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난 김영원은 1968년에 홍익대학교 조각과에 학하여 1974년에 졸업했다. 1969년 대학 2학년 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서곡>이라는 사실적인 여성 누드상을 입선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에도 국전에 지속적으로 출품하면서도 「목우회」,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한국미술대전」 등의 민간공모전에 출품하여 수상하면서 인체조각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마침내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함으로써 그의 명성이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의 현대 조각가들은 흔히 대학에서 조각을 배우거나 조각가로 입문할 당시에는 사실적인 인체 조각을 하지만 점차 추상조각으로 선회하는 경향이있는 데 반해, 김영원은 대학 졸업 후에도 50여 년간 인체조각에 천착하고 있다. 대학 졸업 직후에는 사회 현실의 문제를 직설적 화법으로 다루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중력 무중력> 연작을 통해 인간의 실존문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1980년에 첫 개인전에서 극사실적인 인체조각으로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사물화된 인간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기존의 구상조각이 지닌 인체표현의 한계를 극복했다. 1989년에는 ‘선미술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월간미술』에서 1980년대 한국의 대표작가로 소개하기도 했다. 1990년에 건강을 위해 시작한 기공명상의 수련이 창작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다. 체선(體洗)을 통한 심신 수련과 예술 행위를 통합한 예술로, 그 스스로 ‘제3의 예술’이라고 명명하였는데, 199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선(禪)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을 출품하여 주목을 받았다. 2005년경부터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명제로, 독특한 인체조각상을 제작하고 있다. 인체의 구상성과 선(禪) 예술의 추상성을 융합한 작품으로, 세계는 물질과 정신, 色과 空, 有와 無 같은 요소들이 대립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꼬여있거나 섞인 상태로 관계 맺고 있다고 여기는 동양철학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전시회로는 2005년 성곡미술관 개인전, 2008년 선화랑 개인전, 2011년 경남도립미술관 개인전, 2013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노벨로피노티와의 2인전, 2016년 동대문디지인플라자 개인전 등을 들 수 있다.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을 비롯한 청남대의 역대 대통령상 외에 다수의 동상을제작했으며, 통영남망산 조각공원, 일산호수공원, 광주시 도자기 엑스포 조각공원, 김포조각공원, 난지도 하늘공원, 홍익대학교 대학로 캠퍼스, 동대문플라자, 이탈리아 파도바 등에 대형 인체 조각작품이 세워져 있다.
1947 경남 창원 출생
1968-1977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조소과 및 대학원 조소과 수학
1969-1981 제18 - 3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및 특선
1976-1980 한국구상조각회
1981 충북대학교 교수
1990 선미술상 수상
1994 제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ãopaulo)》 인터뷰 작가 선정
1995-201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99 3·1 독립운동 기념탑 제작
2002 김세중조각상 수상
2005 『계간 조각』 발간
2009 세종대왕 동상 제작
2009 문신미술상 수상
201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취임
2011 《생명과 명상의 조각-김영원》, 경남도립미술관
2012 『김영원 조각 작품집』(이숲) 출간
『김영원 TEXT』(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출간
2013 《KIM YOUNG-WON e NOVELLO FINOTTI : Scultori a confronto nella citta di Padova》, 이탈리아 파도바
2015 역대 대통령 10인 동상 제작
2016 《김영원 조각전 : 나-미래로》, DDP
인간과 세계에 대한 화두로서의 인체조각
: 디지털 아카이빙 프로젝트 연구를 통해 본 김영원의 작품세계
김이순 (홍익대 교수/책임연구원)
I. 머리말
김영원은 한국 현대조각사에서 매우 드물게 인체조각에 천착하고 있는 조각가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제작자로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이기도 한데, 세종대왕 동상의 당당하면서도 품위 있는 자태는 작가가 지닌 타고난 재주도 재주이거니와 그가 평생 인체 조각을 제작해왔기 때문에 표현가능한 것이었다. 한국의 현대조각가들은 대학에서 조각을 배우거나 조각가로 입문할 당시에는 인체조각을 하지만, 기성 조각가로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사실적인 인체조각을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김영원은 50년 넘게 인체조각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의 인체조각은 동상처럼 이상화된 사실주의 양식에서부터 극사실적인 표현, 그리고 해체되거나 임의로 재조합된 표현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이러한 인체표현은 기존의 구상적인 표현을 넘어선 것으로, 한국조각사뿐 아니라 세계조각사의 흐름에서 살펴보더라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자성을 지닌다. 본 연구팀은 이러한김영원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디지털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김영원의 조각에 관해서는 작품집, 비평문, 전시 서문, 그리고 잡지 및 신문기사 등의 기초자료가 적잖이 존재한다. 대표적 자료로는 2011년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당시에 출판된 도록 『생명과 명상의 조각, 김영원』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2010년까지의 대표작들이 수록되어 있다.【주석1】 이듬해인 2012년에는 홍익대학교 교수 퇴임 기념전을 기념해서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에서 『김영원 TEXT』를 출판했는데, 여기에는 김영원의 작품세계를 다룬 문헌들이 정리되어 있다.【주석2】 이어 2015년에는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정리하는 석사논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주석3】 그러나 여전히 초기 개인전 관련 자료들이나 잡지와 신문에 실린 기사 등이 흩어져 있고, 특히 그의 작품 연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선(禪) 퍼포먼스’ 관련 자료 등은 작가만이 소장하고 있는 탓에 김영원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작품 제목, 재료, 크기 등에 대한 정보가 자료마다 다르게 표기된 경우가 적잖으며, 재료를 달리한 새로운 에디션을 제작한 경우가 있어서 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김영원의 작품뿐 아니라 작품 외 자료, 참고문헌 등을 전수 조사하고 이 자료들을 토대로 작가연보를작성하여 그의 생애와 함께 작품의 전개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도록 정리했다. 이 자료들을 디지털화해서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도록 했기때문에 김영원의 작품세계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김영원의 작품세계를 국제적으로 알림으로써 그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것으로 기대한다. 이 글은 우선 디지털 아카이빙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과 결과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어서 김영원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디지털 아카이빙 연구 과정과 성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연구 프로젝트 사업으로 진행된 본 연구는 김영원의 작품세계에 나타난 독자성을 규명하고 그를 한국조각사에 있어 중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그의 작품과 관련 자료를 전수 조사하여 디지털로 목록화하는 것을 1차적 목적으로 하였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김영원의 작품 목록화이다. 조각 및 입체와 평면, 퍼포먼스, 그리고 동상을 포함한 공공조형물을 전수 조사하였고 총 871건의작품을 목록화하였다. 그리고 사진 자료, 작가노트, 전시 브로슈어, 리플릿 등의 작품 외 자료 총 422건과 전시도록, 단행본, 정기간행물 등의 참고문헌 556건을 수집하였으며, 작가 및 중요 비평가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료를 보완했다.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430건의 전시이력과 212건의 작가연보를 작성했다. 그리고 중요 문헌자료의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문서화한 인용문 자료 86건을 목록화하였다. 정보의 목록화 작업 후에는 관련성이 있는정보를 연결하는 연동화 작업을 진행하여 총 2577건을 디지털화하였다.【주석4】 또한 본 연구의 2차 목적으로서, 전수 조사된 자료를 이용하여 각 시기별 작품 특징을 분석하고 김영원의 작품세계에 관한 비평문을 작성하였다.
본 아카이빙 프로젝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김영원 작품의 전수 조사 및 체계화 작업이었다. 작가가 《국전》에 초입선한 1969년부터 본 연구가진행된 2020년까지의 작품을 총망라하여 정리하는 이 작업에서는, 입체작품 514건, 평면작품 292건, 설치작품 44건, 퍼포먼스 17건, 사진 4건 등총 871건의 작품을 조사하고 수집하여 작품 제목, 생산연도, 재료, 크기 및 에디션 유무를 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2011년에 열린 김영원의 개인전 《생명과 명상의 조각 김영원》의 전시도록과 2012년에 출간된 도록 『THE SCULPTURE OF KIM YOUNG WON : 김영원 조각 작품집』을 기초자료로활용했다.【주석5】 또 김영원 작가가 참여한 단체전 및 개인전 도록, 브로슈어, 리플릿 등의 1차 자료를 일일이 조사하였고, 작가와의 면담을 통해 2012년 이후의 작품과 위 도록에서 누락된 작품을 발굴하여 추가하였으며, 다수 작품의 정보 오류를 수정하였다. 작품의 전수 조사와 함께 작품의 이미지를수집했는데, 김영원의 작품은 대부분 3차원 작품이기 때문에 각 작품의 대표 이미지 외에 보조적인 이미지들을 선별하여 함께 수록했다. 이에 더해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각 전시회 출품 당시의 이미지를 수집하였으며, 전국에 흩어져 있는 공공조각과 해외 소장품 및 경매 이력을 조사하였다.
