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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종상LEE Jong-Sang

1938-07-20

#기타

책임연구원 | 강효연

LEE Jong-Sang

작가소개

생존 작가 최초로 1997년 루브르 박물관에 초대되어 3회 연장 전시 및 영구 설치 제안을 받은 바 있는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가

한국은행권 지폐에 5만원권 신사임당과 오천원권 율곡 이이를 그린 국내 유일의 생존한 화폐 영정 작가

고구려 문화지키기 운동을 통해 역사왜곡과 맞서 싸운 활동가

세계 최초의 독도화가이자 독도 문화심기 운동가

최초의 대학교 미술관 건립자이자서울대학교 박물관장과 초대 서울대학교 미술관장

“‘한국회화의 자생성을 토대로 삼아 우리미술의 정체성을 탐구한 연구가이자 교육자행정가

 

일랑 이종상은 1961년 국전 특선 수상을 통한 데뷔 후 현재까지 한국미술의 자생성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우리미술의 정체성 탐구와 한국화의 현대화에 선구적 활약을 펼친 작가이다.

일랑 이종상 작가는 1938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대전고등학교 재학시절 미술부 활동을 시작하고미술부 학생들과 '루불미술동인을 결성한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기 위해 입학하였지만우리 것을 알아야겠다며 동양화로 전공을 바꾸었고화가이지만 동양철학 전공으로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1961 10회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당시 학생들의 혁명 의지를 간접 상징하는 대장간을 소재로 한 <()>을 출품재학생 신분으로 특선을 수상하며 데뷔하였고, 23세에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로 선정되며 현대 진경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우리 채색화의 근원에 대한 탐색과 장지기법동유화 등 재료에 대한 연구 그리고 한국회화의 자생성을 통한 원형상(源形象Ūrfigure)” 탐구에 몰두한다.

1975년 미국 텍사스 U.T.D(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대학에서 첫 초대 개인전을 시작하였고, <율곡선생상표준영정을 제작하여 5천원권 지폐에 사용된다. 1977년 독도가 가진 문화적 상징성을 깨닫고그림을 통해 문화를 심어 후세에 남기고자 국내 화가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하며 독도 진경화를 그리며 독도 문화심기 운동가로도 활약하였다.

파리 《FIAC '90(1990)에서의 개인전베니스 비엔날레 한국특별전 《The Tiger's Tail(1995), 파리 가나 보브르 초대개인전(1997), 마드리드 《2007, ARCO》 등 수많은 국내외 전시가 있었지만특히 1997년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외무성 초청을 받아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 샤를 5세 홀 성벽을 이용한 폭 6미터, 71.3미터에 달하는 벽화 <원형상 97061-마리산>(1997)을 선보였는데이 작품은 현지의 대대적인 평가와 찬사를 받아 단독 개인전으로 연장 전시되고, 3차례의 연장요청과 영구설치 제안을 받았다.

서울대학교박물관장 재임시 기획한 《오원 장승업-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화가》(2000)전을 개기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영화에 큰 모티브를 제공함과 동시에 자문을 맡기도 하였다

일랑 이종상 작가는 11점의 국가표준영정과 역사기록화도 남겼으며특히나 2008년 한국은행 5만원권 화폐영정 <신사임당>을 제작하며, <율곡 이이>와 함께 모자화폐 영정을 그린 국내 최초 생존화가가 된다

일랑 이종상 작가는 영정뿐만 아니라 벽화와 성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2007년 태백산맥문학관에 제작설치한 옹석벽화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2007)는 세계 최대의 자연석을 이용한 반추상 벽화작품으로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국내 최초최대의 자연석 옹석 벽화로 공식 인증을 받았다또한 천주교 대전교구의 합덕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의 영정 성화 5점과 순교기록성화 13점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제작하여 봉헌하였다.

 

일랑 이종상 작가는 고구려독도 문화 활동가이자 교육자행정가로도 여러 족적을 남겼으며, 특히 한국미술의 자생성을 토대로 삼아 이론적 연구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우리 미술의 시원으로서의 고구려벽화의 의미현대진경 및 한국화의 동시대성한국의 색채의식전통재료에 관한 연구 및 발굴 등을 이어왔다우리 그림은 관용의 미학이다.는 전제하에 그 뿌리를 한국의 독창적인 창호 문화에서 찾았고창호를 너그러움과 소통용서와 관용으로 이해하였다이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 설치 벽화 <원형상 97061-마리산>이다.

일랑 이종상은 전통에서 현대까지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우리의 미술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도를 가지고 작가만의 울타리를 없앤 화가이며한국화의 추상을 이끌어냈으나스스로는 완성자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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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약력

일랑 이종상(一浪 李鍾祥, Il Lang Lee Jongsang)

 

출생

1938년 7월 20일 충청남도 예산읍 발연리 120번지 출생

 

성장

1943년~1946년 충청남도 서산군 서산읍 동문리

1946년~1952년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1952년~1959년 충청남도 대전시 부사동

 

수련경력

1945 충남서산군 서산공립유치원 졸업

1950625발발로 서울삼광초등학교 중퇴 피난

1956 대전보문중학교 졸업

1959 대전고등학교 졸업

196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미술학사: 동양화 전공)

1979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 석사과정 졸업 (문학석사: 비교미학 전공)

1989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과정 졸업 (철학박사: 동양철학 전공)

 

활동경력

 

일반경력 

1965-1998 《국전》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 역임문교부, 문화공보부

1966-200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교, 시간강사,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역임 

1973-1985<사단법인 동방연서회> 문인화부 지도강사 역임동방연서회 

1978-2004 한국벽화연구소장

1976-2004 중앙․동아․MBC 미술대전 등 심사위원(), 운영위원() 역임 

1977-2004 최초 독도진경여행 및 제9회 입도,<독도문화심기운동> 본부장 

1980-2004<사단법인 현대미술관회> 영구회원 및 초대 강사, 평의원한국미술관회

1982-2004<사단법인 한국돈황학회> 창립회원 및 정회원한국돈황학회

1983-2004 동아일보 주최 <동아미술대상> 운영위원동아일보사 

1985-1990 서울특별시 문화위원회 위원 역임서울특별시 

1988-2004<재단법인 삼성문화재단> 이사삼성문화재단

1990-1992<사단법인 서울국제미술제> 운영위원회 《서울국제미술제》 부이사장 역임, SAFEC

1992-1998<학교법인 경원학원> 재단이사 역임경원대학교

1995-2004<월간미술대상> 기금출연, 운영위원월간미술

1995-1996 중앙 비엔날레 운영위원장 역임중앙일보사

1995-1997 사단법인 국악진흥회 이사장 역임문화관광부

1995-1998 서울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역임서울시립미술관

1995-2004 국립국악원 운영자문회의 자문위원국립국악원

1996-1998 제2회 광주 비엔날레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역임사단법인 광주 비엔날레

1997-1998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운영자문위원장 역임문예진흥원 

1998-2000<서울특별시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회 위원장 역임서울특별시 

               <사단법인 한국화예디자인학회> 논문심사위원 및 자문위원회 위원한국화예디자인학회 

              <사단법인 남북문화교류협회> 문화자문위원회 위원남북문화교류협회 

1999-2000 제3회 광주 비엔날레 전시기획위원 역임사단법인 광주 비엔날레

1999 북한아태재단초청 남한대표작가북한초청방북, 고구려 벽화 문화시찰아태평화위원회

1999 학술발표 <고구려 고분벽화와 현대 21세기 미술의 전망 -1999년 9월 5일 평양 강서 대묘중묘와 덕흥리고분 견학을 중심으로>, 성곡미술관서울

1999-2003 서울대학교박물관장 역임서울대학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역임국립현대미술관

              사단법인 전국대학박물관협회 운영위원회 위원 및 고미술 학술회 이사 역임전국대학박물관협회

1999-2001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 위원 역임서울특별시

1999-2000MBC 미술대전(’99MBCFINEARTEXHIBITION)>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역임문화방송

1999-2004<사단법인 한국유니세프 위원회> 문화예술인클럽 정회원한국유니세프위원회 

2000-2004<재단법인 일민문화재단> 이사일민문화재단

2000-2002<문화재위원회> 박물관분과위원회 전문위원 역임문화재청

2000-2001<대전시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대전광역시

2000-2003 《고구려특별전 - 의상, 장신구의 만남 - 역사와 의식, 고구려의 숨결을 찾아서》 《오원 장승업전》, 《독도잔경전》,<해동성국 발해전》 등 주요역사와 의식테마 전시기획서울대학교박물관

2001-2002<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 위원 역임서울특별시

              《2001동아미술대전》 운영위원문인화부심사위원장역임동아일보

             <서울시립미술관 개관준비기술위원회> 위원장 역임서울특별시

             《제2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심사위원 역임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2001-2003<평창문화포럼> 창립발기인 및 초대 회장 역임평창문화포럼 

2002-2003 서울대학교미술관 초대 관장 역임서울대학교

2002-2006 대한민국 국가표준동상, 영정 심의위원회 심사위원문화관광부

2002-2003 서울대교구 평신도협의회 문화분과위원회 분과위원장 역임서울평시도협의회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역임국립현대미술관

2002-2005<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운영위원회 위원내셔널트러스트 운동

2003-2003 서울시립미술관 《현장, 청계천프로젝트전》 운영자문위원회 위원장 역임서울특별시

2003-200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명예교수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미술관 운영자문위원회 위원서울대학교

              재단법인 석주미술상 운영위원회 위원장석주문화재단

              서울대교구 명동개발 특별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원회 부위원장서울대교구청

              사단법인 한국박물관경영마케팅학회 발기위원회 위원한국박물관경영마케팅학회

2004-2005 올림픽미술관 상임고문국민체육공단

2004-2006 상명대학교 석좌교수상명대학교

2004-2008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선임, 현재 전업화가, 한국벽화연구소 소장,<독도문화심기> 운동 본부장올림픽미술관 상임고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상명대학교 석좌교수

2006 30회 서울법원아카데미 이종상화백 강연회 <우리 그림의 이해와 오해개최서울고등법원서울 (12.4)

2007 독서클럽 이종상화백 초청강연회한국전자통신연구원대전

2007 대전광역시 주말대학 특강대전광역시청대전

2008 고구려문화연구회 창립 1주년 기념으로 명사를 초청 특강 <한국 미술과 고구려 문화>, 구리시청구리

2008 대전지역 기관장 워크숍 특강 <대전과 예술의 반세기>, 삼성화재연수원대전

2009 예술과 문화 특강 일랑 이종상 화백초청 포럼보성경찰서전남 보성

2009 대한민국예술원 이종상 선생의 명인특강’, 상명대학교서울

2009 사단법인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주최 특강, <창의력과 디자인 능력이 미래를 좌우한다>, 엠버서더호텔서울

2009 특강 <한국화의 정체성과 자생성 탐구>, 인천종합문예회관인천

2012 특강 <우리 그림의 오해와 진실>, 대한민국예술인센터 미술아카데미서울

2013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예술강연회 <동양화의 이해와 오해>’, 경복궁 자선당

2013 86회 강릉비전 금요특강이종상 화백 <강릉시와 화폐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강릉시여성문화센터강릉

2014 서울특별시 등록 사단법인 평창문화포럼” 이사장 취임평창문화포럼회관

2014-2015 한국가톨릭 대전교구청 신리성지순교기록성화” 제작, 1000호 순교기록화 12영정 5충남합덕신리순교미술관

2014 예술원 개원 60주년 기념 국제포럼 지정 토론한국프레스센터

2014 사단법인 국립민속박물관박물관회 고문국립민속박물관

2014 4회 그림으로 보는 한국문학 심사위원장문학의집 서울

2014 창덕궁대조전부벽화 모사도 심사 및 자문위원한국전통문화학교 산학협력단

2014 서초구립반포도서관 인문독서아카데미 인문예술과 通하다’ 특강 <한국의 예술 정신>, 10.25 서초구립반포도서관서울

2015 서울대학교 조형연구소 기획 『이종상한국미술아카이브(교육과학사)』 출간

2015 재단법인 일민문화재단 이사 연임

2015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협의회 이사 연임

2015 『매일경제 Luxmen 54호』, ‘통섭의 화가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인터뷰

