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환은 그야말로 특이한 작가다. 그는 여러모로 그와 동년배에 속하는 한국 현대 미술작가들과 상이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홍대 서양화과 1학기 수학). 그의 작가로서의 이력은 40세에 ‘현실과 발언’그룹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된다. 이후에도 생업으로 인해 간헐적으로만 작품제작을 하다가, 그의 나이 50대 중반에 이른 1995년경부터 작업실을 갖고 본격적으로 전업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2000년 나이 60세에 이르러 최초의 개인전을 가졌다.
이런 이력이 반영된 듯 그의 작품은 초기부터 여러 측면에서 전복적이었다. ‘현실과 발언’ 전시에 출품한 <몬드리안 호텔>이나 <태풍 아방가르드 호의 시말> 혹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기존 예술계의 잘못된 관행, 곧 서양미술에 대한 추종이나 관념성을 신랄하게 풍자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이후 작업 역시 유머와 풍자로 번뜩이는 유희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비판의식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또한 그는 ‘민족미술협의회’의 대표를 역임하는 등 민중미술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항상 사회적 실천과 미술적 실천을 결합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은 그의 작업이 “기본적으로 먹물들의 미학이 아니라 현세적 삶의 한가운데로부터 나오는 절박성과 즉각성의 미학”, 다시 말해 “현세간의 미학”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그는 정규적인 미술 교육의 폐해로부터 벗어나 철저히 서민들의 일상감각이 삼투된 작업을 한다. 마치 ‘생활(미술)의 달인’처럼 온갖 주변의 일상재료를 활용해서는, 유화, 설치, 꼴라쥬, 앗상블라주, 레디메이드 등 기존의 장르와 기법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고, 특유의 몽상가적인 개성이 드러나는 새로운 어법의 작업을 한다. 또한 이 작업들은 개인의 소박한 삶의 욕망이 어떻게 현세의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끊임없이 굴절되고 억압당하는가를 보여주면서도, 풍자와 해학으로 그러한 장벽들을 해체하고 넘어서는 일종의 견자見者적인 시야를 열어주는가하면, 사회와 정치, 윤리, 죽음과 삶과 존재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드러낸다.
그는 2002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유네스코 특별상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 초대되는 등 여러 국제전과 그룹전들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마도 세계화로 인한 지형변화가 두드러지는 미술 현장에서 그의 작품들이 지닌 ‘동시대적이면서도 지역적인’ 특성이 주목을 받아서일 것이다. 적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 그의 작업에 대해 적극적인 호감을 표출하고 있는 이유도 그가 이렇듯 원로작가로서보다는 뒤늦게 출현한 ‘동시대’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1940 서울 출생
196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입학, 1학기 수료
1961~1980 외판원, 행상, 방범대원, 고등공민학교 미술강사, 누드미술학원 경영, 출판사 근무 등
1973 《쪽샘》, 민속주점(포토꼴라쥬 50여점 전시, 작품 망실)
1980 ‘현실과 발언’ 동인, 《현실과 발언 창립전》
1981 《도시와 시각전》, 롯데화랑, 서울
1982 《행복의 모습전》 , 덕수미술관, 서울
1987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1987-88)
《반고문전》, 그림마당 민, 서울
2000 제1회 개인전 《주재환: 이 유쾌한 씨를 보라》, 아트선재센터, 서울
2001 제10회 민족예술인상 수상,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2002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2002-3)
유네스코 프라이즈 특별상 수상
제4회 광주 비엔날레 《멈춤전》, 광주
2003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 Z.O.U.-Zone of Urgency전》, 베니스, 이탈리아
2005 《더 배틀 오브 비전》 쿤스트할레 담슈타트, 독일
2007 개인전 《CCTV 작동중》, 프로젝트갤러리 사루비아 다방, 서울
2015 개인전 《이매망량((艫魅憊魅)》, 트렁크갤러리, 서울
2016 《주재환: 어둠 속의 변신전》, 학고재, 서울
《타이틀매치: 주재환 vs 김동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웃음, 자유, 소통
이 영 욱(미술평론가)
<도입>
주재환의 작업은 첫 눈에도 통상적인 미술 작품들과 달라 특이하다. 꼭 어디라고 짚어 말할 필요 없이 모든 면에서 그렇다. 언뜻 보기에 그의 작업은 사용하는 재료도 부실해 보이고, 제작방식도 허술하며, 선택된 주제들도 통상적이지 않고, 또한 이것도 작품인가 싶게 파격적인 작업들도 여럿이다. 그런가 하면 작업들은 또한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속도감 있고, 발상이 독특해서 접근이 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업 하나하나를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면 이 가볍고 허술해 보이는 작업들 각각이 범상치 않은 촌철살인을 구사하고 있거나, 예기치 않은 화두를 내장하고 있으며, 과감한 예술적 혁신과 삶에 대한 통찰을 시전施展하고 있는 것을 깨닫곤 놀라게 된다. 하여 이들 서로 다른 수많은 작업들이 한데 결집하여 이룬 그의 작품 세계는 홀연 방대하고, 다채로우며, 기묘한 작업의 산적山積으로 사람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 종횡무진의 생산력과 창발성이라니! 특이함을 너머 그야말로 괴이하다 아니할 수 없다.
작품을 몇 점 감상해 보자. 그의 초기작 <몬드리안 호텔>(1980)[도판 1]은 피에트 몬드리안Mondrian의 <컴포지션Composition>연작의 전형적인 구성을 본 따 그린 것이다. 알려진 대로 이 화면의 사각 공간들 안에는 수많은 삶의 군상들이 그려져 있다. 모텔방의 남녀, 도박하고 있는 사람들, 목을 매고 자살한 인물, 카바레에서 춤추는 군상들, 전시장 광경 등... 이 그림의 초점은 우선 이곳 미술계의 서구 미술 추종에 대한 패러디와 풍자에 맞춰져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작가의 포괄적 시야와 예리한 통찰이다. 서구 미술과 현대적 조형이 이곳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삶을 뒤덮더라도 그 삶은 가려질 수 없으며 화면의 장막을 뚫고 들어와 그 사이사이에 빼곡하게 들어찰 수밖에 없다는 것. 작가는 이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만화체로 그렸다. 아니 전통 암각화의 필체를 만화 풍으로 변용했다. 이는 작가가 고급미술의 어법과 관습을 별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이 그림을 뼁끼(페인트)로 그렸다. 보존가능성을 절대시하는 기존 미술계의 기본 관행마저 거부한 것이다. 그는 작업의 시발부터 일관되게 기존 미술계의 관행을 삐딱하게 보고 비트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삐딱함의 근거는 지금 이곳의 ‘지지고 볶는 삶’이다. 그의 작업들은 이렇듯 하나하나 단순한 듯 복합적일 뿐 아니라, 웃음과 더불어 심도 있는 통찰을 내보인다.
두 번째 작업은 주재환의 1998년 작 <폰팅맨>[도판 2]이다. 그의 전형적인 콜라주 작업 중 하나다. 바탕은 전화번호부 책을 한 장 씩 떼어내 붙여 만들었으며, 그 위 사람 형상은 신문에 실린 폰팅 광고 조각들을 모아 재구성했다. 형상 가운데로는 빨간 선이 지나가고, 맨 위 손 부분에서는 그 선이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낸다. 인물 형상의 머리 부분은 남자 성기 귀두 부분을 연상시키며, 형상 중앙부에는 성기가 돌출되어 있다. 폰팅 광고 중 전화번호를 변형시킨 사례들, 오빠오빠빨리빨리58588282나 오빠오빠바로바로58588585가 흥미롭고, 성기 뒷부분에 여인 얼굴이 콜라주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 작업은 소비-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당대 인간들(남성)의 웃픈 자화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바탕의 전화번호부 숫자들과 광고 문구들로 뒤덮인 이 인물은 귀두 형태의 머리를 갖추고 성기만이 발기된 채 단순화되어버린 약간은 바보스럽고 괴기스러운 경직된 모습이다. 소비-정보화 사회라는 거창한 구호가 구체적 일상에서 실제로 어떻게 관철되는지를 보여주는 주재환의 통찰은 거의 엽기적이다. 전문 미술 영역의 관습보다는 낙서나 삽화나 일러스트 혹은 만화 같은 대중문화의 도상 혹은 민간 전통의 이미지들과 더 친근한 이 인물상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당대의 구체적 인간상을 포착해낸 드문 사례 중 하나에 속할 듯싶다.
다음 그림 1998년 작 <짜장면 배달>[도판 3]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씁쓸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림 안의 짜장면 배달 소년은 값싸고 위험한 노동의 고단함 속에서도 오토바이의 빠른 속도의 질주로 해방감을 만끽하는 듯하다. 바람에 날리는 짜장 면발은 이 고단함/해방의 이중주의 리듬에 희열을 더한다. 이 리듬과 희열은 배달 소년을 넘어 당대를 살아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페이소스와 공명하며, 어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일종의 생명력에 대한 찬사로 읽혀진다. 직관적이면서 동시에 중층적인 함의가 파장을 이루며 확산되는 이 작업은 주재환 작업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은 유화다. 주재환은 생활 주변의 재료를 활용한 콜라주 형식의 작업을 많이 제작했지만, 유화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의 유화는 통상적인 의미의 유화들과 여러 점에서 다르다. 이 그림도 필치와 구성이 과장법을 활용한 만화 풍에 기초하면서도 특유의 상상력이 풍성하게 전개된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유화에 여타 매체와는 달리 위계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이 작업은 <캔디04>(2007)[도판 4]다. 주재환은 2000~1년 1회 개인전 이후 ‘도깨비’ 관련 연작(혹은 개별 작)을 여럿 제작한 바 있다. 이 작업은 캔디를 재료로 도깨비를 형상화한 <캔디> 연작 중 하나로 유머와 재치가 돋보인다. 작업에서 도깨비 형상은 유화로 그려진 몸체와 얼굴에 플라스틱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결합해 만든 머리 부분이 첨가되어 모습을 갖췄다. 또한 작품 아래쪽에는 껍질로 포장된 캔디 한 개가 붙어있다. 알다시피 도깨비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작가가 즐겨 인용하는 구절을 보면, 도깨비는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고 밝음도 아닌 어떤 한 존재다非人非鬼非幽非命亦一物.”【주석1】 곧 중간자적 존재 혹은 사람과 귀신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양자를 매개하는 존재다. 그런가 하면 혹부리 아저씨의 혹을 떼다 붙였다 하는 설화에서 보듯, 초능력을 지니고, 장난기가 많은, 동시에 종잡을 수 없는 괴체怪體로 그려지기도 한다. 작가는 왜 도깨비를 그리는가? 이 세상의 종잡을 수 없음에 대한 반응인가? 탈세적인가하면 속세적인 도깨비의 양가성을 일종의 삶의 지표로 수용할 수밖에 없어서였을까? 이 도깨비는 제목 <캔디>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매우 가볍고 트랜디하다. 작가 특유의 유희성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도깨비의 장난기와 엉뚱함이 현재적으로 해석됐다.
글 도입부에 몇몇 작품을 먼저 사례로 살펴본 것엔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주재환 작품의 특징들을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를 느껴서다. 간단히 몇 작업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의 작업의 부실함, 파격, 가벼움, 속도, 웃음, 유머, 화두, 촌철살인, 방대함, 생산성 등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작업이 통상적인 작가들의 관습, 관행과 큰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파격이며, 천변만화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마치 불가사의한 창조의 수원에 닿아있는 듯 혹은 다른 별에서 오기라도 한 듯, 동시대 한국 미술계에서 유별난 위상을 점하고 있다. 이 글은 이런 인식을 전제로 주재환의 이 같은 파천황破天荒적 새로움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 주재환의 이 같은 새로움이 동시대 미술의 지역적 발화로서 갖는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해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개괄해 제시하려는 목표를 갖는다.