김영원 조각가의 작품 전수 조사에 관한 본 연구 과정에서 드러난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로, 김영원은 소조기법의 작업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1점 이상의 에디션을 어렵지 않게 제작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재료를 달리해서 새로운 에디션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작가 스스로도 이에 대해 별다른 인식 없이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작가에게 일일이 에디션 제작 여부를 확인해가며 에디션을 전수 조사하여 정리했다. 에디션 관련 조사연구는 김영원 작품이 지닌 하나의 특징을 규명하는 것이기도 하며 김영원 작품의 진위감정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조각작품의 에디션을 관리하는 모범 사례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김영원의 입체작업뿐만 아니라 설치, 퍼포먼스, 평면작업을 총망라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김영원은 퍼포먼스를 수차례 실행했고 이를 촬영한 영상물과 그 결과물들도 적잖이 축적되어 있으나, 이 작업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는 모든 장르의 작품 수집으로 김영원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조망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마련하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작품의 전수 조사는 물론, 작품 외 자료와 참고문헌의 조사 및 수집을 진행했다.【주석6】 작품 외 자료는 김영원의 작품활동을 포함한 모든 이력과 관계된 자료로서, 전시 리플릿 39건, 전시 브로슈어 104건, 사진 158건, 작업스케치 49건, 작가노트 14건, 그 외 58건을 포함하여총 422건을 수집하였다.【주석7】 그리고 참고문헌은 그의 작품활동과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참고자료이자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 자료로서, 전시도록 284건, 단행본 20건, 신문기사 125건, 정기간행물 82건, 학위논문 8건, 학술지 4건, 영상 28건, 웹자료 5건으로 총 556건이 수집되었다. 작품 외 자료와 참고자료의 수집 및 정리는 누락된 김영원의 작품 발굴과 전시이력(430건), 그리고 작가연보(212건)를 구성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추후 연구의 활용을 위해 수집된 모든 자료를 디지털 이미지로 제작하였고, 중요 텍스트들은 그 글의 일부를 발췌하여 인용문(86건)으로 문서화하였다.
실물자료의 수집 외에도 작가 그리고 비평가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작가와의 수많은 인터뷰는 그와의 긴밀한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조각의 에디션 정보를 정리하고 문헌자료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던 작품 제목을 일괄 정리하고 통일해서 확정하였다. 그리고 작가의육성을 통해 작업과정과 작품세계 전반을 기록할 수 있었다. 아울러 그동안 김영원의 작품세계에 관해 글을 발표한 대표적인 비평가 3인, 김복영, 윤진섭, 홍가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영원의 작품세계에 관한 내용을 영상으로 제작하였는데, 이 내용은 연구 및 기록 보관용과 일반 공개용 영상으로 제작하였다.
수집되고 정리된 모든 자료 총 2577건(작품 871건, 작품 외 자료 422건, 참고문헌 556건, 전시이력 430건, 작가연보 212건, 인용문 86건)은 자료의 연동화 작업을 통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였다. 예를 들면, 하나의 작품에 대해 그 작품이 출품된 전시와 전시도록, 그 작품과 전시에 관한 문헌자료가 연결될 수 있게 하여 그 작품을 검색했을 시 관련 정보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자료의 연동화 작업으로 정보의 명확한 출처 정보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작품 제목의 변경 이력과 전시 이력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김영원의 작품과 관련 자료의 전수 조사, 수집한 자료의 정보 연동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지털 자료로 목록화한 본 디지털 아카이빙 연구로 김영원의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게 되었다. 다양한 작품을 유형별로 목록화한 이번 연구는 작가에 대한 심도 있고 다양한 추후연구로 발전될 것이며, 그 결과 한국 현대조각사의 흐름에서 김영원의 위상 정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추후 영문을 포함한 외국어 번역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김영원의 해외 프로모션을 위한 기초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에디션과 관련해서 부언하자면, 김영원의 조각작품이 옥션에 상정된 사례 중 위작으로 판단되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작가가 직접 제작한 에디션을 모두 포함한 작품 전수 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차후 김영원 작품의 위품은 물론 복제품을 판별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로써 미술품의 유통 질서 확립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III. 작품의 전개 양상
김영원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의 한국미술계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는 기치 아래 단색조 회화가 주를 이루었고, 입체 및 설치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실험적 미술이 부상했으며, 조각에서는 추상조각이 대세였다.【주석8】 그러나 김영원은 이러한 흐름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인체조각을지속해 나갔으며, 1977년에 「한국구상조각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구상조각은 분명히 추상조각과 대별되는 영역으로, 1980년대에는 ‘형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새롭게 인식되었지만 당시에는 김복진(1901-1940) 이후로 지속되어 온 사실적인 조각과 구분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의 인체조각은 객관적 사실 묘사라는 측면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시대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서정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김영원은 이러한 구상조각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국구상조각회」를 탈퇴했으며, 한국미술계에서 ‘형상미술’이 부상하던 1980년대에는 형상을 추구하는 화가들과 연대하여 「현·상(現·象)」 그룹을만들어 전시를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룹 활동을 오래 지속하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 창작은 다른 작가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이라인식하고 단독자로서의 길을 걷었다. 이제 50여 년에 걸친 창작 활동 기간에 제작한 작품을 형식과 내용에 따라 네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자.
1. 현실 비판을 담은 사실주의적 인체조각
김영원은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조각을 공부하면서 익힌 사실적 인체표현 방식으로 인체 조각을 제작하여 《대학미전》과 《국전》 등에 출품하면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국전》 출품작 <미풍>, <해륙풍>, <갯벌의 새벽>, <들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표현했다. 이는 당시 구상적인 조각이나 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의 인체 조각이었다. 그러나 1974년 대학 졸업 전에 출품한 <두상(어느사형수의 얼굴)>【주석9】을 비롯하여 1975년 《오늘전》에 출품한 <나무에도 눈이 있다>, 1977년 《한국구상조각회 창립전》에 출품한 <어제 만난 소년>(1976) 같은 작품에서 작가 의식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당시 상황에 대해 “나의 학창시절은 깜깜한 밤 짙게 낀 안개 속처럼 어둡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의 시절이었다. 최루탄과 휴교령, 검색 단속과 미행, 불신이 일상화된 나날을 보내며, 내 눈앞에 놓인 거부할 수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주석10】 데뷔 초기에는 이렇듯 사회 비판적이거나 현실 참여적인 내용을 다소 직설적 방법으로 작품을 표현했다.
1970년대 후반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와 환유의 방식으로 주제의식을 담아내야 했다. 1977년 《공간미술대상 ‘조각상’》에출품한 <시각변이> 이후 <중력 무중력(重力 無重力)>이라는 작품 명제는 작가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중력 무중력> 연작의 초기 작품들의 인체는 고대 그리스 고전기의 청년상이 연상될 만큼 완벽해 보이는 신체를 지녔으나 철봉에 매달려 있거나 축 처져 있다. 게다가 의식이 표백된듯 무표정하거나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 매끈하게 다듬어진 피부, 합성수지(F.R.P)라는 재료의 도입으로 인간을 극한적으로 사물화했다. 해부학적으로완벽해 보이는 청년상이지만, ‘인간은 신을 닮았다’는 사고가 반영된 서양의 인간 중심주의적 인식의 산물인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나 르네상스의 인체상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산업화로 경제는 발전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암울했던 1970-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비껴갈 수 없었던 작가는 <중력 무중력 – 자소상>(1986)에서처럼 이목구비가 표현되지 않은 인물상으로 어둡고 암울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와 같이 암시적이고 은유적 방식을 선택했다.