2015 22회 석주미술상 운영위원장 연임심사위원

2015 《겸재 오늘에 다시 태어나다》 대표작가로 KBS- TV 김석 기자와 대담 방송 (5월 28)

2015 예총산하 전통문화재단 영재교육원 미술영재과정 4년차 이종상화백과 미술영재 독도 합동벽화 작업’ 재능기부 (8월 22)

2015 문화전문지 서울문화투데이 제4회 문화예술대상 심사위원장

2015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2016 9월 명사특강 <동양화의 이해와 오해>, 9월 22일 충남도청

2017 신리성지 순교미술관 개관식 참석, 3월 25일 당진 신리성지

2017 11회 대한민국미술인의 날 시상식 대상 수상, 12월 5

2019 《시ㆍ서ㆍ화 다시보기》 강연 <전쟁에 울고말에 울고>, 영인문학관서울

2020 서울문화투데이 수상자선정위원회 위원장

2021 『월간조선』, 3월호 인터뷰 게재

2022 “서울문화투데이 창간13주년 문화대상” 시상식 참석수상자 선정위원장

2022 K스피릿』인터뷰 게재

2022 초청 강연 <우리 문화의 자생성과 한국미술>, 5월 21대구예술발전소

2022 초청 강연 <예술과 창의적 경영>, 10월 31가톨릭 꽃동네대학교

2023 자랑스러운 서산인像 제 1호 선정

2023 초청강연 <한국문화의 자생성>, 6월 24천안 중소기업 커뮤니티센터

2023 초청강연 <화가 이종상을 만나다민족문화의 자생성과 문화영토론>, 11월 17국립 전주박물관

 

개인전

1975 제1회 UDT 초대 《이종상 초대전》, TheUniversityofTexasatDallasArtMuseum, 달라스미국

1977 제2회 동산방화랑 초대 《이종상 진경전》, 동산방화랑, 서울 

1980 제3회 중앙화랑 초대 《일랑 이종상전》, 중앙화랑부산 

1989 제4회 호암미술관 초대 《이종상회화전 - 한국화의 새도전 새벽화》, 호암미술관, 서울 

1990 제5회 가나화랑 초대 《FIAC’90,Grand-Palais, 파리프랑스

1991 제6회 가나화랑 초대 《이종상 원형상전》, 가나화랑, 서울 

1992 제7회 가나보부르 초대 개인전 《FIAC’92,Grand-Palais, 파리프랑스

1993 제8회 다니엘 탕플롱 초대 《L’imagedelaCore-GalerieDanielTemplon, 파리프랑스

1995 제9회 한림갤러리초대 《眞景의 源形을 向한 求道: 一浪 李鍾祥의 回鄕展》, 한림갤러리, 대전 

1995 제10회 마니프 초대 《’95 서울 MANIF- 이종상특별전》, 예술의전당, 서울 

1997 제11회 가나아트 초대 《’97NICAF, 동경국제전시장, 도쿄일본

1997 제12회 가나보부르 초대 《일랑 이종상》,GalerieGana-Beaubourg, 파리프랑스

1997 제13회 AFAA 초대 《LouvreCarrousel 설치벽화전》,HallCharlesVCarrouselduLouvre, 파리프랑스

1998 제14회 선화랑 초대개인전 《BASELARTFAIR메세 바젤스위스

1999 제15회 가나아트센터 초대개인전 《일랑 이종상, 한 그림 40년 원형상전》, 가나아트센터서울 

2000 제16회 MANIF 초대 《일랑 이종상전》, 예술의전당서울 

2001 제17회 MANIF 메인작가 초대 《일랑 이종상 원형상전》, 예술의전당서울

2002 18회 《한국에서 미학찾기(Search for Aesthetics in Korean Art), 가나아트센터서울

2003 19회 선갤러리 신축기념 초대 《일랑 이종상 작품전》, 선갤러리서울 

2003 제20회 서울대학교미술대학 초대 《이종상교수 정년기념전》, 서울대학교박물관서울

2005 21회 독립기념관 초대 《나라 사랑 독도 사랑 30이종상 특별전》독립기념관천안

2007 22회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 이종상전》대전시립미술관대전

2012 23회 《일랑 이종상 명품전》갤러리 한옥서울

2023 24회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일랑(一浪진경 천안》중소기업 커뮤니티센터천안

 

단체전

1962 제1회 《Saigon 국제미술전람회》,SaigonMuseum, 베트남 

1963 제1회 《동경국제미술전람회》, 上野の森美術館, 도쿄일본

1964-1980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66 제1회 《말레이시아 한국현대미술전람회》, 말레이시아

1969 《한국미술대상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73 《한국현역작가 100인 선정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74 《아시아 미술교류전》, 上野の森美術館도쿄일본

1975 《서울 ’70 그룹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76 《한국동양화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77 《‘77 신춘초대전》, 현대화랑, 서울

1978 제1회 《중앙미술대전》 초대 출품 및 심사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79 선미술창간기념, 《동서양화 34인전》, 선화랑, 서울

1980 제1회 《한국현대미술대전 중진작가 150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1 《한국현대수묵화전》 초대 출품 운영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1 ’81Drawing 초대전》,Brooklyn미술관, 뉴욕미국

1982 《현대작가 판화Drawing, 수묵Drawing전》, 명동화랑, 서울

1982 《한․중 현대회화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3 《한국현대미술전》,ViscontiaHall, 밀라노이탈리아

1983 《새한국화의 단면전》, 국제순회전, 미국, 영국, 독일

1984-1998 《’84’98 서울미술대전》 초대 출품 및 운영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84 《’84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4 《다화전》다화랑서울

1985 광복 40주년기념, 《현대미술 4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6 《아시아현대채묵전》, 국립현대미술관․문예진흥원, 서울

1987 신세계미술관 25주년 기념, 《25인 초대전》, 신세계미술관, 서울

1988 제24회 올림픽기념, 《국제현대회화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8 《1988 현대한국회화전 - 수묵과 채색을 통한 새시각》 초대 출품 및 운영위원호암미술관, 서울

1989 《1989 현대한국회화전》 초대 출품 및 운영위원, 호암미술관서울

1990 《19451990 판문점과 브란덴부르크전》, 시공화랑, 서울

1990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기념 한국미술 오늘의 상황전》, 예술의전당서울

1991 《’91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1 《한국현대회화전》,Zagreab,Yugoslavia 순회전, 유럽

1992 《한국현대미술전》, 선재미술관한국․下關시립미술관일본 순회전

1993 《기호와 상형전》, 현대화랑, 서울

1993 《현대미술 100년의 열정전》, 현대화랑, 서울

1994 《현대미술 40년의 얼굴전 - 오늘의 작가 20인전》, 호암미술관, 서울

1994 《SAGA》 국제판화전,PARC미술관, Paris,France

1994 《1994 현대한국회화 - 한국미술, 빛과 색》 초대 출품 및 운영위원, 호암미술관, 서울

1994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5 《한․중미술교류전》, 베이징중국

1995 《파리한국현대미술제》,Chuvent des Cordeliers, 파리프랑스

199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현대회화 특별전 -TheTigersTail,Mudima미술관베니스이탈리아

1996 《96 서울 베세토 국제서화전》 초대 출품 및 운영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6 《한국 추상회화의 정신전》, 호암미술관, 서울

1996 《문자의 세계전》, 예술의전당, 서울

1996-1998 《Korea平和美術展 ’96’98, 일본순회전, 도쿄일본

1997 《한국작가 3인전》 초대 출품,HallCharlesVCarrouselduLouvre,Paris,France

1997 《’97Korean 평화미술전》, 하라주쿠 빌딩 크레센트홀, 도쿄일본

1997 《SAGA》 국제판화전,EspaceEiffelBranly, 파리프랑스

1997 《MANIF3’97SEOUL- 특별전》 국제아트페어, 예술의전당, 서울

1998 《도쿄 베세토 국제 서화전》, 도쿄일본

1998 《동양화 -7인의 격조와 아취》, 노화랑서울

1998 《’98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국제현대미술전 -20세기미술전》,  부산시립미술관부산

1998 BASELARTFAIR, 메세 바젤, 스위스

1998 《세계 80인 화가전》 프랑스 월드컵기념기획,GalerieEnricoNavarra, 파리프랑스

1998 《대전 공간확산전》 대전시립미술관 개관기념 초대 출품대전시립미술관대전

1999 《한국 원로화가(북녘산하 기행전), 롯데화랑서울

1999 《남북 코리안 平和美術展 19992000도쿄일본

1999 《99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서울

1999 《프레스코, 그 천년의 미학》 초대 출품 및 학술발표성곡미술관서울

1999 《아! 대한민국 - 새천년 맞이 미술인 대축제》, 갤러리 상서울

1999 《夢遊金剛 - 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 초대 출품, 일민미술관서울

1999 《100년의 경계 - 오늘의 대전미술》, 대전시립미술관대전

1999 《’99 봄의 소리 -200인작가 작은 그림전》, 선화랑서울

1999 《’99 韓國現代美術 100人 招待展 (TheKoreanContemporary100ArtistsExhibition)》 종로갤러리서울

1999 《몽유금강 - 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 전》, 일민미술관서울

1999 《한국화 어제와 오늘전》, 한국미술관용인

1999 《세계 인권 선언 50주년 기념 미술전시회》예술의 전당서울

2000 《’00-01 송구영신 24인 초대전》, 예일화랑서울 

2000 《아시아평화미술전2000, 도쿄일본

2000 《페이스.원 - 미술평단 얼굴展(POSCOARTMUSEUM), 포스코미술관서울 

2000 《바다의 촉감(ArtforOcean2000-TouchtheOcean), 세종갤러리서울

2000 《한국현대미술의 시원(AnAspectofKoreanContemporaryArt-Inthe1950stothe1960s-)》 전 초대 출품,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00 《스스로 자 그러할 연(Whatissoofitself), 포스코미술관서울 

2000 《움직이는 미술관(THETRAVELINGARTMUSEUM),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00 《세계평화미술제전 2000(THEARTFESTIVALFORWORLDPEACE2000), 예술의전당서울

2001 《수묵의 향기 수묵의 조형 - 한․중․일 현대수묵화》,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01 《現代韓國美術の斷面》, 동경銀座미술세계 GALLERY, 도쿄일본

2001 《역사와 의식 - 독도》 현대미술특별전 전시기획 및 초대 출품, 서울대학교박물관서울

2001 《アジア平和美術展 2001-2002, 신주쿠, 도쿄일본

2001 《제1회 가나아트 크라프트 페어(1STGANAART&CRAFTFAIR), 가나아트서울

2001 《그림에 담은 산》특별전, 운보갤러리서울 

2001 《2001 서울미술대전 SEOULARTEXHIBITION, 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03 《제1회 북경 Biennale, 중화인민공화국 북경박물관베이징중국

2004 《예술원회원전》대한민국예술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서울

2005 12회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특별전 《풍수》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서울

2006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참여작가광주

2007 ARCO,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광주

2007 1회 《2007 한국 미술 화연(畵緣)전》가족 초대 출품한국미술센터서울

2008 부산비엔날레 특별전 《미술은 살아있다》초대작가부산

2011 대구미술관 특별개관전 《삶과 풍토》대구미술관대구

2012 《서세옥민경갑이종상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삼인삼색전》세종화랑서울

2013 《한국화를 빛낸 화사(畵師)_예술원 원로회원 3인 3색전》세종화랑서울

2013 《한국화를 빛낸 대한민국 거장들_예술원 작고·원로 회원 5인 5색전》경성화랑부산

2014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60주년 기념 어제와 오늘》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서울