<이력>
1940년생 주재환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도시인이다(최근엔 경기도에 산다). 그는 정규적인 작가교육을 받지 않았다. 휘문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 서양화과를 1학기 수학하고 자퇴한 후 오랫동안 생업(야경꾼, 노점상, 외판원, 출판사 근무 등)에 종사했다. 작가로 등장한 것은 나이 40세에 이른 1980년, 민중미술의 시발로 여겨지는 그룹 “현실과 발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85년 민족미술협의회가 결성된 이후로는 민중미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3번에 걸쳐 공동대표직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생업에 쫓겨 작품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50대에 접어든 1990년경부터다. 지인의 배려로 건물의 옥탑방을 작업실로 쓰게 되면서다. 그는 그 후로 생업을 조절하여 작업에 매진했다. 환갑을 맞은 200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최초의 개인전은 주재환의 작가경력에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뒤늦은 데뷔(?)였지만 전시는 큰 성과를 거뒀다. 기존 미술계의 관행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출현한 그의 작업은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특히 젊은 세대 작가와 비평가들이 열렬히 호응한 것이 이채로웠다. 2000년과 2002년 각각 민족예술인상과 제 3회 광주비엔날레의 유네스코 프라이즈 상을 수상한 것은 이 같은 성과를 확인해주는 증좌라 할 수 있다. 이후 그는 지금까지 총 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여러 번의 2인 전과 수많은 단체전과 국제전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다. 또한 한국 나이로 80세에 이른 현재도 도깨비 연작 등 새롭고도 흥미로운 작품들을 생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가 동년배의 여타 작가들과는 달리 주로 이러한 활동을 젊은 세대 작가들과 더불어 진행하고 있는 점이다. 후배 작가와 비평가들로부터 과거 민중미술에 참여했던 원로 작가로서가 아니라 동시대의 현역 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주재환 작업의 미술사적 의미는 이 지점에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
<웃음>
주재환의 작업엔 배면에서 작동하면서 그의 작업 전체를 특징 짖는 어떤 흐름 혹은 동력 같은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이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유쾌한 씨’라는 그에 대한 별칭도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동력 혹은 흐름이 감지되어 나온 것 아닌가 싶다. 주재환에 관한 여러 글들 또한 웃음이 그의 작업에서 주도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최민의 언급은 주재환의 웃음의 특성에 대한 예리하면서도 명확한 견해를 제시한다.
유머는 근본적으로 그로테스크를 드러내려는 한 태도이다. 현실의 기괴함, 기괴한 현실 없이는 어떤 유머도 가능하지 않다. 유머는 우리의 정신이 현실의 기괴함과 벌이는 숨바꼭질이다... 주재환의 미술은 일종의 유머이자 현실의 적시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그만의 개인적 현실이 아니라 시대적, 사회적 현실이다... (주재환도 독일 다다이스트들처럼) 현실의 불합리와 그 어처구니없음을 근본적으로, 급진적으로 공격하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독일 다다이스트들의 신랄함 대신 한국의 다다이스트 주재환은 초연함으로 이 비루한 현실을 껴안으려 한다. 지겹고 껄렁하고 혐오스러운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하자고 한다. 웃기지도 않은 현실을 보며 웃자고 말한다. 일종의 달관이다. 그의 독특한 해학과 풍자가 이렇게 탄생한다.【주석2】
현실의 기괴함(그로테스크)을 유머와 연결시키고 주재환의 미술이 이 기괴한 현실을 공격하면서도 동시에 달관으로 포용하려는 것을 포착한 점에서 최민의 통찰은 정확하다. 이 언급은 주재환 미술에서 웃음이 차지하는 성격과 위상을 정확히 파악해내고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의 해석을 조금 더 보충할 필요를 느낀다.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1895~1975)의 웃음에 대한 견해는 이런 맥락에서 도움이 된다. 바흐친은 자신의 『라블레론』【주석3】에서 웃음과 민중문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등에 대한 담론을 개진한 바 있다. 이 책에서 바흐친은 최민과 마찬가지로 웃음을 그로테스크에 연결 짖고, 삶의 그로테스크함에 대응하여 웃음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민이 삶의 기괴함(그로테스크)을 주로 삶의 부정적 측면, 곧 부조리와 비루함 등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고 있다면, 바흐친은 “생성, 변화를 본질로 하는 존재 자체를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로테스크는 흔히 대칭의 파괴, 비율의 왜곡, 어둡고 섬뜩한 배경, 사물, 식물, 동물, 인간 사이의 경계 소멸, 개별 존재자들의 변형과 상호 얽힘, 그리고 이를 통한 기괴한 괴물로 전이 등의 특징을 가진 예술 형식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바흐친은 이 예술형식을 존재의 이미지로 파악한다. 곧 미완성의 상태에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존재의 그로테스크한 실상이 이 예술형식에 반영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바흐친의 경우 웃음에 대한 해석도 좀 달라진다. 바흐친이 보기에 “생성 변화하는 존재는 그 자체로 우스꽝스럽다.”【주석4】 생성 변화하는 존재의 총체적 삶 속에선 그 어떤 것도 영원, 부동, 불변, 절대와 같은 범주들에 묶여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삶 자체의 움직임으로부터 드러나는 존재의 유쾌한 상대성’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 웃음은 ‘모든 사람들이 웃는, 세계에 대한 웃음’이며,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들을 향’하는 웃음이다.【주석5】 죽음과 소멸의 끝에서 재생과 창조로 이어지는 삶의 긍정적인 본질을 직시하는 가운데 웃음이 터져 나온다. 주재환의 <웃음소리>(1998)[도판 5]는 이 같은 웃음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좀 더 나가보기로 하자. 이 웃음은 민중의 웃음이다. 바흐친에 따르면 민중에게 표정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의 표정, 곧 웃음의 표정이다. 그리고 여기서 비록 개개인이 웃을지라도, 웃음의 주체는 집합적 신체성으로 발현되는 민중이다. 이 웃음은 근대 문명의 세상살이에 찌든 사교적 웃음이나 부정일색의 풍자와 냉소, 조소와는 다르다. 장기-지속하는 민중문화를 통해 계속해서 전수돼 온 이 웃음은 서구 중세와 르네상스의 축제문화, 그 중 특히 카니발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발현된 바 있다. 카니발은 민중의 웃음이 폭발하는 장소다. 이 축제에서는 공식문화가 강요하는 모든 엄숙한 것들에 대한 격하와 해체가 진행된다. 음식, 생식력, 풍요, 부활과 같은 물질적이고 신체적인 요소들이 과장된 욕설과 퍼포먼스, 웃음과 아이러니로 표출되는 가운데 경직된 모든 권위와 권력을 해체하고 생성과 변화를 찬양하는 해방적 놀이가 펼쳐진다. 이 놀이는 단순히 비하와 절하, 죽음에의 의지에로만 향한 것이 아니다. 이 놀이는 ‘유쾌하게 환호작약하면서 조소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며, 부정하기도 하는 동시에 긍정하기도 하며, 매장시키며 부활하기도 하는’ 다시 말해 ‘죽이는 동시에 살리고’ ‘살리는 동시에 죽이는’ 철저한 양가적 운동으로 충만해 있다. 바흐친이 말하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이런 독특한 민중문화의 표현양식 혹은 미학을 지칭하는 개념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주재환의 작업에 삼투되어 있는 것은 이 민중적 웃음이다. 이 작업들에선 단순한 재미나 장난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고, 농담, 위트, 유머, 풍자(패러디), 해학이 배어나오는 때도 있지만, 조소나 냉소, 방자한 웃음, 사악한 미소는 찾을 수 없다. 공격, 비하, 격하의 시도가 있을지라도 그 웃음은 낙천성에 닿아 있다. 물론 그도 항상 웃고 있지만은 않다. 어떤 경우는 슬픔의 자폐에 갇히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망연자실 허탈한 탄식에 머무르기도 한다. 혹은 냉정하게 사태를 정관하거나, 몽상 속을 헤매거나, 조용히 무심한 달관을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웃음과 낙천성은 작품과 작품을 거슬러 넘나들며, 전체로서의 그의 작업을 물들인다.
<자유>
주재환의 작업은 자유롭다. 발상과 표현이 자유롭고, 상상력이 분방하며,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사고 자체도 막힌 곳이 없다. 이는 그의 작업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바다. 최민은 자신의 글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주재환은 자유로운 작가이다.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단서는 바로 ‘자유’라는 단어이다”.【주석6】 그렇다면 이 자유로움은 주재환과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 말 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자유로움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한 인격의 특성(체질, 고난 끝의 달관)으로 이 자유로움이 모두 해명될 수는 없다. 성완경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주재환의 자유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주재환이 취한 예술가적 자유는 현실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모순의 중압과 인생의 존재론적 고뇌의 무게만큼 무겁고 가까스로의 것이고 도덕적인 것이다. 그것은 서구의 근대사와 예술제도가 분비해낸, ‘자유로운 창조자’로서의 예술가로부터 상당한 원거리에 위치한다. 주재환은 이 원거리가 도덕성의 이름이고 자유의 이름인 이 시대의 많지 않은 작가군에 속한다. 그들이 스스로를 귀속시키는 곳은 미술계라는 낡은 허위의식의 동네가 아니라 민중적 창발성immediacy의 세계다. 최근 ‘인공생명’ 연구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생물계에서 창발성이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 ‘단순계’가 아니라 ‘복잡계’와 ‘단순계’의 중간쯤 되는 영역에서 ‘복잡계’에 가까운 쪽이라는 사실이 이 점에서 시사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즉 이들은 ‘예술계’라고 하는 관례화된 오토마티즘적 단순계의 반대쪽에 위치하는 것이다.【주석7】
성완경의 언급에서 주목할 것은 주재환을 서구적 현대적 의미의 ‘자유로운 창조자(예술가)’가 아닌 스스로를 민중적 창발성의 세계에 귀속시키고 있는 작가 그래서 자유로운 작가로 이해하고 있는 점이다. 나는 성완경의 이 같은 해석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렇다면 주재환은 어떻게 이 같은 민중적 창발성의 세계에 스스로를 귀속시키고 있는 것일까?
나는 먼저 주재환의 작업이 ‘서민의 생활세계’에 뿌리박아 진행되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주재환의 작업은 그 자신 서민들의 생활세계에 소속되어 있는 작가로서 이 세계의 언어와 소통방식으로, 이 세계의 관심사를, 이곳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는 지향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통상적인 미술계의 소통체계와 일정정도 빗겨나 있는 소통 채널을 상정하고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이 같은 전략의 구체적인 공과와 관련해서는 아마도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리라. 하지만 이 같은 지향은 그의 작업에서 뚜렷하게 관철되고 있다.
주재환은 자신의 모든 예술적 자원을 원칙적으로 이곳 서민적 생활세계 안에서 이끌어 낸다. 우선 활용하는 재료 거의 모두를 제한을 두지 않고 일상의 지근거리에서 취한다. 신문, 잡지, 광고, 만화, 스티커, 찌라시 등에 사용되는 온갖 종류의 이미지들부터 견출지, 모눈종이, 포장지, 휴지, 종이 박스, 비닐봉투 같은 가벼운 재료들, 헝겊, 수건, 옷가지, 인형 같은 섬유 계통의 물품들, 플라스틱이나 목재, 금속으로 만들어진 장난감, 화분, 철망 등의 오브제, 기성품, 폐품, 쓰레기들까지 온갖 사물이 선택된다.