2. 해체와 복원의 <중력 무중력> 연작
한국사회의 격변기였던 1980년대 말에 이르면 김영원의 작품 경향도 바뀌게 된다. 명제는 여전히 <중력 무중력>이지만 ‘탄생’, ‘복원’, ‘공화국’과 같은부제가 달리게 된다. 김영원은 ‘완벽한’ 인체 상을 제작한 후 이를 떨어뜨려서 깨뜨렸다. 이렇게 엄격한 해부학적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인체조각을 파편화시킨 다음에 이 파편들을 다시 조합하여 복원하는 작업을 했다. 당시는 군중의 데모와 이를 진압하는 군부의 대치상태가 지속되는 사회적 격동의 시기로, 파편화된 인체는 사회 내의 갈등으로 생기는 상처와 증오, 대립과 분열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탄생’, ‘복원’, ‘공화국’ 같은 부제가 달린 <중력무중력> 연작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구현된 작품이다. 동시에 작가는 알을 깨트려야만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작품을 과감하게 해체하면서 새로운 출구를 모색했다.
이렇듯 파괴와 복원의 과정을 거친 작품들에는 억눌렸던 자유가 폭발하고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경험한 당시의 시대상이 함축되어 있는데, 김영원은 파편화와 복원의 작업을 오래 지속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과감한 과정을 거치면서 10여 년 정도 지속해오던 ‘중력 무중력’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사실주의 조각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 속에서 나는 현대적이고 개성적인 새로운 만남을 위해 여지껏 해왔던 작품을 철저히파괴하고 파편화된 작품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조립하는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극단적 부정을 통해서 신체성과 정신성을 초월하는 절대적긍정의 세계를 얻고자 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듯이,【주석11】 ‘해체와 복원’의 시기는 당대의 시대상을 함축하고 있을뿐더러 전체적인 작품세계의 흐름에서 보자면 과도기이자 새로운 시기로 전환하는 ‘터닝 포인트’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3. 기공명상의 예술, “제3의 예술”
기공명상의 예술은 명상 수행과 동시에 내면의식을 표출하는 시공간의 몸짓을 작업에 응용한 것으로, 김영원은 199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여하면서설치미술 형식으로 선보였다. “예술세계가 물질을 극복하고 정신을 고양시키고 영혼의 질을 높이는 대각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원하면서작가 스스로 “각성의 예술”이라고 명명하였다.【주석12】 김영원은 1990년에 시작한 기공명상의 수련을 예술 행위와 일체화한 것이다. 그리고 동양철학에심취하게 된다.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할 때, 서구철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Platon) 철학의 각주(脚注)에 불과하다’라는 영국 철학자 화이트 헤드(White Head)가 남긴 말을 김영원은 언급하곤 한다.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서양의 지식인들에게 인간주의와 이성주의를 벗어나는 '사상적 출구'로서 동양철학을 수용되기도 했던 맥락 속에서 살펴볼 수 있으나, 김영원은 특히 이데아 중심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노장철학에 매료되었다. 한국미술가들이 동양철학, 특히 노장사상에 관심을 보인 것은 1970년대이다. 김구림(1936년생)이나 이건용(1942년생) 같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은 물론 박서보(1931년생)를 위시한 단색조 화가들이 반복적 행위를 통한 수행을 강조할 때, 그 바탕에 놓인 것이 바로 노장사상이었다.【주석13】 평론가 이일(1932-1997)은 이를 ‘범자연주의’라는 비평 용어로 설명하기도 했는데, 이는 탈 서구를 지향하던 시대적 맥락 속에서 ‘한국적인것’ 즉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김영원의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1970년대 미술가들의 관심과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결이 다르다.
동양철학에 대한 김영원의 관심은 이성 중심주의에 기반하여 이분법적으로 전개된 서양철학과는 달리, 정신과 신체, 전체와 부분의 일원론, 즉 불이사상(不二思想)을 바탕을 두고 있다. 게다가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기공명상 수련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기공명상 수련과정에서 기(氣)의 흐름에 따라 반응하는 몸짓과 그 몸짓의 흔적을 작품으로 남겼는데, 이러한 작업은 이성의 통제 하에서 조형 작업을 하던 기존의 서구적 방법론을 해체하려는 시도이다. 퍼포먼스 자체는 서구적인 미술 형식이지만, 기공훈련의 몸짓은 때로는 춤사위처럼 때로는 무술 동작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비물질적인 기의 흐름을 가시적인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이다. 김영원은 퍼포먼스 자체만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점토나 유화물감이 발린 기둥이나 캔버스에 손으로 흔적을 남기는 식으로 기공명상 수련에서 생긴 에너지의 파동을 형상화했다. 이런 파동의 흔적을 원기둥에 남긴 작품은 <조각-선(Sculpture Zen)>과 <드로잉-선(Drawing Zen)>으로, 그리고 캔버스에 남긴 작품은 <명상드로잉(Cosmic Force)>으로 분리해서 명명하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기공명상 훈련에서 나온 파동, 즉 기의 흔적으로, 물결, 구름, 바람결과도 같은 자유로운 형상을 띤다. 작가는 기마민족(騎馬民族)의 후예(後裔)다운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신라의 천마총(天馬塚)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力動的)인 기세(氣勢)가 있는 ‘무위(無爲)의 이미지’라고 언급한다. 동시에 김영원은 자신의 장기(長技)인 인체 조각을 극사실적인 양식으로 제작하였고, <절하기>라는 제목의 엎드려 절하는 인체상이나 가부좌를 하고 좌선하는 인체조각상을 표현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합하여, 명상을 통해 세상의 욕망을 끊어낸 상황을 설치 형식으로 표현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예술세계를 펼치고자 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1997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전시회를 열면서 작가 스스로 “제3의 예술”로 명명하였다.【주석14】 결국, 기공명상의 수련을 작품화함으로써 서구적인 것에서 동양적인 것으로, 그리고 현실 비판의식에서 철학적 사유로의 방향 전환이 실현된 것이다. 그는 생활의 일부였던 기공명상을 예술작품으로 연결했고, 수행을 철학적 실천으로 삼는 동양철학을 사유하여 이를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를 해체한 포스트모던 개념의 미술로 발전시켰다.
4. 인체조각을 초월한 인체조각,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
2000년대에 김영원은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중력 무중력’ 명제 이후 또 하나의 연작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명제의 인체조각상이 탄생한 것이다. 김영원은 여전히 기공명상을 지속하는 수행자이자 예술가로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기공수련 작품들을 일반인들과 교감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선 퍼포먼스나 예술-선은 수련자가 아닌 일반 관객들과의 소통에 한계를 절감하고 이를 대중 속에 확산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동시에 ‘중력 무중력’의 방법적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 조각의 탄생을 시도했다. 게다가 예술 활동보다는 개인적인 심신 수련의 수단으로 오인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이다. 김영원은 이를 “동양의 경험론적 세계와 서양의 사유 구조(思惟構造)의 두 세계관을 통합하는 일”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형적으로는 선 퍼포먼스의 흔적이 지닌 추상성과 <중력 무중력>의인체 조각이 갖는 구상성이 융합된 것이다. 기공명상에서 생성된 에너지인 비가시적인 ‘기(氣)’와 참선하는 모습으로 가시화된 사실적인 인물상을 융합하여 전혀 뜻밖의 인체 조각상을 도출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림자의 그림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림자를 어떻게 조각의 물질적 재료로 표현할 수 있는가. 아마도 『장자』 내편 「제물론」 중 ‘망량(罔兩)’, 보통 ‘곁그림자’ 혹은 ‘그림자의 그림자’와 ‘경(景)의 우언과 관련이 있을 듯한데, 이 명제는 “화두”일 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김영원의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은 분명 인체조각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인체표현으로, 공적 공간에 세워진 거대한 인물상은 초현실적이기 조차하다. 그는 벽에 있는 부조를 절취해서 공간 속에 세운 것처럼 물화(物化)된 인체 이미지로 표현한다. 세워진 부조의 전면은 입체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뒷면은 텅 빈 상태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마치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부조 형식으로 표현된 물화된 인물상을 사방으로결합함으로써 어디에서 보더라도 작품의 정면이자 후면이 되는 독특한 인체상이 되었다. 또 이러한 인체상의 표면을 매우 매끈하게 처리하거나 표면에화려한 색채를 덧입힘으로써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창출한다. 특이하게도 인체의 표현이 뒷모습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이러한 작품은 인체 조각상이면 으레 드러나게 마련인 성별조차도 초월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체를 자유롭게 절단하고 재조립하여 제작된 인체상은 부조와 환조, 앞면과 뒷면, 음과 양, 현실과 초현실을 융합한 것으로, 기성의 모든 인체조각 개념을 초월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 불교의 색즉시공( 色卽是空), 주역의 음양관( 陰陽觀) 같은 세계관을 사유한 결과물로, 한국 인체조각의 흐름을 뛰어넘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구조각사의 근간이었던 인체표현을 넘어서는 독창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IV. 맺음말
1947년에 태어난 김영원은 한국 현대사에서 질곡의 시대를 살아냈다. 해방 공간의 혼란기에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곧바로 전쟁기를 맞이하고, 이어 4.19, 5.16과 같은 사회적 혼란기를 지내야 했다. 비록 세상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경제적으로 피폐해 있던 농촌의 상황은 고스란히 작가의 유년기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남다른 재능으로 미술대학에 진학할 수는 있었지만 1970년대의 사회와 정치 현실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를짓눌렀다. 당시 미술계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발언하기보다는 미술의 장르 안에서 순수성과 현대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현대성과 순수성은 추상미술로대변되었으며, 젊은 세대 작가들의 저항은 대체로 기성의 세대와 미술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나마도 서구의 전위미술을 빌려왔기 때문인지 오래가지는못했다.