2014 《한국미술협회예산지부 주최 ‘2014 전국 작가 초대》예산군 문예회관예산

2015 《한국정신 특별기획전》강릉시립미술관강릉

2015 서울대학교조형연구소 기획 《2015한국미술아카이브전》서울대학교미술관서울

2015 겸재미술관 초대 《겸재 오늘에 다시 태어나다》겸재미술관서울

201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특별전 《멈추고 보다》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15 고려대학교박물관, ()라미에르엘리독도문화심기운동 본부남북작가 독도특별기획전 《독도五感圖》고려대학교 박물관서울

2015 ()안견기념사업회 기획 문화체육관광부 후원 《제3회 -夢遊桃園 부채바람전》무계원서울

2015 《제36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16 2016 대한민국예술원 소장작품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16 《제37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16 《한국화를 빛낸 화사(畵師) 6’ 특별전》세종화랑서울

2016 《출향작가 7인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당림미술관아산

2017 《대한민국예술원미술전 중국특별전》주중한국문화원베이징중국

2017 《선화랑 40주년 개관 기념전 ‘40새로운 창을 열다 1부》선화랑서울

2017 《포스트모던 리얼》서울대학교 미술관서울

2017 2017 전남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목포진도 일원

2017 《제38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17 《한국의 진경-독도와 울릉도》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서울

2017 《대한민국예술원 특별전》국립아시아문화전당광주

2018 《대한민국예술원 특별전 대한민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59전》경주 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경주

2018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 일본특별전》주오사카한국문화원오사카일본

2018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목포문화예술회관 등 목포진도 일원

2018 《제39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19 《피카소에서 김환기까지: 20C 세계명작판화와 한국현대판화》양평군립미술관양평

2019 《시ㆍ서ㆍ화 다시보기》영인문학관서울

2019 2019년도 예술원 소장작품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19 《한국화-와유기》대전시립미술관대전

2019 《제40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19 문인 초상화전 《문인들의 얼굴이야기》영인문학관서울

2019 《문인들의 얼굴이야기》강연 <초상화와 영정화>, 영인문학관서울

2019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 UAE특별전》아부다비문화재단, UAE 아부다비

2020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주최 한국화 100년 특별전》울산문예회관울산

2020 《제41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20 낯익은 해후충남 작가 소장전》천안 아라리오갤러리천안

2020 《대한민국예술원 제주특별전》제주현대미술관제주

2021 《자문밖 미술관 프로젝트 PART 1가나아트센터서울

2021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서울

2021 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목포문화예술회관 등전라남도 일원

2021 《대한민국예술원 프랑스 특별전》주프랑스한국문화원파리프랑스

2021 《제42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22 《대한민국예술원 소장작품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22 《동음과 이음》동덕아트갤러리서울

2022 《생의 찬미》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22 《양평으로 온 한국 미술사》양평군립미술관양평

2022 《향(), 영원의 이름彩墨畵》전미술관 솔전주

2022 《제43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22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사람의 향기예술로 남다》광주시립미술관광주

2022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수집위대한 여정》부산시립미술관부산

2022 《대한민국예술원 미국 특별전》주워싱턴한국문화원워싱턴미국

2023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시대 안목》울산시립미술관울산

2023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웰컴 홈개화 開花》대구미술관대구

2023 《시간의 두 증명 모순과 순리목서울대학교미술관》서울

2023 《바람 속의 글·그림 2023 서화선 명품展》영인문학관서울

2023 고려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전시실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지천명知天命에 화답畵答하다’ 시간을 담은 공간예술을 담은 시간 특별전》고려대학교박물관서울

2023 《동녘에서 거닐다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23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경기도미술관안산

2023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이건희 컬렉션과 신화가 된 화가들》대전시립미술관대전

2023 《대한민국예술원 시드니 특별전》주시드니한국문화원시드니오스트레일리아

2023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조우》전남도립미술관광양

2023 《제44회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예술원 전시실서울

2023 《생의 찬미 KOREA IN COLOR: A LEGACY OF AUSPICIOUS IMAGES샌디에이고 미술관샌디에이고미국



2023 《추사를 그리다》인사동 한국미술관서울/예산군 이음창작소충청남도 예산군

 

수상내역

1961 제10회 《국전》 동양화부 특선

1962 제1회 《신인예술상》 최고특상(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상 수상)

 제11회 《국전》 무감사 특선(내각수반상 수상)

1963 제12회 《국전》 무감사 특선(문교부장관상 수상)

2001 1회 <서울대의 자부심상서울대학교 총장상 수상

2001 1회 대한민국미술대상 수상

2003 180회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대한민국 대통령 서훈

2003 1회 <안견미술대상안견현창사업회장상 수상

2003 <올해의 대능인상(大稜人賞)> 대전고등학교 총동창회장상 수상

2004 안견문화대상

2010 건국포장국가유공자

2015 광복 70주년 815경축 <1회 대한민국 나라사랑 실천 대상(Awards of Love Korea)>수상

2017 11회 대한민국미술인의 날 시상식 대상 수상

2018 33회 21세기대상 특별상 수상

2019 10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공로상 수상

2021 9회 독도평화대상 특별상’ 수상



2023 <자랑스러운 서산인상1호 선정


저서 (논문기고)

1971년 『신벽화의 연구』논문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보

1973년 『고대벽화의 사적고찰과 신벽화의 재료 및 기법에 관한 연구』논문한국민족문화논총

1978년 『Gantner의 Prefiguration과 동양미술의 근원형상)과의 비교연구』논문석사학위

1980년 『화실의 창을 열고』화문집경미문화사

1981년 『수묵론과 필묵론(동양화론에 나타난 필묵론을 중심으로)국립현대미술관회보

1983년 『중등미술교과서 I, II, III』문교부 검인정 교과서민족문화문고간행회

1986년 『벽화제작에 따른 재료와 기법』논고월간미술세계

1987년 『솔바람 먹내음』수필집민족문화문고간행회

1988년 『자생적 현대회화로서의 새한국화 그 총체적 전망』심포지움중앙일보호암미술관

1989년 『동양의 기사상과 기운론 연구』논문철학박사학위

1993년 『솔바람 먹내음 Ⅱ』수필집서울대학교 출판부

1993년 『고대벽화가 현대회화에 주는 의미』심포지움국립현대미술관

1994년 『고려 불화와 현대 동양화』심포지움호암미술관

1994년 『음양오행의 원리』심포지움호암미술관

1995년 『현대 한국화의 미학예술학적 문제』심포지움한국미학예술학회

1996년 『BESETO 한국 회화의 개별성』논고서울시립미술관

1997년 『한국화-자생성 검증을 위한 한해』논평문예진흥원 문예연감

1998년 『한국화-정체성을 통한 자신감의 획득』논평문예진흥원 문예연감

1999 J,S LEE La Force de la vague'(Patrice de la perriere)』논평, <UNIVERS DES ARTS>

1999년 『고구려 고분벽화와 현대 21세기 미술의 전망-고분견학을 중심으로』세미나성곡미술관

2000년 『21세기순수미술에서 본 디자인의 개념』강론국제디자인대학원

2001년 『한..일 수묵화의 이해』국제학술세미나국립현대미술관

2002년 『한민족의 빛과 색』논고서울시립미술관

2003년 『한국미술사에서 고구려벽화 위치』국제학술세미나고구려연구회

2004년 『고구려고분벽화의 기법과 연구 의의』세미나서울대학교 309호 세미나실

2004년 『한국 언어에 나타난 색채의식』강론대한민국 인력개발연구원

2005년 『오방오정색과 한민족의 색채의식 연구』세미나한국색채학연구학회

2005년 『한국회화의 조형적 비보풍수관』발제논고동북아역사학회

2005년 『한국산수의 낙원관』기조강연동아시아문화학회



2006년 『현동자 안견의 미술과 현대미술』세미나서산문화발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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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글

한국의 정신을 담은 화가 이종상,

한지와 벽화 사이현대진경에서 원형상(源形象, Urfiguration)으로의 여정

 

 서론

 

대한제국기부터 1990년대까지의 시기에 미술인들은 어떠한 고민을 하였을까급변하는 세계사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부여하고또 구축하며 갔을까

모더니니스트가 되고 싶은아방가르드가 되고 싶은 뜨거운 피는 자신의 뿌리를 어떻게 인식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을까전위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은 전통과 대척점에 있었던 것일까?1

 

최근 미술계에 불고 있는 단색화의 열풍을 보노라면 과거에 우리 미술이 서구의 현상과 맞물려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되짚어보게 한다. 역으로 한국의 미술사는 서구의 현대미술의 형성과정처럼 전통에 반하는 대척점에서 출발하지 않았음을 모두가 상기할 필요성을 느끼는 바이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일제의 문화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강박관념과 신식의 서구의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너무나 급하게 한국의 현대미술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서구의 현대미술은 민주주의 탄생과 함께 형성되었다. 모던아트는 더는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며, 작가의 의식과 철학의 반영임을 거듭 증명이라도 하듯 형성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현대미술이 양식적 변화를 꾀하며 거듭났지만, 이 또한 양식 이전에 이미 시대의 정신이자 사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미술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기보다는 서구 양식의 차용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20세기 우리 화가들이 만들어 놓은 업적과 평가가 서구의 것과 비교 설명되고 있는 지금, 한국화와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화의 대가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일랑 이종상을 투영해 이 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해 보고자 한다. 일랑 이종상(이하 일랑)은 그 누구보다도 역사의식이 투철했던 화가이다. 일제강점기와 25전쟁을 겪으며, 우리의 것을 알고 계승시켜 창출할 때에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며,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에 평생을 바친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벽화연구는 문화영토론을 바탕으로 한 고구려 문화 지키기 운동에서 비롯되었으며, 화가로서는 처음 독도를 그리면서 독도에 문화 심기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굳건히 하면서 작가의 화론을 뒷받침하는 핵심어와도 같은 ‘원형상’의 탄생을 예고했다. ‘원형상’은 ‘근원’을 의미하는데 ‘자생성’의 고민과 행위가 담긴 하나의 상(像)을 의미하는 원형(原型)이면서 사의(寫意)적 의미를 담은 진경(眞景)으로 해석되어 자연의 풍경이 되기도 하고 때론 해체되어 추상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이렇듯 이종상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60~90년대 한국화의 외연을 확장하고, 실험적 태도로 한국화의 현대화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하나하나 되짚어보면서 제대로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작가가 정립한 ‘원형상(源形象)’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탄생의 배경과 하나의 지점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작가의 전반적인 화업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이번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는 이종상 작가가 중요하게 여기는 대형 벽화인 원형상 시리즈와 비공개 드로잉 480여점을 비중있게 소개하기에 ‘가장 미시적인 것이 가장 거시적인 것과 통한다’라는 작가의 믿음과 실천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랑은 학창 시절, “액자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장발 교수의 뜻을 받들어, 본인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만들고자 애썼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적으로 재료를 파악하고, 기법을 연구해 일랑만의 다양한 재료적 기법을 탄생시켰으며, 대형 벽화와 무대막 제작으로 작품의 영역을 넓히며, 그 의미를 실천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랑은 전통적인 것 혹은 한국적인 재료를 찾아 본인의 작품세계를 이룬 작가다. 그러면서도 모더니즘의 현상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산수화나 수묵에만 머문 것이 아닌 동유화란 기법을 통해 벽화제작은 물론, 구상과 추상, 동양화와 서양화가 통합된 형태로 전통을 현대화해내는 ‘원형상’ 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일랑은 본인만의 화풍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역사화, 영정화, 성미술도 제작했다. 이는 본인이 가진 재능을 국가와 종교에 바친 인간적 도리, 즉 애국심과 신앙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부분을 ‘역사의식의 반영’이라 구분 지어 주요 작품세계의 또 다른 축으로 추가했으며, ‘벽화연구와 색채연구’는 ‘원형상’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전개된 것으로 함께 언급할 것이다. 이렇듯 60여 년간 이종상 화백이 보여준 작품의 변화는 크게 1. 현대진경, 2. 원형상, 3. 역사의식의 반영으로 3가지 특징을 통해 화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장르별로도 비교하며 영향 관계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2. 해방 이후 1970년대 동양화 그리고 이종상의 현대진경

 

1970년대이상범과 변관식을 통해 현대적인 진경산수는 주목받는다당시 이종상을 비롯한 일군의 화가들의 진경의 개념은 대상의 형사(形似)표현에 중점을 둔 사경(寫景)이 아니며특정한 지역성을 강조하는 실경(實景)도 아니고 다만 내 주위의 현실을 체험함으로써 그 자연과 하나가 되어 느낀 그대로를 그린다는 점에서 이상범변관식 세대와 차별화된다.2

 

일랑의 초기 진경은 전통적인 표현방식을 존중하면서 현대의 이념과 현상을 반영한 리얼리즘 미술에서 출발한다. ‘현대진경’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초기 작품은 진경으로 분류되는데 기본적으로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주변의 풍경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1) 초기 사실주의(리얼리즘) - 진실을 담은 미술 : 1961~1964

 

1961년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이종상은 대장간을 소재로 그린 <장匠>이 국전에서 특선하면서 또래 작가들과 비해 빠르게 등단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1962년 <작업作業>으로 내각수반상을 받았고, 같은 해에 말과 마부를 그린 <오()>로 제1회 5월 신인예술상으로 최고상을 받았다. 이어 1963년 <장비(裝備)>로 국전 3회 연속 특선을 수상하며 최연소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렇듯 여러 차례 국전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만 현시점에서 떠올리면, 젊은 나이에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는 작가로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작품들을 잘 살펴보면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 그리고 한국화란 매체를 통해 어떤 방향을 취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한국화를 전공하게 된 계기를 다시금 언급하면 수많은 그의 저서와 육성을 통해 접한 것처럼 우리의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소명이 컸다.