사용하는 매체, 기법, 제작방식 또한 제한이 없고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화나 낙서 같은 일상의 필법이나 오리기, 자르기, 붙이기, 결합하기, 나열하기 같은 공작기법이 콜라주, 포토몽타주, 앗상블라주로 전이되는가 하면, 설치로까지 확장된다. 펜, 붓, 볼펜, 매직 등의 매체들은 컴퓨터 그래픽이나 비디오 작업 같은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어떤 경우든 난이도는 일상의 평상적인 활용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재료건 기법이건 그의 작업은 관객을 겁을 주지 않는다.
주제, 소재, 모티브 역시 제한이 없다. 아니 제한이 없다기보다 입시, 부채, 소문, 스포츠, 도깨비, 노동탄압, 전쟁, 평화 같이 서민들이 일상에서 가질 수 있는 관심사의 조망 범위 안에서 무엇이든 선택한다. 곧 자신의 상상력과 표현 의지를 자극하는 동시에 서민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모티브(대상, 사건, 상황, 장면, 이야기, 상상한 것, 생각 등)면 뭐든지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은 관심사에 따라 하나하나 모두 다를 뿐 아니라 그 모두가 한데 모여 마치 일상의 만화경처럼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작업들은 대체로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속도감 있고 발상이 독특하다. 이는 그의 체질과도 연관된 것이겠지만, 진지하고 엄숙하고 관조적인 통상의 미술관람 방식을 거부하는 그의 태도를 반영한 결과기도 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즉각성 혹은 전격적인 만남의 방식을 선호한다. 그는 관객들에게 다가가 단번에 그들의 주의를 끌어들여서는 그들과 공감하기를 원한다. 때문에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속도감 있고, 기발한 착상을 선호한다. 이런 특징들이 민중연희의 특성에 이어져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민중연희에서 연희자와 관객은 신명이 지펴 그야말로 거리낌 없이 전면적으로 어울린다. 이는 연희자와 관중이 공히 어떤 공동의 문화, 공동의 세계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관중들은 한 눈에 보고 한 눈에 알아채며, 함께 공감하여 웃음을 터뜨린다. 판소리를 한번 떠올려 보자. 여기서는 관리들의 탐학이나 양반들의 위선을 풍자하고, 재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처연한 귀곡성으로 주인공의 슬픈 운명을 공감케 하고, 어수룩한 인물의 행동으로 해학을 내보이고, 남녀 간의 애욕을 솔직히 까발린다. 주재환은 역시 이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내보인다.【주석8】 그는 마치 이미지로 말하는 만담가 혹은 시각이야기꾼처럼 매 작업마다 그것이 관객의 관심을 이끌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롭고 적합한 기법을 생각해내서는 말을 건다. 그리하여 마치 굿판에서 사설하듯. 잔치 집에서 난장 치듯, 거리에서 야바위하듯, 다시 말해 브리콜라주bricolage 하듯 그렇게 작품을 만들어 내보인다. 그의 작품이 허술하고 부실한 것, 심지어 그가 자신의 작품을 잘 간수하는 일에 큰 관심이 없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만남이 중요하며, 신명이 중요하지, 물건을 만드는 것은 중요치 않다. 이렇듯 그는 서민의 생활세계에 공유되어 있는 감각과 문화 속에서 세상사에 농담을 던지고, 못난 현실을 희화화 하거나 패러디하며, 이 극단과 저 극단을 대치시켜 질문을 던지거나, 이 파편, 저 조각을 뭉치고 과장하여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창출한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의 배면에선 웃음이 흘러 다닌다.
주재환과 그의 작업이 자유로운 것은 이렇듯 그것들이 서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살아있는 소통체계, 곧 민중적 창발성의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주석9】 이 세계는 장기-지속적으로 전수되어 온 민중문화 전통이, 서민들이 일상생활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뤄내는 창조적 실천과 겹쳐지며 형성되는 세계다.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일상세계는 그 근원부터 창조성의 공간이자 유동성의 공간이라고 말한다.【주석10】 지배문화 곧, 공식문화의 규범과 규율들이 제 아무리 강력하여 심지어 일상의 미세한 행위들 속까지 침투한다 해도, 결코 이 근원적인 창조적 실천을 뒤덮지 못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강제되는 문화와 규범들에 저항하며, 변형, 굴절, 가공, 우회의 수많은 전술들을 활용하여 그것들을 창조적으로 재전유하며, 이를 통해 민중(서민)의 창발성을 이어나간다. 주재환의 작업이 기발한 착상으로 가득 차 있고, 분방한 상상력을 구사하며, 관념적이고 폐쇄적인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그것들이 이 같은 일상의 창조적 잠재력에 열려있기 때문이며, 그것을 십분 활용해내기 때문이다. 주재환이 꿈꾸는 것은 공식문화의 폐쇄적인 관행과 관념적인 규범에 저항하고, 그것을 비틀며, 그것을 넘어서서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소통이 가능한 개방적, 창조적, 평등한 예술이다. 사태가 이러하다면 그의 작업을 현대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동네 마을 회관이나 장터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소통: 개념/언어적인 것>
주재환의 작업과 관련해선 여러 논자들이 문자나 글, 텍스트가 들어간 작업이 많다거나, 산문적, 시적이라던가(문학성), 개념(미술)적 성격이 강하다던가 하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그의 작업에서 시각적인 것 못지않게 언어, 문학, 개념적인 것의 비중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그는 무슨 이유로 자신의 작업에 이런 개념/언어적인 것을 도입하는가?
하긴 오늘날 작업에 문자나 글, 텍스트, 문학, 개념을 활용하는 것은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통례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서구의 개념미술이 모더니즘 미술의 자율성 논리에 저항하여 그 미술의 제반 속성(물질성, 심미성, 질적 수월성 강조, 제한된 전시장소와 유통의 맥락)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과 방법적 대안을 모색해 온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안착되었다. 곧 동시대미술에서 개념/언어적인 것의 활용은, 개념미술이 언어적 전환, 탈물질화를 거쳐 제도비판과 행동주의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일반적인 작업경향이 되었다고까지 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주재환의 작업 역시 이러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곧 주재환이 자기 작업에 개념/언어적인 것을 활용한 것은 개념미술의 모더니즘 비판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재환이 참여한 “현실과 발언”그룹의 “창립취지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돌아보건대, 기존의 미술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것이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이든 유한층의 속물적인 취향에 아첨하고 있거나 또한 밖으로부터의 예술공간을 차단하여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를 고집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와 이웃의 현실을 소외, 격리시켜 왔고 심지어는 고립된 개인의 내면적 진실조차 제대로 발견하지 못해 왔습니다.【주석11】
이 구절은 자율성이라는 미명아래 삶의 현실로부터 유리된 미술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 현발 동인들은 어떻게 삶의 현실로부터 유리되지 않고, 속물 취향에 아부하지 않는, 진실된 미술을 할 것인가 문제의식을 가졌다. 하지만 주재환이 선택한 길은 동인 그 누구와도 구별되는 것이었으며, 통상적인 민중미술의 도정과도 다른 것이었다. 그는 나름의 자생적인 경로를 밟아 독자적인 양식에 이르렀다. 아시다시피 그 길은 서민들의 일상에 뿌리박는 것이었다. 곧 서민들의 입장에 서서, 서민들의 어법으로, 서민들의 일상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삶(현실)의 관심사들을, 함께 나누는, 곧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업은 재현적 양식을 활용하여 삶의 현실을 사회 정치적 현실로 해석하고 비판하던 대부분의 민중미술 작업방식을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존 미술계의 언어와 소통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여타 현발 동인들과도 확연하게 다른 시각적 어법을 활용했다. 그가 작업에 개념/언어적인 것 도입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곧 서민들과의 소통의 필요에서다. 그가 보기에 기존 미술은 서민들과 소통할 수 없었다. 소통하려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서민들에게 겁을 주고 있다는 것이 실상에 가까웠다. 곧 주재환은 삶으로부터 유리되고 고급화 관념화되며 상품과 심미적 물체가 되어 버린 미술을 자연스럽게 일상의 언어로 일상의 이야기에 토대를 둔 미술로 전화시켜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사실 서민들의 일상적인 시각언어들 혹은 그 언어들의 소통체계에선 시각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이 분리되지 않고 혼재되어 있었다. 낙서나 만화, 어린이용 그림책이 그렇고, 광고나 간판이나 전단지가 그렇다. 뭐 TV나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그림과 말이 혼재된 표현에 익숙했고, 서민들의 일상에서의 시각적 자기표현 역시 마찬가지 방식과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그런가 하면 이 서민들의 일상적인 소통체계에는 전통문화로부터 전수된 여러 시각적 표현양식들이 잠재해 있었다. 시화詩畵 일치를 추구하고 시서화詩書畵 삼절을 숭상했던 문인화와 서예의 잔존 이미지들 혹은 민화의 표현형식들 그리고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도깨비 이미지나 민담이나 설화에서 유래한 이미지들이 일상의 갈피마다 남겨져 있었다. 출판 관련 업계에서 오랫동안 편집 일을 했던 그는 이미지와 언어가 혼재된 이런 시각 언어에 익숙했고 그것들의 어법을 작품에 적극 활용했다. 게다가 이들 전통문화의 잔존이미지들은 서사 곧 이야기와 얽혀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혹은 문인화나 서예에서처럼 시적이며 문학적인 담론을 내포한 것들이었다. 전통적인 시각언어들은 서구적 맥락의 언어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의 분리를 알지 못했다. 주재환은 이런 일상 속의 시각언어들을 적극 활용하여 작업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서구의 개념미술(혹은 좀 더 넓은 의미의 개념주의 미술) 혹은 이들과 계보 상으로 연결된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 성과와 착상 혹은 어법들 역시 적극적으로 작업에서 활용했다. 어떤 의미에선 주재환이야말로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서구의 이 같은 아방가르드 전통을 가장 폭넓게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한 선구자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이런 수용이 가능했던 것은 주재환이 생각하는 작가이자, 그 생각을 작업으로 전달하려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개념미술이 생각을 이미지로 전달하는 미술이라면 주재환의 작업 역시 그렇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곧 개념미술이 상대적으로 예(미)술에 국한된 생각 혹은 개념에 집중했다면, 주재환의 경우는 당연히 예술에 대한 개념과 생각, 고민을 다룬 작품들도 적지 않지만 인생철학적 명제로부터 정치, 사회, 역사적 현실로부터 생겨나는 의문, 혹은 일상의 미소한 사건들에서 느끼는 모순 등 삶의 모든 국면을 개념적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다. 때문에 개념미술이 미술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두었다면 그의 작업은 소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 이미지로써 그의 생각을 충분히 가시화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언어적 요소들(기호, 문자, 글, 텍스트)를 전면에 드러내거나, 특유의 개념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개념미술이 활용하는 다양한 언어적 비언어적 방법과 장치들을 차용 갱신하여 작업을 만들어냈다. 다다의 실험시들, 개념미술의 텍스트 활용, 사진 콜라주 혹은 병치, 숫자 정보 기호의 활용, 기타 개념미술이 활용한 다양한 장치들(반복, 집적, 도해 등)이 그렇다. 아마도 몇몇 개별 작업사례를 들어 이런 서술을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할 듯싶다. 당연히 개별 작업에선 이런 다양한 이미지와 언어(개념)의 결합 방식이 혼용되고 새롭게 재창조된다.