김영원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가장 정통적 방식인 사실주의 양식으로 사회적 발언을 시도했다. 그러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향으로 선회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재가치는 자아실현에 있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평생 창작 활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강한 현실 비판의식을 지녔지만, 민중미술 작가들과 달리 미술을 사회변혁의 무기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창작 활동 자체를 인간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사유와 동일시했다. 사회 비판적 시각이 내재된 <중력 무중력> 연작에서 직설 화법보다는 은유와 환유의 방식을 사용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이후 김영원은 기공 수련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면서 인간 실존의 근본에 대해 더 깊이 천착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동양철학에 매료되었다. 그 결과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 같은 독특한 인물상이 창안되었는데, 여기서 작가는 음과 양, 물질과 정신, 色과 空, 有와 無 같은 요소들이 대립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동양철학에 대한 사유는 김영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 현대미술가들 다수가 노장사상이나 불교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1970년대의 단색조 화가들은 무목적적인 반복적 행위를 수행으로 내세우면서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조각가 김영원에게 있어 동양철학은 반복적 행위를 통한 수행 정도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작가 자신이 직접 기공명상의 수련과 사유를통합해서 동양철학을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는 점에 그만의 독자성이 있다. 그것도 기(氣)라는 비가시적 에너지와 철학적 사유의 관념적 요소를 구체적인 물질로 표현해 낸 점, 감상용이 아닌 관객들에게 계속 근본적인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는 화두 같은 조각을 창출하려 했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지 않은가.
김영원은 이제 70대 중반의 작가다. 예술 경영 지원센터의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된 작가 중에서는 비교적 젊은 작가에 속한다. 따라서 앞으로 그가 어떤 새로운 방향에서 작품을 제작할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독특한 인체 해석, 즉 한국의 시대적 상황속에서 독자적으로 동양철학을 내면화하여 창안한 인체조각상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이번 디지털 아카이빙 프로젝트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가 그의 작품에 관한 국내 연구의 활성화는 물론 국제적인 차원의 프로모션에도 크게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시기별 작품 해설
김수진 (김영원 연구팀)
1. 1970년대 중반 ~ 1990년대 초반 : ‘중력 무중력’ 시리즈
2.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초반 : ‘선조각(禪彫刻)’ 시리즈
3. 2000년대 초반 ~ 2010년대 초반 :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
4. 2010년대 중반 ~ 현재 : ‘그림자의 그림자’, ‘명상 드로잉’ 시리즈
1970년대 중반에 사실 조각으로 활동을 시작한 김영원(金永元, 1947 - )은 한국 현대조각에서 인체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추상조각이 화단의 대세를 이루며 서양조각의 이식과 수용이라는 풍토에서 등장한 김영원의 사실 조각은 현실을 근간으로 하여 ‘사물화된 신체’라는 독자적인 조각언어를 구사했다는 측면에서 당시 제도권에서 전개된 조각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일찍이 시대와 현실을 꿰뚫는 비판적 인식으로 현대 인간의 실존문제를 제기한 작가는 인체조각에서 숙명적으로 거론되는 모방과 재현이라는 개념적인 틀에서 벗어나 끊임없는 조형 실험을 통해 조각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중력 무중력’ 시리즈를 통해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현대 인간실존에 대한 상황성을 ‘사물화된 신체’를 통해 은유적인 담론으로 표현하면서도 조각의 원론과 정체성을 재고함으로써, 사실 조각과 ‘중력 무중력’에서의 조형법을 과감하게 해체하여 새로운 조각의 형식과 내용의 전환을 이루었다. 김영원은 1990년대를 걸쳐서 ‘선(禪)과 예술의 접목’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을 계기로 ‘기공명상(氣孔冥想) 예술’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예술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기공명상 예술’이란 예술 행위가 명상이 되고 명상이 예술이 되는 독창적인 세계이다. 김영원은 1994년에 제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ãopaulo)》에서 명상과 예술이 융합된 <조각 선(彫刻 禪)> 작품들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 초부터는 ‘기공명상 예술’의 연장선에서 동양 정신사에 대한 심화된 사유를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서구중심의 이항 대립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일원론적인 통합된 세계를 지향하며 『노자(老子)』 유무상생(有無相生)과 불교의 불이사상(不二思想), 『주역(周易)』의 태극사상(太極思想)을 재해석하여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에 적용했는데, 부조(浮彫)의 양면을 응용한 이미지를 통해 조각의 정체성 위에 존재의 근원에 질문을 던지는 독특한 조각예술의 경지를 이끌어 냈다. 한지와 캔버스의 최근작인 ‘명상 드로잉’에서는 선(禪)과 명상(瞑想)을 기조(基調)로 하여 ‘예술을 통한 성찰과 각성’이라는 화두(話頭)를 던지며 예술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1. 197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 ‘중력 무중력’ 시리즈
1) 사실주의 조각과 ‘중력 무중력’ 시리즈
1968년에 대학 생활을 시작한 김영원은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되었던 군부독재시대의 불투명하고 어두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경험하며 군에 입대하면서 사회현실과 역사의식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김영원은 1970년에 철조 작품인 <파열>로 제1회 《전국대학미전》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추상조각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군에서 제대한 이후로 당대의 현실 인식이 투영된 새로운 사실주의 조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대학 4학년 때인 1974년부터 합리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체조각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 무렵에는 <어느 사형수의 얼굴>(1974)과 <어제 만난 소년>(1976)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치 · 사회적인 관심을 구체화하였다.
김영원은 사실주의 조각의 대표작품인 ‘중력 무중력’ 시리즈를 1977년부터 1993년경까지 제작하였다. ‘중력 무중력’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1977년에 발표한 <시각 변이>이다. 작가는 <중력 무중력>이라는 제목을 1980년 제2회 ‘동아미술제’에서 동아미술상을 수상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현재 ‘중력 무중력’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은 1979년까지는 <시각 변이>(1978), <空(공)>(1978), <공(空) 78-56>(1978), <방(榜)>(1979)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중력 무중력’ 시리즈에는 청소년들이 철봉에 매달려 있거나 오르는 순간의 동작을 취한 인체상들이 등장하는데, 표준화된 비슷한 신체조건을 가진 청소년들이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거나 고개를 떨구고 표정이 없는 얼굴로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개인의 인격과 개성을 상실한 채 익명성이 강조된 현대인의 인간소외를 위와 같은 인체상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작품의 재료 면에서도 합성수지(F.R.P.)를 사용하여 조각의 표면을 매끈하게 처리하면서, 작가의 어떠한 손작업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러한 표현에서 김영원이 인체에 대한 엄격한 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신체의 물리적 표현에 중심을 두면서, 인체에 대한 미적인 해석을 작품에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적인 인체 그대로를 표현한 사실주의는 ‘사물화된 신체’라는 작가만의 고유한 조각 언어로써 인간의 정신성이나 생명성의 문제를 억압하고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당시의 상황에 접근하는 작가의 태도를 대변한다. 작가는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성보다 신체의 기능성만을 강요받는 현대인의 실존과 익명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사물화된 신체’라는 상징성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중력 무중력’ 시리즈는 집단적으로 전시되기도 했는데, 이 시리즈의 제작 초기인 1970년대 초반에는 5점 이하의 인체상들이 군(群)을 이루는 방식을 보였고, 1970년대 후반에는 ‘중력 무중력’ 시리즈 가운데 10여 점 이상의 인체상들이 집단을 이루는 형식으로 등장하였다. 이것은 특정한 ‘상황성’을 연출한 것으로 조각이 놓인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인체 조각을 집단적으로 설치하는 전시방식은 1970년대 당시로써는 매우 드물었는데, 다수의 인체상들을 한 곳에 설치하여 극적인 효과를 연출했다는 점은 자칫 인체의 형식으로만 치부될 수 있었던 당시에 현대성을 획득하기에 유리한 점이었다.