1800년대 중반, 이미 유럽에서는 산업화와 시민혁명으로 노동자와 시민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산업노동자나 농민은 사실주의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사실, 혁명을 반영하기보다는 그 시대의 풍경이면서 현실의 반영으로 ‘이상 미’를 추구하는 서구 미술계의 정통적인 주제 의식에 대한 반기이자 미학적 혁명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김홍도와 신윤복을 통해 풍속화가 조선시대 후기 바로 1700년대 후반에 유행했으며, 수묵화란 장르를 통해 작가의 독립된 자유의지를 미술에 반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초 이종상의 <장>, <작업>, <장비>와 같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20대의 젊은 노동자들을 그리고 있다. 작품들은 단순히 당대의 생활풍습을 그리거나 해학적 의미의 풍속화가 아니라 시대상을 비판하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 1960년 4.19혁명에 가담한 이종상은 당시 유도부 출신으로 시위대의 선두에 있었고 이때 총상을 입어 종로경찰서에 검거되는 등 연금되기도 했었다. 이렇듯 젊은 청년들이 쇠를 녹이고 망치로 두드리는 모습은 현실 풍경을 넘어서 젊은이의 열정과 의식을 담은 새 시대의 혁명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은 이러한 주제의 그림이 아주 개혁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으나 1960년대 국전에 출품되는 작품들이 주로 미인도나 산수화, 화조화, 영모화를 그리는 풍토였다고 하니, 이종상의 그림은 전통에 안주하는 그림이 아닌 진취적인 시대상을 대변하는 리얼리티 미술로 읽힌다. 

 

 

2) 현대진경_독도 그림의 시작 : 1977~1987

 

일랑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유화를 배우다가 청전 이상범의 영향을 받아 “내 것을 알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국화로 전향하게 된다. 이후 그의 작품은 진경산수와 벽화연구라는 두 축으로 진행되어갔다.3 일랑은 최초 진경의 개념을 실경의 ‘형(形)’을 유지하면서 진경에 ‘심상(心像)’을 반영한 산수화로 전개시킨다. 그 예가 <남산> 시리즈와 <독도> 시리즈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나는데, 먼저 <남산> 시리즈는 도시화로 인해 점점 훼손되어가는 자연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1977년 제작된 <남산2(환경고발)>은 스모그 현상이 반영된 도시의 풍경이나 고압선이 산허리로 지나가는 교외의 풍경으로 이전의 전통적인 산수화와는 다르다. 이 작품들은 즉흥적인 인상이 아니라 그 시대의 풍경이자 현 세태에 대한 고발이다. 이것에 바로 실제 풍경을 그려 ‘형’을 유지하면서, 세태의 진실을 담은 이미지이자 작가의 뜻이 담긴 ‘상’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종상의 산수화는 현대진경의 개념에 다가간다. 

 

일랑의 현대진경 개념은 <독도> 시리즈에서 변화를 꾀한다. 1977년 그는 자신의 개인전 제목을 <<이종상 진경>>전으로 명명하며 독도를 그린 작품들을 중심으로 발표한다. 이종상은 전국을 다니며 산천을 그렸는데 역사적으로 독도 그림을 볼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독도를 방문해 그 현장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랑은 독도를 그린 세계 최초의 화가가 되면서 현재까지 600여점이 넘는 독도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일랑은 ‘문화적 점유가 실질적 점유’라는 문화 영토론의 관점에서 독도의 이미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 일랑의 독도 그리기는 ‘독도에 문화 심기’ 운동으로 이어져 일본과의 영토분쟁에 실마리를 제공한다면, 고구려벽화 연구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맞서 ‘고구려문화지키기운동’으로 일랑의 나라 사랑과 역사의식을 알 수 있다. 또한, 작가이면서 실질적으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실천의 예를 느낄 수 있으며, 독도를 통해 독보적인 ‘현대진경’의 미美를 창출하게 된다.

 

3) 진경의 정신(사의寫意적 풍경) : 1980~1989

 

진경을 거쳐 <기氣> 시리즈로 전개되는 일랑의 그림은 한국화의 사의적 의미를 담고, 추상의 경향을 띠게 된다. 여기서 사의寫意는 바로 기氣로 자리바꿈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광수가 이미 언급했듯이 ‘동양의 회화는 오랜 세월을 두고 그림의 뒷면에 감추어진 생명의 충동에 관심을 기울여 왔듯이’ 일랑의 한국산수의 연구결과가 ‘기’ 시리즈로 나타났다고 귀결한다. 그러면서 일랑은 자연스럽게 원형상 시리즈로 그 깊이를 견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독도시리즈에서 <기-독도>란 명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생명을 형성하는 원질이 다름아닌 ‘기’라고 예부터 동양에선 정의해 왔고 이를 어떤 것보다 가장 우위개념으로 파악해 왔다.’4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은 한국미술계의 1980년대, 국내에서 추상의 경향은 꼭 회화의 최고봉처럼 느껴지던 시기지만 일랑은 당시 미술의 흐름이자 현상에 쉽게 타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도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그의 성품은 스스로 깨닫고 인정할 수 있어야 실행에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는 서울대 교수였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동국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해 공부하고, 석사 논문으로 <간트너의 선형상(prefiguration)과 동양미술의 근원형상의 비교 연구(1977년)>을 집필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이종상의 진경산수에 대한 견해는 형사를 중심으로 한 실경산수와 달리, 정선의 진경산수를 사의적 산수로 정의하였다는 점에서 독자적이고 주목할 만하다.’5 20세기 문인화론이 사의성을 강조하며 표현주의를 통한 추상의 길로 나아가듯, 일랑의 진경산수화도 ‘기’시리즈로 넘어가면서 단순한 추상성을 보여주는데 1981년 그린 <무묵(無墨)>의 화제에 담긴 글처럼 그림의 이면을 통해 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바로 진정 그림에 담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품의 의미이자 보는 방법을 언급한다.

 

운수평(惲壽平)이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마음 쓰는 것이 필묵으로 그린 곳에 신경을 쓰지만, 옛사람의 마음 쓰는 것은 필묵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혹시라도 능히 필묵이 이르지 않은 곳에서 옛사람의 마음 쓴 것을 본다면 신명에 뜻을 비겨 재주보다 발전이 있을 것이다. 필묵은 본래 정이 없어야 하지만 필묵을 운용하는 사람에게는 정을 없게 할 수는 없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정을 유지하여야 하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정이 생기지 않게 할 수는 없다.”

 

일랑은 필묵 너머의 생각과 감정 이입으로 만들어지는 풍경을 사유하는 지점을 언급하면서 추상이 담고 있는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같은 시기 <무묵> 외에도, <최루탄에 찌든 캠퍼스>(1981), <무언가 바뀔 것 같은 조짐>(1981)과 같이 현실에 관한 반응이자 모습이 담긴 추상화를 제작한다. 1960년대 ‘묵림회’ 이후에 다시 수묵이 지닌 조형성을 주목하기 시작한 집단적 움직임은 1980년대 홍익대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수묵 운동이었다. 하지만 1980년은 민중미술이 태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신군부가 등장하고 5.18 광주 민중 항쟁’이라는 비극이 있었다. 당시 대학에는 학생운동으로 캠퍼스가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일랑은 <최루탄에 찌든 캠퍼스>(1981), <무언가 바뀔 것 같은 조짐>(1981)과 같은 그림을 추상 언어로 표현하였다. 프랑스에서 앵포르멜의 표현과도 같이 현실을 외형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을 ‘현전의 형이상학’으로 표현한 점에서 중요하게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현실의 풍경에 화면의 주관성을 개입시켜 표현적 추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작품명이 직설하는 것처럼 무거운 현실의 반영이나 그림은 너무나 추상화되어 있어서 두려움과 같은 심리적 압박감을 야기하듯 더욱 강렬하게 현실을 표현한다. 이렇듯 1980년 이전은 현대진경이 다름 아닌 형태를 통한 표현이었다면 1980년 이후에는 추상화된 ‘진경’에 이른다. 일랑은 ‘진경은 보지 않고 그릴 수는 있으나 느끼지 않고는 그릴 수가 없다. 따라서 진경은 무엇을 그렸느냐기보다는 그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그렸는냐’가 문제라고 언급했다. 현실이 반영된 추상화된 위 작품들과 <무묵無墨>을 통해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현존의 가치를 일깨우는 일랑의 진정성이다. 적어도 자신의 세계에 매몰되거나 형식주의 미학에만 치우치는 성향의 작가가 아닌 자신과 주변, 자아와 타자를 연결하는 세계 내의 존재, 인간적인 따뜻함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일랑의 추상의 경향은 단순히 모더니즘의 흐름에 화답하는 논리에서 빚어진 결과물이 아닌 어디까지나 현실의 반영, 바로 리얼리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입체파 미술이 추상화로 나아가듯, 이종상의 현대진경은 사의寫意를 강조하며 기(氣)시리즈로 넘어간다. 이는 한국적 모더니즘을 이룩하려는 하나의 시도로도 보인다. <기氣-독도>, <기氣-맥脈>, <기-인人>, <기-산山> 과 같은 제목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흉중구학胸中丘壑6의 일랑 자신의 세계로 들어서는 계기를 제공하는 연작이다. 이는 한국 산하의 정수를 외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이고 내부적인 에너지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진경정신은 지나간 역사적 유물이 아니며 항상 새로운 시대 미감을 요구하는 화가 자신의 심상의 거울이라고 진술한’7 작가의 말을 떠올릴 수 있겠다.