[도판 6]은 1994년 작 <건곤실색 일월무광乾坤失色 日月無光>으로 유화작품이다. 이 그림은 땅 아래서 하늘 위의 달을 올려다보는 시점의 풍경화다. 하늘은, 주재환이 유채로 풍경을 묘사할 때 나타나곤 하는 특유의 푸른빛, 곧 삶의 심연과 대면한 작가의 말할 수 없이 처연한 심정을 드러내는 바로 그 색채로 그려져 있다. 작품의 요체는 하얀 달과 그것과 만난 하늘의 푸른빛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언뜻언뜻 내비치는 빛의 흐름과 진동에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달 좌우 옆으로는 건곤실색 일월무광, 곧 “하늘과 땅도 빛을 잃고 해와 달도 어두워졌다”【주석12】는 서산대사의 글이 쓰여 있다. 이 글은 문인화의 화제 형식을 빌려온 것이다. 화제가 중앙에 붙어있는 것, 그리고 이 화제가 시가 아니라 법문에 가깝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떤가? 이 작품에서 그림과 글은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들여 확장시키지 않는가?
<내돈>(1998)[도판 7]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매우 복합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면 중앙에 붙여진 통장 주위 공간을 가로 세로 비례에 맞춰 동심 직사각형을 반복한 후 ‘내돈’이라는 손 글씨로 화면을 빼곡히 채웠다. 여러 글에서 지적되었듯이 ‘내돈’의 무수한 반복과 집적은 ‘내돈내’가 되기도 하고 ‘돈내’가 되기도 하는 변주를 거치면서 화면 가득히 생활의 난관이 초래한 절박함을 새겨 넣는다. 화면이 글씨로 가득 채워져 이미지가 형성되었다는 측면에서 이 작업은 ‘글씨 그림’에 가까운가 하면, 낙서 그림에도 가깝다. 그런가 하면 동심 직사각형의 반복과 ‘내돈’이라는 글씨를 반복적으로 채운 화면은 올오버 페인팅의 전면성과 추상 혹은 미니멀리즘의 평면성과 반복을 연상시킨다. 전통 서예 원리의 계승, 낙서의 활용, 모더니즘 회화에 대한 개념적 긴장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내돈’, ‘내돈내’라는 절규의 음성효과가 어울리는 이 작업은 거의 오페라적인 구성과 울림을 표출한다.
<미학: 몽유도원도>(1998)[도판 8]은 예(미)술에 대한 작가의 개념, 생각 고민을 모티브로 제작한 “미학” 연작중 하나다. 이 작품은 몇 개의 두루마리가 담겨져 있는 종이백 앞면 위쪽에 안견의 <몽유도원도> 복사본을 부착하고, 그 밑 A4 용지에는 작가의 소회를 담은 텍스트가 붙여 만든 작품이다. 그 텍스트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미학: 15세기의 한 젊은이가 꿈꾼 유토피아 / 복숭아 꽃나무 / 20세기 한국의 젊은이들이 꿈꾼 유토피아 / 자유, 평등, 정의 / .... / 신기루 / 봉투 속에는 유토피아를 그린 설계도만 쌓여갈 뿐 / 왜 / 그것은 겨우 보이는 점으로도 / 현실의 지도 위에 / 나타나지 않는가.” 주재환은 예술이 현실 속에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유토피아를 다만 꿈꾸는데 그칠 뿐이라는 점을 한탄한다. 이 작업은 유토피아, 예술, 현실의 삼각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미지, 텍스트, 사물의 조합으로 재구성하여 제시하고 있다.
<태풍 아방가르드호의 시말>(1980)[도판 9]과 <볼펜 한 자루의 수명)(1998)[도판 10]은 화면에 문자나 텍스트가 드러나 있진 않지만 주재환 작업의 개념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태풍...>은 만화적인 기법을 활용하여 일기예보 기상도 같기도 하고, 모노륨 견본지 같기도 하며, 모노크롬 회화의 기호들 같기도 한 패널들을 몇 개 나열한 후, 그것들이 태풍이 오는 여름 날 담배를 피며 선풍기를 틀어놓은 한 인물의 주변 정황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가볍기 그지없는 이 촌철살인은 그의 단색화에 대한 사고 혹은 생각을 그야말로 개념적으로 명료하게 시각화한다. <볼펜 한 자루의 수명>은 일기장 위에 볼펜 한 자루를 처음부터 잉크가 끊길 때까지 한 번에 이어 쓴 후 그 흔적 혹은 궤적을 내보인 작업이다. 이 작업의 요체는 인간의 한 평생을 축약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알레고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주재환의 작업이 개념(미술)의 어법을 얼마나 참신하고 독창적으로 갱신하고 있는 가를 확인해 준다.
<나가며: 동시대 (개념주의) 미술의 지역적 발화>
이제까지 서술에서 확인한 주재환 작업의 성취는 그의 작업이 이곳 미술계에서 갖는 의미 또는 글로벌한 문맥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여러모로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그 성취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재환의 작업은 민중(문화)의 세계감각, 곧 생성 변화하는 삶의 유쾌한 상대성에 연동된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웃음에 의해 추동된다. 다음으로 그의 작업들은 기존 미술의 폐쇄적이며 관념적인 어법과 위계화 된 제도로부터 벗어나 민중적 창발성의 세계 곧 서민의 일상적 소통체계에 기반하여 산출된다. 마지막으로는 이 작업들은 개념(언어)적인 요소와 장치들을 그야말로 기발하고 창의적으로 도입하여 일상 층위에서의 미술 소통 활성화를 위한 전범을 제공한다. 실상 이 같은 성취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진행에서 예외적으로 독자적이며 선구적인 면모를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함의를 거듭 되새겨 볼만한 내장을 지닌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성취들에 대해 다시 한번 음미해 보기로 하자.
첫 번째 낙천적 긍정적인 민중적 웃음으로 표상되는 주재환의 민중관은 그 자신이 민중미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작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 의미심장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민중미술은 80년대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사회(민주화)운동과 연계하여 미술의 사회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극대화시키려는 열망 속에서 전개되었다. 이들은 당대 지배적 양식인 한국식 모더니즘의 심미적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다양한 표현양식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미술이 사회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방책들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했다. 이 과정에서 민중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 논점이었으며, 대체로 고난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신명으로 저항하며 투쟁하는 민중상을 재현하는 방식이 민중미술의 대표적 양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80년대를 지나 보낸 이후 이러한 민중상은 일종의 이념적 표상으로 현실의 민중상과 유리된 것이며, 따라서 이런 식의 미술의 민중성에 대한 이해는 그것의 다면적 전개를 제한하고 협소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물론 이러한 비판과 관련해서는 80년대라는 예외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 공과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주재환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민중성은 미술의 민중성을 또 달리 해석하고 확장하고 실험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작업에서 발현되는 민중의 웃음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 자체의 속성에 힘입어 모든 위계적 문화와 영원, 부동, 불변, 절대와 같은 범주들을 해체하고 현실의 생성을 추동하는 지속적인 동력으로서 해석될 수 잇기 때문이다. 즉 주재환의 작업은 이곳 미술이 민중미술 이후 이곳의 미술이 민중의 삶으로부터 유리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민중의 창발성에 기대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예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재환의 작업이 민중적 창발성의 세계 곧 서민의 일상적 소통체계에 기반해 있으며, 그의 작업이 드러내는 자유로움 또한 이로부터 생겨난다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사실 필자는 지금 이곳 미술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논점 중 하나가 ‘소통’의 문제 혹은 좀 더 정확히는 ‘소통의 평등’ 문제라고 생각한다. 곧 미술 장에서의 소통이 서민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논점이다. 앞서 현발 선언문에서 기존 미술이 현실과 유리되었다고 지적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 문제의 요체는 그 유리가 단순히 당시의 ‘기존 미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곳이건 저곳이건 제도화된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공식문화로서 서민과 민중들의 언어, 관심사와 문제의식, 일상과는 유리되어 왔으며, 심지어 그 삶을 억압하는 기능을 수행해왔다는 지적은 현재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서구의 수많은 아방가르드 운동이 지속적으로 재창출된 된 이유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 있으며, 이는 그간 축적된 미술사적 연구가 이미 다각도로 확인한 점이기도 하다. 이곳의 경우 이 같은 제도미술 혹은 공식문화의 폐해는 이 제도 자체가 이곳 근대사의 파행적인 진행 과정에서 외삽된 것이기에 더욱 우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주재환은 이런 맥락에서 서민들의 접근성을 가로막는 제도미술에 대한 선재 지식이나 작업관행들을 파기하고 그 누구보다도 능동적으로 이러한 괴리 혹은 삶과의 유리를 극복하려 시도했다. 그는 기존 미술이 가졌던 언어와 소통방식 거의 모두를 폐기하거나 변형하는 한편으로 일상의 서민적이고 민중적인 언어와 소통방식을 채택하여 자신의 작업을 제작했다. 이는 그 스스로가 다름 아닌 서민이었고, 예술가로서의 자의식 이전에 서민으로서의 자의식이 뚜렷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이 과정에서 전통 민중문화로부터 전수된 어법과 소통방식을 이곳 후기 산업사회의 일상적 실천에 잠재된 전복성과 내밀하게 연결시키는 수많은 작업들을 제작해냈다. 이 작업들은 기존 미술의 어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을 서민 민중들과 대화를 추구하는 소통의 평등이라는 목표와 결합시키려 한 사례들 곧 그의 민중적 창발성이 만개한 탁월한 사례들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논점인 개념(언어)적 요소와 장치들을 성공적으로 작업에 접맥해낸 성과는 최근 논의의 중심에 있는 동시대미술 담론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오늘날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은 동시대에 제작되는 모든 미술이 아닌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을 비판적으로 담지하는 미술을 지칭하며, 그 미술을 일종의 양식 개념 혹은 흐름으로 논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용어는 1980년대 및 그 이후의 전지구적 미술global art의 흐름을 주목하는 가운데, 서구에 한정되거나 서구중심적인 미술이해에서 벗어나 글로벌 문맥에서 생산되는 미술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또한 1960년대 이래의 반모더니즘의 흐름, 곧 개념(주의) 미술을 동시대미술 양식의 전형으로 이해하고 있다.【주석13】 따라서 테리 스미스Terry Smith같은 논자는 “동시대미술을 간단히 ‘동시대(성)’나 ‘현재’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미술이라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동시대성은 지역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동시에 ‘독특한’데... 형식과 내용, 의미와 용법에서 문제제기적이며 비판적이지만, 답변의 측면에서 단정적이라기보다는 잠정적이며 새로운 사유와 토의 또는 지각방식을 촉발한다”【주석14】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주재환의 작업이 이런 맥락에서 전형적인 동시대미술로 평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앞서 확인했듯이 그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반모더니즘에서 출발하여 개념(주의)미술의 방향을 취했으며, 이곳의 문제를 다루는 가운데 형식과 내용, 의미와 용법 모두에서 문제제기적이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를 통해 무엇보다도 지역적, 문화적으로 독특한 미술을 제작해냈다.
