 현재적인 이슈에 비추어 그 함의를 가늠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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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기(경기대 교수)

 

 

 

1. 〈관계〉 〈현전〉

 

〈관계(Relation)> 〈현전(Open Up) 연작은 1970년부터 1980년까지 지속되었다. 〈관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 제19회 국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한 〈관계 77〉이다. 이 시기의 작품 재료는 흙 돌 철판 쇠파이프 종이 철사 등이 등장했다. 이러한 물질들에 인간의 행위가 가해졌을 때 생겨나는 우연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이것은 모델링과 같은 대상주의 조각, 이른바 좌대를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조각과는 완전히 성격을 달리한다. 말하자면 심문섭 작품은 일찍이 ‘반(反)조각’ ‘탈(脫)조각’, ‘비(非)조각’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 미술계를 풍미했던 모노하(物派)의 조형과 부관하지 않다. 〈관계〉 시리즈는 물체 개념의 조각이라기보다는 상황 개념의 조각이다. ‘물건’으로서의 작품이라기보다 ‘공간’으로서의 작품이다. 그만큼 작품의 외부, 즉 장소(site)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작품이다. 소재(물질)라는 존재의 단편 안, 작가와 소재라는 대치 관계의 내부, 이 안과 내부를 벗어나 그 밖과 외부로 눈을 돌리는 조각이다.

 〈현전(現前)〉은 1973년부터 시작했다. ‘현전’이란 선(禪)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불가시적인 ‘미래의 일’을 오늘이라는 이 시대상황 속에 당겨 놓는다는 뜻이다.  〈현전〉 시리즈는 물질 고유의 속성과 구조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다. 멀쩡한 캔버스를 샌드페이퍼로 문질러 오래 닳아 헐은 것처럼 퇴색의 시간의 앞당겨 놓은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다.

 

2. 토상

 

1981부터 2009년까지 이어진 작품이다. ‘토상(Thoughts on Clay)’이란 ‘흙의 생각(土想)’이다. 흙 조각은 작가의 손이 다른 도구의 매개 없이 재료와 직접적으로 만난다. 따라서 〈토상〉 연작은 조각의 촉각적인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심문섭은 흙의 자연적 속성을 조각으로 외화시킨다. 심문섭 작품을 두고 ‘자연을 조각하다’라는 비평을 붙인다면, 〈토상〉 연작이야말로 재료에서부터 제작 과정과 결과에 이르기까지 이 비평에 가장 부합된다.

흙이란 생명의 근본이다. 모든 생명이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듯이, 흙은 생명의 시간의 응결 그 자체인 것이다. 말하자면 흙은 자연 순환의 다른 이름이다. 심문섭은 바로 그 ‘흙의 생각(土想)’을 흙의 표정에 담아낸다. 작가의 손을 매개로 흙이 스스로 지어내는 표정이다. 심문섭이 흙에 가하는 작가의 행위는 최소한에 그친다. 흙은 주변의 자연 조건과 호흡을 맞춰 스스로 터지거나 휘거나 갈라지고 굳으면서 자신의 표정을 짓는다. 여기서 조각가의 역할은 토상을 드러내는 매개자다.

 

3. 목신(Wood Deity)

 

1982년부터 1995년까지 나무를 소재로 한 연작이다.  ‘목신(木神)’이란 나무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작가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정신을 살려낸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뜻이다. 심문섭은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토속성과 모국주의(vernaculiarism)의 발현이 두드러지는 연작이다. 현대조각가 심문섭이 전통과의 접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 연작이다. 따라서 〈목신〉 연작은 심문섭의 작품 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이미지가 연상된다. 농기구나 배 또는 동아시아 도작(稻作) 민족의 전통 목공예품을 떠올린다. 또는 어떤 샤머니즘의 대상을 연상시킨다.

〈목신〉 연작은 나무가 살아온 ‘시간’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킨다. 그것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불러낸다. 하나의 나무 덩어리로 완결하기보다는 덩어리를 서로 잇거나 모은다. 나무의 결은 물론이거니와 갈라진 틈, 옹이, 벌레 먹은 것도 그대로 사용한다. 따라서 하나의 완결된 조형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자연’에 가깝고, 그저 단순한 오브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환기력을 지니고 있다.

 

4. 〈메타포〉

 

〈메타포〉 연작은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제작되었다. 이 연작은 한 작품에 나무와 철을 동시에 사용하거나 철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나무가 자연의 소산인 만큼 철도 흙에서 추출해낸 자연적 물질이어서 서로 친화력을 띠기도 한다. 그러나 철은 기술적으로 가공한 것이므로 두 재료의 서로 다른 성질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메타포〉는 나무와 철이라는 두 물질 간의 교감과 차이의 문제를 터치한다. 두 물질이 빚어내는 행복한 동거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옛 목조가구에서 철은 나무 각 부위를 연결하는 기능성과 더불어 장식성으로 사용되었다. 이 기막힌 조합과 흡사하다. 결국 ‘메타포’란 서로 닮지 않은 것들 사이의 닮음을 은유하는 수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메타포〉 연작은 나무와 철이라는 물질의 상호관계를 탐구한다. 강함과 약함, 유기체와 비유기체, 인간과 기계 등의 ‘관계’가 물질적 차원에서 의 구조로 표현되는 것이다.