 

... 확 비상을 해야 되겠는데어떤 계기가 있어야 가속도가 붙는데 영 안 붙는 거예요그때가 화가로서 고빗길이었어요진경그림사실적인 그림이 한창 잘 팔리고 그 다음에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몰라서 방황하고 있을 때였죠그 뒤에 제가 독도그림을 계기로 도약했어요안 팔리는 그림으로그러다가 호암갤러리 초대를 받게 되고 또 그해에 법원에 벽화를 그렸지요그때 제가 힘껏 비상을 했지요다 집어던지니까 그림이 확 바뀌더라고요그러면서 원형상 시리즈를 발표했고,...8

 

일랑은 80년대 말, 본인의 심경을 위와 같이 회상한다. 그리고 1989년, 서울지방검찰청 대벽화로 <정려(靜慮)>를 제작, 이전에 그려진 <기-독도>시리즈와 닮았으나 좀 다르다. 80년대 초에 선보인 <기-독도>시리즈는 89x89cm의 사이즈로 순지에 수묵으로 그려졌다. 이 작은 섬은 그 형상이 가진 에너지만으로도 액자 너머로 우리의 눈과 내면을 기운차게 한다. 단순하지만 담백하고 청초하게 그려진 섬은 현대적이면서 세련돼서 지금도 우리의 미감을 자극한다. 단, 작품의 크기는 분명 벽화 <정려靜慮>와 비교된다. 일랑은 <정려靜慮>를 바라봄에 있어, 작품명처럼 보고, 조용히 생각하라고 당부한다. 높이 6m, 가로 7m의 대형 벽화로 제작되어 시각적 체험을 넘어, 시공간에서의 기운생동을 경험하게 하는 이 작품은 시각적 움직임을 넘어 공간으로의 확장성을 확보한다. 시각적으로는 안에서 밖으로 확장됨과 동시에 정면에서 섬의 내부에서 섬 너머로 더 멀리 다가가게도 한다. 같은 해 일랑은 그의 박사논문을 발표했는데 논문의 제목은 『동양의 기氣사상과 기운론氣韻論 연구』이다. 이 작품은 원형상으로의 연장이자 전환을 의미한다. 

 

 

 3. 원형상 그리고 벽화

 

일랑의 <원형상(源形象)>연작은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다. 이 땅의 산하를 단순하게 표현한 고지도처럼 기호, 상징적 의미를 가지면서도 추상화되어서 구체적인 형상이 부여되기 이전의 모습, 일종의 카오스 상태에서 최초로 산천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모습으로 보인다. 천지를 닮아 ‘하늘과 땅의 기()’라고도 해석되어왔다. 바로 땅에 깃들인 하늘의 진리를 궁구하는 풍수지리 학문과 맥을 같이하며 원래 ‘기氣’ 시리즈에서 추구했던 본질에 대한 천착과 일관된 맥락을 가진다.

원형상의 개념은 벽화연구를 통해 더욱 가시화된다. 회화의 기원 양식을 추적하려 했던 작가의 의욕은 이론습득뿐만 아니라 재료기법 및 색채 등을 우리의 전통적인 부분에서 찾아내고 적용해서 현대화하려했다. 특히 닥지화, 장지화와 함께 동유화는 재료 연구를 통해 개발해낸 일랑만의 독보적인 회화적 기법이기도 하다. 이에 ‘원형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에 앞서 일랑의 벽화연구와 기법에 관해 살펴보고 원형상에 다가가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원형상의 절정은 <원형상 97061 - 마리산>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 홀에서의 설치 벽화처럼, 장소성 혹은 현장성에서의 대형 벽화프로젝트라 하겠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랑은 작품이 설치될 장소를 이해하고, 장소와 하나가 되게 어울리는 바탕재와 재료를 선택해 제작한다. 일랑은 또한 그만의 연구와 과학적 실험 그리고 실천으로 재료기법의 대가가 되었고, 역사의식과 한국적 정서까지 작품 속에 녹아내 표현하는데 한 마디로 탁월한 작가이다. 그는 장소가 가진 내용적 의미는 물론, 장소의 난점을 잘 파악해 작가의 역사의식과 정신을 담고, 작품의 재료적 특징을 잘 반영해 작품과 공간이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는 많은 이들을 감탄하게 했고, 1997년 루브르 카루젤에서의 당시 전시는 확실히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심도 있게 작품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이번 장은 1) ‘벽화연구 및 기법 모색기’를 시작으로 2) ‘원형상을 찾아서’, 3) ‘환경과 리듬이 태어나는 곳, 원형상(源形象,Ūrfiguration)’이란 내용으로 나눠 언급할 것이다.

 

 

1) 벽화연구 및 기법 모색기

 

고구려벽화를 모르고 한국미술을 말할 수 없다그만큼 고구려벽화의 재료기법 안에는 회화의 모든 원리와 한국미술의 자생적 요체가 녹아있기 때문이다.9

 

우리 문화와 미술의 근원과 기원을 탐구하려는 일랑의 의지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시작된다. 액자의 노예가 되지 말라던 장발교수의 뜻과 학창시절 건축수업에서 얻은 지식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접착제에 관한 연구는 무접착의 동유화(銅釉畵)기법을 만들어내는 근간을 담고 있다. 특히 1968년에 만들어진 <시원(始原))>은 고대벽화를 연상시키는데 신벽화(혼성벽화: 생석회, 백시멘트, 몰탈, 모래, 스텐망, 한화동, 적철광, 산화철)로 제작하기도 했다. 아직 원형상이 탄생하기 훨씬 전이지만 벽화연구는 학생일 때부터 진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부터 80년대 말까지 국전에 출품한 작품들은 대부분 고분벽화의 소재와 기법으로 작업한 작품들로 구성된다.10

 

나는 30여년 전 미술대학 시절에 지구상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그림들이 모두 유기접착제를 매개로 하여 그려짐으로써 변질과 탈락 현상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무접착제의 회화 기법을 연구하기 위하여 오히려 접착제에 관한 연구를 시작함으로써 반영구적인 벽화를 그려 낼 수 있는 무접착제의 동유화기법을 만들었다.”11

 

일랑에게 벽화제작은 벽화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구려벽화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에 실린 이종상의 글을 살펴보면, ‘벽화는 원래 원시 동굴 속에서 조지(粗地)벽화로부터 출발한다.’고 쓴다. 그럼 조지벽화는 무엇인가? ‘석회 동굴의 조지벽에 숯, 그을음 혹은 단단한 꼬챙이 등으로 천연의 퇴적토를 수간(水干)하여 접착제 없이, 그냥 요철면에 발라 끼워 넣은 기법이다.’12 일랑은 이 기법에 칠보기법을 접목시킨다. 동유화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칠보기법을 확장시킨 미술 장르다. 동판에 돌가루나 유리가루 등을 얹은 뒤 유약을 바르고 800℃의 고열로 수차례 구워내면서 밀착시키는 일반적이지 않은 작업이다. 이렇듯 일랑에게 재료와 기법 연구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풀어내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바로 서구의 이즘에 편승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넘어 자기 주체성이 반영된 신념을 지닌 예술가였음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랑은 스스로 시류에 편승하는 화가가 아니라 뚜렷한 의식과 목적을 가진 화가이길 원했다. 이것이 어쩌면 지금 그를 벽화 화가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업적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곳곳에 제작 설치된 그의 대형 벽화들이 이를 반영한다. 

 

“현장성 없이 벽화를 화실에서 창작하여 큰 벽에 걸었다고 벽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벽화는 Mural Painting이다그래서 일반회화와 같이 높은 예술성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 환경 속에서 영속적인 보존성이 뛰어나야 한다.”13

 

일랑은 장소의 물리적 특징이나 상황을 이해하고그에 부합하는 재료와 제작방법 등을 연구해 장소에 맞는 작업을 이어간다바로 삼성본관 빌딩 내부의 로비 벽화가 화강석에 <장생(長生)>(1983)이란 테마로 그리고 만들어졌다면윤봉길 기념관의 로비 벽화 <야학(夜學)>, <의거(義擧)>(1992)는 기록화로 덕산 윤 의사 야학당 뒷마당에 있는 대나무를 잘라 만든 파죽필로 장지에 그려졌다태백산맥문학관 외부에는 전국에서 채집한 다섯가지 색의 자연석으로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2007)이란 타이틀의 옹석벽화를 선보인다초대형 돌 벽화로 화합과 통일의 염원을 둔 작품이다이어 대법원의 <원형상 9502-정의>(1995) <원형상 9501-평등>(1995), 서울법원종합청사의 벽화 <근원형상통일 염원(念願)>(1989) 모두 법원이란 장소가 가진 의미를 생각하며 작품들이 제작되기도 하였다그래서 일랑의 말처럼 장소에 맞는 작품이란 그 장소에 적합한 내용은 물론건물의 특징과 주어진 환경에서의 보존성과 현장성이 연결됨을 알 수 있다벽화는 미술가에게 총체적인 것을 요구하고 과학적인 실험과 연구 끝에 제대로 된 벽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이것이 그가 말하는 ‘과학과 예술의 통섭이 아닐까 싶다

 

일랑은 또한, 이론적으로도 고구려벽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펼친바, 여러편의 논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고구려벽화는 인류 최초의 미술 흔적이자 현존하는 우리 미술의 시원으로, 일랑은 현대미술의 표현 양식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벽화에 닿아 있음을 주장하였고, 한국화 자체가 고대벽화에서 연원된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80년대 말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닥지화’나 ‘장지화’ 그리고 ‘동유화’는 다름 아닌 재료 연구를 통해서 한국적 근원의 자주성을 확보한 ‘원형상’을 구축하려 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닥지화와 장지화, 장판지화는 그림의 바탕재가 되어 그림의 변화를 꾀했고, 동시에 채색화가 일본만의 고유한 것이 아닌 조선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밝히고자 했다. 35년간 일제의 것으로만 취급된 채색화 때문에 우리는 의도적으로 채색화를 멀리하고 수묵화만을 우리의 것으로 지키고자 했던 시류에 일랑은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그 벽화에 쓰인 색채는 물감을 사서 쓰는 것이 아닌 자연에서 얻은 천연재료로 물감을 만들어 자유로운 운필의 효과를 활용한 작품들을 탄생시킨다. <원형상 88013-평화의 땅>(1988)과 같이 장지에 수묵 천연채로 제작된 작품들이 그 예다. 동유화는 황산, 염산, 왕수나 이런 용해제로 철을 녹여서 그 녹인 물로 그린 다음에 산성과 알카리를 제거해서 중화반응 일으킨다. 그리고 접착제 역할을 하는 유기질이 배제된 상태에서 무기질 화면을 불로 접착하면 썩을 것이 남지 않은 상태 즉 산화되지않는 상태의 동유화가 탄생하게 된다.14 이렇게 일랑은 고대벽화의 단점을 보완해 독보적인 무접착제 벽화기법인 동유화(銅釉畵)기법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2000년대 초, 색채에 관한 일랑의 연구를 빼놓을 수 없겠다. 당시 한 색채학 발표회에서 한국의 색채어휘가 비과학적이라는 문제 제기를 접하면서 이에 대한 반박이자 우리의 색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일랑 스스로 연구하기에 이른다. 일랑은 ‘한국의 전통 색채의식을 살펴보려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사상적 배경에서 형성된 오방위, 오방색의 원리를 알고 변모 과정과 순환의 의미 등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일랑의 색채에 관한 연구가 언어학적 접근 방법으로 전개되어 아주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유채색과 무채색을 합해 오방색이라는 다섯가지의 원색 이름만 만들어 시,공간의 종합적 개념으로 사용해 왔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까망은 명사로 모두 고유한 우리의 색이름이고 오정색(五正色)이며, 빨간, 빨갛게처럼 각각 형용사나 부사로의 어미변화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빨갛게, 벌겋게, 시뻘겋다, 붉다, 발그레, 볼그레, 불그덱덱, 불그죽죽, 불그스럼 등 색질을 자유자재로 표현 할 수 있는 가변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 감산혼합된 색명들은 하늘색, 배추색, 수박색, 쥐색, 쪽빛, 남빛, 우유빛처럼 사물의 이름 끝에 한자로 색(色)자나 한글로 ‘빛’자를 붙여쓰며, ‘안색, 형색 혹은 불빛, 햇빛, 낯빛, 눈빛처럼 가산혼합된 광선은 우리의 건강이나 심기(心氣) 등의 비가시적인 내면까지도 섬세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일랑은 우리의 색채문화는 분석적이기보다 오히려 종합적 성향을 가지며, 즉물적 대상으로서의 색상이 아닌 자연과의 동화를 삼으면서 물(物) 이상의 색채관을 가진 민족임을 주장한다.’15 이러한 색채연구가 그의 <원형상>연작에 그대로 오방위와 오방색이 반영되어 사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벌겋게 보이면서 시뻘겋고, 거무죽죽하며서 노란 대지가 꿈틀거리듯 리드미컬하게 춤추는 대지의 풍경이 보인다.