2006년 이래 최근까지 주재환은 일련의 ‘도깨비’를 주제로 한 작업들을 발표해왔다. <도깨비>, <비>, <캔디>, <이매망량魑魅魍魎> 연작 등과 기타 관련 작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들은 양으로 따지면 거의 100여점을 상회한다. 도깨비들은 흔히 신출귀몰한 초능력자, 일상의 규범이나 합리, 논리의 범주를 이탈한 사이킥 에너지, 혹은 야성, 원시성, 충동성, 조야성을 드러내는가 하면, 축제적 희극과 웃음을 포괄하는 다시 말해 이것인가 하면 저것이고, 저것인가 하면 그것인 종잡을 수 없는 괴체怪體 등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 같은 도깨비는 전근대 민중들이 무의식의 깊은 심연으로부터 창조해낸 허구적인 상이다. 나는 이 시기 주재환의 작업 경향들로부터 추론해 볼 때, 그가 이렇듯 도깨비를 그려냈던 배경에는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는 인식과 온갖 형태의 이분법적 사고가 난무하는 이곳, 재난, 폭력, 불평등,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 하지만 그 어떤 해결책도 찾아내지 못하는 인간들, 어떻게든 이를 시정하려 하지만 끝내는 무력한 예술.... 하긴 오죽하면 모든 역사는 어처구니없는 우행愚行의 기록이란 말이 있겠는가. 도깨비는 이런 상황 속에서 주재환 스스로 찾아낸 하나의 탈출구로 보인다. 마치 혹은 전근대의 민중 그리고 오늘날의 서민들 또한 그러하듯 말이다. 이 점에서 도깨비는 일종의 트릭스터Trickster라고 할 수 있다. 트릭스터는 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나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장난꾸러기 또는 어릿광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 트릭스터는 본질적으로 두 개의 대립항의 중간에 위치하고 양자의 성격을 겸비하는 양가적 존재이며, 양자의 중개자다.【주석15】 한국 토종의 트릭스터라고 할 수 있는 도깨비는 이러한 양가적, 중재자적 속성들로 막히고 닫히고 굳어버린 전근대 사회의 민중들에게 해방의 공간, 자유의 시공을 제공했다. 또한 모든 경직된 개념과 인식으로 가득 찬 세계에 존재 자체의 유쾌한 상대성 곧 존재 자체의 그로테스크함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 곧 민중의 웃음을 실어 날랐다.
주재환 미술의 요점은 이곳 미술이 서민들의 생활정서나 감각과 유리된 채 비현실적으로 관념화되고 추상화되는 상황에 문제의식에 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예술과 삶과 간극을 극복하여 서민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을 추구했으며, 이 같은 독자적이고 선구적인 태도를 고집스럽게 견지해왔다. 이는 그의 자유와 상상력이 그가 현대적 예술가인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그의 민중적인 세계감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제도 자체를 비판했던 서구적 아방가르드와는 달리 공식문화에 저항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반문화적 예술로서 성격을 짙게 드러내고 있다. 이 글에서 서술된 여러 사례들 특히 도깨비 작업에서 드러나듯, 그는 토착문화의 창조적 발견과 현재적 응용의 시도를 민중적 창발성의 세계에 근거를 두고 진행해왔다. 그의 이 같은 작업방식과 태도, 그리고 성과물들은 제도화되고 공식화된 문화적 틀로부터 벗어나 일상 삶의 시각언어로 일상 삶에서 제기되는 모든 관심사와 문제를 나누려는 동시대 미술의 지향과 일치하며, 이런 의미에서 동시대미술이 지역적으로 발화된 탁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재환 시기별 작품의 비평적 해설
[시기 구분]
주재환의 작업은 통상 이 연배 작가들이 하나의 매체에 전념하거나 혹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한적인 양식을 선택해 탐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의 작업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작품마다 모두 다르다고까지 할 수 있다. 매번 모티브와 주제가 다르고 기법이 다르며, 재료와 작업방식도 다르다. 즉 작업의 양상의 폭과 깊이가 너무도 방대하여 작업의 일관된 특징을 포착하거나 흐름을 파악하고 작품 양상을 분별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층위로든 연속성을 엿볼 수 있고 또한 시기마다 변화의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에 나름의 한도 내에서 시기를 구분하고 특징과 양상을 추출해 내고 주요 작품에 분멸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필자는 주재환의 작업은 총 3 개의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의 연대기와 전시이력이 작품의 변화와 공조하는 시점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시기 구분이 가능하다고 본다.
1기(1980년~1991년): 현실과 발언 그룹의 첫 전시 때부터 적극적으로 민중미술 운동에 참여했던 기간까지의 시기, 2기(1991년~2000년): 본격적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점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의 시기, 3기(2000년~ ): 아트 선재 센터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 이후 지금에 이르는 시기.
이러한 시기 구분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업작가로서의 작업 시기와 그 이전 시기를 일단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이 시점을 전후하여 작업의 양이 획기적으로 증대한 점, 그리고 그가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전업작가로서의 존속여부와 관련된 사항들에 대한 의식이 불가피 했던 점, 그리고 이 당시가 민중미술 운동이 쇠퇴하기 시작하고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소비사회적 양상을 띠기 시작했던 점 그리고 그가 이러한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반응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91년을 기점으로 1기와 2,3기 사이의 구분이 이루어진다.
둘째, 1기는 실상 전반기와 후반기의 작업 양상이 조금 다르다. 아마 민중미술 운동에 참여한 것이 중요 요인일 것이다. 80년 ‘현실과 발언’ 그룹을 통해 출품한 그의 작업들은 이전까지의 그의 생활경험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발’ 초기의 작업은 이전까지의 그의 삶의 이력과 더욱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85년 민중미술 운동에 참여한 이후의 작업은 비상한 시기에 대한 대응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전반기와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시기 전체에 걸쳐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의 량이 20점 전후로 한정되기 때문에 전 후반기를 통합하여 하나의 시기로 다루는 것이 효율적이라 하겠다.
셋째, 2기와 3기의 구분은 ‘아트선재센터’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을 기준으로 하여 나뉜다. 양자의 구별은 1회 개인전의 작업이 전업작가로서의 본격적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의 입지가 불투명한 상태로 그야말로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쳐냈던 시기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 시기의 작업은 유화로부터 콜라쥬와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비전문인 출신 작가가 가질 수 있는 자유, 아카데미의 폐해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작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 시기 작업은 이후 본격적인 작가로서 국제전과 개인전 단체전을 활발히 수행하던 이후 시기와 활동양태가 달랐다는 점 역시 양 시기를 나눌 필요를 확인해 준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2기 작업이 지닌 놀라운 독창성이다. 주재환의 이 시기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놀라운 성취이고 그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연구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독자적인 시기 구분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1기
이 그림은 피에트 몬드리안Mondrian의 <컴포지션Composition>연작의 전형적인 구성을 본 따 그린 것이다. 알려진 대로 이 화면의 사각 공간들 안에는 수많은 삶의 군상들이 그려져 있다. 모텔방의 남녀, 도박하고 있는 사람들, 목을 매고 자살한 인물, 카바레에서 춤추는 군상들, 전시장 광경 등... 이 그림의 초점은 우선 이곳 미술계의 서구 미술 추종에 대한 패러디와 풍자에 맞춰져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작가의 포괄적 시야와 예리한 통찰이다. 서구 미술과 현대적 조형이 이곳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삶을 뒤덮더라도 그 삶은 가려질 수 없으며 화면의 장막을 뚫고 들어와 그 사이사이에 빼곡하게 들어찰 수밖에 없다는 것. 작가는 이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만화체로 그렸다. 아니 전통 암각화의 필체를 만화 풍으로 변용했다. 이는 작가가 고급미술의 어법과 관습을 별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이 그림을 뼁끼(페인트)로 그렸다. 보존가능성을 절대시하는 기존 미술계의 기본 관행마저 거부한 것이다. 그는 작업의 시발부터 일관되게 기존 미술계의 관행을 삐딱하게 보고 비트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삐딱함의 근거는 지금 이곳의 ‘지지고 볶는 삶’이다. 그의 작업들은 이렇듯 하나하나 단순한 듯 복합적일 뿐 아니라, 웃음과 더불어 심도 있는 통찰을 내보인다.
이 작품은 뒤샹(Marcel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1912)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계단 위에서 떨어지는 오줌 줄기를 통해서 현대 모더니즘 미술의 과도한 신화화를 풍자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에 의거한 뒤샹의 새로운 인식의 빛은 오줌줄기 세례를 맞는다. 그 오줌줄기 사이로 만들어진 검은 그림자들에 초점을 맞추면 일렬로 늘어선 권력형 인물형들이 눈앞으로 도출되기도 한다. 또한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권력풍자의 무게를 그 제목과 잘 어울리는 노란 색이 덜어내줌으로써 사뭇 경쾌한 리듬마저 탈 수 있게 해준다.
<광땡>은 전적으로 흉흉하고 암울했던 시대의 소통의 어려움과 은밀함에 기인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툿장의 8월 광 그림을 작품의 골격으로 차용하여 마치 화투판이나 술자리에서의 은어나 비어와 마찬가지의 암유적 방식으로 당시 전두환 일당의 나라 말아먹기에 대한 냉소와 무력감을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기호학적 의미 비틀기'의 핵심은 팔공산 만월 아래 살찐 배의 실루엣처럼 봉긋 솟아오른 호弧의 중앙에 붙어있는 11월 똥 껍질의 실루엣이다. 그 작은 실루엣이 나뭇가지로 위장한 군인의 철모 같기도 하고 또 (포만감을 즐기는 권력자의 살찐 복부 아래 보잘 것 없는 품으로 붙어있는) 노인의 거시기 같기도 하다. 혹은 (있어선 안 될 자리에)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기생식물이나 사마귀처럼 읽히기도 한다. 둥근 만월과 光이라는 글자는 왕의 권력과 전두환의 벗겨진 머리를 불가피하게 환기시킨다.
성조기의 붉은 색 스트라이프 바탕 위에 찬송가 한 장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엔 노란 '뉴 쥬시 후레쉬' 껌 껍질과 씹다 만 껌이 붙어 있다. 미국은 '쥬이시하고 프레쉬하게' 입에 퍼져드는 미제 껌의 미감으로, 한 번 아멘에서 일곱 번 아멘까지 곱씹는 찬송가의 음감으로 그리고 붉고 흰 줄무늬의 미니멀한 시각경험으로 틈입해왔다. 또한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는 찬송가 책의 가장자리는 개화한 어머니의 새벽기도로 남겨진 손때처럼 육친의 기억을 한층 강조한다. 이처럼 미국이라는 구세주는 낯선 자유주의의 '관능' 자체를 창출해내면서 우리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미제 껌 송가>는 이러한 상황, 좋든 싫든 간에 미국이라는 큰 존재가 우리 정체성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 취소불능의 사태를 심플하게 드러내 준다. 그런데 그 존재를 아는 순간, 사태는 단순해지기는커녕 한층 복잡해진다. 사회 전반을 관장하는 합리적 시스템, 장기적으로 축적된 문화역량, 교환가능한 화폐적 담론의 고부가 가치, 견고한 사물과 단단한 신체 속에 빛나고 있는 에로티시즘, 무엇보다 발군의 명작들이 즐비한 예술의 상설무대 등등이 차곡히 구비되어 있는 선진사회를 어쩌면 평생 부러워만 하며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 한 번의 실패, 두 번의 좌절을 거치면서 '그들을' 따라잡으려는 힘조차 쇠잔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주재환의 '인격'이 본격적으로 발동한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후진성과 지체의 상황을 인식하면서 심미적 욕망의 긍정성도 함께 이해하는 것 같다. 삶과 연동된 예술의 의미와 기능을 받아들이지만 선진하는 미적 가치에 대한 탁월한 감수성도 작품에서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업은 남파무장공비 김신조를 진압 차 출동했던 '스리쿼터' 사진이 소재가 된 콜라주 작품이다.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위해 침투했을 때, 주재환은 일명 '딱딱이'로 통칭되곤 하던 야경원(오늘날 방범대원) 일을 했다. 당시 종로 경찰서장(최규식 총경)이 죽고 전투가 벌어지던 일을 생생히 목격했던 주재환은 이 기억을 천상병의 시 <새>와 연결시켜 작품 <죄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천상병의 시 '새')>(2004)를 제작했다. 총알자국이 선명한 이 반공화보 위에 천상병의 시를 전사轉寫하고 배경은 커피로 지워 놓았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박정희 시대의 모던한 감수성, 사물 속에 각인된 그 정치적 무의식을 브레히트적 어법으로 밀쳐냄으로써 몽타주된 포스터의 선전성을 역전시키고 있다.