2) 형상(形像)의 모색과 상(像)의 해체
1980년대 화단에는 기존의 기하학적인 추상조각에서 배제되었던 인간의 ‘형상(形像)’이 다시 등장하였다. 1980년대에 이 같은 ‘형상’을 지향한 일군의 작품들을 일컬어 ‘형상조각’이라고 말한다. 형상조각은 작품의 내용 면에서 기존의 구상조각에서처럼 작가의 심리적 요소를 비롯하여 다양한 서사를 다루었지만,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인체를 파편화시키고 물질화함으로써 인간실존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같은 형상조각의 경향성이 드러난 김영원의 대표작품으로 <중력 무중력 – 욕망>(1986), <중력 무중력 – 불꽃>(1986), <중력 무중력 – 88-2>(1988), <중력 무중력 – 구름이 머무는 곳>(1988)등이 있다.
특히 1985 - 86년에는 김영원의 작품에서는 드물게 흉상과 반신상이 제작되었다. 이 가운데 <중력 무중력 - 욕망>(1986)은 양쪽 팔이 없는 반신상으로, 정수리 부분이 잘려나간 두상과 배꼽 아래까지의 몸통으로 된 작품이다. 1980년대 당시 화단은 추상과 형상의 대치 구도로 획일적인 경향을 보였는데, 김영원은 1986년에 개최된 제1회 《現 · 像(Present · Image)》展에 <중력 무중력 – 욕망>을 출품하면서 새로운 이미지(image)와 형상성을 지향하는 창작의 자율성을 모색하였다. 이 밖에도 인체의 특정 부분에 이질적인 형태의 입방체를 삽입하여 초현실적이고 심리적인 요소가 투영된 작품을 발표하는 등 일상과 환경,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이슈를 광범위하게 다루는 동시에 표현 형식에서도 자율성을 이끌어냈다.
한편 1980년대에 ‘민주화’라는 대전환기를 마주하면서 김영원은 지난 10여 년간 지속해온 ‘중력 무중력’ 시리즈 작업에 변화를 모색하였다. 작가에 따르면, 현실을 기반으로 한 사실주의 인체조각 역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객관적이고 구축적인 구조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서양 미학을 기반으로 한 서양 전통조각의 흐름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작가는 이전의 사실주의와는 다르게 직관적이고 자유로운 우연성을 중시하며 자신의 내면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조형법을 추구하게 된다.
1987년경부터는 기존의 ‘중력 무중력’ 시리즈에서 인체상을 깨뜨려 분절하거나 파편화시키고, 흩어진 파편들을 재조립하는 방식의 ‘해체작업’을 시작하였다. ‘탄생’, ‘복원’ 그리고 ‘공화국’과 ‘합’ 시리즈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표작품으로는 <중력 무중력 - 탄생 Ⅱ>(1989), <중력 무중력 - 복원 Ⅲ>(1989), <중력 무중력 - 공화국Ⅱ>(1989) <중력 무중력 – 공화국 Ⅳ>(1989)등이 있다.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인체상은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갔거나 신체의 깨진 파편을 모아 재조합하여 인체의 형상을 복원시키는 과정을 거쳐 제작된다. 작가는 파편화되어 뼈대만 남아 있는 불완전한 인체 형상을 통해 당대의 극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과 실존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작품에서도 형상의 해체와 재조합의 형식이 드러나지만, 이 같은 특징이 전적으로 당시의 정치 · 사회적 현실과 관계된 것으로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작품의 형식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불교의 윤회사상(輪回思想)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영원은 1990년대 초반까지 ‘중력 무중력’ 에서의 방법론을 과감하게 해체하면서 새로운 조형법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해체작업’ 역시 작가에게는 현실을 상징하고 인간의 물질화, 사물화의 결정체로 다가오면서 현실 속으로 침잠해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기존의 방법론과 인식의 틀을 재고하기에 이른다.
2.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초반 : ‘선조각(禪彫刻)’ 시리즈
1) <조각 선>과 <드로잉 선> 시리즈 : 추상(抽象)의 극(極)
1990년대 초반부터 ‘선 명상(禪 瞑想)’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등장하면서 작품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전환점을 맞게 된다. 김영원은 1990년경에 ‘선(禪)’을 알게 되면서 선 명상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며 ‘중력 무중력’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조형법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명상’을 통해 사유를 배제한 기공 행위에 의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는데, 그 과정에서 ‘선조각(禪彫刻)’이 등장하였다. 선조각이란 명상(瞑想)과 체선(體禪)의 과정이 투영된 김영원의 작품들을 통틀어 말하는 용어인데, 형식적으로는 <조각 선(Zen Sculpture)>과 <드로잉 선(Zen Drawing)>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선조각(禪彫刻)은 과정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의 제작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조각 선>은 점토로 만든 기둥을 중심에 놓고 선무(禪舞)를 펼치는 작가의 행위과정 중에 생기는 흔적(氣의 흐름)을 손과 손등으로 자연스럽게 점토의 표면에 새긴다. 그런 다음 선무에 의해 전사된 기둥표면에 새겨진 흔적들을 F.R.P.나 청동으로 캐스팅하여 완성한다. 이러한 <조각 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1993년부터 1996년에 발표한 <마음의 흔적>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는 일명 '흔적' 시리즈로 부르기도 하는데, 작가는 <마음의 흔적> 또는 <흔적>에 제작연도와 일련번호 등을 함께 적거나 <흔적>에 '色’, '受', '想,' 行' 등의 부제를 달아 작품의 제목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마음의 흔적 93-4>(1993), <空 - 行>(1994), <色空>(1994), <색상>(1995)과 <受>(1995) 같은 ‘흔적’ 시리즈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제목의 의미는 선(禪)에서 말하는 ‘마음의 구조’, 다시 말해 ‘오온(五蘊)’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오온(五蘊)이란 색(色, 물질) + 수(受, 느낌) + 상(想, 생각) + 행(行, 지어감) + 식(識, 인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주석1】 이처럼 김영원은 선에서 마음(心)을 상징하는 ‘오온(五蘊)’을 주제로 <조각 선>이라는 형상을 빌어 극도로 추상화된 상징성을 지닌 작업과정과 물상(物像)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의 구조’에 내재한 뜻을 이해하고 나면 <조각 선>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이미지와 제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드로잉 선>의 제작과정도 마찬가지로 작가의 선무(禪舞)가 작품의 중심에 위치한다. 먼저 약 2.5m 높이의 PVC 기둥의 표면에 제소(gesso)와 물감 등 혼합재료를 바른 다음 기둥을 둘러싼 공간에서 작가가 선과 명상의 선무(禪舞)를 춘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기(氣)의 흐름과 흔적을 작가의 손과 손등으로 기둥의 표면에 드로잉하면서 작품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처럼 작품의 제작과정이 지닌 특수성 때문에 <조각 선>과 <드로잉 선>은 주로 퍼포먼스와 결합된 종합적인 설치형식으로 발표되었다. 다시 말해, 기공명상(氣功冥想)에 의해서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이 작가의 선무(禪舞)에 의해 기둥에 전사되면, 그 기둥(드로잉 선)을 작품의 중심에 놓고 ‘절하는 사람들’과 인체의 해체된 파편들을 함께 설치하여 ‘선 퍼포먼스(Zen Performance)’를 펼치고 인체의 다양한 형상들과 어우러지면서 독보적인 설치작품이 구현되는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김영원은 1994년에 제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ãopaulo)》(1994. 10. 19 – 12. 11)에 참여했을 당시에 국제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선 퍼포먼스’를 선보임으로써 비엔날레의 인터뷰 작가로 선정되어 현지인들의 호평을 받는 등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후로도 인체조각과 선 퍼포먼스가 융합된 대형 설치작 <제3조각을 위하여>를 《생명의 조각》(문예진흥원 예술회관, 1997. 4. 18 - 23)에서 발표하였다. 이것은 선 명상예술이 지닌 추상적이고 개념성이 강한 작품과 <空 - 97 Ⅱ>(1997) 같은 극사실적인 인체상 그리고 인체의 파편 조각들을 혼합해서 설치한 것이다. 김영원은 <제3조각을 위하여>와 더불어 ‘제3의 예술을 꿈꾸며’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1980 - 1990년대의 전환기에 자신의 작업관을 조망하면서 물질세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신적 차원의 예술세계를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선조각의 연장 선상에서 작가는 1997년부터 2007년 사이에 10여 차례에 걸쳐서 ‘선 퍼포먼스(Zen Performance)’를 시연하였다. ‘선조각(禪彫刻)’과 ‘선 퍼포먼스’는 과정 차원의 예술을 지향하는 작가의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된 예술형식으로 볼 수 있는데, 선 명상예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작업과 수행(修行)의 일체를 추구하는 김영원 작품세계의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적인 축(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김영원은 1990년부터 1998년경까지 선 명상수행을 하면서 이 과정에서 ‘선조각’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제작했다. 앞서 밝혔듯이 ‘선 명상예술’은 과정이 중심이 되는 작업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구체적인 형상을 구하거나 지향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물(物)과 상(像)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과정 자체를 ‘바라보는’ 종결되지 않은 미완의 어떤 경계(境界)를 보여준다. 작가는 작업과 명상의 일체화를 향해 가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각성한다. 그러므로 선조각을 바라볼 때 시각적으로 드러난 이미지의 의미보다는 작품을 제작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선조각’은 형상이 아닌 ‘추상의 극(極)’을 보여주고 있다.