 

 

2) 원형상을 찾아서 전기(1988~1995) 

 

산수화는 그 나라의 지리적 풍토나 지세(地勢)에 많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더욱이 천혜의 수려한 산세(山勢)와 유달리 드높고 짙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사계(四季)가 정확한 풍토 속에서 농경 생활을 영위해 온 한민족은 외래사상이 이입되기 전부터 자연물의 대상성을 높고 큰 산에 두어 신령시(神靈視)해 왔다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민족의 초기 산수화에 애니미즘적인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16

 

일랑은 1976년 그의 글, 「산수화의 한국적 낙원관」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민족의 자연관과 지형의 특색이 반영된 해석을 통해 그가 겸재를 극복하고자했던 현대진경부터 이후의 원형상까지 고지도, 지형도, 우리의 산천을 닮아 있다. 일랑의 <원형상>은 드론이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찍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다만 사실적인 풍경이 아닌 추상적이고 필획에 의한 단순한 형태의 움직임이 음율을 전하듯 리드미컬하다. 카오스적 상태에서 최초의 지형이 만들어지고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처럼 혹은 1989년 병풍으로 제작된 <원형상-여민락與民樂>에서 보는 것처럼 지형들(병풍)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며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처럼 낯설지 않다. 전시장 내 설치된 <원형상-여민락>의 구조적인 형태는 미국의 미니멀 작가 로버트 모리스의 개념적 조각<무제(L자 빔) Untitled(L-Beams)>(1969)을 관찰할 때처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을 통한 패턴의 인식을 지(知)적 해석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미니멀 아트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그건 인지되어 있지 않은 그림, 바닥에 놓인 병풍의 시작면부터 먹선을 따라가게 되는 상황, 우리는 이내 그림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형상-여민락>이 내뿜는 에너지로 공간이 휩싸이는 것과 대상(L자 빔)을 공간에서 인지하는 것과는 분명 대비되는 것이다. 그건 현대적 표현과 설치가 이뤄졌다고 해도 일랑에게 내재된 자연관과 회화적 방법이 항상 작품에 내제하기 때문이다.

 

원형상에 대한 개념은 일랑의 자생회화론이 마침내 근원형상과 해후하듯 인간이 자연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예술이 사람들과 함께할 때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 안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일랑은 그의 벽화, 무대막, 성미술이 그 장소에서 우리와 더불어 자연스럽길 바란다. 이는 산수화가 가진 특징이며 한국 사람이 한국화를 바라볼 때 느끼는 보편적이 느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랑의 <원형상>시리즈는 여민락에서 출발해 공간 특정적 예술, 장소 특정적 작품들은 하나의 리듬이 되어 공간을 점유하게 된다. 그런 지점에서 일랑의 <원형상>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카오스의 미학, 해체미학, 바로 리토르넬로를 연상시킨다. 이들은 리토르넬로를 통해 구조주의 이후 해체주의가 현대미학의 한계 즉 형식주의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일랑의 초창기 원형상을 보면 제일 먼저 카오스가 보인다. 그리고 작품 전체를 주시하다보면 산맥이 보이고 물길이 보인다. 분명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추상으로 진행되어지지만 강길과 산맥이라는 형상을 발견하게 한다. 그러나 이후 전개되는 원형상은 강선학의 표현처럼 대상이 코드화되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렇다면 프랑스인이나 미국인도 일랑의 원형상을 보고 산천을 읽어낼 수 있을까! 이 부분, 분명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한국인의 눈으로는 섬세하면서도 간결한 풍경, 우리네 산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피카소가 입체주의에서 추상으로 더는 가지 않고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과 의식적으로 닮아있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é Ortega y Gasset “모더니즘은 자기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비인간화 되었고, 리얼리즘은 자기 스타일은 버렸지만 인간화하였다”17라고 쓴다. 이 말은 서양미술사에서 모더니즘의 승리는 더 이상 “미”는 이상적인 미를 추종하는 것이 아닌 작가의 철학 혹은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반영되어야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추상의 길을 열었지만,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며 화폭에 대상의 실루엣을 남김으로써 완전한 추상의 길은 포기한다. 그러나 미술의 무대가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추상미술은 미의 기준이 형식주의 미로 사로잡힌다. 우리는 이미 1780년대 김홍도와 신윤복과 같은 풍속화가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독특한 해석을 접했다. 이는 재현의 미, 진실을 담아내는 예술가의 철학이 반영된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사실주의 작가 구스타프 쿠르베보다 80년은 앞선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일본에 의해 우리의 것이 잊혀지고 때론 거부당해졌다. 우리의 과거사를 들여다보면, 유럽이 산업화와 종교개혁 그리고 시민혁명으로 과거의 것을 청산하고 전통을 부정하면서 근대미술이 형성되는 식의 이슈가 우리에겐 없었다. 오히려 일본에 의해 근대화가 흡수되면서 우리의 전통이 끊어지려는 찰라에 한국에서는 당시 김용준과 같은 의식있는 예술가들에 의해 한국의 정체성, 민족성이 끊임없이 요구되어온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이종상의 원형상은 한국적이면서 작가만의 예술세계를 느끼게 하는 독특함을 지닌다. <원형상>의 추상화는 단색화가 가지고 있는 도식화되고 패턴화된 한계와 완전히 다른 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일랑의 추상이 서구의 추상화와 다른 지점은 일랑 스스로 밝힌 것처럼 <원형상(源形象): Ūrfiguration)>의 ‘우어(Ūr)’란 이치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태초에 빛이라는 에너지 바로 기가 생겨나서 형성된 산천, 그 곳에서 원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듯 존재의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변화가 일어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3) 환경과 리듬이 태어나는 곳벽화_원형상(源形象Ūrfiguration)

 

카오스로부터 <환경> <리듬>이 태어난다이것은 고대의 우주개벽설에서 다루던 문제다카오스도 방향적 성분을 갖고 있으며이것이 혼돈 자체를 황홀하게 만든다.18

 

동유화의 탄생은 일랑을 국내 미술계의 장르별 분류법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의 동유화 기법은 기존의 재료 사용의 분류체계로 봤을 때 한국화도 서양화도 아닌, 독자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류에 익숙해져 버린 한국미술계에 이러한 작가의 제안은 어찌보면 낯설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해석은 이종상의 단체전 참여 이력을 찾아보았을 때2000년 이후로는 전공별로 나뉘어서 개최되는 서울미술대전과 같은 한국화전시에 이종상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한국화는 한지 위에 수묵 혹은 채색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즈음 같이 작품의 다양성이 수용되는 시기에도 일랑의 작품을 개념적으로는 전통적이라고 판단해버리면 더욱 갈 곳을 잃은 느낌이다. 분명 일랑의 작품 세계는 한국적이나 매체적 특징을 살펴보면 독보적이다. 사실 현대미술이 요구하는 작가의 독창성은 여기서 확보된다. 그만의 기법과 내용으로 타작가하고는 다른, 그만의 작품 스타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 작가의 반열에서 소외된 느낌이다. 왜일까! 바로 단색화가 아니기 때문 아닐까! 일랑의 원형상은 오방색이 반영된 전통에 기반한 채색화다. 김환기의 1938년  <<론도>>를 떠올려보자.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한 정형시의 형식이자 음악 형식인 론도는 미술과 만나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화면 구성으로 율동적이지만 정적이고 단순하다. 혹은 김환기의 또 다른 작품<<우주(원제:05-IV-71 #200)>>(1971)는 어떤가. 소위 단색화 작가들로 분류되는 작가들의 작품은 김환기의 작품명이기도 했던 ‘론도’처럼 2박자의 편안하지만 단조로운 춤곡을 닮아있다. 그러나 이종상의 원형상은 ‘리토르넬로’19를 닮았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생의 찬미>>전에 소개된 <원형상 88117 – 흙에서>(1989)처럼 리드미컬하면서도 빠른 템포(붓터치)로 에너지를 내뿜으며 그 특징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기(氣)가 느껴지고, 선율이 느껴진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그들의 저서 천개의 고원』에서 언급하기도 한 이 개념은 “카오스의 한 가운데서 시작을 알리듯 우주의 개벽설”과 닮아있다. 우리는 전시장에서 일랑의 작품을 만나 리듬을 촉발해 ‘영토화’를 경험한다. 다시 말해 “새는 지저귐으로 자기 영토를 나타내고, 자음과 모음이 합쳐저서 언어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적 힘”이라면, 미술은 주어진 환경에서 에너지를 발산할 때 영토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랑의 원형상은 색채와 실루엣, 선과 같은 고유한 질質을 통해 영토화를 이루고, 이 영토화는 바로 예술을 통해 창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벽화연구에서 원형상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일랑의 작품세계를 지배해왔던 것은 근원에 대한 동경과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료, 색채, 벽화에 관한 연구와 다양한 실험과 실천은 공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면서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이며 ‘공간 특정적(space-specific)’인 작업으로 현장성을 중시하는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1997년 루브르박물관 카루젤 샤를르 5세 홀에 전시된 초대형 한지 설치벽화는 대희년을 맞아 한-불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며 제작되었다. 당시 초대형 한지 설치벽화는 원래 그 장소에 있었던 14세기 중엽 카루젤 성벽과 만나 작품의 내용이 깊이를 더해 완성된 설치미술작품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1866년에 일어난 병인양요에서 출발한다. 천주교 선교차 조선에 온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살해당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 1,500여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방화, 약탈, 부녀자 겁탈 등의 만행을 저질렀던 사건이다. 그리고 1997년 일랑은 이러한 내용으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 홀에 대형 성벽을 차경借景의 원리로 적용해 강화 성벽으로 도치시켜버린다. 그림은 성벽의 위로 1866년 강화도에서 일어난 충돌의 이미지가 71미터의 한지 위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데, 프랑스 함대의 공격과 파괴된 사실적인 풍경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거쳐 마리산과 떠오르는 태양의 이미지가 있는 추상적인 풍경으로 전개된다. 이어 빛의 이미지가 원형상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그림이다. 특히 작품은 전통 창호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배면(背面)조명 기법으로 설치되었다. 한지에 수묵천연채로 그리고 성벽 안쪽에 설치되어 작품 뒤쪽에서 빛을 통해 뿜어져나오는 특징을 가진다. 한국과 프랑스의 인연은 피로 물들여진 아픈 역사로 시작되었다. 일랑은 이런 슬픈 과거사를 딛고 이제는 국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협력과 화합을 통해 새천년을 꿈꾸는 원형상이길 바란다. 바로 근원에서 다시 출발하길 바라는 일랑의 의지와 바람을 담고 만들어진 <원형상 97061-마리산>(1997)은 우리에게 작품성 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4. 역사의식의 반영

 

20세기 한국미술사는 일제강점기로 인해 한국전통미술의 단절과 일본미술의 이식을 경험해야 했고, 20세기 후반기에는 서양미술의 침투함에 따라 우리미술에 대한 자각과 고민이 가득했던 시기이다. 당시 예술가들은 조선의 향토색을 강조하며 그 특징을 드러내는데 식민지 시대에는 조선미전을 통해, 해방 이후에는 국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화단에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의 ‘왜색탈피’와 ‘현대화’를 위한 노력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인물인 김용준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월전 장우성과 더불어 문인화론을 토대로 추상화가 집단적으로 그려졌다. 뒤를 이어 서세옥이 묵림회(墨林會)를 결성, 수묵을 중심으로 삼은 전통의 현대화를 모색하고자 했다. 1970년 제9회 국전에는 동양화에도 ‘구상’‘비구상’의 구분이 생기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서세옥의 인간군상처럼 대상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기호화된 인간을 그렸다. 이러한 방향은 작가의 독창성을 강조했던 김용준의 문인화론에 충실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어 또 다른 축으로는 1950~1960년대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으로 이어지는 진경산수를 떠올릴 수 있겠다. 향토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사경산수화가 그려졌으나 진경산수화의 연장 속에서 재해석되어 부각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랑 이종상은 1970년대 현대적 진경산수로 연결되고 1978년 정선의 진경산수를 사의적 산수로 정의하면서 현대화를 꾀했다. 이 점은 다시금 그의 스승인 산정 서세옥의 영향일 수도 있는 20세기 문인화론의 사의성 즉 정신성이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다시금 일랑만의 원형상의 탄생이자 바로 구상과 추상, 동양화와 서양화가 통합된 근원형상으로 이룩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랑의 현대진경에서 원형상에 이르는 작품세계는 물론 역사기록화(1973~ )와 영정 제작 그리고 성미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겠다. 