이 작업은 고(故) 박창수 노동열사의 영안실에 난입한 경찰의 사진과 당시 빈번하게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침해를 달력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노태우 정권 때 자결한 노동자들을 기록한 것이고, 달력 위 문양은 '극락왕생'하라는 의미이다. 당시 노동자 빈소에 사람들이 벽을 뚫고 들어온 장면이 한겨레신문에 실렸는데 이걸 찍은 사진작가를 만나서 구한 사진을 인쇄한 것이다. 약 1000장 정도 인쇄한 후 노동단체에 기증했다.
2기
이 그림은 유화작품이다. 이 그림은 땅 아래서 하늘 위의 달을 올려다보는 시점의 풍경화다. 하늘은, 주재환이 유채로 풍경을 묘사할 때 나타나곤 하는 특유의 푸른빛,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했듯 삶의 심연과 대면한 작가의 처연한 심정을 드러내는 바로 그 색채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달 좌우 옆으로 ‘건곤실색 일월무광’, 곧 “하늘과 땅도 빛을 잃고 해와 달도 어두워졌다”는 서산대사의 글이 쓰여 있다. 작품의 요체는 작가 특유의 필체로 묘사된 하얀 달과 그것과 만난 하늘의 푸른빛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언뜻언뜻 내비치는 빛의 흐름과 진동, 전개 양상이다. 그리고 그 옆에 글이 붙는다. 어떤가? 이 작품에서 그림과 글은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들이며 확장하지 않는가? 글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상상 속에서 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출생과 죽음 사이에는 두 개의 불기둥이 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이율배반, 상호모순이겠죠. 물과 기름이 서로 밀어내면서도 혼거할 수밖에 없듯이 이것이 솟으면 저것이 누르고, 저것이 나서면 이것이 막는 출구 없는 터널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존재. 이것이 인류의 숙명이 아닌가 싶어요. 불가사의하고 신비스러울 뿐이죠. 과연 이를 형상화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살고 있던 서울시 은평구의 12만 전화가입자 명부가 실린 페이지들을 이어붙인 거대한 크기의 작품이다. 이렇게 이어붙인 페이지 위에 트레싱지에 사인펜으로 쓴 자작시 '모래알 하나…'를 겹쳐서 붙인 첨부형 작품이다. 이 시는 은평구 12만 명의 전화가입자들의 "모래알처럼 바람에 실려 사방 허공으로 흩날리는" 찌찌삐삐 신호음 속에서 "일일이 공팔이 은평구 / 신사동 현대아파트 백오동 / 천사백이호 / 삼칠육에 삼일칠이 - 사일공일공일 / 일공공육사이칠"인 작가 자신의 존재를 음미하는 내용이다. 현대적 일상성의 인구학적 스케일과 익명성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스케일과 익명성 속의 12만 분의 1의 단위로서의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이 작가의 독특한 견자見者적 시각이며, 그것을 드러내는 물리적이고 중성적인 방식이다. 이 같은 익명성은 미학적 착안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보다 더 깊은 작가 자신의 체질화된 삶의 철학과 도덕성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주재환의 살아온 삶의 궤적과 그 중생적 익명성의 자연스런 반영이라는 것이다.
주재환은 백미러에 비친 도깨비 그림을 우리 시대에 관한 하나의 정치적 삽화로 제시한다. 도깨비 얼굴을 한 과거, 친숙하고도 낯설며 엉뚱하고도 기괴한 그것은 계속해서 작가 뒤로 그리고 우리들 뒤로 따라 끈질기게 붙는다. 어딘지 분명치 않은 공간 속을 달리는 자동차 백미러 속의 호랑이 얼굴을 보여주는 작품 <백미러>는, 자동차로 상징되는 일상의 현대성 속에서 우리가 갖는 격세지감을 민담적 세계에 병치시킴으로써 빼어난 해학을 만들어낸다. 백미러 속의 호랑이 얼굴은 작품 속의 운전자가 보는 우리의 얼굴일 수도 있고, 이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 백미러를 통해 드러난 운전자의 얼굴일 수도 있다. 호랑이가 단지 현대성의 너머 저 멀리 퀘퀘묵은 민담세계에 속해서만이 아니라, 그 얼굴의 표정이 익숙한 운전자의 표정이 아닌 서투름과 곤혹스러움, 그리고 촌스러움까지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 유머를 느끼게 한다. 주재환 작품에서 '도깨비' 소재가 첫 등장한 것이 <백미러>이다.
주재환은 모조지 전지에 커다란 얼굴을 그려놓고는 눈, 코, 귀, 입은 물론이고 정수리부분을 여러 개의 큼지막한 집게로 집으며 한마디 뱉는다. "귀찮아"라고.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책과 신문이나 뉴스를 보다가 그 가운데 내 심중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걸 작품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죠. 뇌리에 박히는 것을 밑줄 치고 메모하고 스크랩도 해 둡니다. <귀찮아>같은 작품처럼 메모 없이 평소에 잠재했던 것이 그냥 나오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척 보기에도 소위 전문가들의 미술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냥 생활인이면 누구든 가능한 방법으로 그냥 쉽게 작업한 것이다. 이게 전부다. 그는 전문미술인들이 그렇게 심사숙고하는 작품의 견고함, 지속가능성 같은 것들을 괘념치 않는다. 예술작품을 심지어 보고 즐거우면 그만인 그런 대상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단순히 출구의 배치도로 보여지는 <그 자는 몇 번 출구로 튀었을까>는 원초적인 욕망과 갈증의 산물이다. 출구도, 즉 상부 5+5 도합 열 개의 길, 하부 5+5 도합 열 개, 그리고 중앙의 한 개의 길을 그린 그림은 가로도街路圖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각색된 인체의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그 자'가 튀었을 법한 출구는 중앙의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상승하여 발기한 '10'번일 것이다. '그 자…'도 역시 원초적 욕구인 성과 맞물려 있으며 인간, 인류라는 원대하고 숭고한 존재체를 찬양하기보다는 튈 출구를 다양하게 궁리하고 있는 속물적이고 먹고 살기에 바쁜 익명의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작업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매우 복합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면 중앙에 붙여진 통장 주위 공간을 가로 세로 비례에 맞춰 동심 직사각형을 반복한 후 ‘내돈’이라는 손 글씨로 화면을 빼곡히 채웠다. 여러 글에서 지적되었듯이 ‘내돈’의 무수한 반복과 집적은 ‘내돈내’가 되기도 하고 ‘돈내’가 되기도 하는 변주를 거치면서 화면 가득히 생활의 난관이 초래한 절박함을 새겨 넣는다. 화면이 글씨로 가득 채워져 이미지가 형성되었다는 측면에서 이 작업은 ‘글씨 그림’에 가까운가 하면, 낙서 그림에도 가깝다. 그런가 하면 동심 직사각형의 반복과 ‘내돈’이라는 글씨를 반복적으로 채운 화면은 올오버 페인팅의 전면성과 추상 혹은 미니멀리즘의 평면성과 반복을 연상시킨다. 전통 서예 원리의 계승, 낙서의 활용, 모더니즘 회화에 대한 개념적 긴장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내돈’, ‘내돈내’라는 절규의 음성효과가 어울리는 이 작업은 거의 오페라적인 구성과 울림을 표출한다.
임산부가 도망치는 것은 출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출산을 원치 않는 이유는 여인의 본래 의도가 아니라 외부의 조건에 대한 힘없는 반발이다. 본능적 출산마저 거부하게 만드는 조건이라면 여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달아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조건들이 임산부를 위협한다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여성의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에 주목하여 주재환은 세로로 삼등분된 기본조형에 좌향 우향의 인물들을 교대로 배치하고 입체를 곁들여서 경쾌한 방법으로 임산부의 줄행랑을 표현했다. 이 그림 뿐 아니라 몇몇 작업들에서도 등장하는 기호적으로 압축된 형태의 컷아웃 인물상들은 그것이 하나의 회화적 공간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달력의 사진처럼 인쇄된 풍경, 스크린, 벽지 등 어느 곳에서나 적응하면서 기존 풍경의 컨텍스트를 바꾸는 매력적 융통성을 보여 주고 있다.