2) <절하기> 시리즈 : 구상(具象)의 극(極)
<조각 선>과 <드로잉 선>이 고도의 추상성을 지닌 과정 차원의 예술을 지향한다면, 비슷한 시기의 <절하기> 시리즈에는 이와는 반대로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인체상이 등장하면서, 체선의 과정을 서술적으로 풀어서 절하는 사람(수행자)의 상황성을 극대화하였다. 김영원은 <절하기> 시리즈에서 <중력 무중력>의 ‘사물화된 인체상’을 대신해 실물과 다름없이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인체상 다수를 나열해 반복적으로 등장시켰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정반대의 대치되는 조형법으로 작품을 제작한 이유에 대해서 작가는 <조각 선>과 <드로잉 선>같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작품에서 관객들은 자신과 같은 눈높이에서 파장을 느낄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주석2】
<절하기>(1999)는 좌선하는 형상의 인체상과 그 인체상을 향해 엎드려 절하는 인체상 2점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가부좌를 한 채 명상하는 조각과 이 상(像)을 향해 절하는 조각을 마주 보도록 설치하였다. 그런데 명상하는 인체상은 목 언저리부터 정수리까지 두상(頭像)이 없는데, 작가는 조각의 내부가 텅 비어 있는 상태로 두상이 부재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인식하는 특정한 사물의 실체가 빈 껍데기이거나 허상(虛像)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또 이 2점의 인체상은 ‘둘이 아닌 하나’와 같다고 볼 수도 있는데, 특정한 우상을 섬기는 상황을 표현했다기보다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엎드려 절한다는 마음의 상태 내지는 수행자의 태도를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김영원은 <절하는 사람>(1996)을 비롯해서 1997 - 1999년 사이에 제작된 <절하기> 시리즈와 <파장 97>(1997)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체상과 숫자의 배열 등을 통해 존재의 익명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고, 20점 이상으로 구성된 수행자를 연상케 하는 인체조각을 나열하는 설치작품을 통해 자신이 끊임없이 수행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2004년경까지 <절하기>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실적인 형상의 ‘절하는 사람’을 반복적으로 나열하여 장방형 부조처럼 벽면에 설치했는데, 동어반복이라는 어법을 구사하여 진정한 수행의 의미를 구하고자 한듯하다. 작가는 절하는 형상을 빌어서 머리를 땅에 대는 행위로써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는 하심(下心)의 과정을 통해서 고도의 자기 절제와 내면을 바라보고자 했다. 1990년대는 ‘선조각(禪彫刻)’을 통해 작가의 선 명상수행 과정이 작품에 투영되면서 추상과 사실 사이의 양극단을 오가며 해체와 재구축이라는 방법론을 취하였다. 김영원은 선조각이 ‘자신의 심신수련과 예술행위를 통합하는데 더없는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관객과의 소통에는 많은 장애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다시 조각의 원론적인 ‘구조’에 대해 재고하였고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조형법을 모색하게 된다.
3. 2000년대 초반 ~ 2010년대 초반 :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
1) 부조(浮彫)의 도입과 ‘그림자 조각’의 등장
김영원은 1990년대의 ‘선조각’에서 추상과 사실의 양극을 아우르면서 선의 수행과 예술을 한 선상에 놓고 일체화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대안적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극도로 추상화되거나 고도의 은유적인 상징성이 있는 ‘선 명상예술’ 작품들은 관람객과 교감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작가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인체조각에 ‘부조(浮彫)’형식을 도입하여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부조’는 평면 위에 원하는 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기는 조각기법이다. ‘그림자 조각’의 경우 평면상에서 인체형상을 부조로 만든 다음 떼어내어 공간에 세우게 되면 3차원의 입체형식이 된다. 3차원의 공간에 세워진 조각의 구조는 한쪽 면은 평면이고 나머지 반대 면은 인체형상을 가진, 즉 ‘부조의 형식을 취한 환조의 형식’을 갖게 된다. 작가에 논리에 의하면, 부조의 인체 이미지는 반물화(反物化)된 상태이므로 임의로 자유롭게 절단하고 조립해서 다양한 이미지의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조형법을 통해 작가는 인체조각이 지닌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형식에서 자유를 획득하고자 했다.
‘그림자 조각’은 형식적으로 보면 선 명상예술에서의 추상성(抽象性)과 인체조각의 구체성(具體性)이 융합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조형법은 마치 선(禪)에서 제시하는 화두(話頭)처럼 ‘중력 무중력’과 ‘선조각’이라는 조형법이 정반합(正反合)을 거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자의 그림자’에서 인식되는 인체의 이미지는 앞과 뒤의 구분이 없다. 그러므로 작품에 내재된 서사가 관람객에게 단번에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람객 스스로가 자신의 인식수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소통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림자의 그림자’는 처음에는 관람객에게 인체라는 ‘형상’으로 다가가지만, 반복해서 바라볼수록 연속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나가며 새롭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서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하나의 화두(話頭)로 자리를 잡는다.
김영원은 2004년경까지 <절하기>와 <절하는 사람>을 제작하면서 선 명상의 수행자로서 내면을 살피는 동시에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조각’의 제작 초기인 2002년부터 2004년경까지는 작품의 제목을 <바라보다>와 <교감> 그리고 <교감 – 응시>의 부조(浮彫)와 투조(透彫)가 융합된 형식으로 제작했고, 점차 저부조(低浮彫)의 인체상을 도려내고 부조를 떼어내고 남은 틀을 마주 보도록 세우면서 조형적으로 다양한 변주를 보였다. 이들 작품의 제목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신의 내면을 포함하여 관객들과 교감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2) ‘그림자 조각’의 양면성과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관계
김영원은 2005년부터 <그림자의 그림자>를 제목으로 한 첫 번째 작품을 발표했다. 같은 해에 제작한 <그림자의 그림자 05-4>의 경우, 한 면은 평면이고 다른 한 면은 입체로 된 부조 2점을 맞대어 세운 구조이다. 김영원의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에 등장하는 형식은 모두 이처럼 평면과 입체를 한몸에 지닌, 다시 말해 한 작품 안에서 평면과 입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양면성(兩面性)을 지닌 이중적인 구조의 조각이다. ‘그림자 조각’은 이 같은 형식을 취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 것인데, 이러한 양면성의 구조는 ‘그림자 조각’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자 근거로 작용한다.