 

해방 후 1950년대를 거치면서 민족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혈연 중심의 민족관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민족이란 혈연공동체란 주장만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기에 심적 사상적 민족문화가 필요했고, 1970년대 주로 정부의 주관으로 행해졌던 전통계승은 ‘민족문화노선’이란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민족기록화 사업은 군사정권을 정당화하거나 동조, 고증의 미숙 등 적잖은 비판도 이어졌지만, 일랑은 역사적 장면 등을 소재로 <서운관도>(1973), <광개토왕북진도>(1974), <무열왕도>(1976), <고구려벽화제작도>(1978), <광개토대왕 영토확장도>(1983)를 제작했다. 이러한 소재의 그림은 사실 일랑에겐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벽화 연구를 하다보니 고구려관련 작품도 도맡아 그렸다.20 일랑은 한국미술사를 고구려벽화에서부터 기술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고구려문화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왜곡되어 누군가 ‘사회주의 작가’라고 투서를 하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또한, 일랑은 ‘고구려 문화지키기 운동’본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우리 고구려 문화유산을 지키려고 했고, ‘독도문화심기 운동’을 통해 본인의 역사의식을 확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일랑은 최초로 독도 그림을 그린 화가로 독도를 문화, 예술적으로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1977년 <<이종상 진경전>>을 통해 독도 그림이 등장하는데 바로 독도를 통해 현대적 진경화를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일랑의 역사의식은 작품과 항상 통하고 있다.

 

화폐는 그 민족의 얼굴이고그 나라의 상징이고그 시대의 문화적 척도예요.21

 

일랑은 순종 어진(御眞)을 그린 조선시대 마지막 화원 이당 김은호 선생에게 사사받아 영정을 그리게 되었다. 대표 작품으로는 오천원권 지폐에 들어간 <이율곡상>(1975)을 시작으로 <악성 우륵 선생상>(1976), <광개토대왕상>(1977), <원효대사상>(1978), <장보고상>(1979), <단원 김홍도상>(1980), <강이식 장군상>(1983), 그리고 5만원권에 들어간 <신사임당상>(2006) 등이 있다. 영정을 그리기 위한 우리 전통의 특별한 기법으로 피부결을 따라 해부학적으로 그리는 육리문 기법과 뒤에서 그리는 북채법이 있다. 근육조직을 따라 근육운동까지 반영한 것으로 영정이란 겉모습만을 그리는 초상화와 달리 혼을 담는 그림임을 일랑은 늘 강조한다. 기법의 습득뿐만 아니라 그려지는 사람의 인격과 사상, 업적을 연구하고 접신(신내림)이나 다름없는 과정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과 하나가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효대사 영정을 그릴 때는 원효의 사상인 기신론22에 대한 연구를 위해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교 동양철학과 학생으로 진학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배움과 각오 그리고 실천은 그가 오늘날 작가로는 유일하게 두 번이나 화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며 후소회23가 지향하는 인간됨의 실천을 보여준 예라 하겠다. 이당을 중심으로 한 후소회의 모임에서 예술의 지향점인 ‘회사후소’의 뜻을 통해 신념을 구축,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자 목적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화폐작가로서의 의미와 도리를 지켜야 하는 예술가의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랑의 성미술 작업도 역사기록화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는 일랑의 신앙심이 작품 제작의 동기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으나 루브르에서의 출품작처럼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화해와 용서라는 인류애적 메시지를 담고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의 연장선에서 당진 신리성지 내 미술관에서의 순교자들의 일화를 담은 13점의 기록화와 5점의 성인화는 2017년 3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 1000호 사이즈의 대형 작품들은 그 규모와 내용 면에서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이 외에도 1987년 혜화성당 60주년을 맞아 의뢰받은 작품으로 <게세마니 동산> 수묵화가 최초였으나, 가톨릭에 귀의하여 작품에 종교적 의미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였고, 십사 처(광주가톨릭대학교 성당, 평택 팽성성당)나 순교화(당진 신리성지) 등 본격적인 성미술 작품을 제작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신앙과 예술은 하나야, 하나!”24라는 믿음 아래 일랑은 신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 듯 창세기를 언급한다. 바로 옛 화론에 나오는 ‘의재필선(意在筆先)’25을 이야기하며, 붓을 들기 전에, 가시적인 그림이 그려지기에 앞서서 보이지 않는 뜻, 바로 그리려는 뜻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26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예술이라하며 종교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조화인 것이다. 창조주께서 형이하학에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가 되었다. 그러므로 예술은 창세기 2장 말씀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며 “창조는 할 수 없으나 창조주 흉내는 낼 수 있다. 즉 ‘예술’은 창조는 못하고 창조를 흉내내 창작하는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것을 이렇게 발견하고 저렇게 종합해서 그걸 변형시켜 보는 것”이라고 전한다.27 일랑의 성미술에 관해서는 생애 후반기 일랑의 작품세계에서 정신적으로나 성미술이 차지하는 작품의 양적인 부분에서 비중은 적지 않다. 또한, 일랑은 우리나라가 성미술의 토착화가 필요하고, 진정한 성미술은 종교를 초월하여 인류문화유산이 된다는 점에서 성미술도 중요하게 연구되어야 함을 논고와 인터뷰를 통해 강조하기도 하였다.

 

 

 5. 결론

일랑의 업적과 내용은 우리에게 의심의 여지 없이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만들어진 예술적 탁월함과 미적 가치를 깨닫게 한다. 동시에 일랑은 신앙과 예술은 하나임을 밝히며,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과도 같이 미술을 마주하였고, 연구하고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루브르 카루젤에서의 한지 벽화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파리 루브르에서의 성취는 단지 한때의 이벤트가 아닌 그가 걸어온 길에서의 다양한 만남과 이야기의 완결판과도 같았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역사의식과 조국 애, 평화를 기원하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자 휴머니즘적 세계관 바로 인간다움이 예술적으로 승화된 지점을 마주하게 한다. 이는 일랑의 인생관이자 작업에 이르는 작가로서의 자세를 의미한다.

 

그림에 관한 내 인생관이 있어요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을 배우지 못하면 그건 화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나는 그러니까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물론 공자님이 말씀하신 거지만 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거예요내 본바탕이 사람이 된 연후에 그림을 그려라. 이게 회사후소 아닙니까그런데 내가 언제 사람이 되기를 기다려서 그림을 그립니까그러면 늦습니다그래서 나는 그것을 고치고 싶어요그림을 그리면서 사람이 되어가라. 그러니까 나는 그림이 목적이 아니에요사람됨이 목적이고 그림은 그를 위한 수단일 뿐이지요나한테는 어떤 사람들처럼 예술을 위해서는 사람됨을 포기하는... 그건 정영叮嚀 아니에요결국 좋은 작품을 한다고 하는 것은 인품에서 나온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늙어가면서 점점 깨달아가요결국사람은 무엇을 전공하던 결국 됨됨이만큼밖에 못한다는 거지요자기 꼴값밖에 못한다는 말이에요.28

 

중국에 장대천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이종상이 있다이 둘을 비교할 수 있는 공통된 이유는 두 작가 모두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려는 마음이 비슷하다는 것이다그러나 필자는 일랑이 전통미술을 이해하고자 재료와 기법을 연구해 현대화하려고 한 탐구 정신과 실천은 오히려 장대천보다 앞서 있다고 본다서구문화에 대응하며 예술을 통해 전통과 맥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성을 이룩하려고 한 점은 정말 탁월했다어쩌면 일랑의 원형상-벽화는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통해 혼란스러운 세상의 틈에서 하나로 모이는 리듬의 조화탄생의 가치와 의미를 반영하듯현자의 눈과 손으로 환경과 리듬의 조화를 화폭에 담으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다만 현대화를 위해 작가의 개인적 철학만으로 완성된 단일한 스타일이 아닌예술가의 감성과 고민을 뛰어넘어 미술을 총체적인 학문으로 학습과 통찰을 통한 그러나 이성과 상식 너머의 카오스를 제시한 것이다인류의 탄생은 바로 이성 혹은 문명이 생겨나기 전인 카오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이는 분명 역설이다일랑에게 <원형상>은 카오스로인류의 근원이며 인류의 시작이나 세상을 이루는 근본은 무엇인지 되묻는다그리고 그 안에서 어찌 조화로울 수 있을지를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어떤 풍경에서 출발했는지아마도 그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지점바로 근원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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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작품해설

 일랑 이종상 시기별 작품 해설

 

 

 

최정희(이종상연구팀)

 

 

일랑 이종상은 5만원권 신사임당, 5천원권 율곡 이이 모자 화폐 영정을 그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국화가이며루브르 박물관에 생존 작가 최초로 초대되어 3회 연장 전시 및 영구 설치 제안을 받은 바 있는 국제적인 현대 미술가이다고구려독도 문화 활동가이자 교육자행정가로도 여러 족적을 남겼고, 특히 한국 미술의 자생성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이론적 연구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기사상과 기운론우리 미술의 시원으로서의 고구려벽화의 의미현대진경 및 한국화의 동시대성한국의 색채의식에 대한 연구 등을 이어왔고그것이 다시 작품세계와 문화 활동에 영향을 미치며또 새로운 연구 주제를 펼치게 하는 순환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한국 미술의 얼과 혼을 담은 원형상 시리즈신벽화현대진경준영정과 지폐 그림민족기록화로부터 성미술에 이르기까지 한 작가가 한 시대에 만들어낸 작품들이라 믿기 힘들 정도의 다양성과 작품량을 선보여 왔다때문에 시기별 구분과 해설이 간단치는 않은 편이나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작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작가 작업의 연대기적 구분과 정리는 필수적일 것으로대략적인 시간적 순서를 따라가면서 각 시기별 주로 이루어졌던 작품경향을 다루는 방식으로 시기별 작품 해설을 구성하였다총 4개의 챕터를 통해 살펴볼 것이며시작연도는 첫 국전 수상을 했던 그의 대학 3학년 시기 1961년이다.

 

 

1. 진경(1961-1987)

 

· 현실 진경 초기 사실주의 : 1961~1964

1961년부터 국전에서 3회 연속 수상한 그의 작품들은 각각 <>(1961), <장비>(1962), <작업>(1963)이다모두 당시에 그려지던 한국화들과는 사뭇 다른 소재를 보여주는 작품들로그 시절 노동 현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이종상 작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삶그리고 당대의 역사와 작품이 늘 호흡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인데그것이 데뷔작에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젊은 시절 작가는 노숙을 하기도 하고 각종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하는 등 상당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하였는데그러한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이들과의 교류가 초기 작품들에 잘 담겨 있다나아가 대학 시절 4.19혁명을 겪은 작가는 시위대의 맨 앞에 나서 부상을 입기도 했던 국가 유공자로이 초기작품들에서 보여지는 노동의 강한 에너지특히 <작업>(1963)에서 보여지는 뜨거운 쇳물을 달구는 대장간 작업은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저항의 은유이기도 하다또한 각각의 작품들은 모두 화면의 구성과 서로 다른 인물들의 동작특징 표현에서도 상당한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 현대 진경(독도 그림의 시작) : 1977~1987

이종상의 현대진경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에서 출발한 개념이다조선시대 겸재 정선은 가보지도 못한 중국의 풍경화를 따라 그리던 당시의 관습을 거부하고 우리 산하를 직접 다니며 사생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화풍과 시각으로 제작한 산수화들을 남겼는데, ‘주체성과 시대정신의 발현이라는 겸재의 정신이 오늘날의 미술에도 지속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에서 현대진경의 개념이 나오게 된다현대진경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환경문제 고발을 주제로 한 <남산시리즈그리고 영토분쟁 이슈가 담겨진 <독도시리즈이다이종상은 독도를 그린 세계 최초의 화가이면서 현재까지 600여점이 넘는 독도 작품을 제작하였는데이를 통해 문화적 점유가 실질적 점유라는 문화 영토론의 기치 아래독도의 이미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

  


· 진경의 정신(사의적 풍경) : 1964-1987

- <시리즈 흉중구학의 이종상 자신의 세계로 들어서는 계기를 제공하는 연작이다. <-독도>, <->, <->, <-과 같은 제목으로 등장하게 되는데이는 한국 산하의 정수를 외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보다 근원적이고 내부적인 에너지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실을 반영한 추상화(1980~1981)

민중미술이 태동하던 1980년대이종상의 작품은 <최루탄에 찌든 캠퍼스>(1981), <무언가 바뀔 것 같은 조짐>(1981)과 같이 현실의식이 강조된 추상화로 나타난다. 1980년 이전은 현대진경이 다름 아닌 형태를 통한 표현이었다면 1980년 이후에는 추상화된 진경에 이르게 되어, <무묵>과 같은 추상이 탄생하게 된다.