위험스런 주변환경에서의 철저한 도피'라는 서구의 비회화미학의 모방에 '위험스런 주변환경에서는 현찰이 중요'하다는 체험미학의 실체를 갖다붙임으로써 미술제도와 작가적 삶의 허구성을 풍자하기도 한다. 그의 번뇌의 '시대착오적' 크기와 그 철학적 인문적 화두의 종과 횡으로의 무진함은, 이를테면 서울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한강의 수많은 다리들 위의 홍수 같은 차량들의 물결 곁을 몽유환자처럼 헤매는 몽상가 J씨의 궤적만큼이나 거창하고 부조리하다. 한강의 모든 교량들과 그 남북단 입체교차로들을 횡축으로 길게 이어붙인 위에 이 저항적이고 절망적인 몽상가의 산책로를 눕혀진 ㄹ자형 궤적으로 표시해놓은 이 작품에서, 개념적 명료성은 광역 도로교통지도 그 자체만큼이나 체계적이고 정보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볼펜 한 자루의 수명>은 아이들의 일기장을 뜯어 붙여 만든 바탕에 볼펜 한 자루를 처음부터 잉크가 다 닳을 때까지 한 번에 수많은 원들을 이어 그려 남겨진 흔적 혹은 궤적을 내보인 작업이다. 이 작업의 요체는 볼펜 한 자루의 잉크가 시간이 지나며 다 닳아 없어지는 모습처럼, 무언가 사라져 가는 어떤 것에 시적인 정취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관조적 여운을 환기시키는 이 미묘한 탈속의 페이소스야말로 주재환의 의외로운 재치와 인생에 대한 통찰이 결합된, 하나의 인간적 풍경으로 다가오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한 평생을 축약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알레고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법으로 그려낸 이 작업은 그가 예술적 경험의 물질적 촉발제인 작품보다는 순수하게 그 경험 자체를 중시하며 제도적 매개를 통해 미적 경험에 제한 가하는 모든 장애물들에 대해 거리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몇 달 동안 길거리를 걸으면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갖가지 잡동사니를 주워 모아 이것들을 2x6cm로 인쇄된 라벨 안에 본드로 고착시켰다. 쓰레기 집하장에도 실려 가지 못하는 따라지 중의 따라지라 할까, 내버림 받음의 극치상태라고나 할까, 이런 존재들에게 신성神聖을 부여하고 싶었다. 서기 670년에 의상대사는 화엄사상의 진수를 7언 30구 210자로 요약한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었다. 우주 만물은 모든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되면서 평등 속에 차별을, 차별 속에 평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게 화엄사상의 요지라 한다. 버려진 잡동사니 하나하나가 장엄한 꽃으로 환생하는 꿈을 꾸면서 법계도 양식에 따라 배열하였다.” 이는 작가의 말이다. 작가는 의상대사의 법계도에서 영감을 얻어 그야말로 아무런 쓸모없는 미소한 사물들에게 대우주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물로서의 당당한 위상을 부여했다. 이 사물들은 한편으로 전체 텍스트를 구성할 뿐 아니라 동시에 마치 법계도 속 각각의 글자처럼 각 개체로서 고유한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주재환의 전형적인 콜라주 작업 중 하나다. 바탕은 전화번호부 책을 한 장 씩 떼어내 붙여 만들었으며, 그 위 사람형상은 신문에 실린 폰팅 광고 조각들을 모아 재구성했다. 형상 가운데로는 빨간 선이 지나가고, 맨 위 손 부분에서는 그 선이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낸다. 인물 형상의 머리 부분은 남자 성기 귀두 부분을 연상시키며, 형상 중앙부에는 성기가 돌출되어 있다. 폰팅 광고 중 전화번호를 변형시킨 사례들, 오빠오빠빨리빨리58588282나 오빠오빠바로바로58588585가 흥미롭고, 성기 뒷부분에 여인 얼굴이 콜라주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이 작업은 소비-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당대 인간들(남성)의 웃픈 자화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바탕의 전화번호부 숫자들과 광고 문구들로 뒤덮인 이 인물은 귀두 형태의 머리를 갖추고 성기만이 발기된 채 단순화되어버린 약간은 바보스럽고 괴기스러운 경직된 모습이다. 소비-정보화 사회라는 거창한 구호가 구체적 일상에서 실제로 어떻게 관철되는지를 보여주는 주재환의 통찰은 거의 엽기적이다. 전문 미술 영역의 관습보다는 낙서나 삽화나 일러스트 혹은 만화 같은 대중문화의 도상 혹은 민간 전통의 이미지들과 더 친근한 이 인물상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당대의 구체적 인간상을 포착해낸 드믄 사례 중 하나에 속할 듯싶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폰팅을 한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현상인데, 거기에서 인간의 원초적 고독을 읽게 되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이 돈으로 '사고 파는' 인간의 사물화랄까, 이런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합니다.“
이 작업은 예(미)술에 대한 작가의 개념, 생각 고민을 모티브로 제작한 “미학” 연작중 하나다. 이 작품은 몇 개의 두루마리가 담겨져 있는 종이백 앞면 위쪽에 안견의 <몽유도원도> 복사본을 부착하고, 그 밑 A4 용지에는 작가의 소회를 담은 텍스트가 붙여 만든 작품이다. 그 텍스트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미학: 15세기의 한 젊은이가 꿈꾼 유토피아 / 복숭아 꽃나무 / 20세기 한국의 젊은이들이 꿈꾼 유토피아 / 자유, 평등, 정의 / .... / 신기루 / 봉투 속에는 유토피아를 그린 설계도만 쌓여갈 뿐 / 왜 / 그것은 겨우 보이는 점으로도 / 현실의 지도 위에 / 나타나지 않는가.” 주재환은 예술이 현실 속에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유토피아를 다만 꿈꾸는데 그칠 뿐이라는 점을 한탄한다. 이 작업은 유토피아, 예술, 현실의 삼각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미지, 텍스트, 사물의 조합으로 재구성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 작업은 기묘하다. 화면은 전면을 덮은 공사장의 아시바(발판) 위에 익명의 인물형상들(노동자?)이 열 지어 춤추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인물형상은 예의 암각화에서 유래한 것 같기도 하고 서체 양식 같기도 한 필체로 그려졌다. 색채는 바탕의 푸른빛, 인물형상의 노란색과 하늘색, 그리고 ‘오늘밤 춤을 추어요’라는 제목이자 화제畫題의 붉은색이 서로 섞이면서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극장 무대 같은 느낌의 화면은 네온사인이 번뜩이는 소비사회 도시의 음울하면서도 생경한 야경을 연상시킨다. 압권은 ‘오늘밤 춤을 추어요’ 라는 화제가 서체양식으로 반복적으로 균일하게 배치된 인간 형상들과 어우러지면서 시각적으로 그리고 의미론적으로 화면에 리듬을 불어넣는 지점이다. 형태들의 차이와 반복, 정적인 배열에 스며들어 움직임을 부여하는 춤의 리듬감, ‘춤을 추어요’라는 화제에 포함된 음성적 요소의 발산 등이 어우러지면서 이 그림은 모호한 듯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내밀한 통합을 보여준다.
이 작업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씁쓸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림 안의 짜장면 배달 소년은 값싸고 위험한 노동의 고단함 속에서도 오토바이의 빠른 속도의 질주로 해방감을 만끽하는 듯하다. 바람에 날리는 짜장 면발은 이 고단함/해방의 이중주의 리듬에 희열을 더한다. 이 리듬과 희열은 배달 소년을 넘어 당대를 살아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페이소스와 공명하며, 어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일종의 생명력에 대한 찬사로 읽혀진다. 직관적이면서 동시에 중층적인 함의가 파장을 이루며 확산되는 이 작업은 주재환 작업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은 유화다. 주재환은 생활 주변의 재료를 활용한 콜라주 형식의 작업을 많이 제작했지만, 유화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의 유화는 통상적인 의미의 유화들과 여러 점에서 다르다. 이 그림도 필치와 구성이 과장법을 활용한 만화 풍에 기초하면서도 특유의 상상력이 풍성하게 전개된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유화에 여타 매체와는 달리 위계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이 작업은 주재환 작업에서 웃음이 차지하는 위상을 가장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다. 주재환에서 웃음은 단순히 누구누구의 웃음이 아니라 생성 변화하는 존재의 유쾌한 상대성 혹은 존재 자체의 그로테스크함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은 또한 민중의 웃음, 곧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 긍정하는 낙천적 웃음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주재환의 웃음이 지닌 이 같은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유화 중에선 상당히 큰 크기에 해당하는(80호) 이 작품은 한 가운데 하하하…하며 글자들이 덩어리로 뭉쳐져 있고 그 주변에 낱낱의 '하'들이 부유하고 있다.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면 한꺼번에 수 만 가지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가 또 일시에 깨끗이 사라지곤 하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어찌보면 이 그림은 크고 넓은 회화의 우주를 관조하는 한편의 시조이며, 우리시대의 가난한 미술과 작가에게 보내는 지극히 성스러운 그래피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주재환의 작업은 '난관(難關)'이란 단어로 축약될 수 있다. 삶의 난관과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진득하고 깊이 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적 인문성,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융합미학과 촌철살인의 유머, 이런 것들이 하나로 압축된 것, 그것이 주재환의 작업이다. 이 작업은 벽면에서 바닥으로 90도 꺾여 설치된 화포가 횡단보도를 재현하고 있으며 그 위로 화가의 의자, 두 개의 발, 이젤의 세 사다리의 위치가 마치 교통사고 직후 경찰이 현장에 표시한 것 같은 몇 개의 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젤과 작가 사이엔 색색의 물감이 너저분하게 흩뿌려져 있고, 어른 크기의 발자국 도형 속에는(그것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적색과 녹색의 아이 신발 한 켤레가 사고의 유류품처럼 놓여 있다. <횡단보도에 자리한 화실>이라는 이 역설과 역살(轢殺)의 상황으로 주재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존재론적 위험 속에 위치한 예술가의 난관을 압축한다.
이 작업은 어느 미대생이 내다버린 판자 위에, 주재환이 인척을 데리고 갔던 정신과의 실제 설문조사 항목을 인용하여 씀으로서 완성한 것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냉혹한 우승열패의 경쟁사회는 구성원 모두를 수많은 접시를 돌리는 곡예사처럼 끝없는 기장 속으로 내몰고 있다. 접시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신경 집중은 극심한 피로를 가져오게 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접시를 내팽개치면 곧바로 탈락과 좌절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기억난다. 강요된 접시돌리기를 포기하고 유랑하는 소외자들의 갈 길은 어디인가? 신경정신과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수 십가지 질문사항에 환자가 문장으로 대답하는 '문장완성검사'라는 조사방법이 있다. 질문 항목들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그대로 옮겼고, 한 두 가지 질문은 임의로 만들어 추가했다.”
3기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뉴욕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빈 라덴과.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 사용했던 융단폭격기 B-52를 실제 크기의 1/10 비율로 축소하여 대비시켰다. 확연히 드러나는 대형폭격기와 빈 라덴의 물리적 크기 차이는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오늘날의 국제정치를 상징한다.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부조리와 불평등의 구조가 국가 간의 대립과 반목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테러리즘의 주동자로 언론의 집중세례를 받았던 빈 라덴의 몸은 대형 폭격기에 비해 한없이 왜소해 보인다. 작가는 물리적 크기의 차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현대사회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부조리와 불평등의 구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이 작품으로 주재환은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유네스코 특별상을 받았다.
2006년 이래 최근까지 주재환은 일련의 ‘도깨비’를 주제로 한 작업들을 발표해왔다.
주재환은 20006년 이후 ‘도깨비’ 관련 연작을 여럿 제작한 바 있다. 이 그림은 캔디를 재료로 도깨비를 형상화한 <캔디> 연작 중 하나로 유머와 재치가 돋보이는 작업이다. 그림에서 도깨비 형상은 유화로 그려진 몸체와 얼굴에 플라스틱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결합해 만든 머리 부분이 첨가되어 모습을 갖췄다. 또한 그림 아래쪽에는 껍질로 포장된 캔디 한 개가 붙어있다. 알다시피 도깨비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장난꾸러기, 어릿광대, 혹을 떼다 붙였다 하는 초능력자 등 종잡을 수 없다. 이 도깨비는 제목 <캔디>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매우 가볍고 트랜디하다. 작가에 따르면 이 캔디는 일종의 화장술을 의미한다. 영양가도 없고 칼로리는 높고, 그런데 형형색색 예쁜 사탕. 작가 특유의 유희성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도깨비의 장난기와 엉뚱함이 현재적으로 해석됐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그림은 아기고래의 몸이 찢어지면서 신호등으로 바뀌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한 마디로 자연 생태계가 인공 생태계로 변화하는 모습과 과정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끔직하고 고통스럽다고 할 수 있는 과정과 모습이 약간은 신비롭고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다. 아마도 보름달인 듯 거대한 달과 약간은 모호한 풍경을 배경으로 이 과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업들은 당시에 그가 즐겨 그리던 도깨비 그림들의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때문에 어떤 정확한 명확한 시공간의 층위가 드러나지 않고 여러 시공간의 층위가 뒤섞여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같은 해에 제작된 원작 <똥값>을 캔버스에 붙여 제제작한 작품이다. 원작 <똥값>은 영국작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에 관한 신문기사 <피카소 제친 데미안 허스트>를 읽고 완성된 자신의 작품을 불태운 후 자신의 소회를 글로 적어 완성한 작품이다. 새로 첨가된 캔버스에는 원작 밑으로 노란 액체가 흐른 흔적이 그려졌는데 어찌 보면 황금색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똥색 같기도 하다. 2008년 9월17일자 중앙일보의 위 기사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허스트의 작품이 1978억 원어치가 팔렸다는 언급이 있고, 주재환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다. “완성된 내 그림을 불태웠다. 왜냐고? 허스트에게 굴러온 뭉치 돈에 비하면 P의 그림이 똥값이고 내 그림도 똥값의 똥값이고 C의 그림도 똥값의 똥값의 똥값이므로 똥값 예술이 존재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니까 내가 먼저 모범을 보이려고...” 뭐 이런 작품이 있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찌 보면 당연한, 하지만 불편한, 그래서 그냥 지나치곤 하는 사안, 곧 오늘날 예술과 돈의 관계에 만연한 가치의 역전현상에 대해 직설적이며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시도하고 있다. 자신의 작업을 태워 버리고 그 위에 적어놓은 소회를 읽어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그림은 캔버스 뒤편에 한 인물상을 그려놓고는 정몽주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를 인물 양 옆으로 써놓은 작품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하여가가 한 인생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고 물 흐르듯 시류를 따라 살자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초지일관하여 명분과 의리를 지켜나가겠다는 강직한 삶의 이데올로기를 표명하고 있다. 자가는 이 양 이데올로기가 초래하는 갈등을 이곳 한국의 일상사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하지만 해결되기 힘든 딜레마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간략하게 글과 이미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딜레마에 대해 다시금 되씹어보도록 관객들을 유도한다.