그런데 만약 이 부조의 평면 쪽을 ‘무(無)’로 보고 입체 쪽을 ‘유(有)’라고 가정한다면, 유와 무가 동시에 부조의 한몸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김영원은 부조형식에서의 유와 무의 관계를 『도덕경(道德經)』에서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관계원리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노자(老子) ‘유무상생’을 간략히 언급하자면, 서로 대립이 되는 성질의 것이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공생하면서 서로에 대한 존재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논리이다. 김영원은 ‘부조’라는 형식에 내재한 평면과 입체라는 ‘구조의 양면성’과 『도덕경』에서 생성과 순환의 관계가 내포된 ‘유무상생’에서 양면성(兩面性)의 논리를 자신의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에 적용한 것이다.
이 같은 양면성의 논리를 근거로 하여 2005년경까지 주로 수직성을 특징으로 한 부조 한 쌍을 마주보게 세운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2005년과 2008년에는 대규모 설치작품 <바라보다 05-2>와 <그림자의 그림자 2>를 발표했는데, 이전의 ‘그림자 조각’과는 다르게 비슷한 크기의 부조상을 수십 점씩 나열해 일정한 방향으로 설치하고 작품의 내용 면에서도 ‘복제’와 ‘반사’ 개념이 등장하면서 실존에 대한 탐문을 이어갔다. 특히 2008년작 <그림자의 그림자 2>의 경우는 높이가 100 - 200㎝ 사이의 부조상 40여 점을 집단적으로 세운 후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도록 설치한 작품이다.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이 불가능한 상(像)들을 공간에 가득 차게 설치하여 형상의 복제가 거듭되는 ‘상황성’을 제시하였는데, 작가는 이 같은 무한 복제와 자가 증식하는 이미지가 현실(現實)과 동시에 가상(假像)을 대변하는 가장 적합한 이미지라고 보았다. 같은 해인 2008년에 등장한 ‘꽃이 피다’ 시리즈는 복제된 부조가 중앙을 향해 수차례 꽃이 피는 형상처럼 포개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각 부조의 평면 쪽이 마주 보는 상태에서 작품의 중심을 향해 중첩되면서 꺾여있고, 금속성의 광택이 있는 표면에 꺾이고 굴절된 부조의 형상이 반사되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바라보다’와 ‘꽃이 피다’ 시리즈처럼 복제에 의해 무한증식하는 형상이 마치 실재와 가상의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현재의 세태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조각의 표면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김영원은 2006년경부터 브론즈나 F.R.P.로 완성된 작품에 원색의 컬러를 과감하게 입히거나 광택을 부여하여 작품의 표면을 처리하였다. 브론즈 조각의 표면에 원색과 광택을 덧입혔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복제가 이루어지는 상황성과 반사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또한 ‘브론즈(Bronze)’라는 전통적인 재료가 상징하는 조각의 무게를 덜어내고 은폐시키는 동시에 재현의 문제로부터 거리 두기를 위한 작가의 이중적이자 사후적인 전략이다.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에서 작가는 이중적인 구조와 ‘유무상생’의 논리를 바탕으로 부조형식에서 평면과 입체, 유(有)와 무(無)라는 대립 항이 공존하는 상황을 전제로, 이 상황을 역으로 강조하거나 복제가 거듭되는 형식을 취하는 방법으로 이원구조의 틀을 타파하고자 했다. 이러한 조형법은 실존이라는 작품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데, 이를 위해 작가는 ‘실재(實在)와 부재(不在)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실과 가상의 극점에서 위태롭게 유희하는 현대인의 실존에 대한 은유적인 시선’【주석3】을 시뮬레이션(simulation)이 전개되는 상황을 통해 구현했다. 결국에는 이러한 상황성이 실상(實像)에 대한 환영(幻影)이라는 사실과 인간존재의 ‘공성(空性)’을 드러내기 위한 작가만의 방법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2010년대 초반 ~ 현재 : ‘그림자의 그림자’, ‘명상 드로잉’ 시리즈
1) 조각과 장소 그리고 공간 : ‘홀로서다’, ‘길’ 시리즈
2010년부터 ‘그림자 조각’ 시리즈 가운데 대형작품들이 등장했는데, <그림자의 그림자 – 홀로서다>(2010)를 시작으로 해서 높이가 5m에서 8m에 달하는 대형 인체 조각작품들이 국내외 공공의 장소에 설치되었다. 김영원은 2012년에 이탈리아의 피에트라 산타(Pietra Santa)에서 개최된 ‘한국 조각가 축제’를 통해 현지 조각가들과 교류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인 2013년에 이탈리아 파도바(Padova) 시의 주최로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 1939 - )와 2인전을 개최하였다. 이때 발표한 <그림자의 그림자 – 홀로서다 1>(2010)이 파도바 시내의 중앙광장에 전시되어 현지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시 관련 재단인 ‘The Foundation Opera Immacolata Concezione’에서 <그림자의 그림자 – 길 위에 앉다>(2010)를 소장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2016년에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 높이가 8m에 달하는 대작인 <그림자의 그림자 - 길>(2016)과 5m 이상의 <그림자의 그림자 – 길 위에 앉다>(2010)와 <그림자의 그림자 – 꽃이 피다>(2016) 같은 대형 인체조각을 설치하는 등 조각과 장소 그리고 건축의 상호관계에 대한 사유를 통해 조각의 지평을 확장해가고 있다.
김영원은 일찍이 1978년에 호암미술관에 설치한 <午睡(오수)>를 시작으로 1999년에 장충단 공원에 <3 · 1 독립운동 기념탑>, 1998년 서울 올림픽공원과 2009년 상암동 노을 조각공원에 대형 공공 조각작품을 설치하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백범 김구 동상>(2005), <세종대왕 동상>(2009), <추사 김정희 동상>(2014)과 ‘역대 대통령 10인 동상’(2015, 제1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제17대 이명박 대통령까지), ‘임정내각수반(任政內閣首班) 5인 동상’(2020)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주요인물들의 동상을 비롯하여 100여 점에 이르는 공공 조각작품을 제작하여 한국 공공 미술의 역사를 풍부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김영원은 2016년 DDP에 대형 공공 조각작품을 설치하면서 조각과 작품이 놓이는 장소 그리고 공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단상을 글로 남겼다.
DDP의 외부에는 두 개의 커다란 터널이 있다.[...] 즉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하며, 그 경계도 불분명하다. 이러한 공간에 놓인 나의 인체 은유적 작품들 역시 전후좌우 구분이 없는 모두 정면이며 모두 후면이다. 이는 유무상생(有無相生), 색즉시공(色卽是空), 태극음양적(太極陰陽的)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 앞과 뒤의 구분이 없다. 보는 면이 앞이 되고 뒤가 된다. <그림자의 그림자 - 길>은 마음의 길을 찾아가는 자기성찰의 은유를 함축하고 있다. <그림자의 그림자 - 홀로서다> 역시 네 방향이 전면인 동시에 후면이다. 한 작품 속에 이미지와 개념이 다르면서 함께 공존하고 있어, 관람자들의 자기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자하 하디드 작품인 DDP의 환유의 풍경과 나의 인체의 은유, 두 세계가 서로 만나 조화로운 대화와 공명(共鳴)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시공(時空)이 창조되기를 기대한다.
공명(共嗚)_환유와 은유의 풍경【주석4】
건축과 조각 이들 모두는 보이지 않는 ‘공간(空間)’에서 그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한편으로 가상(假像)의 어떤 지점이나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한다면, 조각이라는 예술형식은 ‘물상(物像)’을 매개로 조각가의 현상적인 행위에 의해 공간에 구축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김영원은 2013년경부터 발표한 <그림자의 매스>(2013), <그림자의 단면 A>(2014), <그림자의 내면>(2014)을 통해 조각의 양괴(良塊), 다시 말해 매스(mass)라는 정통성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가 양감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압축된 저부조(低浮彫)로 구축한 작품이라면, 조각의 ‘매스’를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조각가로서 원론적인 문제에 다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림자’ 역시 일종의 ‘이미지’로 실재적으로 인식하고 재해석함으로써 향후 전개될 작업의 향방에 대해 시사점을 주고 있다.