 

 

2. 원형상전기(1988-1995)/후기(1995- )

 

원형상은 형상의 원형이라는 의미로 아직 구체적인 형상이 부여되기 이전의 모습일종의 카오스 상태에서 최초로 질서가 부여되는 순간의 모습을 지칭하며벽화연구를 통해 회화의 시원양식을 추적하려 했던 작가의 의욕과 맞물려 있다기 시리즈에 이어서 등장하였는데기가 추구했던 본질에 대한 천착과 일관된 맥락을 가진다(오광수, 1996). 원형상 연작은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이 땅의 산하를 단순하게 표현한 고지도처럼 기호상징적 성격이 강하고흑 등 오방색을 기조로 다양한 기법과 재료적 실험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연작이기도 하다(윤진섭, 2007). 원형상에 대한 개념은 1977년 작가의 석사논문 간트너의 선형상과 동양미술의 근원형상과의 비교에서 시작되었다고 논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미술평론가 김복영은 2007년의 평론 자생성과 원형상-일랑 화론의 영원한 짝패에서 원형상 연작을 전기후기로 나누어 거론하였다전기(1988~1995)는 사회 분열상의 제 증상에 상응한 카오스를 기의로후기(1995~ )는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테레사의 꿈과 통일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의 함의를 받아들인사회 통합을 위 한 기의를 크게 부각시켰다고 논하고 있다.

원형상의 대표작으로 빼놓을 수 없는 대작은 1997프랑스 문부성 초청으로 5개월간 루브르 미술관 까루젤 홀에서 전시되었던 <원형상 97061-마리산>이다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왔던 병인양요의 장소인 강화도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6×72m 크기의 대형 벽화설치였다차경의 기법으로 까루젤 홀의 성벽을 오브제로 사용하여 설치작품화하면서 해당 장소의 특성을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탁월하게 활용하였다주제적으로 과거의 아픈 역사적 사건을 담아내면서도 현재적 평화의 메시지를 유도해낸 점문화유적인 성벽의 특성으로 인한 조명 사용 불가의 한계를 배면 조명법으로서 극복해낸 점 등이 높게 평가되는 작품이다.

 

 

3. 역사의식의 반영

이종상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주제로 한 일련의 기록적인 작품도 꾸준히 선보였다현대 한국 회화의 자생력을 찾기 위해 근원형상을 연구하였고이를 위해서 한국성에 대한 자각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한 작가에게 역사적인 사실과 인물을 재현해내는 것은 한국 회화가 자생적 현대 미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1) 역사 기록화(1973- )

1970년대 이종상은 대형 회화 작업인 민족기록화를 다수 제작하였다민족기록화는 박정희 정부 시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제작한 역사 기록화로 1967년 7월 12일부터 9월 31일까지 경복궁 미술관에서 열린 «민족기록화전»에서 용어가 공식 사용되었다당시 국전 출신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민족기록화 사업은 군사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동조한다는 점작가선정의 부적합함고증의 미숙 등 많은 비판을 받으며 1979년까지 진행되었다비록 정책사업으로 시작하였으나 1960년대 초반부터 민족성 담론에 부합하는 범본으로써 고구려 벽화를 연구해온 이종상에게 민족기록화는 작가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에서 발현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일제강점기의 저항 운동한국전쟁베트남 전쟁 장면 등을 통해 애국과 반공 의식을 강조한 초창기 민족기록화들과 달리 이종상은 주로 근대 이전의 역사적 문화적 장면들을 소재로 하였다대표적으로 세종대왕이 세자(문종)와 함께 대간의를 이용하여 북극성을 관찰하는 광경을 그린 <서운관도>(1973), 고구려시대 벽화고분인 쌍영총의 현실 벽에 행렬도를 그리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고구려 벽화 제작도>(1975), 태종 무열왕이 백제의 사비성을 공격하고자 진군할 김유신 등 장군들과 남천정에서 전략을 숙의하는 장면을 그린 <태종무열왕의 작전회의>(1976), 광개토대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요하를 건너 후연의 숙군성을 향하여 진군하는 장면을 그린 <광개토대왕 영토 확장도>(1983) 등이 있다철저한 문헌의 고증과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채법장지기법장지전채법 등 동양화가로서 작가가 연구·개발한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해 제작함으로써 작품들은 당시의 민족기록화에 가해졌던 비판에서 벗어난 역사 기록화로서 의미가 있다.

 

2) 영정화(1975- )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화폐영정 외 정부지정 표준영정 99(22.5.19. 기준가운데 악성 우륵 선생을 비롯하여 7인의 선현 영정을 제작한 만큼 이종상의 화업에서 영정 제작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업이다그림자 영()에 족자 정()을 쓰는 영정은 겉모습을 그리는 초상화와 달리 말 그대로 대상의 혼을 담는 그림이다작가는 원효대사의 표준영정을 그리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에서 그의 사상인 기신론을 공부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고산 윤선도 영정을 제작하기 위해 부모와 형제의 골상을 연구하고 그의 작품을 읽으며 4년에 걸쳐 작업을 했을 정도로 대상의 인격과 사상업적을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이종상이 제작한 영정화의 특징은 인물의 특성을 잘 표현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벽화 연구를 통해 쌓아올린 내구성 있는 재료와 기법을 사용했다는 데에도 있다국가지정 표준영정인 <광개토대왕 영정>(1977)에서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고분에서 찾아 연구한 벽화와 북방 유목민의 생김새그들의 생활상을 반영해 면류관을 쓰고 용포를 입은 모습이 아닌비늘갑옷에 투구를 쓰고 칼을 찬 장군의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비단에 금철북채로 제작되었다.

 

3) 성미술(1987- )

필생의 작업으로 순교미술관 벽화 작업을 꼽을 만큼 이종상에게 성미술은 중요한 부분이다또한우리나라 성미술의 토착화가 필요하고진정한 성미술은 종교를 초월하여 인류문화유산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연구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종상의 성미술 작품은 1987년 혜화성당 60주년을 맞아 의뢰받은 수묵화가 최초였으나가톨릭에 귀의하여 작품에 종교적 의미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였으며십사처와 순교화 등 본격적인 성미술 작품을 제작하고 연구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이다생애 후반기 작가의 작업에서 성미술이 차지하는 정신적물리적 비중은 적지 않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이후에 출판된 일부 단행본과 인터뷰 기사에서만 언급되고 있는 만큼 조명이 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는 2017년 작가가 3년에 걸쳐서 완성한 13점의 대형 순교기록화와 5점의 성인화가 있다장지를 이어 붙여서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제작한 김대건 신부의 사제 서품식’, ‘강경 황산 포구 입국’, ‘신리 교우촌 사목 방문’, ‘다블뤼 주교관 모습’. ‘주교관 성당에서 미사 봉헌과 다블뤼 주교 등 다섯 성인의 체포와 순교에 대한 기록화 외 성 다블뤼 주교성 위앵 신부성 오메트르 신부성 황석두성 손자선의 초상화 작업들로 이뤄진 작품은 현재 당진의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4. 고구려 벽화 연구 및 기법 모색(1969-1989)

이종상은 초기의 사실주의적 작품과 역사기록화벽화기법 연구를 통한 일련의 추상적인 작품 등의 다양한 표현 양식을 보여주는 작가이다또한재료를 연구하여 그 성질을 이용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부터 작가가 연구한 고구려 고분벽화는 해방 이후 평가 절하된 채색화를 언급할 때현대성과 동반하는 추상의 대안으로 모색됐다. 1963년 신춘문예 당선작 전통 계승의 자세동양화의 내일을 위하여에서 오광수는 동양화의 기원을 고구려 벽화로 보았다또한고구려 벽화의 상징성과 추상성은 정신성이 결여된 서구 회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보았다이러한 언급은 동양화단에서 고구려 고분벽화가 채색과 추상을 연결해주는 전통으로 기능했음을 알려주는 단서이다.

이종상은 1960년대 고구려 고분벽화의 조형성뿐만 아니라 제작기법을 연구하였다그는 한국 회화의 역사에서 채색화의 시작이 고구려 고분벽화임을 거듭 강조하며 벽화의 안료를 분석하고 모티프를 일부 변형하여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 위치하도록 구성한 채색화를 발표하였다국전에 추천작가의 신분으로 출품한 풍화__72-3환각__73-2>, <영생 벽화773>이 그것이다.

1970년대 이종상은 고구려벽화와 전통 인물화 연구를 통한 시원양식의 모색을 통해 신벽화역사(민족)기록화표준영정 그리고 현대진경 작업을 진행했다이러한 실천은 그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에서 발현된 결과물들로우리 문화와 미술의 근원성과 기원을 탐구하려는 의지가 이 시기부터 드러났음을 알 수 있다특히 벽화작품의 경우 현장 설치의 대형 작업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재료 기법적 실험이 시도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1980년대 말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닥지화장지화 그리고 동유화는 다름 아닌 재료의 변화를 통해서 원형상으로 구축되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먼저 닥지화는 작가가 손수 종이를 만들어 비정형의 화면을 제작해내는 그 순간부터 작업이 시작되는 독특성을 가진다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화면 위에 오방색에 기초한 작가 특유의 색채 구사가 은유적 기호와 형상들 속에 부드럽게 녹아 표현된다우리 고유의 종이인 장지 위에 그려진 장지화 연작은 1980년대 말부터 원형상 연작의 대표적인 재료로 사용되며이는 2000년대에 들어 바닥 장판지로 수년간 쓰인 종이를 그대로 캔버스화한 시리즈로도 이어진다마지막으로 작가가 고안한 재료기법 중 가장 중요한 성과로 볼 수 있는 동유화는 우리 고유의 전통 칠보를 현대적으로 확장시킨 기법이다동판에 돌가루유리가루 등을 올린 뒤 유약을 바르고 고열로 여러번 구워 밀착시켜 제작하는데수해나 화재를 견뎌낼 만큼 보존성이 우수하다또한 단단한 표면의 느낌강렬하고 힘 있는 화면을 연출해내는 특성을 가지는 바대규모 벽화 현장 설치에 다수 활용되었다이렇듯 이종상 화백에게 재료와 기법 연구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풀어내는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지속적으로 기능해왔다.

한편작가는 이론적으로도 고구려 벽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펼쳐여러 논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1972년 한국민족문화논총》 고대벽화의 사적 고찰과 신벽화의 재료 및 기법에 관한 연구란 논문에서 고구려 문화는 인류 최초의 미술 흔적이자 현존하는 우리 미술의 시원으로현대 미술의 표현 양식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벽화에 닿아 있음을 주장하였고동양화 자체가 고대벽화에서 연원된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이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재료기법’ 강의를 신설하여 예술가로서 반드시 익혀야할 기본기로 삼고 후학들에게 전하며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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