 

5. 〈제시〉

 

〈제시〉 연작은 2000-2007년에 제작했다. 이 연작에서는 전통적인 조각 재료뿐만 아니라 전구 네온 광섬유 비닐 등 새로운 재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낯선 재료와 기존의 재료가 만나 그의 조각은 하나의 덩어리, 구조체로서의 성격보다는 공간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설치작품의 성격이 강화된다. 말하자면 〈제시〉에서 심문섭은 작품의 구조뿐만 아니라 그 구조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문제로 관심을 확장시킨다. 작품이 놓이는 장소는 화이트큐브보다 야외 공간이 자주 활용된다. 분수, 화단, 잔디, 길, 나무를 설치공간으로 활용한다. 야외 전시에서는 태양, 바람, 비와 같은 기상조건까지도 자연스럽게 작품의 한 요소로 활용한다.

특히 빛과 같은 비물질, 바람이나 물 같은 자연의 요소를 작품에 동시에 도입함으로써,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에너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결국 물질과 비물질, 문명과 자연, 우연과 필연, 정지와 움직임이 서로 화합하며 새로운 상호 역동의 공간을 창출한다. 물질과의 관계 속에 완결된 작품이라기보다는 물질 너머의 열린 구조를 제시함으로써, 가시적 현상 너머의 시적 공간을 활짝 연다. 그의 〈제시〉 연작에는 어떤 거대한 생명의 순환, 반복의 리듬이 존재한다. 심문섭의 조각은 순환의 원리로, 역동적 유기체로 우뚝 서 있다.

 

6. 〈반추〉

 

〈반추(Re-present)〉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제작된 작품이다. 〈반추〉는 〈제시(The Presentation)〉를 재-제시하는(re-present) 작업이다. ‘반추’는 결국 오브제를 ‘반복(re-)’, ‘되풀이’하여 제시하되 그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이를 생산하는 반복이다. 〈반추〉 연작에는 기성의 오브제, 일종의 레디메이드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쓰레기통 탁자 대들보 약장 어망 컨테이너 등 실생활에 쓰이는 물건이다. 그는 이 물건들을 유희적으로 변용시켜, 경쾌하게 다시 제시한다. 오브제를 최소한으로 가공하지만, 오브제가 놓이는 장소와 시간을 비틀어 제시한다. 이 오브제가 놓이는 장소, 기억과 관습에 따라 오브제는 새로운 문맥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를 들어 오브제 중에는 중국의 베이징에서 태어난 것이 많다. 그것이 한국 혹은 통영이라는 문맥과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 문맥이 거꾸로 바뀔 수도 있다.

심문섭의 오브제는 하나의 개념의 덩어리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재료가 저마다 살아온 ‘시간의 숨결’, 그것이 예기치 않은 시간과 공간 혹은 감상자와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상상력이나 시적 환기를 조형의 목표로 삼고 있다. 〈반추〉는 ‘형식 이전의 형식’으로 또 다른 ‘생명’의 형태를 창조해낸다.

 

7. 회화

 

심문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회화 작업에 몰입했다. 작품 수가 조각가의 여기(餘技) 차원을 넘어선다. 회화 작품만으로도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었다. 그의 회화는 고향 통영의 시간을 불러내는 ‘기억의 풍경’이다. 푸른 바다와 변화무쌍한 섬, 그 자연의 불가사의한 맨살을 회화로 담아내고 있다. 그는 바다 풍경에서 현대적인 조형요소를 찾아낸다. 생성과 소멸, 존재와 시간, 응집성과 개방성, 공존성과 가변성 등.

심문섭의 회화는 한마디로 붓질의 축적이요 붓질의 흔적이다. 유성물감을 칠한 바탕 위에 수성물감으로 붓질을 가하면, 물성의 차이로 인해 화면에는 미묘한 표정이 일어난다. 물감끼리 서로 섞이기도 하고, 서로 반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반복적인 붓질의 연속, 출렁임으로 화면이 조성된다. 이 붓질이야말로 파도에 실려 있는 기억으로의 미끄러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붓질은 드로잉이라고 하기에는 회화의 성격이 강하고, 회화라 하기에는 드로잉의 성격이 강한, 기묘한 양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기억의 왕복 운동과도 같은 붓의 작동, 그것이 만들어내는 내밀한 풍경의 현전이라 할 수 있다.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진행 중인….

 

8. 포토드로잉

 

심문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 그의 시선은 일반 사진작가의 시선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사진 위에 선이나 스크래치 같은 조형을 가하는 이른바 ‘포토드로잉’의 성격이 강하다. 정상적으로 인화한 사진 위에 또 한 차례의 작업(이른바 원고를 탈고한 후 ‘교정’하듯이)을 가미해서 다시 인화한 것이다. 결국은 카메라에 의한 표현과 작가의 손에 의한 표현, 이 이질적인 이중성이 상호 호응하는 작품이다.

사진이란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한 정지된 화면이다. 이미 시간적으로 과거에 속한다. 드로잉은 이 정지된 과거의 한 순간을 현재화하는 행위이다. 혹은 사진에 잠재된 유동적인 시간을 아직 진행 중인 어떤 미완결의 상황으로 전환하는 행위라 해석할 수 있다. 과거에 닫힌 시간을 해방시켜 현재의 시간으로 부활하는 작업인 것이다. 결국 심문섭의 포토드로잉은 ‘시간의 교정’이라는 실로 흥미로운 개념을 지니고 있다. 그가 1970년대의 〈현전〉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재료와 물질, 그 안과 밖에 잠재해 있는 시간 개념에 천착해 왔던 사실을 상기해 보면, 포토드로잉은 분명히 조각가로서의 자세와 교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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