2) ‘선조각’의 확장 : ‘명상 드로잉’ 시리즈
2017년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는 ‘그림자 조각’이 최초로 등장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발표된 작품을 소환하여 조망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존에 발표되었던 대표작인 ‘바라보다’와 ‘꽃이 피다’ 그리고 ‘길’ 시리즈를 브론즈 이외에도 알루미늄과 혼합재료를 사용해 다양한 크기로 변화를 주었다. 2018년에는 김영원이 자신의 제자와 함께 ‘그림자 조각’에 다양한 도상과 컬러를 입혀서 LED 패널과 영상을 설치하여 협업한 <김영원 + 꼴라쥬> 시리즈를 발표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 작가는
‘명상 드로잉’에서는 기공명상(氣功瞑想) 과정에서 기(氣)의 흐름에 반응한 작가의 몸짓이 다양한 이미지로 ‘흔적’은 남기지만, 정형화된 형식이나 의미를 논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명상 드로잉에서의 흔적을 두고 ‘물결이나 구름, 바람결 같기도 한 무위(無爲)의 이미지’라고 말한다.【주석5】 선(禪)에서 마음의 수행이란 끝이 없다고 말하듯이, 작가는 어떤 완결된 형식과 의미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드로잉’으로 상정된 행위를 통해서 ‘과연 참 예술이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선(禪)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와 무언(無言)을 강조하듯이 작가는 선을 통한 과정의 예술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각성한다. 나를 없애는 절대 무(絶代 無)의 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수행(修行)’의 의미를 구하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예술의 정신성을 추구한다. 단지 반복된 몸의 행위만으로는 수행이 될 수 없듯이, 미완의 경계(境界)에서 인식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하며 ‘격(格)의 예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주석1] 최현각, 『선학의 이해』, 동국대학교 출판부, 2010, 402쪽.
[주석2] 김영원 작가노트.(2012. 6)
[주석3] 김영원 작가노트.(2013. 10)
[주석4] 김영원 작가노트.(2016)
[주석5] 김영원 작가노트.(2020. 9)
Ⅰ. 일반사항
1. 연구 개요
- 본 연구는 김영원 작품세계의 독자성을 규명하고 그를 한국 조각사에 있어 중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그의 작품과 관련 자료를 가능한 한 전수조사하고 디지털 자료로 목록화함을 그 1차적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고 전 시기를 관통하는 김영원 작가의 작품세계와 각 시기별 작품 특징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2. 연구 기간
- 2020년 2월 ~ 동년 12월
3. 연구 범위
- 2020년 10월까지 생산된 김영원에 관련된 자료 일체
Ⅱ. 구성 별 특이사항
1. 작품
- 작가가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1969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제작된 김영원의 조각 작품, 퍼포먼스, 그리고 동상을 포함한 공공조형물을 전수 조사하였다.
- 원작과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거나 변형(채색 등)이 더해진 에디션은 다른 작품으로 간주하여, 각각의 정보로 생성하였다. 추가정보 제공을 위하여 원작 작품의 경우는 에디션 작품의 정보를, 에디션 작품의 경우는 원작 작품의 정보를 각각의 ‘작성노트’란에 기입하였다.
- '선조각(禪彫刻)'의 범위와 '조각 선', '드로잉 선'의 정의
· '선조각(禪彫刻)'이란 김영원이 명상수행과 체선(體禪)의 과정을 표현한 일련의 작품들을 통틀어 말하는 용어다. 선조각은 형식적으로 '조각 선'과 '드로잉 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 '조각 선'은 '흔적' 시리즈처럼 점토로 만든 기둥(또는 점토 판)의 표면에 작가의 명상수행의 과정을 손과 손등으로 새긴 후 F.R.P.나 청동으로 캐스팅한 조각이다.
· '드로잉 선'은 기둥의 표면에 물감이나 젯소 등 혼합재료를 바르고, 명상의 과정에서 생기는 기(氣)의 흐름과 흔적 등을 손과 손등으로 드로잉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1) 작품 구분
- 예술경영지원센터 아카이빙 시스템의 분류기준에 따라 입체작품, 평면작품, 미디어/설치작품, 퍼포먼스, 사진으로 대분류하였다.
- 평면작품, 연작은 ‘회화 작품이기보다는 행위의 흔적을 남기는 드로잉’이라는 작가의 제작개념에 따라 ‘드로잉’으로 소분류하였다.
2) 작품 제목
- 본 제목은 2011년 열린 김영원의 대형 개인전의 도록인 『생명과 명상의 조각 김영원』을 참고하고, 작가와의 합의를 통해 확정하였다.
- 동일 작품의 출처별 제목이 상이한 경우, ‘다른 제목’으로 표기하여 그 모든 정보를 기록하였다.
3) 시기
- 동일 작품의 출처별 시기 정보가 상이한 경우, 근거자료로서 생산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생산된 전시 자료를 최우선시 하여 확정하였다. 그리고 차선 순위로 작가로부터의 정보에 근거하였다.
- 확정된 시기 이외에도, 수집된 전시 자료에 표기된 상이한 시기 정보 일체를 기입하였다.
- 에디션의 경우 원작이 생산된 시기를 표기하되, 실제 그 에디션 작품이 제작된 시기는 ‘작성노트’에 추가 기입하였다.
4) 규격
- 입체작품의 통상적인 규격 기입 방법, ‘높이x너비x깊이(cm)’를 따랐다.
- 동일 작품의 출처별 규격 정보가 상이한 경우, 2011년 김영원의 개인전 도록과 작가로부터의 정보에 근거하여 확정하였다.
- 확정된 규격 이외에도, 수집된 전시 자료에 표기된 상이한 규격 정보 일체를 기입하였다.
5) 재료
- 작품 이미지 분석, 작가로부터의 정보, 전시 자료 등에 근거해 확정하였다.
6) 작품 이미지
- 대표 이미지는 작품의 형태와 디테일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최신의 이미지를, 그리고 기타 이미지는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되거나 작품의 부분을 촬영한 이미지를 선택하였다.
- 그리고 작품 제작과 가장 가까운 시기에 생산된 전시 자료에 포함된 이미지를 기타 이미지에 추가하였다.
2. 작품 외
- 작품 외 자료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아카이빙 시스템의 구분에 따라, 전시 리플릿, 전시 브로슈어, 사진, 작업스케치, 작가노트, 기타로 구성되었다.
- 기타 항목에 포함된 ‘작가제공(외장하드)’는 작가가 디지털로 소장한 정보 또는 작가와의 인터뷰로 얻은 정보를 뜻한다.
-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실물로 확인하고자 하였으나, 수집되지 못한 일부 자료는 2차 자료에 담긴 정보를 이용하였으며, 그 사실을 ‘작성노트’에 기입하였다.
3. 참고문헌
- 참고문헌 자료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아카이빙 시스템의 구분에 따라, 전시도록, 단행본, 신문기사, 정기간행물, 학위논문, 학술지, 영상으로 구성되었다.
- 김영원과 관련된 자료를 전수조사 및 수집하였지만, 김영원에 관한 기초정보만 제공되는 자료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 위와 관련하여 신문기사는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들만 선별하여 본 아카이빙에 추가하였다. 그 예로 보도자료를 재수록한 신문기사, 김영원의 이름만 거론한 신문기사는 제외하였다.
-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실물로 확인하고자 하였으나, 수집되지 못한 일부 자료는 2차 자료에 담긴 정보를 이용하였으며, 그 사실을 ‘작성노트’에 기입하였다.
4. 전시이력
- 모든 전시이력에 전시의 기본 정보(전시명, 시기, 장소, 주최자)와 김영원의 출품작 정보를 기입하였다.
- 이에 더해, 개인전과 같은 중요전시 이력에 전시 서문을 추가하였다.
5. 연보
- 중요 전시와 작품에 관련된 연보의 경우만, 관련 사진을 대표 이미지로 게재하였다.
6. 인용문
- 대부분의 인용문은 중요 부분만을 발췌하여 기재하였지만, 작가 노트와 같은 중요 텍스트와 짧은 글은 그 글의 전문을 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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