이 작업은 ‘데미안 허스트 · 신의 사랑을 위해 · 2007 · 두개골에 다이아몬드 8601개 · 1106.18캐럿 · 작품가 918억 5천만원’이라 씌어 있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해(2007)’의 도판이 인쇄된 엽서 한 장을 여러 개의 돌덩어리들이 담겨져 있는 찌그러진 냄비 속에 넣어두고, 그 아래로는 제목이 ‘탐욕의 시대’인 책의 표지와 다음의 내용이 인쇄된 종이쪽지 한 장을 함께 붙여 놓아 완성된다. “브라질 북부 판자촌에 사는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어머니는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이 시기에 작가는 vs(대) 곧 양 극단을 보여주는 생각이나 상황을 대비시키는 작업을 즐겨 시도했다. 한편으로는 상황을 고발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극단적 대치가 벌어지는 상황 자체의 황당함을 주목케 하려는 의도 또한 있지 않았나 싶다. 작가는 아마도 풀리지 않는 난문들을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에 있는 듯하다.
민속신앙에 귀신 특히 역귀疫鬼가 집에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하여 집 대문에 체를 걸어 놓으면, 귀신이 체의 구멍 수를 세다가 날 밝으면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귀'란 사람에게 해를 주는 귀신 가운데 역병, 즉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을 말한다. 현대와는 달리 전염병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을 갖지 못했던 옛날 사람들에게 역병은 매우 두려운 존재였으며, 전염병의 원인을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원인을 역귀의 소행으로 여겼다. 이 작업에는 이렇듯 전근대 민중이 귀신을 대하고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요점은 귀신이 체의 구멍 숫자를 센다는 점에 있는데, 아마도 작가는 이 황당한 생각에 포함하고 있는 상상력을 주목해 보지 않았나 싶다. 당신도 체의 구멍을 세고 싶지 않은가? 왜 귀신은 체의 구멍을 센다고 생각했을까? 이 시기에 작가는 인간이 합리적 이성이라는 것으로 모든 사안들을 재단하는 방식과는 다른 어떤 것들을 자주 주목하는 듯싶다.
현기증 연작은 작가가 2011년부터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여 제작한 작업들로 양적으로는 70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이다. 이 연작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포스터를 차용하여, 구멍으로 내다보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현기증-쇼생크탈출> 연작을 비롯하여, 영화 ‘무법자’의 포스터를 활용한 <현기증-당나귀 무법자> 연작, 항공모함의 사진 이미지를 창요해서 활용한 <현기증-항공모함> 연작 등 다양한 연작들과 개별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작가는 현실의 수많은 사건들과 정황들이 자신에게 현기증을 일으킨다는 취지에서 이 연작을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더비Sotherby에 출품된 어떤 가상의 작품에 대한 해설과 그 작품의 실상을 비교하면서 에프라임 키손Ephraim Kishon의 저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 나오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런 미술용어를 모으면 물론 사전 1권은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작품에 대한 현학적 평설과 객관적 설명을 서로 대조하면 실소를 금할 길이 없는데, 예술적 평가가 허황된 언어의 장난을 통해 실제와 얼마만큼이나 유리될 수 있는가를 절묘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경매회사 직원이 고이 받쳐 든 번쩍이는 금박의 액자 안으로 아래의 표가 마치 작품의 내용이라도 되는 듯이 떡하니 인쇄되어 있고, 이에 더해 작품의 해설이 지루해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사진 이미지 역시 그 위에 오버랩 되어 있다.
사우나에 목욕하러 온 사람들이 자꾸 수건을 훔쳐가니까, 사우나 주인이 도난 방지용으로 '훔진 수건'이라는 글자를 찍었다는 것이다. 만일 '훔친 수건'이라는 글자가 찍힌 수건을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벌써 수건을 훔친 도둑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건을 훔친 기억이 없다는 작품 속 '딸'의 변명처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여야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신상에 불리한 내용이라면 죄다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무슨 게이트나 무슨 리스트에 연루된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다. '훔친 수건'이라고 찍혀 있는 글자처럼, 차떼기로 '해먹은 돈'이 밖으로 다 드러나도 그네들은 절대로 해먹지 않았다 하고, 해먹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다. 생활 유머라 할까? 일면 씁쓸하면서도 이 작품은 유머가 갖는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를 재삼 반추하도록 만든다.
제주도 4·3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테두리에 고 구상 시인의 <가장 사나운 짐승> 시가 적혀 있다. 작품 안은 단지 왜곡상을 비춰주는 종이로 만든 거울면이다. 그곳에 감상자는 얼굴을 갖다 대면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 테두리의 시인 구상의 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다섯 해나 살다온 하와이 호놀룰루시의 동물원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금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쳐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지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가장 사나운 짐승’.”
1. 작품
1) 작품의 분류
전체 작품은 1980년부터 2017년까지 주재환이 제작한 작품들 575점으로 구성하였으며,
2) 작품편 수록작품의 배열기준
작품은 연대기 순으로 구분하였고, 연작끼리 배열하였다.
3) 작품편 수록작품 정보의 선정기준
① 작품 제목 : 작가 자신이 붙인 제목을 우선으로 하고, 제목이 복수일 경우에는 작가와 확인하여 하나를 정하였다.
② 제작년도 : 제작년도는 출처가 있는 경우 출처를 따랐고, 작가와 검토하는 과정을 마쳤다. 제작년도가 불명확한 경우 연도미상으로 표기하였다. 작품을 개작한 경우 작성노트에 작품명과 제작년도 등의 정보를 표기했다.
③ 재료 및 기법 표기 : 작품의 매체는 캔버스에 유채, 콜라주, 드로잉, 사진, 판화, 설치, 낱말 퍼즐, 비디오 등으로 분류하였다.
④ 작품의 크기 : 평면의 경우 세로×가로(cm) 순으로, 입체의 경우 높이×폭(너비)×깊이 순으로 표기했다.
실물의 사이즈를 측정하거나 참고문헌에 기재된 크기를 기재하였다.
실물 프린트가 없는 디지털 파일의 경우 ‘디지털 파일’이라 기재하였다. (예: <현기증>시리즈)
⑤ 소장처 : 현재의 소장처를 명시했으며, 주재환의 경우 행방불명, 작품 망실, 파기 등으로 소재불명인 경우 작성노트에 표기하였다.
2. 참고문헌
1) 자료의 유형은 ‘도서’, ‘논문 및 학술지’, ‘신문 및 기사’로 나뉜다.
2) 자료의 구분은 ‘선언문’, ‘단행본’, ‘도록’, ‘리플릿’, ‘비평문’, ‘잡지기사’, ‘좌담’, ‘대담’, ‘짧은 글’, ‘발제 녹취록’, ‘학술지논문’, ‘단행본 수록 논문, ‘석사학위 논문’, ‘학술지 논문’, ‘신문 및 기사’로 나뉜다.
3) 자료의 구분에서 ‘짧은 글’은 주재환에 대한 글이지만 비평문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것들을 의미한다.
4) 자료의 구분에서 ‘단행본 수록 논문’은 학술지 논문이나 학위 논문이 아니라 특정 출판사에서 나온 단행본에 실린 논문을 의미한다.
5) 자료 구분에서 ‘선언문’(가령 ‘현실동인 제1선언문’, ‘현실과 발언 창립 취지문’)은 작품 외 자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나 주재환의 창작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참고문헌에 넣었다.
6) 자료의 표지 이미지는 웹사이트 검색을 통해서 구했으나 자료의 실물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쪽수를 미상으로 기입했다.
7) 엑셀 양식에 작품에 대한 내용을 기술할 때는 <>부호를 사용했다.
8) 엑셀 양식에 책 이름, 글 제목, 전시명, 전시장 이름 기술할 때는 ‘’부호 혹은 ()를 사용했다.
3. 작품 외 자료
1) 자료의 유형 및 구분은 ‘단행본’, ‘도록’, ‘리플릿’, ‘브로슈어’, ‘선언문’, ‘공문서’, ‘보고서’, ‘메모’, ‘작가의 글’, ‘회의자료’, ‘안내문’, ‘방명록’, ‘보도자료’, ‘달력’, ‘편지’, ‘광디스크’, ‘비디오테이프’, ‘동영상’, ‘엽서’, ‘이메일’, ‘일정표’, ‘잡지’, ‘초대장’, ‘상장’, ‘스케치’, ‘설치메뉴얼’, ‘안내문’ , ‘디지털자료’, ‘작가노트’, ‘슬라이드’, ‘사진필름’, ‘사진’으로 나뉜다.
2) 자료의 유형 및 구분에서 ‘동영상’은 광디스크나, 비디오테이프에 담겨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규격을 기술할 때 영상의 시, 분, 초, 용량만을 기록했다.
3) ‘디지털자료’는 주재환과 관련하여 확보한 자료 중 디지털 상태로만 생산된 텍스트 혹은 음성 및 영상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규격을 기술하는 부분에서는 파일의 크기만을 표기했다. 제출해야 할 자료의 대표 이미지는 자료의 파일명으로 대신한다.
4) 자료의 유형 및 구분에서 스케치는 누군가가 주재환의 그린 것이거나 주재환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그린 삽화들을 포괄한다. 주재환이 작품 활동과 관련하여 생산한 드로잉은 작가노트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
5) 목록화된 47장의 사진에 대한 내용 기술은 주재환이 사진의 뒷면에 써놓은 해설을 바탕으로 했다.
6) 목록화를 진행하며 연도가 불확실한 자료는 다른 자료들과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연도를 추정하여 ‘0000년미상’, ‘연도미상’ 같은 방식으로 표기했다.
7) 문헌 자료 중 문헌의 일부 정보는 다른 문헌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실물이 없어서 문헌의 가로, 세로, 쪽수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미상’이라고 표기했다.
8) 제목을 특정할 수 없는 자료는 자료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목을 연구자가 임의로 정하고 기술제목이라 표기했다.
9)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에서 제공받은 자료는 출처 세부사항에 ‘국립현대미술관 최열 콜렉션’이라고 적거나 ‘리울 자료실’이라고 표기했다. 이렇게 표기된 자료는 차후 공개가 될 경우 반드시 자료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10) 엑셀 양식에 작품에 대한 내용을 기술할 때는 <>부호를 사용했다.
11) 엑셀 양식에 책 이름, 글 제목, 전시명, 전시장 이름 기술할 때는 ‘’부호 혹은 ()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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